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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주일설교

(왕하 6:8-17) 눈을 여시매

by 이서영 목사 2015. 7. 17.

(왕하 6:8-17) 눈을 여시매

 

여러분은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나가고 있습니까? 어디서 어떻게 찾아서 채워나가고 있습니까?

 

칼빈은 『기독교강교 초판』 . 기도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불쌍한 처지 대신 온갖 행복을, 우리의 부족 대신 모든 부요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제공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하늘의 보물 창고를 우리에게 열어주셔서, 우리의 온 신앙으로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묵상하게 하며 우리의 온 기대를 그분께만 두게 하며, 또 우리의 온 소망이 그분께 붙어 머무르도록 하신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비밀에 해당합니다. 모르니까 엉뚱한 곳에 가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비밀을 성도들에게는 알게 해주셨습니다. 눈을 열어주시므로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돌아보시면서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10:23).

 

눈을 떴다고 눈을 뜬 것이 아닙니다. “눈 뜬 장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영적 소경인 사람이 많습니다. 비밀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에 비해 눈을 뜬 사람은 비밀을 알고 비밀을 보게 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보이고, 천국이 보이고, 성경이 보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보이고 비전이 보입니다. 이 사람은 보는 것을 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보는 것을 보는 눈을 가지길 축원합니다.

 

열왕기하 6 8-17절에 유명한 장면이 나옵니다. 열왕기하 6 8 그 때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싸우며 그의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아무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 하였더니.” 그런데 “그 때에”는 어느 때를 말합니까? 6 1-7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가져다가 그 곳에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가라 하는지라. 그 하나가 이르되 청하건대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가리라 하고,

 

드디어 그들과 함께 가니라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베더니,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하니,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 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하니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으니라.”

 

여기서 잠깐 나뭇가지에 대해 잠깐 살펴보고 지나가기로 합니다. 나뭇가지를 베어 던지니 물에 가라앉았던 무거운 쇠도끼가 둥실 떠올랐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나뭇가지가 던져지면 쓴물이 단물로 바뀌고, 나뭇가지가 던져지면 가라앉은 쇠도끼가 떠오릅니다. 나뭇가지가 내 인생에 던져지면 내리막길 내 인생이 뜨는 오르막길 인생이 됩니다. 가라앉은 내 인생이 떠오르게 됩니다.

 

나뭇가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내 인생에 오시면 그런 변화가 일어납니다. 쓴물 마시다가 단물마시게 되고 침체되어 있다가 흥하게 됩니다. 또한 나무 장대 위의 놋뱀을 보면 죽어가던 사람이 살아나듯이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바라보면 소생하게 됩니다.

 

그 때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에 쳐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열왕기하 6 8-10 그 때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싸우며 그의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아무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 하였더니,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 곳으로 나오나이다 하는지라.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에게 말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 방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닌지라.”

 

너무 잘 맞추니까 내통한 줄로 알았습니다. 6 11-12 이러므로 아람 왕의 마음이 불안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과 내통하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그 신복 중의 한 사람이 이르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을 이스라엘의 왕에게 고하나이다 하는지라.”

 

그러자 왕이 엘리사를 붙잡으려고 군대를 보냈습니다. 6 13-14 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으리라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보라 그가 도단에 있도다 하나이다.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아람 왕이 엘리사를 잡으려고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냈습니다. 이것을 엘리사의 사환이 보고 큰 일 났다. 이제 어떻게 하지?”라고 안절부절하였습니다. 6 15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엘리사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눈을 뜨게 해서 보게 하였습니다. 6 16-17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사환은 눈 뜬 장님 격이었습니다. 적군이 둘러친 것은 보고 겁을 먹었지만 정작 둘러 진치고 보호하고 있는 하늘나라의 군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기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볼 수 있도록 눈을 열어주니까 보게 되었습니다. 말과 병거를 보고 두려워하다가 말과 병거를 보고 안심하게 되었습니다. 비밀이 보인 것입니다. 육의 것을 보다가 영의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볼 것을 보는 눈이 복이 있습니다. 보면 안심이 됩니다. 하나님이 보이면 안심되고, 천국이 보이면 안심되고 오히려 소망이 생기고, 성경이 보이면 성경에서 약속한 말씀이 보여서 안심이 됩니다. 안 보이면 어떻게 할 줄 몰라 불안해하고 두려워하지만 보이면 평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모르면 걱정이 태산 같지만 알면 평안해집니다. 성경 말씀에서 비결을 알고 방법을 알게 되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편안해집니다. 비전도 보여서 갈 길을 알고 가게 됩니다. 그래서 믿고 안정감을 가지고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게 됩니다.   

 

엘리사의 사환의 눈에는 하늘 나라의 군대가 보였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그러한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환의 눈을 엘리사가 기도하여 열어주어 볼 수 있도록 해주었지만 지금은 성령님께서 우리 눈을 열어 보이게 해주십니다.

 

오순절에 성령님이 강림하시기 전에 예수님의 생전에는 예수님께서 친히 눈을 열어 보이시고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누가복음 24 13-14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여기서 “그 날에”, “이 모든 된 일을”이라고 하였는데  어떤 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까?

 

앞에 나오는 24 1-12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안식 후 첫날에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일을 서로 이야기 하였습니다. “안식 후 첫날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이 날은 주의 날로 불립니다. 오늘날 주의 날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귀하게 여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부활의 생명을 공급받는 날이 되길 바랍니다.

 

이럴 때 예수님께서 다가오셨습니다. 그런데 누군지 몰랐습니다. 24 15-17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훤히 보고도 모르고 있습니다. 보는 눈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이렇게 못 알아보면 슬프게 삽니다. 눈이 가려져 알 수 없으면 기쁘게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계속 동행하면서 이야기하였습니다.

 

24 18-24절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24 25-27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제자들이 계속 동행하다가 예수님께서 눈을 뜨게 해주시자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24 28-32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예수님께서 눈을 뜨게 해주시고 부활 승천하신 다음에는 성령님께서 그 일을 하고 계십니다. 누가복음 12 12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4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고린도전서 2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2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린도전서 12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요한일서 3 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요한일서 4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그런데 보는 눈이 없으면 안 보입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도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어리석게 보입니다. 고린도전서 2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천사가 있습니까? 보입니까? 천사가 있습니다. 천사를 너무 과장하지도 너무 소홀하게 취급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천사가 있습니다. 돕고 섬기는 자로 있습니다. 마태복음 4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마태복음 24 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마태복음 26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사도 베드로가 감옥에 있을 때 천사가 와서 풀려나게 해주었습니다. 사도행전 12 8-15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천사가 있다”, “없다라고 초대 교회 당시에 논란이 있었습니다.사도행전 23 8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논쟁과 관계가 없이 천사는 분명히 있다. 천사는 우리를 지켜준다. 히브리서 1 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마태복음 18 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이러한 것은 눈이 열려야 보입니다. 문을 여는 것은 열쇠만 있으면 손쉽게 열 수 있는데 내 눈은 어떻게 열어야 합니까? 열 수 있습니다. 열쇠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통해 부어주시는 성령님을 받으면 눈이 열립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훤히 보고 사는 사람과 눈 앞이 캄캄하게 사는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납니다. 실제로 하늘과 땅 차이가 납니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눈이 열린 사람은 천국이 보이고 눈이 열리지 않고 사는 사람은 지옥에 살고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겉으로 멀쩡해 보여고 아무리 성공해보여도 아무리 평안하게 잘 사는 것처럼 보여도 모두가 생지옥을 살고 있습니다. 반대로 겉으로 보면 마치 고생하면서 사는 것처럼 보여도 천국을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은 현세의 천국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엄청난 차이입니다. 하늘과 땅 차이, 천국과 지옥의 차이입니다. 이러한 것이 눈이 열리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겉으로 보이는 것에 속지 마시고 볼 것을 보게 되길 축원합니다.

 

이렇게 되면 점차적으로 천국의 부요함이 그리스도를 통해 부어집니다. 겉으로도 부요하게 되어집니다. 처음에 한 칼빈의 말을 다시 되새겨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불쌍한 처지 대신 온갖 행복을, 우리의 부족 대신 모든 부요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제공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하늘의 보물 창고를 우리에게 열어주셔서, 우리의 온 신앙으로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묵상하게 하며 우리의 온 기대를 그분께만 두게 하며, 또 우리의 온 소망이 그분께 붙어 머무르도록 하신다.

 

전기가 눈에 보입니까?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전선에는 전기가 늘 흐르고 있습니다. 발전소에서 전기를 발전해서 보내고 있습니다. 전선을 통해 전기코드에 도달합니다. 전자제품 코드를 그곳에 꽂으면 작동됩니다. 이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발전소처럼 하늘 보화를 보내주고 계십니다. 길이신 예수님께서 전선처럼 하늘보화를 흐르게 해주십니다. 코드에 전자제품을 꽂듯이 우리가 믿고 꽂으면 전기가 들어와서 작동됩니다. 전자제품의 구석구석에 있는 부품속에 전기가 공급되면 잘 작동되듯이 성령님께서 에너지를 우리 속에 골고루 보내주셔서 작동시켜 주십니다.

 

전기가 눈에 보입니까? 안 보여도 생생하게 보는 것처럼 믿으니까 전기코드에 전자제품의 코드를 꽂습니다. 그래서 청소기도 돌리고 세탁기도 돌리고 밭솥도 티브이도 컴퓨터도 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기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여기면 아무리 고가의 전자제품이라도 무용지물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계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서 실제로 역사하고 계시는 것을 믿고 반응하면 하늘 보화와 능력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작동되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이미 귀하고 좋은 것을 그리스도를 통해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전기가 전선을 타고 흐르듯이 그 모든 것이 지금도 흐르고 있습니다. 이것을 믿고 보게 되면 성령님께서 역사하기 시작하십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 활력이 넘치게 되고 정상적으로 작동이 잘 되어 잘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엘리사의 사환의 눈이 열려서 불말과 불병거가 가득한 것을 보게 되고,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눈이 열려서 예수님이 보이듯이 우리의 눈도 하나님께서 활짝 열어주시길 축원합니다.

 

 

[2014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295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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