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우 목사] ‘大’字 콤플렉스
‘大’字 콤플렉스기독교보 2013.12.17 15:16 입력
![]() ▲박삼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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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우리나라의 국호가 大韓民國(대한민국)이다. 다리도 조금만 길면 전부 大자가 붙어 大橋(대교)고, 길도 조금 넓으면 大路(대로)이다. 공원도 큰 공원은 大公園(대공원)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가 원수는 大統領(대통령)이고, 군대에서 제일 높은 계급은 大將(대장)이고, 제일 마지막에 공부하는 학교는 大學校(대학교)이다. 가장 상급법원은 大法院(대법원)이며, 조금만 사람들이 많이 모여도 그 모임을 大會(대회)라고 부른다. 웅변대회, 사생대회, 궐기대회 등 전부 대회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주일예배는 大예배라고 부르고, 교인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심방은 大심방이라고 한다. 부흥회도 심령大부흥회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금문교’(Golden Gate Bridge)라는 다리가 있다. 1937년에 세워진 다리로, 1964년까지 세계에서 제일 긴 다리였다. 총 길이 1,280m, 높이 227m인 이 다리는, 두 탑에서 늘어뜨린 두 줄의 케이블에 매달려 있다. 다리 중앙 부분의 높이는 평균 수면에서 81m 정도라고 한다.
1937년에 이런 다리를 세웠으니 그때로서는 정말 큰 다리였다. 우리 같으면 당연히 다리 이름에 大자를 붙였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은 다리 이름에 大자, 영어로 하면 Great나 Grand를 붙이지 않았다. 그냥 색깔이 황금빛이고 교각이 문처럼 생겼다고 해서 ‘금문교’라고 불렀다.
언젠가 머물렀던 미국의 도시에 엄청나게 큰 공원이 있었다. 공원 안에 왕복으로 차가 다니는 도로가 있고 도로에 신호등이 설치돼 있을 정도였다. 차를 타고 한참 가야 끝이 나오는 공원이었다. 하지만 그 공원 이름에는 大자가 없었다. 그냥 공원에 숲이 많다고 해서 이름이 ‘Forest Park’(숲의 공원)이었다.
물론 미국에도 ‘Grand Canyon’(대협곡)이 있다. Grand Canyon은 크기도 하지만, 주변에 Canyon이 수없이 많기 때문에 다른 Canyon들과 구별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우리가 말하는 大영박물관도 공식명칭은 ‘The British Museum’(영국박물관)이다. 그 사람들은 사용하지 않는 大자를 우리가 갖다 붙인 것이다.
크기 때문에 大자를 붙이는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크기와 상관없는 국가 원수를 대통령으로, 군대에서 제일 높은 계급을 대장으로, 마지막에 공부하는 학교를 대학교로, 가장 상급법원을 대법원으로 한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大’자 사랑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영어로 대통령은 President, 대장은 General, 대학교는 University 혹은 College, 대법원은 Supreme Court이다. 이런 단어들을 번역하면서 大자를 붙인 것은, 大자를 붙여야 최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大자를 좋아하는 것은 큰 것을 부러워하는 잠재의식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나라가 작기 때문에 그런 의식이 생겨난 것 같다.
처음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정할 때, 열방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나라가 작다는 것에 대한 울분이 있었기에 그렇게 지은 것이다. 말하자면 열등감의 발로이다.
크기에 대한 열등감은 우리 생활 속에도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자동차, 아파트, 심지어 교회를 생각할 때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먼저 크기를 생각한다.
어느 교회에 대해 알고 싶을 때 제일 먼저 묻는 것이 ‘교인이 몇 명인가’이다. 크기에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무조건 크면 좋다고 생각하고 대형 앞에서 소형은 기가 죽는다.
과연 크면 다 좋은 것일까? 교회를 두고 생각할 때 ‘大’자 열등감이 가져온 것이 성장지상주의다. 무조건 큰 교회가 좋다고 생각했기에 성장지상주의로 갈 수밖에 없었다.
성장지상주의가 가져온 폐단이 얼마나 많은가? 성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고방식이 교회 안에 들어왔다. 목적이 옳으면 수단은 어떠해도 좋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나아가 오늘날 한국교회의 모든 문제는 대부분 큰 교회에서 생겼다. 대형교회들 때문에 한국교회 전체가 욕을 먹고 있다.
크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大’자 열등감에서 자유 해야 한다.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 의미가 있고 아름다움이 있다.
성경도 작은 것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크기보다 본질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교회를 두고 생각할 때도 교회의 본질,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것이 대형교회가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대형교회가 교회답지 않을 수 있는 반면 소형교회도 얼마든지 주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교회일 수 있다.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大’자 열등감을 뿌리 뽑아야 한다.
박삼우 목사 / 부민교회기독교보 ksnews@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