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강해/주일설교

(잠 4:20-27) 네 마음을 지키라

이서영 목사 2015. 7. 17. 21:45

(잠 4:20-27) 네 마음을 지키라

 

지금 현재도 지키고 있습니다. 군인들이 나라를 지키고 있고 경찰들이 사회를 불철주야 수고하면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국가도 지켜야 하고 사회도 지켜야 하고, 가정도, 재산도, 건강도 지켜야 합니다. 이렇게 지켜야 할 것을 손꼽아 보면 많습니다. 우리 성도는 교회도 지켜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소중합니다.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지키려고 해도 잘 지키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의 마음에 따라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공을 들여 만리장성을 쌓아 지키려고 했지만 오삼계라는 장수가 자신의 입지를 위해 산해관의 성문을 열어주는 바람에 결국은 북경이 정복당했고 청나라가 중국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해서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성을 튼튼하게 높이 쌓아도 못 지킨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지켜야 합니까?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오늘날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바로 마음의 문제입니다. 마음이 바로서면 나라도 바로 섭니다. 사회도, 가정도, 교회도 모든 것이 바로 설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이 삐뚤어져 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삐뚠 결과가 나에게도 나타나고 주위 사람과 환경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 탓이 아닙니다. 모두가 내 마음 탓입니다. 내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이 시원찮아서 그렇습니다. 마음을 지키고 있는 것이 별 볼 일 없어서 그렇습니다. ‘나는 왜 지지리도 복이 없나?’ 복을 담고 있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에 복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복을 만드는 재료가 마음에 있어야 환경에 만들어집니다. 마음에 생명을 주시는 생명이신 예수님이 담겨져 있으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요한복음 15 4-6절에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왜 복이 없습니까? ‘나는 왜 이러고 사나?’ 생명의 역사, 새로워지는 창조의 역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일을 행하시는 예수님이 안에 계시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계시면 삶에 열매가 풍성한데 안 계시니까 사람들로부터 버려지고 말라비틀어 죽는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모시고 그 안에 머무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안에 머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실제로 머물기도 하여야 하지만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말씀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복음 1 14절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또한 요한복음 15 7절도 말해줍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말씀이 들어 있어야 잘 풀립니다. 기도가 잘 됩니다. 응답이 잘 됩니다. 말씀이 내 마음에 가득 담겨 있으면 풍성한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나를 살립니다. 내 마음을 지켜줍니다. 요한복음 6 63절은 말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성경책을 가까이하는 것, 성경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들어서 마음에 가득 담고 다니는 것이 마음을 지키는 것이 됩니다. 그것이 나를 살립니다.   

 

본문 20-21절을 보면 솔로몬이 아들에게 자기가 하는 말을 주의 깊게 귀를 기울여 듣고 마음 속에 지킬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리하면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입니다.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이 말은 솔로몬이 다윗의 아들로서 아버지 다윗에게 들은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3-4절을 보면 그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노라.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이것은 내가 한 말을 마음에 두고 지켜라. 그리하면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다윗이 솔로몬에게, 솔로몬이 자기 아들에게 한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솔로몬의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들인 우리에게 아버지로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에 새기고 지켜야 합니다.   

 

요한삼서 1 2절은 영혼이 잘 되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해진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여기서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마음이 몸과 환경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분리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이 잘 되면 그에 따라 범사도 잘 되고 건강도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4 23절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한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마음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을 잘 지켜야 모든 것을 잘 지켜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가득 담아 지켜야 내 영혼이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마음을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이 여기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 영혼이 잘 될 때 범사도 잘 되고 건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힘써 외부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헛수고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잘 정리해야 합니다. 그동안 마음에 잘못 쌓아놓은 것을 깨끗이 청소해야 합니다. 이제는 잘 되는 재료, 복을 만드는 재료를 마음에 가득 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긴밀하게 연결된 나의 몸과 환경에 그대로 나타나게 됩니다.     

 

마음은 몸과 환경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음과 몸이 따로따로 움직이고 마음과 환경이 따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잘 알아야 합니다. 마음과 몸, 마음과 환경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마음을 지키기 위해 복을 만드는 좋은 재료를 가득 담아놓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마음에 좋은 재료를 가득 담을 수 있습니까?

 

마음에 담아놓은 것이 바깥으로 나옵니다. 누가복음 6 45절에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마음에 가득한 것이 말로 나오고 행동으로 나옵니다. 그것이 그대로 내 삶에 만들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에 좋은 재료를 가득 담아 잘 지켜야 합니다. 본문 24-27절을 보면 마음을 지키기 위해 마음에 좋은 재료를 가득 담는 방법으로 세 가지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입과 눈과 발을 통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먼저, 입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언 6 2절은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하는 대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말을 다 하지? 말했을 뿐인데.’ 아닙니다. 말한 것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말한 것은 재료가 되어 어느 날 나에게 나타납니다. 말에 잡힙니다. 그 말이 집을 짓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가려서 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 24절에서 구부러진 말을 하지 말고 삐뚤어진 말을 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부정적이고 원망불평하고 비난하는 말은 다 죽입니다. 자기도 죽고 다른 사람도 죽입니다. 자기 복도 날아가게 만들고 다른 사람의 복도 날아가게 만듭니다. 그래서 결국 남는 게 없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긍정적이고 생산적이고 창조적이고 좋은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말에는 창조의 힘이 있습니다. 인생길이 혼란하고 눈앞이 캄캄한 상황이라도 창조의 말이 들어가면 새 역사가 일어납니다. 천지 창조할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습니까? 잘 갖추어진 상태에서 창조된 것이 아닙니다. 이른바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무질서하고 텅텅 비고 깜깜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자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틀렸다. 끝장이다. 슬프다. 괴롭다. 아프다. 잘 되지 못한다. 그렇게 해서 되겠느냐.’ 이런 말은 그런 상황을 만듭니다. 지금부터는 구부러지고 삐뚤어진 이런 말을 일체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백해무익입니다.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내 인생을 망칩니다. 다른 인생까지 망칩니다.

 

그러므로 좋은 말, 선한 말, 긍정적인 말, 생산적인 말, 창조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그래도 나는 잘 된다. 그 사람도 잘 되게 되어 있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기쁘다.’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이 말이 마음을 지켜줍니다. 이 말이 마음에 담기면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육체의 건강도 나타납니다. 마음과 영혼이 잘되니까 범사도 잘되고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찬송하는 말, 복음을 전하는 말, 감사하는 말은 더욱 더 그 위력을 떨치게 됩니다. 나를 살리고 다른 사람까지 살리게 됩니다. 나도 복을 받게 하고 다른 사람까지도 복을 받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선하고 좋은 말, 긍정적이고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말, 믿음을 주는 말을 많이 하시길 바랍니다.  

 

그 다음으로 눈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런 찬송이 있습니다. “잘 짓고 잘 짓세 우리 집 잘 짓세 만세 반석 위에다 우리 집 잘 짓세.” 반석이신 예수님 위에 세우고, 반석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우면 잘 지을 수 있습니다. 말씀대로 잘 따르면 잘 세워집니다. 어떤 집을 짓느냐하는 것은 우리가 하는 행동에 따라 지어집니다. 본문 25절 말씀은 눈을 통해 가르쳐줍니다.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보는 것이 마음에 담깁니다.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안 된 모습, 망한 모습을 그리면 그대로 따라옵니다. 그러므로 보는 것도 가려서 보아야 합니다. 좋은 것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좋은 책을 보아야 합니다. 영화도 좋은 영화를 보아야 합니다. 인터넷에서도 좋은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성공한 좋은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아름답고 건강하고 성숙한 자화상을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잘 된 모습, 성공한 모습을 그리면 그대로 따라옵니다. 멋있는 모습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도 모르게 눈에 본 것이 마음에 담기고 쌓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밖으로 나와 그렇게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좋은 것이 담기면 좋은 것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보는 것도 바로 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고 선하고 좋은 것을 많이 보시길 바랍니다.  

 

그 다음으로 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가려서 다녀야 합니다. 가지 말아야 할 곳에는 가지 마시고 가야 할 곳은 다니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가야 할 곳입니다. 퇴근한 이후에는 방황하지 말고 집으로 가야 합니다. 전도하고 선교하는 데 가야 합니다. 가지 말아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이건 잘 알 것입니다. 내 발로 어디를 많이 다녀놨느냐에 따라 그런 것이 쌓입니다. 쌓인 발걸음만큼 그것이 현실이 되어 나타납니다.

 

그래서 본문 27절 말씀은 발을 바른 길로 가게 하고 악을 행하는 곳에서는 떠나라고 한 것입니다. “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그러므로 우리의 발이 우리 마음과 직결되어 있으므로 가지 말아야 할 곳은 가지 마시고 가야할 곳은 꼭 다니시길 바랍니다.    

 

살면서 생각만큼 일이 잘 안 풀려 매우 답답하십니까?

 

마음에 담은 것이 생명과 창조를 일으키지 못하고 오히려 죽게 만드는 것이 가득 담겨 있으면 그렇게 됩니다. 이젠 바꾸어야 합니다. 마음을 다시 새롭게 리모델링해야 합니다. 집만 새로 고쳐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복을 만드는 재료를 가득 담아야 합니다. 본문의 말씀은  입도 고치고 눈도 고치고 발걸음도 고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면 아무리 엉망진창 같을지라도 창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창조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다고 하였습니까? 그런 곳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새로워집니다. 우리 역시 그런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서 삶의 풍성한 열매가 열리고 사람들이 붙게 됩니다. 무질서하고 눈앞이 캄캄하고 늘 허덕거리는 텅빈 상태에서 가득 채워집니다. 지갑에 돈이 채워집니다. 사람이 채워집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가 채워지고 사랑과 믿음과 지혜와 기쁨이 채워집니다. 하나님은 채워주시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실제로 가득 채워주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돈이 생긴다.”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실제 돈이 생깁니다. 이처럼 돈이 생기는데 예수님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 9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우리와 우리 가정과 교회를 풍족하게 만들어주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난을 짊어지셨기에 우리는 그 속량의 은혜와 공로로 풍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책임져주셨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풍요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심령은 필히 가난해야 합니다. 개인적인 욕심을 내서 살면 안 됩니다. 하지만 그런 심령으로 살되 일상생활에는 풍성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없으면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줄 것도 없습니다. 자신의 몸도 가누지 못하게 됩니다. 비틀거리면 주위 사람까지 힘쓰이게 만듭니다. 그러니까 넉넉하게 줄 수 있도록 채워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실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6:10) 기도하라고 하셨고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6:10)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천국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천국의 열매를 많이 맺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되고( 15:8)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시게( 6:9) 되는 것을 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우리에게 미래의 천국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천국도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현세의 축복인 용서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것과( 6:12) 일용할 양식( 6:11)을 구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것입니다교회에 가면 달라지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인격의 변화, 마음의 변화, 몸과 환경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그러므로 어느 정도 갖출 만큼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영육 간에 필요한 것이 풍성하게 채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모든 선하고 좋은 것이 가득 해져서 누리고 베풀어줄 수 있도록 기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새로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날의 마음은 버려야 합니다. 이젠 새로워졌으니 새로운 마음,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 17절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젠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 방식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마음에 담고 살아가면 생명의 역사, 창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창조는 좋은 환경에서 창조된 것이 아닙니다. 엉망이지만 말씀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새 세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마음에도 새로운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창조해주시는 예수님, 생명의 예수님이 내 마음에 오셔서 새롭게 시작하시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삶에 생기가 돌고 쓴물이 단물로 바뀝니다. 죽을 맛이 아니라 살맛이 납니다. 건강도 좋아지고, 재산도 좋아지고, 모든 것이 좋아지게 됩니다. 거부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복을 예수님을 통해 현실적으로 우리도 누리고 베풀어줄 수 있게 됩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계란이 아니라 바위가 깨집니다. 이것이 창조의 능력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하고 속량의 은혜를 힘입으면 그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우리 삶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상황이 아닌 것 같아도 예수님은 변함없으십니다. 그 말씀도 변함이 없습니다. 약속하신 대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성경을 읽고 마음에 잘 새겨두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이 기록된 문자로 있지 않습니다. 말씀 한 절 한 절이 살아서 그대로 만들게 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하는 행동은 그대로 나에게 다가옵니다. 입으로 하는 말, 눈으로 보는 것, 발걸음을 걷는 것이 그대로 마음에 차곡차곡 쌓이고 담겨집니다.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대로 재료가 되어 집을 짓습니다.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만들어집니다. 따라옵니다. 마음이 몸과 환경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까지 가지고 살아온 마음을 완전히 새롭게 하시길 바랍니다. 행동양식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좋은 것을 가득 채우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가득 채우시고, 예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우시고, 좋은 말과 좋은 모습과 좋은 발걸음으로 가득 채우셔서 우리의 삶에 좋은 것이 가득 채워지는 새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293 담임목사 이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