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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주일설교

[성령강림주일] 성령님의 임하심 (삼상 16:6~13)

by 이서영 목사 2015. 7. 17.

성령님의 임하심 (삼상 16:6~13)

 

다윗은 기름부음받기 전에는 보잘 것 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들에서 양치는 일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소를 산이나 들로 데리고 나가서 풀을 뜯어 먹이는 일을 했습니다. 어릴 때 농사를 짓지 않아서 방학 때 농사를 짓는 외갓집에 가면 소를 먹일 기회가 있었습니다. 소를 먼 산으로 데리고 가서 먹이곤 했습니다. 소를 데리고 가기 전에 먼저 큰 냇가에 가서 함께 수영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 후에 소를 몰고 멀리 떠납니다. 거기서 소를 산에 올려놓고는 풀잎과 덩굴로 기관총을 만들어 전쟁놀이를 하거나 씨름을 하면서 놉니다. 그러다 저녁이 되면 산에 올라가 소를 데리고 어두컴컴해지면 집으로 돌아옵니다. 거리가 꽤 멀기 때문에 때론 소의 등에 앉아 타고 올 때도 있습니다.

 

이것도 어쩌다 하면 재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직업적으로 하면 힘듭니다. 외갓집 옆에 있는 내 또래의 아이는 소를 전문적으로 키워서 파는 집안의 아이였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많은 소를 데리고 다니면서 먹이랴, 많은 소에게 먹일 풀을 뜯어 다니랴, 많은 소에게 여물을 먹이랴 등등 하루 종일 바쁘게 뛰어다녔습니다. 공부할 틈도 별로 없고 놀 틈도 별로 없었습니다. 손이 많이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말끔하게 몸단장할 시간도 없습니다. 이것은 재미가 아니라 중노동입니다.  

 

다윗이 그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형들은 집에서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식사를 하고 책을 읽으면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내 동생인 다윗은 호의호식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사는 형들과는 달리 누구의 관심도 별로 받지 못한 채 혼자서 외롭게 들에서 양을 지키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하고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윗에게 놀랍고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다윗의 삶을 뒤바꾸어 버리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변화는 이스라엘의 최고지도자인 사무엘이 다윗의 집에 찾아온 이후로 시작되었습니다.

 

사무엘이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를 찾아와서 이새의 아들에게 왕으로 삼기 위해 기름을 부으려고 했습니다. 먼저 맏아들인 엘리압의 용모를 보니 한 눈에 보아도 기름을 부을만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즉각 기름을 부으려고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그가 아니다”라고 하시면서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본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도 중심을 보십니다.

 

이새가 이번엔 둘째 아들인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에 지나가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도 택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셋째인 삼마도 지나가게 했습니다. 역시 마찬가지로 택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새는 일곱 아들을 모두 지나가게 했으나 모두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은 이상하게 여기면서 다른 아들은 없는지를 물었습니다. 이새는 마지못해 말하기를 막내 아들이 남아있긴 한데 지금 양을 지키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사람을 보내어 데려오지 않으면 식사자리에 앉지 않겠다고 하자 그때서야 이새가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데리고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명하셔서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주었습니다. 그러자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었습니다. 다윗에게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평범한 양치기 소년이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므로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심으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변화 받게 되었습니다. 악령이 든 사울 왕에게 가서 수금을 타서 쫓아내주었습니다. 16장 23절입니다.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니라” 찬송하면 이처럼 악령이 떠나가기에 우리도 역시 찬송을 귀하게 여기고 찬송을 많이 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18절을 보면 다윗은 이미 평범한 소년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라”  하나님의 영이 임하심으로 모든 면에서 변화된 것입니다. 용기가 생기고 용감해지고 말재주가 능해지고 준수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윗의 활동무대는 점점 넓어지게 되었습니다. 맹활약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17장을 보면 블레셋이 군대를 모으고 싸우러 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 격투기 선수인 최홍만보다 더 큰 골리앗이란 거인이 있었습니다. 일대일로 겨루어 결판을 내자고 했습니다. 사울왕과 모든 군사들은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어떤 군사는 심히 두려워하여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이때 다윗이 형들의 안부를 살펴보고 오라는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왔다가 이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벌벌 떠는 군사들과 달리 다윗은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것을 보고 분을 참지 못했습니다. 형들은 다윗이 교만하다고 말하면서 양이나 치지 전쟁을 구경하러 왔느냐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에 굴하지 않고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이 사울왕의 귀에 들어가서 다윗은 불려갔습니다. 사울이 보기에 다윗이 미덥지 못해 골리앗은 어려서부터 용사인데 어떻게 싸우려고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럴 때 다윗이 양을 지킬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새끼 양을 물어가면 따라가서 치고 그 입에서 건져내고 수염을 잡고 쳐 죽였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골리앗도 물리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이 임하셨기에 해낼 수 있었습니다. 17장 37절을 보면 이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건져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라 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건져주십니다. 

 

다윗은 그의 믿음대로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거인 골리앗을 돌로 이마를 쳐서 쓰러뜨렸습니다. 갑옷을 입고 투구를 써서 온 몸을 감싸도 하나님께서 쓰러뜨리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결코 칼과 창에 있지 않다는 것을 무리들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하셔서 함께 하시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 것입니다.

 

이후로 다윗은 천부장이 되었습니다. 천명을 거느리는 대장이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 왕조차도 점점 그를 두려워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영이 임하셨기에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였습니다. 그러자 사울왕은 다윗이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더욱 더 두려워하였습니다(18:12~15).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자 평범한 양치기 소년이 이렇게 달라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임하신 것처럼 오늘날도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외모가 멋진 사람에게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볼 품이 없고 아무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도 임하십니다. 다윗의 용모가 빼어났을까요? 12절을 보면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용모가 아름다운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이것은 용모가 아니라 햇볕에 그을린 모습, 수줍어 빨개진 얼굴, 반짝이는 눈, 순진한 마음씨 등이 아름답게 보였던 것입니다. 용모와 키로서는 맏형인 엘리압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예수님께도 크게 임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용모가 준수했을까요? 아닙니다. 이사야 53장 2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용모와 풍채를 보고 기름을 부어주셨다면 예수님은 기름부음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나 능력이나 신분을 보고 임하시지 않습니다. 요엘 2장 29절을 보면,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라고 했습니다. 신분이나 나이에 관계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차별 없이 임하십니다. 사람은 요것조것 많이 따진 후에 사귀고 결혼하고 거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중심을 보십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왜 임하십니까? 왜 기름을 부어주십니까? 예수님께 기름을 부어주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4장 18~19절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아멘.

 

성령님이 임하신 것은 복음을 전파하고 자유를 주고 은혜를 부어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다윗도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만천하에 알리고 높여드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골리앗에게 눌린 것을 풀어 자유를 주었습니다. 또한 지혜를 다해 모든 일을 행함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심지어 사자나 곰을 쳐서 죽이고 새끼 양들까지 보호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수금으로 악신까지도 물리쳐주었습니다. 사무엘하 5장 10절을 보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므로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졌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8장 6절과 14절을 보면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신 것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님이 임하시면 이러한 크고 놀랍고 복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것은 심히 기쁜 소식이 됩니다. 성탄절에 예수님 탄생에 대해 우리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 라고 찬송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탄생도 매우 기쁜 소식이지만 기쁜 소식이 하나 더 있습니다. 성령님이 오셨다는 소식입니다. 그래서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세 성령이 오셨네” 라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임하시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성령님이 임하시면 여러 가지 면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먼저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권능을 받고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전도하고 선교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아멘.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는 성령님을 우리 모두가 충만하게 받으시길 바랍니다.

 

 

[2010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21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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