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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목사] 2013 성탄절을 맞이하는 한국교회

이서영 목사 2018. 12. 7. 04:22

[김진영 목사] 아직도 눌 자리 없어, 2013 성탄절을 맞이하는 한국교회

 

 

성탄절에 대한 세 가지 추억

 

성탄절에 대한 첫 기억은 초등학교 시절 출석했던 교회였습니다. 성탄절 이브에 변의남 목사님께서 주일학교 학생인 저희들을 데리고 부산시청(이전하기 전)과 광복동 거리로 데리고 나가 성탄절 찬송을 부르면서 "죄악의 도성 부산아, 회개하라"고 소리쳤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가난하고 추웠던 시절이었지만 성탄절을 맞이하는 교회의 분위기와 감동은 지금과 사뭇 달랐습니다.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서 나오지 않은 어떤 기쁨과 감사, 흥분과 즐거움 교회에 있었습니다. 흥분되지만 경건하고, 기쁘고 즐겁지만 거룩함이 함께 있는 그런 성탄의 은혜와 기쁨이 교회에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의 이런 분위기와 경험은 중고등부를 지날 때에도 여전했던 기억이 듭니다.

 

성탄절에 대한 두 번째 기억은 미국의 유학생활이었습니다. 대학 진학과 함께 시작된 대학가의 데모와 한국 사회 전반의 민주화 투쟁의 열기 속에서 성탄의 은혜를 점점 희미해져 갔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산타클로스가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어린 시절 교회에서 경험했던 성탄의 은혜도 세상의 분주함과 세파의 흐름 속에서 빛이 바래지고 있었습니다. 

 

성탄절의 기쁨이 이 세상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 것은 미국의 작은 중소도시엣 맞은 성탄절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곳보다 더 세속적이고 물질적이고 현실적 가치를 추구하며 살던 도시가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마치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듯한 느낌을 경험했습니다.

 

어떤 라디오 방송국은 성탄절을 앞두고 거의 한 달 동안 하루 종일 캐롤송만 방송했고, 온 도시가 성탄의 기쁨 속에 파묻힌 것처럼 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상업적이고 현실적 이익과 계산에 의한 일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세상이 줄 수 없는 성탄의 은혜와 흥분이 살아있음을 느꼈습니다. 

 

세속적이며 상업적인 도시에 살고 있던 각박한 삶 중에 찾아 온 성탄절의 분위기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고, 인생의 참된 의미는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기억하게 해 주었습니다. 퇴색되고 희미해지고 있었던 성탄의 은혜와 감동이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성탄절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우리나라로 귀국한 이후였습니다. 15년의 외국생활을 마치고 기대와 설렘 속에 맞이한 고국에서의 첫 번째 성탄절은 충격이었습니다. 모든 가게들은 평일과 똑같이 문을 열어 장사하고 있었고, 백화점과 도시의 분위기 속에서 하늘의 기쁨과 은혜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어린 시절 경험했던 성탄절의 추억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사라져버렸고, 성탄절의 기쁨보다는 석탄일의 화려함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더 놀라왔던 사실은 성탄절에 대한 세상의 무관삼이 아니라 성탄절에 대한 교회의 무덤덤함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경험했던 성탄절의 흥분과 감동을 교회에서 찾을 수 없었고, 오히려 무덤덤하게 행사를 진행하는 모습에 적잖게 놀랬습니다. 성탄절이 더 이상 흥분과 감사의 축제가 아니라 마치 해야 할 숙제처럼 보였고, 세상에서 성탄절은 다른 날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평범한 날, 그저 열심히 장사하는 날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자리는 어디인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처음 오셨을 때, 세상은 예수님을 환영하지도 영접하지도 않았습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예수님에 대한 세상의 무관심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왜 참된 위로와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지 않을까요?

 

2000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했던 복음은 로마의 정치적 지배로부터의 해방이었고, 그들이 원했던 구원은 다윗 시대와 같은 이스라엘의 회복이었습니다. 정치적 해방과 민족 번영의 복음을 기대하던 그들에게 십자가는 그들이 원했던 복음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는 패배요 수치였으며 십자가의 복음은 거리끼는 걸림돌이었습니다. 궁궐이 아닌 초라한 외양간에, 무명의 평범한 가정에 태어난 메시야는 그들이 기대하던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메시아를 위한 자리는 없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원하는 복음은 무엇입니까? 교인들 중에는 교회가 십자가의 복음, 철저한 순종의 제자도를 강조하기보다 행복과 번영, 성공과 영광의 복음을 전하면 세상은 교회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국교회 역사상 교회가 오늘처럼 성공과 영광의 메시지를 강조한 때도 없습니다. 세상에서의 성공이 가장 확실한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하고 주장합니다. 한편으로는 지금처럼 세상이 원하는 복음을 강력히 전하는 때도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처럼 세상이 교회에 대해 무관심한 때도 없습니다.

 

세상이 원하는 복음을 전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교회에 대해 무심한 이유는 그들이 원하는 행복과 성공의 복음은 굳이 교회가 아니어도 세상의 많은 곳에서 충분히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본질은 성탄절에 대한 세상의 무관심이 아니라 교회의 무관심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복음을 배척했고 무관심했습니다. 성경이 주목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무관심입니다. 왕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한 그 나라 백성들의 무지와 배척, 무관심이 문제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기대했던 복음은 예수님의 복음과 달랐고, 그들이 원했던 구원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과 달랐습니다. 다른 복음 다른 구원을 전하는 예수님을 위한 자리는 애당초 그들에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먼저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는 말씀이 부담이나 무거운 짐이 아니라 복음으로 들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 좁고 협착한 길을 통해 참 생명과 구원으로 초청하시는 것임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성탄절은 감동과 은혜의 시간입니다. 

 

성탄절의 기쁨은 세상의 것이 아닙니다. 성탄절의 흥분과 감동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지만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세상은 성탄의 기쁨을 모를 것입니다. 앞으로도 세상은 아기 예수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은 오직 그들의 필요에 따라 성탄절을 이용할 것이며 아기 예수님을 위한 자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고 복음의 비밀을 깨달은 사람들에게 성탄절은 영원한 은혜와 감동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미약하고 힘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은 언제나 그들의 마음 중심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며 예수님은 그들의 삶에서 점점 큰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교회

 

아기 예수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에 귀를 기울인 사람들은 자신의 죄로 인해 절망 중에 있던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를 따라 오라는 말씀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순종하며 따라갔던 사람들은 복음의 은혜 앞에서 자기를 부인한 겸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삶에는 언제나 아기 예수님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에 있으며 교회는 이런 가난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의 기쁨과 은혜를 세상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성탄의 참된 기쁨과 감동은 교회에 있습니다.

 

사회에서 성탄절에 무관심한 근본적인 이유는 교회가 성탄의 참된 기쁨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성탄의 기쁨을 잃어버리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전한 복음과 다른 복음의 메시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과 다른 구원의 삶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예수님께서 전한 복음, 십자가의 복음을 즐거워하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의 길, 좁은 길을 걷는 것을 기뻐하며 살아갈 때, 성탄의 기쁨과 감동을 결코 희미해지거나 퇴색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성탄의 기쁨과 감동은 교인들의 삶에 풍성하고 강력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고 맛보지 못하는 성탄의 놀라운 비밀과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교회를 볼 때, 세상은 성탄의 신비를 다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이 땅에 오셨을 때 세상이 자신을 영접하고 환영할 것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대하신 자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련한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자기 백성들이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이 찾으시는 자리는 세상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교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십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기꺼이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르기 원하는 가난한 심령을 가진 교인들을 찾으십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고백하며 겸손히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교인들을 통해 성탄의 은혜는 지금도 우리 안에 교회 안에 살아 있습니다. 성탄절을 맞이할 때마다 아기 예수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는 은혜와 기쁨이 우리의 삶에 더욱 풍성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월간고신 생명나무 Tree of Life. 2013년 12월호. "특집 유대 땅 베들레헴아!", pp. 38-41. 김진영 목사 서울중앙교회)

출처 : LBI 로고스성경교육원
글쓴이 : 이서영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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