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1:28)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마 11:28)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초등학교에 다니는 보라가 치아가 너무 못생겨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습니다. 견디다 못해 엄마에게 따졌습니다. “엄마! 나 이 교정해 줘!” “그게 얼마나 비싼데. 안 돼!” 그러자 보라는 엄마에게 더욱 더 따졌습니다. “다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날 이렇게 낳았잖아. 책임지란 말이야!” 그러자 엄마가 말했습니다. “내가 너를 낳았을 때 이가 없었어!”
웃자고 한 이야기이지만 우리에게는 크고 작은 짐 덩어리가 많습니다. 해결하지 못해 골치가 아픈 일도 많이 일어납니다. 생활고의 짐, 사업의 짐, 학업의 짐, 건강의 짐, 취업의 짐, 결혼의 짐, 죄와 죄책감의 짐 등 여러 가지 무거운 짐 때문에 많이 힘들어합니다. 눌려서 힘도 못 펴고 끙끙거리면서 신음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때로는 기쁘고 신나고 즐거운 일도 있지만 여러 가지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힘겹게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 무거운 짐들이 언제부터 생겨났습니까? 잘 해보려고 하는데 왜 여전히 고생하면서 살고 있을까요? 그 모든 것은 인류 최초의 부부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가볍게 여기고 선악과를 자기 멋대로 따먹은 이후로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거역한 대가는 비참했습니다. 그때부터 사람은 수고하면서 살아야 겨우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 부부가 불순종하여 죄를 지은 이후에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는 장면이 창세기 3장에 나옵니다. 17절을 보면 아담이 벌을 받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평생에 수고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16절을 보면 하와도 벌을 받습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이후 서로 안 지려고 부부 싸움하고 자식을 낳을 때 수고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이때부터 수고해야 살게 되었습니다. 또한 서로 안 지려고 서로 다투다가 마음이 쉬지를 못하고 속이 상한 채로 살게 되었습니다. 짐을 벗었다 싶으면 또 다른 짐이 생기는 인생살이가 되었습니다. 다윗 왕조차도 시편 38편 3절과 4절에 자신의 무거운 짐을 탄식하였습니다. “주의 진노로 말미암아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말미암아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
인생살이를 잘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다윗 왕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런 짐을 지고 살고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수고한다 해도 잘 거두지 못합니다. 그것은 땅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정성을 들여 힘을 다해 농사를 지어도 농사를 망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그것을 레위기 26장 20절은 말합니다. “너희의 수고가 헛될지라 땅은 그 산물을 내지 아니하고 땅의 나무는 그 열매를 맺지 아니하리라.”
신명기 28장 33절은 아무리 수고해도 엉뚱한 사람들이 가져가버리는 것을 말해줍니다. “네 토지 소산과 네 수고로 얻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 민족이 먹겠고 너는 항상 압제와 학대를 받을 뿐이리니.” 수고한 대로 얻지 못하고 오히려 눌려서 산다는 것입니다.
인간 가운데 최고로 지혜로운 솔로몬왕은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전 1:3)라고 말하면서 수고하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전도서를 통해 말했습니다. 전도서 1장 13절.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전도서 2장 11절.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퀴즈입니다. 아기가 태어나면서 왜 울지요? 밥줄을 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울면서 태어납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태어나기에 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울어야 기도가 터져서 호흡할 수 있게 되기에 울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꼭 “응애”라고 울면서 태어나야 합니까? 응애를 운으로 띄워보세요. “응!” 응어리가 많은, “애!” 애. 무슨 ‘응어리가 많은 애’라고 ‘응애’하고 웁니까? “푸 하하”라고 크게 웃으면서 태어나면 안 됩니까? 크게 웃어도 기도가 뚫리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크게 울면서 태어난다는 것은 인생살이가 크게 웃는 일보다 크게 우는 일이 더 많다는 상징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가족으로부터 시작해서 부족이 되고 부족이 민족이 되고 민족이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민족으로 번성할 때 이스라엘 자손은 타국인 애굽에서 무거운 짐을 졌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스라엘 자손이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요셉을 모르는 새 왕이 즉위하자 “우리보다 이 백성이 더 많고 더 강하니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자”라고 하면서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였습니다. 노동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의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그들을 구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처지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죄악 가운데 출생하여 무거운 짐을 지고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고된 노동과 수고를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 “지금 힘들어서 죽게 되었으니 제발 살려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그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무거운 짐을 벗겨주십니다. 할렐루야!
출애굽기 6장 5절에서 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희망의 소식을 전합니다.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아멘.
하나님께서 드디어 친히 나서서 무거운 짐 밑에서 벗어나게 해주셨습니다. 고된 노동에서 건지셔서 쉬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무거운 짐도 우리 스스로 잘 해결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개입해주시면 쉽게 해결이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수고하여도 하나님 없이는 잘 못해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의 짐은 우리의 어깨에서 벗겨집니다.
이것을 성전에 올라가면서 부르는 노래인 시편 127편 1절과 2절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면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고 편안하게 발을 쭉 뻗고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의 짐을 대신 져주셔서 구원해주시는 그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 68편 19절.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셀라).” 시편 81편 6절. “이르시되 내가 그의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의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 이사야 10장 27절. “그 날에 그의 무거운 짐이 네 어깨에서 떠나고 그의 멍에가 네 목에서 벗어지되 기름진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 아멘.
새 337장(통 363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다함께 부르겠습니다.
1절: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 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2절: 내 모든 괴롬 닥치는 환난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주사 넓으신 사랑 베푸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3절: 내 짐이 점점 무거워질 때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주사 내 대신 짐을 져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4절: 마음의 시험 무거운 죄를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예수는 나의 능력이 되사 세상을 이길 힘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시편 55편 22절은 말합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그러므로 우리의 수고롭고 무거운 짐을 우리는 예수님께 맡겨야 합니다. 오늘 본문 28절을 보면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은 “모두 다 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 내게로 오라”고 아름답고 힘 있는 초청을 하고 계십니다. 이 예수님의 초청에 응답하시길 바랍니다.
누가복음 5장 1-6절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에 응답하면 밤이 새도록 수고해도 허탕인 것을 풍성하게 회복시켜주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어부인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신 이후에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그때 시몬 베드로는 거절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눅 5:5). 그렇게 하니 고기가 얼마나 많이 잡혔는지 그물이 찢어질 정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까지는 수고만 했지 헛되었다면 예수님의 말씀에 응하여 풍성하게 회복되시기 바랍니다.
미국 교회 부흥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윌리엄 퀘일 목사님은 능력 있고 설득력 있는 설교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일로 인해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침대 아래로 내려가 무릎을 꿇고 기도드렸습니다. 베개를 끌어안고 울부짖었습니다. “주님, 이 고통스러운 문제를 제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때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문제를 끌어안고 고통을 당하고 있구나. 그러나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할 일이다. 너는 자라. 남은 밤 시간 나 혼자 깨어 있으마.” 목사님은 감사드리고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이후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시편 121편 1절에서 8절은 그렇게 된다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아멘.
유명한 신학자인 프란스(R. T. France)는 “열쇠는 ‘내게로 오라’는 인격적 초대에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은혜로운 초청을 하십니다. 무거운 짐을 모두 벗겨주시고 쉬게 해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우리는 우리의 안식처로서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와 그 안에서 쉬어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오라”고 하실 때 우리 모두 예수님께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냥 짐을 해결해주시면 되지 구태여 왜 하필 “오라”고 하십니까?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행동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출애굽기 6장 7절 말씀 가운데 그것을 말씀해줍니다.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너희들이 무거운 짐 밑에서 빠져나온 것은 나 여호와 하나님이 벗겨준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믿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해결해주시는 분이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능력이 있으신 분이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27절을 보면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모든 권한을 위임받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늘의 권세와 능력을 받으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십니다. 짐을 벗겨주십니다. 예수님은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나를 믿어라. 내 능력을 믿어라. 내 말을 믿어라. 내가 한 말은 내가 책임을 진다.”
그냥 해결되면 누가 해결해준 것인지 모릅니다. 저절로 우연히 된 줄로 압니다. 그러나 초청에 응하여 나아가서 부르짖어 해결을 받으면 예수님께서 해결해주신 것을 더 확실히 믿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의 반응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다 내게로 오라”는 예수님의 초청에 응답하여 나아가 짐을 맡겨드려야 합니다.
기차역이나 마트에 가면 무엇이 있습니까? 보관함이 있습니다. 보관함이 있어도 짐을 맡겨야 맡아줍니다. 우리의 짐 보따리도 주님께 맡길 때 주님께서 맡아주십니다. 그래서 잠언 16장 3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시편 37편 5절도 말합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아멘.
등산할 때, 일할 때, 공부할 때, 집안일할 때 옆에서 도와주면 한결 편합니다. 일이 가벼워집니다. 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온갖 짐이 그대로 있으면 무겁게 눌립니다. 우울해집니다. 마음이 편하지 못하고 속이 상하고 푹 쉬지 못합니다. 그럴 때 누군가가 다가와서 도와주면 됩니다. 그렇다면 누가 분명하게 확실하게 우리를 도와줄 수 있습니까? 우리 영혼의 짐, 우리 육신의 짐을 우리 어깨에서 벗겨줄 수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예수님의 은혜롭고 아름다운 초청의 말씀에 응답하셔서 짐을 내어 맡김으로 근심걱정과 수고와 무거운 짐을 해결 받으시기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2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104 담임목사 이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