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 집사, 모든민족교회] 주님의 귀한 직분 귀하게 여겨 잘 감당해야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부족한 저에게 좋은 상을 주신 주님과 월간고신 생명나무에 감사를 드립니다. 고신언론사의 신앙간증수기 공모를 통해 전국 곳곳에 숨어있는 많은 은혜의 간증들을 접하며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성도들에게 희망을 주시니 정말 귀한 자리입니다. 특별히 이번 공모는 저에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감사의 기회를 다시 갖도록 하심을 찬양합니다. 또한 끝까지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저와 같은 은혜가 월간고신 생명나무 모든 독자들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합니다.
2012년 3월 20일 쓰러지다
새벽 6시경 작업장(식자재 납품)에서 일하던 나는 가슴에 통증이 심하여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잠시 후, 구급대원에 의해 차에 태워졌고 산소마스크를 착용하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덜덜거리는 진동과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떠보니 병원 응급실이었다. 의료진은 한시가 바쁜 상황에 보호자가 김해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 나에게 직접 서명할고 요구했다. "나는 힘이 없어 못하겠으니 지장을 찍으라"며 손가락을 내밀었다.
병명은 '급성심근경색." 의료진에 의해 시술이 진행됐는데 무어라 자기네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어렴풋이 들리는데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다. 한참 후 시술이 끝나고 중환자 실로 옮겨졌다. 8시쯤 아내가 왔다. "나도 몸이 안 좋은데 당신마저 이러면 어쩌나"라면서 한참 울었다. 담당의시가 와서 위독할 수 있으니 가족들에게 연락하라고 한다. 아내는 교회 교구 목사님께 기도요청하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오후에 병세가 안정되어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많은 분들이 문병을 와 기도와 말씀, 위로와 권면의 말들을 해주셨음을 이 지면을 통해 감사드린다.
"서 있는 자는 넘어 질까 조심하라"
정신이 조금 들고보니 '왜 나에게 이런 병이 왔을까? 얼마나 건강했는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젊은이들도 내가 하는 운동을 따라 하다가 몸살나고 부작용이 나서 병원에서 치료받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내가 병원에 누워있다고 하니까" 거짓말이라며 확인하러 온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나는 평소 체력이 강인하여 지리산 48㎞를 12시간 15분으로 종주하고, 다음날 정상업무를 수행할 정도였다. 이러한 내가 병상에 누워 이런 저런 생각을 떠 올리는데 "서 있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고린도전서 10장 12절 말씀이 자꾸 마음을 울린다. 신앙생활 한지가 50여 년이 됐지만 아직도 10계명 시험을 치면 30점에서 맴돌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고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한다"라는 잠언 17장 22절 말씀도 깨달아졌다. 나는 건강만을 자신하며 투잡으로 밤에도 일하면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100% 틀려도 자기 방식대로 해야 하고 냉동, 냉장 식품이 영하 18도 이하와 영상 10도를 오가며 하는 작업과 야간 업무로 나의 몸이 이 지경이 됐다. 건강한 몸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쓰러지고야 깨달았다.
'하나님 왜 병상에 눕히시는지요'
나의 주업은 피아노 조율사다. 집집마다 들어가서 전도하기엔 안성마춤이다. 요즘처럼 삭막한 세상에 집집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열어주지 않지만 피아노 조율하러 왔다고 하면 약속이 되어 있기에 쉽게 들어간다. 80-90년 2월까지 고향 밀양 예림중앙교회에서 봉사하면서 열심히 전도했다. 90년 3월 김해로 이사한 후 김해중앙교회에 등록하여 신앙생활을 잘 했다. 이후 2000년부터 지금 섬기고 있는 모든민족교회에 등록하여 출석하고 있다. 교회에서 실시한 이슬비 전도학교를 수료하고 조율가서 적어온 고객관리카드에 적힌 주소로 전도편지를 1주에 10여 통씩 발송했다. 항의 전화도 받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러던 중 회의를 느꼈다. 많은 사람을 등록시켰으나 조금 나오다 오지 않고, 이사로 다른 교회로 가버리는 등 전도의 열매가 보이지 않자 마음에 불평이 쌓였다. 이때 주님께서 "나는 뿌리고 아볼로는 물을 주지만 자라게 하시는 이는 주님이시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하셨다. 순간 얼굴이 빨개지며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복음 받을 준비된 영혼을 붙여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면 꿈에 고객의 얼굴을 보여 주시도 하셨다. 어떤 이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언니가 교회가자고 할 때는 마음이 안 내켰는데 아저씨랑 얘기하는 가운데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 했다. 12일 간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네게 화가 임하리라"는 고린도전서 9장 16절 말씀이 계속 떠 올랐다. '그래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자
3월 31일 퇴원하며 건강관리를 위해 집 뒤에 있는 경운산에 오르면서 2년 전에 조금 배우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만 둔 트렘펫을 들었다. 중간 중간 쉬면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내 주를 가까이' 등 찬송을 연주하면서 예수를 믿다가 낙심한 자들이 돌아오기를 기도했다. 불신자들을 위해서도 산에 오를 때 힘든 것을 덜어주려고 '연가', '정든 그 노래', '여고시절'. '애모' '등대' 등을 연주하면서 믿지 않는 자들에게 다가서는 접촉점을 만들었다. 몇 개월 하다 보니 팬도 생겼고 연주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왜 요즘 나팔 안 불어요?"라며 문자 메시지나 전화가 온다.
4월부터 9월까지 8명을 등록시켰다. 새벽 공원에서 운동하다 전도하여 바로 새벽기도회에 같이 참석했고, 뒷산에서 근력운동하면서 초콜릿 복근에 매료되어 따라온 33살 청년, 30살 스리랑카 청년과도 관계를 맺고 등록시켰다. 한 번은 피아노 조율 가서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에게 복음을 전하였더니 모녀가 같이 등록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자기 발로 찾아와서 "형님 보니까 예수 믿고 싶고, 형님 가는 교회에 가고 싶다"고 했다. 여러 사람을 전도대상자로 올려놓고 기도했는데 80-90%가 낙심자들이다. 요즘 만나는 모든 이들은 첫째도 둘째도 전도 목적이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집에서 요양하는 중 산업재해 신청서류를 준비했다. 발병 경위와 산재공단에서 보내온 질문지 28장, 의료보험공단 요양급여 10년 치, 건강검진 결과지 등등 완벽할 만큼 준비했다. 하지만 담당 의사가 "급성심근경색은 질병으로 분류된 것"이라서 산재인증이 어렵다고 했다. 전국에서 3건 밖에 없다며 불편해했고 회사에서도 어렵다며 날인을 거부했다. 서류 제출 후 산재승인을 위해 교회 중보기도실에 기도요청과 존경하는 목사님들에게 문자로 기도를 부탁했다. 부산 초량에 있는 산재판정위원회에 참석하여 추가 진술까지 했고 1주일 후 결과가 통보된다고 했다. 그리고 6월 29일, 산재승인이 났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응답해주심을···' 진료비와 휴업급여까지 지급된다고 했다. 여러 번의 사업부진과 한 번의 부도로 국민연금 납부가 어려웠고 수도가 단수된 집에서 6개월을 지내는 고통도 있었다. 노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인데 연금 받는 것과 같은 결과를 주셔서 앞서 일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셨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
1981년 6월 3일 오후 6시경 주먹만한 돌이 날아와 머리 뒤통수에 맞았다. 지나가는 사람에 의해 가까운 의원에 옮겨졌으나 큰 병원으로 다시 이송됐다. 밤 11시 40분경 의식이 돌아왔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이러했다. 교회 성가대 지휘자 직분을 5월 31일 부로 사임을 했다. 반려되어 우편으로 다시 제출했다. 주께서 주신 직분을 귀히 여기며 충성을 다해야 하는데 내 기분대로 던져버렸다. 어머님께서 '저놈 저러다 한 차례 맞지'라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2007년 7월 29일 주일오후 모든 순서를 마치고 밤 8시까지 선교축구팀이 경기를 한다. 열심히 뛰다 충돌하여 좌측 인대가 끊어지고 무릎 연골이 파열되어 70% 떨내고, 인대를 연결하고 24일간 입원했다. 7월 29일 오후 예배 장립집사들이 순번제로 기도를 하는데 2주 전에 담당 목사님께서 확인 전화하셨는데 그 당시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다음에 하겠다고 했다. 주님께서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고,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셨는데 이런 저런 변명으로 빠져 나가려고 하니 가만히 두실리가 없다.
'예수 나를 오라 하네'
1990년 3월 밀양에서 김해로 이사 오게 되어 교회를 옮겨 등록 후 교회 각종 축제나 행사시 열심히 일하다보니 좋은 성과를 얻어 박수와 찬사가 이어졌다. 짧은 기간이지만 중형교회서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고 칭찬이 거듭되어지자 자신도 모르게 교만해졌다. 어느 날 성도가 소천했는데 그 관을 내가 지고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꿈을 주십니까?'라며 기도했다. 겸손하고 낮아지라는 느낌을 주셨다. 시신은 관속으로 들어가고 그 관은 땅속으로 들어가는데 그 관을 내가 지고 가니 그 시케가 든 관보다 더 낮아지라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잘 못할 때는 채찍으로, 잘할 때는 꿈으로 만나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가려네."
(월간고신 생명나무 2013년 6월호 "신앙간증수기 가작 수상작" PP.9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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