[성경강해] (마 4:17) 회개와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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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다 보면 문제가 많이 일어납니다. 언제 발생합니까? 깨닫지 못할 때입니다. 깨닫지 못하면 일을 그르치면서 살아도 모릅니다. 아무리 유익한 귀한 조언도 무용지물이 되어버립니다. 오히려 잔소리로 들립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쓴 열매를 거두면서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하기에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 있습니다. 더 나아가 문제가 계속 발생합니다.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도 영적인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육적으로는 당대의 높은 신학을 알고 있었으나 진리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진리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면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과 자기의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깨달을 수 없었기에 그러한 것입니다.
•못 깨달으면 우리가 행하고 있는 것이 잘못한 것인 줄 모릅니다. 오히려 옳다고 여깁니다. 잘하고 있는 줄 압니다. 모르니까 교만하게 됩니다. 회개할 것도 모르니까 회개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깨닫고 알게 되면 돌이키게 됩니다. 알면 겸손해지고 회개하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 세리가 있는데 누가 겉으로 볼 때 더 경건합니까? 누구에게 천국이 임할 것 같아 보입니까?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임하실 것 같습니까? 세리와 같은 죄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들에게 천국이 임했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모든 사람은 마찬가지입니다. 못 깨닫는 사람은 하나님도 잘 모릅니다. 상대방도 잘 모르고 상대방의 처지도 잘 모릅니다. 사명도 잘 모르고 사는 이유도 잘 모릅니다. 일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잘 모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영원히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을 알지 못하고 죄 가운데 빠져 향락을 추구하고 이 세상에 모든 것을 쌓으려고 합니다.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다시 말해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찾아 오셔도 못 알아봅니다. 오히려 거부하고 대적하고 욕하고 죽입니다.
•이처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천하에 당할 사람이 없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옳다고 여기는데 돌이킬 수 없습니다. 독불장군유형의 사람들에게 그런 성향이 있지 않습니까? 깨닫는 만큼 알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므로 다른 모든 사람들이 잘못되었다고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여깁니다.
•이렇게 깨닫지 못하면 자신도 불행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도, 다른 나라까지도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도 인간과 세상의 일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일을 망치고 사람을 망칩니다.
•누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입니까?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입니다. 어느 분야든 막가파가 왜 막가파가 됩니까? 알지 못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이해가 되지 않고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말과 행동이 옳다고 여깁니다.
•그런 사람에게 권면하면 오히려 핀잔 당합니다. “네가 뭔데 왜 참견하느냐? 당신이 틀렸다. 시끄럽다. 너나 잘 해라. 네가 못해서 그렇다. 더 이상 나를 가르치려고 하지 마라.” 이상한 사람이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깨닫지 못하면 그런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깨닫고 아는 사람은 이와 반대가 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귀담아 듣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합니다. 이런 분들은 일을 그르치지 않고 바르게 행합니다.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잘 깨닫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에게 이끌리시어 사십 일 동안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시험을 이기시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친히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자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자라나신 나사렛에 이르러 안식일이 되자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이사야서를 읽으시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는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고 하면서 놀랍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후의 기록을 보면 황당한 일이 일어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가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지만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보내졌으며 그의 제자인 엘리사도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지만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에게 보내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방인에게 보내졌다는 것입니다. 회당에 있던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는 다 크게 화가 나서 일어나 예수님을 동네 밖으로 쫓아내고 절벽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후 가버나움 동네로 내려가셨습니다. 안식일에 가르치시는데 회당에 있던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려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님께서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꾸짖자 귀신이 그 사람을 넘어뜨리고 나왔습니다. 역시 사람들이 많이 놀라워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소문이 사방에 퍼졌습니다.
•이후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나가셔서 시몬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시몬 베드로의 장모님이 위중한 열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가까이 가셔서 열병을 꾸짖어 열병이 떠나가게 하셨습니다. 해 질 무렵이 되자 사람들이 온갖 병든 사람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자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님께서 귀신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셨는데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누가복음 4장에 기록되어 있는 일들입니다. 여기서 교훈을 살펴보고자 하는데 나사렛에서 함께 살았던 동네사람들이 예수님을 왜 그렇게 대했을까요? 이들은 구약성경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었기에 예수님께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말씀하시자 놀라워하면서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는 있지만 믿지는 못하였습니다. 귀에 응하여 들리기는 하였고 지식으로 알기는 하였지만 믿겨지지는 않았습니다. 들을 귀가 없었던 것입니다. 귀가 있으나 육신의 귀만 있었을 뿐 신령한 영의 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기분이 나빠져서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러운 귀신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압니다”라고 하면서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십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귀신이 귀신같이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귀신들이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알고는 있으나 제대로 알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줄 알기에 그 권위와 명령에 쫓겨났습니다. 모르면 오히려 덤벼들었을 것입니다. 알기에 순종해서 쫓겨난 것입니다.
•우스개로 말씀드리면 귀신의 믿음이 더 좋고 더 잘 순종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알기는 했지만 구원을 받을 만한 앎은 없었습니다. 동네 사람들보다도 예수님의 실체를 더 잘 알고 있었지만 복음과 진리를 듣는 신령한 귀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지적으로 안다고 해서 해결을 받지 못한다는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을 가져다주는 깨달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복음과 진리를 보고 듣는 신령한 눈과 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눈과 귀는 어떤 눈과 귀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 13:16). 우리는 눈에 보이는 복만 복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것을 보는 눈, 영적인 것을 듣는 귀를 가진 것도 복입니다. 예수님이 보이고 예수님의 말씀이 들리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보고 들을 수 있기에 그것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눈과 귀는 한계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도 들리지 않고 예수님을 보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동네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눈을 가졌으나 볼 수 있는 눈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야 예수를 아주 가까이 보고도 볼 수 없었습니다. 또한 들을 귀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낭떠러지에 밀쳐 떨어뜨려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도 더 이상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보는 눈이 복이 있고, 듣는 귀가 복이 있지 않습니까? 요한계시록 1장 3절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보는 눈과 듣는 귀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예수님께서 일곱 교회를 향해 친히 말씀하시기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일곱 교회를 향해 각각 한 번씩 일곱 번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영의 귀가 있는 교회와 성도는 성령님이 하시는 말씀이 들리게 됩니다. 우리가 영의 귀를 가졌을 때, 곧 성령님이 귀를 열어 주실 때 복음과 진리가 들리게 되고 제대로 깨닫게 되고 제대로 알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2장 12절에서 14절에 그러한 것을 잘 말해줍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동네사람들이나 귀신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있겠지요? 성령님을 받지 못한 사람은 그렇게 됩니다. 유다서 10절을 보면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신학을 아무리 많이 알아도 알지 못하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된 이유를 유다서 19절은 명확하게 말해줍니다. “이 사람들은···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이러한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성령님이 없으면 많이 가진 자나 적게 가진 자나, 고귀한 자나 비천한 자나, 학식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고대 사람이나 현대 사람이나, 남자나 여자나 그 누구든 같습니다.
•성령님이 없으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합니다. 듣는 귀가 없어 들을 수 없습니다. 보는 눈이 없어 예수님을 훤히 보고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이 있는 사람은 성령님이 주시는 복된 신령한 눈과 귀가 있습니다. 그 눈에는 예수님이 보이고 그 귀에는 예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러므로 보고 듣는 이 복된 신령한 눈과 귀를 꼭 가지시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첫 사역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누가복음과 다릅니다. 누가복음에서 행한 첫 사역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 대신 마가는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신 다음에 세례 요한이 잡힌 후에 갈릴리로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 첫 사역입니다.
•마태 역시 동일한 순서로 기록하고 있으며 첫 사역의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친히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자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은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지는 장면은 나사렛에 가자 반대에 부딪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동네사람들을 포함하여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에 관한 지식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는 신령한 눈과 듣는 귀는 없었기에 배척하였습니다.
•이들에게 “회개하라”는 메시지는 공허한 소리일 것입니다. 들어도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회개의 메시지를 생략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상황은 다릅니다. 천국은 누구에게 가까이 다가옵니까? 회개하는 사람에게 다가옵니다. 복된 눈과 귀가 있어서 보고 들을 때 천국을 소유하고 향유하게 됩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회개의 메시지를 들려준 이후의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시다가 시몬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를 만났습니다.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 것을 보시고는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조금 더 나아가시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만나셨습니다. 그들도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는데 부르셨습니다. 그들 역시 아버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마태복음에서도 동일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두 형제와 다른 두 형제를 만나셨고 그들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볼 수 있었고 예수님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어떻게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듣는 귀를 가졌고 보는 눈을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돌이킬 수 있어 자신의 생업과 가족까지도 포기하고 따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었다면 “무슨 소릴 하는 거요? 일을 방해하지 말고 어서 가시오!”라고 눈을 흘기면서 퉁명스럽게 말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거꾸로 되면 포기할 수 없습니다. 따를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신령한 눈과 귀를 가지고 있었기에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깨닫고는 돌이킬 수 있었고 순순히 메시야이신 예수님과 함께 하게 된 것입니다. 돌이켜 천국을 소유하고 향유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마다 듣기 좋아하는 소리가 있고 듣기 싫어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기쁘게 많이 들어야 하는 소리 가운데 하나가 본문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소리입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하든지 예수님께서 첫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회개가 중요한 이유는 인생에 있어서 천국을 소유하고 향유하는 길이 회개에 있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낙원을 회복하고 새롭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망과 고통과 수고와 아픔과 눈물로부터 자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소리가 얼마나 귀하고 이 소리가 얼마나 복된 소리입니까?
•회개와 천국의 메시지는 이처럼 중요한 주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사역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회개를 촉구하시고 천국의 메시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회개의 촉구와 천국의 메시지는 첫 사역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기를 승천하시기 전에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명령하신 큰 위대한 명령은 복음 전파와 제자 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마태복음은 모든 족속을 제자 삼는 것을, 마가복음은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공관복음인 누가복음은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눅 24:49)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을 말합니다(행 1:4-5). 성령님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성령님을 받을 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고 제자를 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도 전파하시고 제자도 삼으시고 아울러 성령님도 꼭 받으시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회개의 메시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해주는 말씀입니다.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 24:47-48).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는 것, 성령님을 받는 것, 여기에다가 모든 족속에게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도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약속하신 이 성령님을 받고 회개를 전파하는 일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오순절 날에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고 소리 높여 설교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 2:37)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말하기를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행 2:38, 40하)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그날 세례를 받았는데 삼천 명의 신도가 더해지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회개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회개가 없이는 천국이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첫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회개하라고 하셨고 부활 승천하시면서 남기신 말씀 가운데도 회개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신 다음에 성경의 계시가 끝나는 시점에 사도 요한에게 말씀하실 때도 회개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인 22장에서 그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두루마리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14).
•회개가 얼마나 중요하고 회개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잘 아시겠지요? 예수님의 관점에서 보면 처음과 중간과 끝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죄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죄 문제가 청산될 때 모든 좋은 것들이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으로부터 오기에 좋은 소식이며 성도의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돌이키면 사는 길이 생깁니다. 잃어버린 행복, 잃어버린 삶의 의미, 잃어버린 낙원을 회복하는 길은 회개를 통해 가능합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마 11:12). 회개를 통해 침노하여 천국의 자원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회개하고 돌이켜 죄 없이 함을 받으면 우리는 회복되고 우리의 앞날은 새로운 좋은 날이 시작됩니다(행 3:19).
•이처럼 회개는 성경 전체를 꿰뚫는 중요한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가운데 발견할 수 있지만 구약성경에서도 역시 회개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이자(마 11:13) 신약시대의 선구자입니다(마 11:12). 그가 첫 사역을 시작하면서 광야에서 외친 말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입니다.
•공관복음인 마가복음 1장 4절과 누가복음 3장 3절에서는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구약성경도 신약성경도 회개하여 천국을 소유하라는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모세오경인 율법서가 나오고 그 다음으로 이스라엘 역사서가 나오고 그 다음으로는 시가서가 나옵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 나옵니까? 선지서입니다.
•기록 분량에 따라 대선지서와 소선지서로 나누는데 선지서의 주된 내용은 무엇입니까? 대부분 심판과 회복인데 다른 말로 하면 회개의 촉구와 천국(메시야)의 메시지입니다. 죄 가운데서 죽지 말고 돌이켜 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지서의 메시지를 에스겔서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에스겔 18장 23절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33장 1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구약시대를 마무리하면서 신약시대를 연 선지자 세례 요한이 외친 말도 회개의 촉구와 천국 메시지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신약시대를 시작하시면서 주신 말씀도 회개와 천국입니다. 처음과 중간과 나중이 회개의 촉구와 천국의 메시지입니다. 사역을 하시던 중에도 그 메시지를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누가복음 5장 31절과 32절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이처럼 예수님께서 보이신 구원의 한 방법이 회개인 것입니다. 우리를 천국으로 이끄시기 위해 회개의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이 회개의 메시지를 제자들도 이어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파송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마가복음 6장 12절이 그 결과를 말해줍니다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이와 같이 살펴 본 바 신구약 성경을 꿰뚫는 메시지는 회개와 천국입니다. 신구약 성경 전체에 걸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사상은 회개의 촉구와 천국의 입성입니다.
•이러한 “회개하라”의 원어원형은 “μετανοέω(메타노에오)”인데 “마음을 바꾸다, 회심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돌아옴의 사상은 지적으로 아는 것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격적으로 이해하고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나사렛 동네사람들처럼 머리로만 아는 지식이 아니라 어부출신의 두 형제들처럼 산지식으로 알아야 합니다. 마음과 몸과 생각과 의지에 반응이 일어나 실제로 돌이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천국이 그만큼 더 가까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죄는 천국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훼방합니다. 천국으로부터 오는 좋은 것들을 막습니다. 그래서 이 죄가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를 깨뜨립니다. 좋은 인간관계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좋은 환경도 나쁘게 만듭니다. 일이 꼬이게 만들고 힘들고 지치게 만듭니다.
•하지만 회개는 새로운 방향으로 물길을 터줍니다. 좋은 방향으로 가도록 만들어줍니다. 살 길을 만들어 줍니다. 관계도 환경도 그 모든 것도 회복시켜줍니다. 그리하여 천국의 자원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러므로 이 좋은 회개를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돌이켜 천국을 침노하여 가지라는 것입니다.
•천국은 어떤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옵니까?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회개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회개하셔서 천국을 누리게 되시기 바랍니다.
● 오늘 말씀드린 것은 2013년 5월 26일자로 참좋은제자들교회 주일설교 게시판에 “천국은 누구에게 가까이 다가옵니까?(2) (마 4:17)”라는 제목으로 게시한 것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파워포인트로 새롭게 만든 것이며 그러한 것을 유튜브에 올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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