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강해/주일설교

(마 6:9-15) 용서와 기도

이서영 목사 2015. 7. 17. 21:37

(마 6:9-15) 용서와 기도

 

기도가 응답이 잘 되지 않고 답답해 할 때가 있지요? 그럴 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십니까? 간혹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기도 하고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이럴 수가 있느냐?”고 대드는 식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가 응답이 되지 않아 답답해 하십니까? 하나님과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일이 왜 일어나겠습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아서 입니까? 이론상으로만 있는 하나님, 성경책에만 나오는 하나님이어서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지금 예배드리고 있는데 서로 한 번 바라보십시다. 잘 보이지요?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보는 것처럼, 아니 우리보다 더 훤하게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마음속도 생각까지도 잘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오늘 조금 전에 기도드린 모습도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것을 보시고 그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십니다. 예레미야 29장 12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가 응답이 잘 되지 않습니까? 왜 응답이 잘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 잘못이 있어서 응답이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기도드리는 것을 보시고 들으시고 응답해주십니다.

 

창세기 20장 17절을 보면 기도가 응답이 잘 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이 치료받아서 애기를 낳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기도에 응답을 해주신 것입니다.

 

결혼한 지 십여 년이 되었는데도 아기를 낳지 못하자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함께 기도원에 기도하러 갔습니다. 기도원 강사가 그날따라 임신에 대한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임신할지어다.”라고 축복도 해주셨습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너무나 간절해서 “아멘!” “아멘!”이라고 크게 외쳤습니다. 그 후 아기를 낳게 되었습니다. “아멘!”하던 시어머니가 아기를 낳았다는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모세 또한 기도드리자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엄청난 재앙이 닥쳤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셔서 치료해주시고 살려주셨습니다.

 

민수기 21장 7절에서 9절입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그렇다면 누구는 응답을 잘 받고 누구는 응답을 잘 받지 못합니까? 아브라함과 모세는 응답을 잘 받는데 우리는 왜 응답을 잘 받지 못합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치 사람들이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 가서 소원을 빌듯이 하나님도 기독교인들이 만들어낸 하나님이기에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이론으로만 있는 하나님이기에 기도가 응답이 되지 않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생생하게 살아계십니다. 지금 예배드리는 이 시간에도 우리의 모든 행동을 보시고 모든 생각까지도 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기도에 실제로 응답해주십니다.

 

히스기야 왕이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당시 선지자인 이사야가 가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사 38:1) 이제 죽게 되었으니 유언하라는 말을 들은 히스기야 왕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심히 통곡하면서 여호와께 기도드렸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히스기야 왕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사 38:5).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셨고 눈물까지도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에 응답해주셔서 십오 년이나 더 살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히스기야 왕이 활동하던 구약시대뿐만 아니라 신약시대에도 응답해주셨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기도가 응답이 되어 예수님의 약속대로 성령을 충만하게 받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1장 14절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그 결과로 오순절 날에 모두가 성령을 충만하게 받게 되었습니다.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는 생생한 장면도 나옵니다. 사도행전 10장 2절과 4절입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어떻습니까? 기도가 살아계신 하나님께 상달되고 있지 않습니까?

 

기도가 지금도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응답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책 마지막에서는 상징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5장 8절입니다.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8장 4절에는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고 하였습니다.

 

기도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잘 올라가고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기도드려도 왜 응답이 잘 되지 않습니까? 기도 응답이 잘 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편에서 무슨 잘못이 있어서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응답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은 우리 편에서 무언가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 편에서 잘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응답이 잘 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도가 응답이 잘 되지 않게 만드는 그 잘못된 행동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의 잘못된 행동이 우리의 기도응답을 막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잠언 15장 29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 28장 9절에서는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인보다는 악인의 습성대로 기도하기에 응답이 잘 되지 않고 있습니다. 율법, 곧 성경 말씀대로 기도드리지 않기에 그렇습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찾아보면 무엇이겠습니까?

 

응답되지 않는 기도의 유형을 본문의 문맥 가운데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의 문맥은 기도입니다. 앞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기도에 관한 내용입니다. 먼저 외식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보이려고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5절입니다.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경건한 신앙생활을 한다고 자처하는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기도는 응답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기도하는 모습을 바라보시는 하나님께 기도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앞에 나오는 마태복음 6장 6절입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골방에 들어가면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기도가 응답이 잘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시고 들어주셔서 응답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 앞에서 외식하는 기도를 드리지 마시고 모든 것을 살펴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드리시기 바랍니다.

 

기도가 응답이 잘 안 되는 유형으로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앞에 나오는 마태복음 6장 7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기도를 많이 하고 중언부언하면서 길게 기도할 때 기도가 응답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기도다운 기도를 드리는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가운데 9절에서 13절까지의 주기도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오늘 설교의 취지와 연관이 되는 구약 성경의 본문에서 기도 응답이 잘 안 되는 이유를 찾아보면 피가 가득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이사야 1장 15절입니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그 피는 무슨 피입니까? 형제를 미워한 피입니다. 요한일서 3장 15절이 그것을 말씀해 줍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많이 미워할수록 피를 많이 흘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악화되고 기도가 그만큼 더 많이 막히게 된 것입니다. 그런 상태가 되다보니까 기도가 잘 응답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가 응답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미워한 피 값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워한다는 것은 다툼이 많고 분쟁이 많다는 것입니다. 싸움이 많고 전쟁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피는 흘리면 흘릴수록 손해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미움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기도에 응답이 되지 않도록 막고 있는 미움을 내 마음 속에서 몰아내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우리 주님께 도움을 구하셔서 우리 안에 있는 미움을 청산해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도드려야 응답이 잘 되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기도에 응답을 잘 받겠습니까?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잘못된 행동을 회개하고 고치면 기도가 응답이 잘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자세를 고치면 됩니다. 그 가운데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상황에 해당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용서입니다.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서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분명히 기도에 응답을 받는다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응답이 잘 되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용서하지 않고 기도드렸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나오는 25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본문의 문맥은 기도에 관한 문맥입니다. 응답이 잘 되지 않는 기도와 응답이 잘 되는 기도에 관한 것이 나오고 있습니다. 응답이 잘 되는 기도의 방법이 무엇이냐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응답이 잘 되는 기도는 용서하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주기도문 가운데 오늘 주목할 말씀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죄를 짓고 허물과 과실과 잘못을 한 사람들을 용서하면 우리 죄도 용서 받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다음에 곧바로 우리 예수님께서 강조하셨습니다. 용서해야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용서해주신다고 말입니다. 본문 6장 14절과 15절입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용서를 강조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용서가 기도 문맥에 등장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응답이 잘 되는 기도는 용서를 잘하는 기도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용서할 때 기도가 풀리게 됩니다. 마음 중심으로 용서하라(마 18:35)고 하셨는데 그렇게 할 때 하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풀면 풀리고 묶으면 묶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8절과 19절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사람이 서로 미워하면서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되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미움으로 묶고 있으면 하늘 축복도 묶여 있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 문을 열 때 하늘 문도 열립니다. 서로 용서하면서 합심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들을 위해 이루어주십니다. 이 용서야말로 건강하고 행복한 천국의 삶을 가져다줍니다. 기도 응답이 되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만듭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사실을 줄곧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기도가 응답이 잘 되기를 원하느냐 그러면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미움은 자꾸만 분리시킵니다. 사람 사이를, 그리고 하나님과의 사이도 분리시킵니다. 미움은 다투고 분열을 가져다줍니다. 함께 살 수 없게 만듭니다. 그러나 용서는 하나 되게 합니다. 함께 살 수 있게 합니다.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하나님과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용서할 때 용서받고, 용서할 때 사람들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과 관계도 회복되고 기도 응답도 잘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도전을 드리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작정하신 일들을 꾸준히 추진해나가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방식을 사용해서 해결해나가느냐에 따라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의 축복이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정하신 사랑과 구원 계획을 섭리 가운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나가십니다. 이 사랑과 구원의 여정 가운데 우리가 쓰임을 받기는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우리가 받는 축복과 은혜는 달라집니다.

 

미움은 사람을 잃게 만듭니다. 사람과 멀어지게 만듭니다.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기도가 막히게 되고 하늘 축복도 가로막히게 합니다. 그러나 미움을 버리고 용서하면 사람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얻습니다. 기도가 응답되고 하늘 축복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미워하거나 용서하는 방식 가운데 어느 한 가지 방식으로 해결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사람을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기도가 응답되기도 하고 응답이 되지 않기도 합니다. 하늘 축복을 막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감에 있어서 필요한 덕목은 “용서하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미움 대신에 용서하면서 삽시다. 악인의 습성인 미움을 버리고 의인의 새 습관인 용서를 합시다. 우리 모두 다함께 이렇게 미움 대신에 용서하여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과도 잘 통하게 되고 기도 응답도 잘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기도가 응답이 잘 되는 응답의 축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3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202 담임목사 이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