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강해/강해설교

(삼하 5:22-25 강해설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이서영 목사 2017. 10. 30. 17:48


(삼하 5:22-25 강해설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22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23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 이르시되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24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25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 (아멘)

 

지난번에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집에 와서 기도드릴 때 응답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시설만 덩그러니 있는 교회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보시고 역사해주시는 교회가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사도 베드로의 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고백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그리스도, 즉 구세주, 주님이시라는 겁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님이시고 예수님이 구세주이신 것을 분명하게 고백한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고백은 무엇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아울러 우리 교회의 고백은 무엇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 교회의 목적과 목표와 전략은 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그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러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백과 우리 교회의 고백이 올바른 방식으로 고백되어질 때 응답이 잘 되고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올바른 자세의 기도를 통해 올바른 응답을 받게 되길 바랍니다. 올바른 자세로 기도드림으로써 기도하니까 응답이 잘 되더라는 소문이 나는 여러분이 되시고 우리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때 그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앞서 나아가셔서 일하시도록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앞서 일하시는 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멋대로 계획을 세워놓고 우리 힘으로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님이신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계획과 비전대로 이루어져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교회, 가정, 직장, 나라와 민족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결코 잘못될 일이 없습니다. 온전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비전이 잘못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앞서 일하시고 행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앞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앞서 나가시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천국도 우리 앞에 가셔서 들어가게 해주시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가 집을 장만하느라 수고가 많습니다. 절약해서 저축하고 담보잡고 대출내서 집을 마련합니다. 그런데 영원히 살 천국의 집을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고 계십니까? 천국은 힘써 저축한다고 마련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 앞에 앞서 가셔서 마련해주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절 말씀에 그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아멘.


예수님께서 우리 거처를 미리 준비하러 가셨다는 겁니다. 우리가 앞서 준비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의 집을 마련하느라 정신이 팔렸지만 영원한 집을 마련하기 위해 소홀하였습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앞서 가셔서 준비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앞장서서 가시는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10장 4절 말씀입니다.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아멘. 히브리서 6장 20절 말씀에서도 앞장서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아멘. 우리 앞서서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구약성경을 봐도 하나님께서 앞장 서 가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아브라함이 자기 집의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아들 이삭의 아내를 택하려고 보낼 때 당부하는 말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24장 7절 말씀입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아멘.


출애굽기 23장 20절 말씀과 23절 말씀 가운데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내 사자가 네 앞서 가서 너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에게로 인도하고 나는 그들을 끊으리니.” 아멘.


오늘 본문을 보면 다윗이 블레셋과 싸워 승리를 거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긴 요인은 하나님께서 앞서 나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가운데 24절 말씀을 합독하시겠습니다.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아멘. 하나님께서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셔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와 우리 가정과 교회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앞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앞서 나아가시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25절 말씀을 합독하시겠습니다.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 아멘.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좋은 명령이고 응답이라 하더라도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들었으면 순종해야 합니다. 행할 때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사과나무 100그루를 줄 테니까 사과를 모두 따먹으라고 해도 따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들었으면 행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윗이 승리한 비결이 또 하나 있습니다. 본문 23절 말씀을 합독하시겠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 이르시되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아멘.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여호와께 여쭈었다고 하였습니다.


만약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지 않았다면 말씀을 들을 수 없었을 겁니다. 응답되지 않았을 것이고 승리도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여호와께 여쭈었기에 응답되었고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가 우리에게도 필요한 겁니다.


오늘 본문 처음에 나오는 22절 말씀을 보면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쳐들어왔다는 것은 이전에도 어떤 일이 있었다는 겁니다.

 

본문 앞에 나오는 17절 말씀과 18절 말씀을 보면 다윗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윗을 잡으러 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요새로 나가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이럴 때 다윗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19절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아멘.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자 응답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 결과로 여호와께서 대적을 깨뜨려주셔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20절에 그러한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바알브라심에 이르러 거기서 그들을 치고 다윗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 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 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부르니라.” 아멘. 이렇게 1차전을 승리로 이끈 비결은 여호와께 여쭈었기 때문입니다.


뒤이어 벌어진 2차전에서도 여호와께 여쭈었기에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여호와 하나님께 범사에 먼저 잘 여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여쭐 때 어떤 자세로 여쭈어야 하겠습니까?


기도하는 집에 나아가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렵게 기도하러 왔는데 앉자마자 그릇된 기도를 드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떤 기도를요? 원망 불평하는 기도입니다.


순종할 때는 하나님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가 원망 불평할 때는 하나님을 인정 아닌 인정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해 원망 불평한다는 건 원망 불평하는 대상이 있다는 거고 그 대상은 바로 하나님인 겁니다. 이와 같으므로 역설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런 순간에는 잘못된 인정이지만 하나님을 인정한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이런 그릇된 자세의 기도는 본전도 못 건질 확률이 높습니다. 감사하지 않고 원망 불평하는 자의 말로가 어떻게 됩니까? 멸망하는 사람들의 징후에 대한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2절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아멘.


로마서 1장 21절 말씀에서도 감사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잠언 19장 3절 말씀에서는 자기가 멋대로 살아놓고는 잘못되면 하나님을 원망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아멘.


이러한 사람들의 말로는 어떻게 됩니까?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민수기 14장 27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원망하는 말을 들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아멘.


이와 같으므로 원망 불평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0절 말씀입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아멘.


그러므로 우리는 원망 불평하는 자세의 기도가 아니라 감사하는 자세로 기도드려야 합니다. 빌립보서 4장 6절 말씀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염려하면 원망 불평이 터져 나오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한 것입니다.

 

골로새서 4장 2절 말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아멘. 이와 같으므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아멘.


기도를 하든 무엇을 하든 범사에 감사할 때 유익이 있습니다. 감사로 여쭐 때 구원을 받게 됩니다. 시편 50편 23절 말씀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아멘.


그렇다면 다윗은 어떠했겠습니까? 오늘 본문 가운데서 다윗이 감사로 기도드렸다는 것을 직접 언급한 것은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범사에 행한 자세로 볼 때 감사로 기도드렸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역대상 16장 7절 말씀을 보면 그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날에 다윗이 아삽과 그의 형제를 세워 먼저 여호와께 감사하게 하여 이르기를.” 아멘.


역대하 7장 6절 말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제사장들은 직분대로 모셔 서고 레위 사람도 여호와의 악기를 가지고 섰으니 이 악기는 전에 다윗 왕이 레위 사람들에게 여호와께 감사하게 하려고 만들어서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찬송하게 하던 것이라 제사장들은 무리 앞에서 나팔을 불고 온 이스라엘은 서 있더라.” 아멘.


느헤미야 12장 24절 말씀과 46절 말씀에도 나옵니다. “레위 족속의 지도자들은 하사뱌와 세레뱌와 갓미엘의 아들 예수아라 그들은 그들의 형제의 맞은편에 있어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명령대로 순서를 따라 주를 찬양하며 감사하고. 옛적 다윗과 아삽의 때에는 노래하는 자의 지도자가 있어서 하나님께 찬송하는 노래와 감사하는 노래를 하였음이며.” 아멘.


다윗은 쫓겨 다니면서도 감사하고(시 56:12, 57:9), 원수들의 손에서와 사울의 손에서 건짐을 받은 날에 감사하고(시 18:49), 이렇게 왕이 된 이후에도 감사하는 등으로 범사에 감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다윗이 승리하게 된 것은 감사로 여쭈었기 때문이라는 걸 간접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시편 50편 23절 말씀처럼, 즉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는 말씀대로 다윗이 그러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여호사밧 왕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 구원을 받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역대하 20장 1-4절 말씀을 보면 전쟁의 위협 앞에서 여호와께 간구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 어떤 사람이 와서 여호사밧에게 전하여 이르되 큰 무리가 바다 저쪽 아람에서 왕을 치러 오는데 이제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에 있나이다 하니,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아멘.


여호사밧 왕이 간구했을 때 응답받게 된 것을 14-17절 말씀에 보여줍니다. “여호와의 영이 회중 가운데에서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셨으니 그는 아삽 자손 맛다냐의 현손이요 여이엘의 증손이요 브나야의 손자요 스가랴의 아들이더라.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내일 너희는 그들에게로 내려가라 그들이 시스 고개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그들을 만나려니와,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아멘.

 

여호와 하나님께서 앞서 싸워주신다는 겁니다. 그리하여 여호사밧 왕은 전쟁터에서 군대 앞에서 감사로 찬송하며 행진하도록 하였습니다. 21절 말씀입니다.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아멘.


그 결과 대승을 거두게 된 것을 22-24절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유다 사람이 들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시체들뿐이요 한 사람도 피한 자가 없는지라.” 아멘.


뿐만 아니라 전리품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다는 것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25-27절 말씀입니다. “여호사밧과 그의 백성이 가서 적군의 물건을 탈취할새 본즉 그 가운데에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많이 있으므로 각기 탈취하는데 그 물건이 너무 많아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사흘 동안에 거두어들이고.” 아멘.


이러한 전쟁기록을 맺으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셨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끝을 맺고 있습니다. 26절 말씀과 27절 말씀입니다. “넷째 날에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곳을 브라가 골짜기라 일컫더라.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사람이 다시 여호사밧을 선두로 하여 즐겁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이 그 적군을 이김으로써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아멘.


어떻습니까? 다윗 왕과 여호사밧 왕이 여호와 하나님께 여쭈었더니 응답받게 되었고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원망 불평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아뢰면 응답이 잘 되고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없는 것에 원망 불평하고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것에 대해 원망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에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매일 매일 순간순간마다 감사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좋지 않아 보이는 것조차도 좋은 쪽으로 바라보고 감사로 바꾸어 감사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특별히 기도드릴 때 원망 불평하는 자세로 기도드리지 않고 감사하는 자세로 기도드리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원망 불평하지 않고 범사에 감사함으로 여쭈셔서 앞서 나아가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삶과 사역에 있어 다윗 왕처럼 승리하시고 여호사밧 왕과 같이 승리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찬송: 새 383장 눈을 들어 산을 보니


기도: 원망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는 자세로 기도드리게 하소서. 그리하여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삶에 있어서나 사역에 있어 승리하게 하소서. 


 

[ⓒ 2017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cafe.daum.net/truegooddisciples 담임목사 이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