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원한 스승 박두욱 목사님
(모든민족교회 최정철 목사)
목회자로 걸어온 내 곁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보내주셨다. 좋은 아내, 좋은 친구, 좋은 성도, 그 모두가 내게 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아버지와 어머니는 큰 영향을 주셨다. 아버지는 내가 유학 도중 잠시 귀국했을 때 돌아가셨다. 참 많이도 울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나를 보며 아버지를 추억하곤 한다.
아버지는 내 인생의 등대와 같은 분이셨다. 신앙인이 걸어가야 할 길을 아버지의 삶을 통해 직접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막내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은 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 온기로 남아 있다. 지금도 분주한 마음을 추스리고 싶을 때 연어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듯 아버지의 품을 떠올리곤 한다.
어머니는 올해 97세이다. 어머니는 삶을 통해서 뿐 아니라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신 분이다. 나는 지금도 어머니의 기도를 먹으며 살고 있다. 어머니야말로 하나님께서 내 삶에 허락하신 가장 큰 보약이다.
1997년 유학을 마치고 모든민족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동안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 가운데 교회는 아름답게 부흥했다. 나는 아주 행복한 가운데 목회를 하고 있다. 지금처럼 행복한 목회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목사님들, 좋은 동역자들, 그리고 좋은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붙여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회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 한 명을 말해 달라'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천국에 계신 '박두욱 목사님'이라 말할 것이다. 신앙인으로 살아가는데 가장 큰 모범을 보여주신 분이 부모님이셨다면 박두욱 목사님은 목회자로서 지금의 내가 있게 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이다.
경남 울주군 두서면에서 중학교까지 공부했던 나는 고등학교 진학과 더불어 울산에서 공부하며 울산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울산교회를 담임하시던 박두욱 목사님을 가까이서 뵈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울산교회를 담임하시던 박두욱 목사님을 가까이서 뵙게 되었다. 목사님은 성도들에게 성자로 불리셨다. 인품에서 우러나오는 깊이 있는 설교는 어린 나에게도 큰 감명을 주었다. 목사님의 설교는 무엇보다 내 전도의 열정에 불을 지폈다. 옛날에는 대부분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였는데 위생상태가 좋지 않았다. 소독약을 담은 분무기를 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화장실 소독을 해주고는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하였다. 이런 전도의 열정은 목사님의 설교로부터 나온 것이다. 목사님은 어린 내게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목회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목회자의 꿈을 확고히 다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꿈대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신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다른 교회에 전도사로 사역을 하고 있었지만 늘 울산교회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러다 1987년 울산교회 전도사로 부임하면서 부교역자로 좀 더 가깝게 목사님을 모실 기회를 얻었다. 보통 사람 관계라는 것이 멀리서 바라볼 때는 좋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목사님은 가까이 갈수록 더욱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그런 분이셨다. 고등학교 때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었는데 부교역자가 되고 난 후 그 설교의 비결을 알 수 있었다. 목사님은 늘 "양떼들에게 제일 좋은 양식을 먹여야 한다"고 하시며 무엇보다 설교 준비에 힘썼다. 보통 목회자들은 주일 사역을 하고 월요일에 쉰다. 그러나 목사님은 월요일에도 출근하여 다음 주일 설교를 준비하셨다. 이렇게 철저히 준비된 설교를 듣고 은혜를 못 받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나는 유학을 할 때 설교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목사님을 닮고 싶었기 때문이다. 목사님께 배워서 그런지 한 편의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많은 땀을 흘리게 된다. 때로는 영혼을 쥐어짜는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설교에 대한 이런 열정은 목사님께서 나에게 물려주신 귀한 유산이다.
목회자의 설교와 목회의 원천은 하나님의 도우심에 있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성도들을 제대로 목양할 수 없다. 목사님은 이것을 너무나 잘 아셨기에 매일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셨다. 항상 새벽기도 1시간 전부터 나와 기도하셨고 기도회 모임을 마친 후에도 오전 9-10시까지 계속 기도하셨다. 부교역자들에게도 강한 기도 훈련을 시키셨다. 혹시라도 새벽기도회에 빠지는 날이면 목사님 얼굴 보기가 두려웠다. 이렇다보니 사모도 기도를 게을리 할 수 없었다. 첫째 아이를 임신했던 아내도 만삭의 몸을 이끌며 40분을 걸어 새벽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이렇게 강한 기도훈련을 받다보니 기도의 능력을 알게 되었고, 어느덧 기도를 목회의 최우선에 두게 되었다.
내가 곁에서 지켜본 목사님은 주님과 교회를 위해서 모든 것을 쏟아 부은 분이다. 목사님의 모든 관심은 오로지 교회와 성도들에게 있었다. 이와 관련된 웃지 못할 에페소드가 하나 있다. 목사님에게는 3남 2녀의 자녀가 있다. 그중에 둘째 딸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학교에 갔는데, 딸의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듯 오직 목회에 전념하시다보니 가정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목사님은 부교역자 부부가 시내에서 함께 걸어가는 것을 보면 혼을 내셨다.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4)."
부교역자는 가정에 얽매이지 말고 사역에 전념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당신께서 철저하게 그렇게 사셨으니 감히 불평할 수가 없었다. 요즘 젊은 목회자들은 가족을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한다. 어떤 때는 교회 사역보다 가정에 더 우선순위를 두기도 한다. 가정도 중요하지만 목회자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한다. 목사님 곁에 있다보니 나도 모르게 목사님의 가르침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되었다. 사역에 열중하다 보니 늦어져서 교회에서 잠을 자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시고 지금의 모든민족교회를 허락해주신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목사님은 진심으로 성도를 생각하시는 목회자였다. 목사님의 최대 관심은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것이었다. "교역자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해야 한다", "교역자는 항상 성도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목사님은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 교역자가 아이를 안고 다니지 못하도록 하셨다. 혹시라도 혼자 사는 성도들이 보고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목사님의 이런 가르침을 마음 깊이 새기고 정말 성도를 생각하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 부임할 때부터 모든 성도들의 이름을 다 외웠다. 부임하고서는 '성도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알 수 있도록 관심을 가졌다. 특히 어렵고 가난하게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더욱 더 관심을 가지기 위해 노력해왔다.
마지막으로 목사님은 많은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노력하신 분이다. 지금도 울산교회 출신 교역자들이 교단에서 중요한 역할들을 감당하고 있다. 나도 유학할만한 경제적 형편이 되지 않았지만 목사님의 배려로 유학을 떠날 수 있었다. 학비에 대한 염려 없이 학위 공부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목사님과 울산교회의 후원 덕분이었다. 이런 사랑을 받았기에 나도 인재 양성에 힘을 쓰려하고 있다.
1999년 11월 28일 목사님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 목사님은 나엑 스승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신 분이다. 아버지처럼 나를 아껴주시고 나도 아버지처럼 목사님을 존경했다. 하나님께서 어린 목회자 디모데에게 바울 사도를 보내주셨듯이 나에게는 박두욱 목사님을 선물로 보내주신 듯하다. 지금까지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목사님은 내 목회의 영원한 모델이다. 나를 바라보실 때면 목사님의 그 무뚝뚝한 얼굴 위에 엷게 번지던 미소를 잊을 수 없다. 그분은 나의 가슴 속에 영원히 귀하신 분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월간고신 생명나무 2013년 11월호, "내 인생의 멘토", pp. 3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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