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강해/주일설교

자녀들아 (엡 6:1-3)

이서영 목사 2015. 7. 17. 21:19

자녀들아 (엡 6:1-3)

 

한 엄마가 아들과 함께 서점에 책을 사러갔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잘 양육하기 위해 자녀를 양육하는 법에 대한 책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때 아들도 그런 종류의 책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볼 때 너무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왜 자녀를 양육하는 법에 대한 책을 고르는데?”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엄마가 나를 잘 양육하고 있는지를 알려고요.”

 

오늘 말씀은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자녀의 입장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절에 “자녀들아”라고 한 것은 바로 자녀들에게 한 당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부모와 자녀는 어떤 사이입니까? 이것부터 알아보고 진행하겠습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사이는 혈연관계로 그 무엇으로도 끊어버리고 지울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사랑과 돌봄과 섬김을 필요로 합니다. 어릴 때는 부모가 자녀를, 나이가 들면 자녀가 부모를 그렇게 대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1절에서는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4절에서는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였습니다. 줄이면 “자녀들아, 그리고 아비들아”라는 말로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먼저 1절에 나오는 “부모”(양친, parent)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헬라어 원문으로는 ‘고뉴스’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기노마이’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기노마이’는 ‘존재하게 되다’, ‘생기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자녀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생겨났고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있어서 부모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 모두는 누구로부터 이 세상에서 생겨났고 존재하게 되었습니까? 부모님으로부터입니다.

 

그래서 문법적으로 보면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하였을 때 ‘너희’는 속격입니다. 너희는 부모님께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부모님은 너희의 부모님이라는 것입니다. 그 부모님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순종하라’는 시제를 보면 현재 능동태입니다. 과거에 몇 번 잘 순종했다고 할 일을 다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마지못해 순종하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현재 자발적으로 능동적으로 순종하여야 하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의로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순종하겠습니까? “순종하다”는 ‘휘파쿠오’인데 ‘말을 듣다’(listen), ‘복종하다’(obey)라는 등의 뜻이 있습니다. 구약의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역본에서 히브리어 ‘사마’를 번역할 때 주로 ‘휘파쿠오’로 번역하였습니다. ‘사마’는 ‘듣다’, ‘경청하다’, ‘복종하다’입니다. 이를 종합하면 순종한다는 말은 말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에게 잘 순종한다는 것은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하다는 말은 색다른 뜻도 있습니다. 그 뜻은 무엇일까요? ‘열다’입니다. 여는 것과 듣는 것은 전혀 다른 뜻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뜻입니다. 이 단어가 사용된 곳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2장 13절에 나옵니다.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이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혔습니다. 그러자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이렇게 합심기도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헤롯 왕이 끌어내어 처형하려고 했던 그 전날 밤에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 베드로를 깨워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그때 손을 묶은 두 쇠사슬이 풀렸습니다. 그리고 파수꾼들이 문 밖에 지켜도 천사를 따라가니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하는 쇠문에 이르자 문이 저절로 열렸습니다. 한 거리를 지나자 천사가 떠나갔고 베드로는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집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여러 사람이 기도하고 있었는데 베드로가 문을 두드리자 로데라는 여자 아이가 나와 본 것입니다.  

 

이때 로데가 베드로의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려고 영접하러 나갔다고 했을 때 “영접하다”라는 단어가 바로 ‘휘파쿠오’입니다. 문을 두드리자 문에 응답하였다는 것입니다. 문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뜻입니다. 부모님이 말하는 말씀에 듣고 응답하는 것과 같은 예시입니다. 부모님의 말씀이 자녀의 마음을 두드려도 마음을 열지 않으면 순종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닫히면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 문을 활짝 열면 부모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와 자리를 잡게 되고 순종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먼저 마음부터 활짝 여시기를 축원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순종할 수 있습니까? 다시 말씀드리면 들을 수 있습니까? 1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주 안에서”라고 하였습니다. 주님 안에서 순종하고 주님 안에서 부모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매튜 헨리는 주 안에서 순종하라는 것은 “부모에게 순종하되 특별히 주와 관계된 것들에 대해서 순종하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너희 부모가 너희에게 가르친 선한 예법들을 너희는 순종해야 한다. 또한 너희는 너희 부모가 너희에게 건강을 위해서 가르친 것을 순종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그러나 너희는 주께 관계된 것에 가장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주님과 관계된 것에 대해 잘 듣고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고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효도는 어떠했습니까? 아버지를 일찍 여의시고 장남으로서 어머니와 동생들을 목수일로 부양하셨습니다. 마지막 십자가에서도 제자인 요한을 보고 너의 어머니라고 하면서 부양을 부탁하셨습니다. 육신의 부모뿐만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도 잘 받들어 모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9절을 보면,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이 기도를 마치시고는 붙잡히셨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 곁에는 칼을 찬 경호원이 있었습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어야 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인 줄을 모르고 경호하는 데 힘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붙잡는 사람의 귀를 칼로 싹둑 잘라버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더라”(요 18:11).

 

예수님은 이보다 더 확실한 경호원이 있었습니다. 천군천사입니다. 오천 명의 보병과 백이십 명의 기마병으로 구성된 군단이 열두 개나 모인 것보다 더 큰 천군을 동원하면 얼마든지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성경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아버지의 뜻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불순종하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영생은, 우리의 천국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나 순종하심으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한 것입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40). 자신의 뜻을 굽히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셔서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깨끗이 청산해주시고 영생과 구원과 천국을 얻게 해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순종하심을 우리도 본받아 부모님께 순종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까? 고린도후서 12장 14절을 보면,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린 아이가 부모님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합니까? 아니지요? 부모가 태아와 유아시절부터 준비해주십니다. 그 고마우신 부모님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딸이 치아가 너무 못생겨서 친구들에게 많은 놀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딸이 엄마에게 따졌습니다. “엄마, 나 이 교정해줘! 아이들이 자꾸 놀린단 말이야!” “그게 얼마나 비싼데. 안~돼!” 그러자 딸이 엄마에게 울면서 말했습니다. “다 엄마 때문이야! 엉엉. 엄마가 날 이렇게 낳았잖아. 엄마가 책임져!” 그러자 엄마가 말했습니다. “내가 너 낳았을 때 이가 없었어.”

 

자녀 입장에서는 부모가 잘 못해주는 것이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섭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자녀를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해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부모는 이처럼 내가 속해 있는 분이시요 나를 존재하게 해주신 분이시요 나를 보살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 부모님의 은혜를 알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주님 안에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 안에서 순종하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믿지 않는 부모님이 계신다면 믿음의 길로 가도록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 안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녀는 부모님을 구원의 길로 안내해주어야 합니다. 지옥가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잘 입혀드리고 잘 드시게 하고 기분이 좋게 해드리고 기쁘게만 해드리면 효도하는 것입니까? 일시적인 생애를 편안하게 해드리고 나머지 영원한 삶은 지옥에서 살도록 방치하는 것은 불효 중의 불효입니다. 주님 안에서 영원히 편안하게 살도록 전도하고 진리 안에서 살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면 때론 부모님을 버려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고서는 이 무슨 말입니까?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진리 면에서 부딪칠 수 있습니다. 그럴 땐 지혜롭게 사랑으로 행하되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에 가지 말라고 하고 예수님을 믿지 말라고 할 때 그때도 “예”하고 잘 순종하면 안 됩니다. 그때는 불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은 겉으로 보기에 거역하는 것처럼 보여도 아닙니다. 누가복음 14장 2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라고 하셨습니다. 믿지 않는 부모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핍박한다면 그때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빌미로 부모님을 공양하지 않아도 된다고 마음대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주님만 섬기면 되고 부모는 내동댕이쳐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진리와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하지 말라고 반대하면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다. 그 외에는 잘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5장 3절에서 6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오히려 성경은 부모님을 기쁘게 하라고 하십니다. 잠언 23장 25절입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그러면 어떤 결과가 옵니까? 신명기 5장 16절은 말합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출애굽기 20장 12절도 말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이것은 십계명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2절도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인 1계명부터 4계명까지에 있어서 첫 계명은 1계명으로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입니다. 그 다음으로 인간과의 관계인 5계명부터 10계명까지에 있어 첫 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이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또한 옳은 것뿐만이 아닙니다. 골로새서 3장 20절을 보면,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은 부모님을 기쁘게 하기도 하지만 주님까지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계명에서 약속한 것처럼 오늘 본문 3절에서 약속한 것처럼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게” 됩니다. 부모공경을 잘하여 이 복을 받으면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해봅니다. 부모와 자녀의 사이는 어떤 관계입니까? 서로에게 속해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대한 의무가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르는 것입니다. 자녀는 특히 주님 안에서 잘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역시 주님 안에서 잘 양육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부모든 자녀든 서로가 하나님을 잘 만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서로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항상 함께 하면서 끝까지 돌보아줄 수 없습니다. 전 생애를 책임져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 생애와 영생을 책임져주십니다. 천국을 준비해놓으시고 구원을 주시고 항상 함께 하시면서 이끌어주시고 보호해주시고 공급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이든 자녀이든 서로 섬기고 사랑을 나누는 가운데 서로가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해주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옵니까?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장수와 번영의 축복이 찾아옵니다. 이 풍성한 은혜와 축복이 우리 모든 분들의 것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12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120 담임목사 이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