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참 자유] 나가면서
[나가면서] 그리스도인의 참 자유로
[나가면서] 그리스도인의 참 자유로
우리가 어떻게 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까? 교회는 어떻게 나오게 되었습니까? 왜 죄가 밉고 멀리하려고 몸부림을 칩니까?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고 봉사하고 섬기려고 하게 되었습니까? 입이 잘 안 떨어지지만 그래도 복음을 전해보려고 하게 되었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생각해도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습니까? 우리의 과거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해서 돌이키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우리 안에 주님의 영이 오셔서 우리 안에서 거하시고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 의해서 바뀐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 의해서 변화된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으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와 능력으로 된 것입니다.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는데 이것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엡 2:8).
이런 것을 누리게 하시려고 주님의 영과 주님의 진리를 통해서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 3:17).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으므로 자유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 8:36).
자유의 핵심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생명이 있고 행복이 있고 능력이 있고 자유함이 있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모두 가졌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을 가지지 못했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섬기고 따르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됨으로써 우리가 자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어야 합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유하게 되었으므로 종의 멍에를 다시는 멜 필요도 없고 메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을 읽어 봅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그렇습니다. 우리 자신의 노력이라는 종의 멍에를 지지 말아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이제는 쉽고 가벼운 예수님의 멍에를 져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고자 하고 성령님께 도우심을 구하면 성령님이 그렇게 하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십니다. 주님의 영이 우리를 자유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루려고 염려하고 걱정하고 애쓰던 모든 짐에서 풀려나서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속량하신 것은(출 20:2, 미 6:4)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말씀과 하나님 자신의 영이 그들 가운데에 머물러 있게 하신 것입니다(학 2:5, 출 29:45-46). 오늘날에도 주님의 진리와 주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 우리가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신칭의의 구원을 얻어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었으며, 살아있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이신성화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에 대한 무감각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고, 회개에 대한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고, 고난과 결단으로부터도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유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을 믿어주고, 하나님 자신의 말을 믿어주고, 모든 것을 의지하고 신뢰한 우리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동참하는 우리로 하여금 적진에 달리게도 하고, 성벽을 뛰어 넘게도 하고(삼하 22:30), 원수의 성문을 얻게도 하고(창 24:60),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게 해 주시고(고후 10:4), 철장으로 질그릇 깨뜨리듯이 부수고 다스리게 해 주실 것입니다(시 2:9, 계 2:27). 그것이 신앙이든 직업이든 학업이든 목회든 그 어떤 분야이든지 말입니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뛰어넘나이다”(시 18:29).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시 60:12).
하나님과의 진정한 사랑의 만남은 하나님과 우리 자신과 이웃과 환경과의 관계를 회복시킵니다. 결국 그리스도의 형상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으로서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삶이”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롬 1:5-6).
이제부터는 우리가 그렇게도 원하던 부흥이 우리 자신에게로부터 시작하여 가정과 친족으로, 교회로, 지역사회와 나라와 민족으로까지 뻗어나가게 될 것입니다. 샘 곁에 심겨진 우리의 무성한 가지는 이것을 넘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게 되고,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것입니다(마 6:9-10). 교회의 덕을 세우고(고전 14:26), 우리의 유익보다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할 것입니다(고전 10:33).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실한 예배자와 충성된 사명자로 살아 갈 것입니다. 이 모든 우리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김으로써 우리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잠 16:3). 하나님께 맡김으로써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기 때문입니다(시 37:5, 55:22).
우리는 이제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면서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시 2:11).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을 알고(롬 11:36),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고전 10:31).
고철이 고철로 있으면 별로 쓰일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고철이 뜨거운 풀무불과 차가운 물에 번갈아 가면서 두드려지고 갈아지게 되었을 때 유용한 검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검일수록 더 강하게 연단을 받게 됩니다. 우리 자신도 이와 같습니다. 연단을 받는 동안 고통스러울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버리고 낮아지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때 사용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검이라 할지라도 칼집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 녹이 쓸 뿐입니다. 진정한 보검은 장식하려고 벽에 걸어둔 것이 아닙니다.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칼날이 부딪쳐 이가 빠져서 보기에 좋지 않아도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싸운 것이 보검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도 이처럼 행함이 없으면 장식에 불과합니다. 신앙도 나가서 전투할 때 빛나는 보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검은 보검입니까? 아니면 아직도 칼집 안에서 잠들고 있는 녹이 쓴 검입니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성령님의 검, 말씀의 검을 뽑아 휘두릅시다!
우리가 얻은 참 자유로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시다. 우리가 얻은 참 자유로 사명자로 살아갑시다. 이제 나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이 모든 일에 증인이 되고,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의 양을 치고 먹이십시다!
우리는 이제 기뻐하면서 사랑 가운데 잘해 낼 것이라고 믿습니다. 주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영을 주님의 진리대로 순종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가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가 있기에 우리가 의지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마 19:26, 막 10:27, 눅 18:27).
할렐루야! 이기고 벗어나서 자유하게 된 우리는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계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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