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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자료/기독자료

[김성진 목사] 나는 목사다

by 이서영 목사 2018. 12. 7.

 

 
김 성 진 목사 revsjkim@hotmail.com


   
 
  ▲ 김성진 목사

  호주 브리즈번
  아름다운 우리교회
 
한국에서 여전히 인기 있는 TV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꼽히는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로 지칭)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동안 ‘나가수’가 출연했던 가수들이 요즘 재평가를 받아 가수로서 데뷔 후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각종 음원차트 순위를 싹쓸이하고 있다고 한다.
왜 온 국민이 ‘나가수’에 열광하는가?
‘나가수’가 어떤 한 특정세대의 시청자들이 선호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음악방송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이유는, 출연가수들이 기존의 틀을 깨면서 끊임없이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음으로 신선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며, 또 한편으로는 ‘나가수’라는 프로그램이 이전의 음악 프로그램이 해 왔던 것을 답습하는 듯한 틀에 짜인 콘서트가 아니라 청중평가단의 평가에 의한 서바이벌 형식의 경연을 함으로 청중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지 못하면 탈락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인해 긴장감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필자는 한국 대중음악의 흐름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동안 한국가요계 안에 노래는 별로 못하면서 영상과 춤으로 승부하는 그런 어쭙잖은 가수들이 대세를 이루면서 실력 있는 가수들이 설 무대를 잃고 점점 대중들로부터 잊혀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 ‘나가수’라는 프로그램이 공중파를 타면서 그동안 잊히고 한물간(?) 줄로만 알았던 실력 있는 가수들이 재조명되면서 다시 청중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고 본다.
  
거기에 나오는 가수들의 노래에 청중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출연하는 가수들이 나름대로 자기 분야에서 인정을 받는 최고의 가수들이지만 경연 무대에 설 때마다 더 좋은 무대를 꾸미기 위해서 한 주간 내내 긴장하고 고민하면서 최상의 컨디션을 가지고 무대에 서려는 모습과 무대 위에서 온 힘을 다해 열창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여기서 박수를 보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필자는 ‘나가수’라는 프로그램이 나온 후 그 제목을 패러디해서 ‘나는 목사다’라는 글을 쓸 생각을 했다가 ‘나는 목사다’라는 주제의 민감함 때문에 주저해 왔었다. 필자가 ‘나는 목사다’라는 글을 쓰려고 했던 것은 목사님들도 가수들처럼 경연해서 탈락을 시켜야 한다는 말 같지 않은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목사들이 스스로 ‘나는 목사다’라는 자기선언을 하는 것의 유익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서다. 목사는 ‘나는 목사다’라는 ‘자기선언’을 남이 아닌 자신의 내면을 향해 계속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나는 목사다’라는 자기선언은 목사로 하여금 곁눈질하지 않게 하고 목사로 하여금 목회의 본질을 붙들게 하기 때문이다.
  
목사란 무엇인가?
목사(牧師)란 양들(성도)을 돌보고 먹이는 사람이다. 양을 돌보기 위해서 심방을 해야 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양에게 살진 꼴을 먹이기 위해 말씀을 준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나는 목사(牧師)라는 말을 목사(木死)라는 한자로 바꾸어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목사(木死)라는 한자에서 목(木)자는 ‘열 십’(十) 자 와 ‘사람 인’ (人) 자가 합쳐서 된 것이다.
  
그리고 목사(牧師)라고 할 때 나오는 ‘스승 사’ (師)자를 ‘죽을 사(死)자’로 바꾸어 쓴다면 목사가 양과 관련이 있다는 의미가 살아난다. 목사(牧師)를 목사(木死)로 바꾸어 쓸 때 자기 양을 위해 죽는 선한 목자의 의미가 살아날 수가 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장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선한 목자는 목사(牧師)와 목사(木死)가 합쳐져야 하는 개념이 아닌가 하는 억지 같은 생각을 해본다. 
  
요즘 한국에는 나름대로 목회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는 ‘나만 목사다’라는 오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분들과 충분한 신학훈련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기속성 내지 인터넷을 통해 성경학교 수준도 안 되는 신학공부를 한 후 검증도 안 된 단체에서 안수를 받고서 ‘나도 목사다’라고 하면서 교계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


사실 한국교회가 어려워지고 전도에 문이 막히게 된 것은 묵묵히 목회하고 있는 다수의 목회자 때문이 아니라 ‘나만 목사다’라는 사람들과 ‘나도 목사다’라는 사람들 때문에 한국교회가 어려워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흘이 멀다 하고 신문 사회면에는 목사와 관련된 부끄러운 기사들이 나오는데 거기에 이름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목회자들은 대부분 ‘나만 목사다’라는 사람들과 ‘나도 목사다’라는 사람들이다.


목회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교회를 키우는 것이 결코 아니다. 교회를 키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의 양들인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커가도록 돕는 것이다. 목자장 되시는 예수님의 목사를 향한 평가는 주님이 사랑하여 자기의 목숨까지 주었던 양들을 얼마나 사랑으로 돌보며 말씀의 꼴을 잘 먹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목사는 설교준비를 위해 더 많은 것들을 쏟아 부어야 한다. 목사에게 있어서 설교가 전부는 아닐지라도 가장 중요한 사역의 한 부분인 것은 두 말할 여지가 없다.


필자가 나가수’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청중평가단의 반응이다. 청중평가단으로 온 사람 중에는 가수들의 노래에 깊은 감동을 받아서  혼이 빠진 듯한 표정을 짓는 사람, 가수와 하나가 되어서 열광하는 사람, 두 눈에 눈물이 고여 눈가가 젖어 있는 사람.....‘나가수’ 경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올 때 그들은 하나같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들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왜 사람들은 가수들의 노래에는 감동을 하는데 목사의 설교는 감동을 하지 않는 걸까? 고장 난 축음기처럼 맨 날 똑같은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는 가수들의 노래에는 뜨거운 반응을 보이면서 인류를 향한 영원한 복된 소식인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를 전하는 말씀을 전할 때는 왜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는가?


노래와 설교의 차이 때문인가? 가수와 목사의 무대 연출의 차이 때문인가? 왜 가수들의 노래가 끝나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목사의 설교는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는가?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대답은 프로패션날리즘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한다. ‘나가수’에 출연하는 가수들은 자기가 무대 위에서 부를 한 곡을 위해 한 주간 내내 긴장한 상태에서 준비한다. 편곡 작업을 하고, 다양한 악기들을 동원하고, 자신의 목 상태를 최고의 상태로 유지한 다음에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노래가 끝날 때 기진해서 비틀거릴 만큼. 가수가 자기의 명예와 인기를 위해서 그렇게 한다면 목사도 주일 설교를 위해서 올인해야 된다. 목사가 설교자로서 자기가 할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왜냐면 목사의 평가는 청중평가단이라고 할 수 있는 성도들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로 부르고 세우신 하나님이 평가할 몫이다.
  
사실 필자는 ‘나는 목사다’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고 허물이 많은 사람이다. 평생에 행한 일 돌아보니 부끄럼뿐이라 황송한 것 밖에 없다. 이것은 솔직한 나의 고백이다. 어쩌면 나는 일찌감치 탈락의 쓴잔을 마셔야 할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강단을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청중이 많지 않은 것이 무슨 대수냐? 나는 이번 주일에도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계시의 말씀을 들고 설 것이며,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전할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의 영혼에 말할 것이다. ‘나는 목사다’라고.

코람데오닷컴 2012년 03월 29일

   
출처 : 참좋은 은혜
글쓴이 : 참좋은 제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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