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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주일설교

영적 충전소 (엡 5:15~18)

by 이서영 목사 2015. 7. 17.

영적 충전소 (엡 5:15~18)

 

잡 코리아에 따르면, 직장생활 무기력 증후군의 극복방안으로 '꾸준한 자기개발'(27.9%)과 '운동 등 취미생활'(26.2%)을 가장 많이 꼽았으며, 주변인들과 대화(17.3%), 사표 처리 후 재충전 시간 갖기(8.0%), 일에 더욱 몰두한다(3.4%) 등의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무기력 증후군은 한마디로 탈진입니다. 기운이 빠진 상태, 방전이 되어버린 상태입니다. 이와 같이 고갈 되면 심각한 일이 벌어집니다. 휴대폰이 고갈되면 “전원이 꺼졌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듣게 됩니다. 통화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 달리던 자동차도 기름이 고갈되면 “덜커덕, 덜커덕” 거리면서 그만 멈춰서 버립니다.

 

사람 역시 고갈되면 무기력에 빠집니다. 가사도, 봉사도, 학업도, 직장일도, 의욕을 잃고 힘이 “쭉” 빠져버립니다. 그래서 맡은 일이 점점 힘겹게 느껴지고 귀찮아지고 지루하게 여겨집니다. 심리적으로는 우울하게 됩니다. 거기다가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라고 낙심하고 낙담하게 됩니다. 그래서 앞일이 걱정되고 염려하다가 불안해하고 초조해 합니다. 나중엔 상대방이 밉고 섭섭해집니다. 잘 나가는 사람을 보면 시기질투까지 하게 됩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것이 덮쳐오는 것은 힘이 빠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럴 땐 충전을 받아야 합니다. 사표처리하고 가정을 내팽개치면서 재충전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재충전해야 합니다. 휴대폰 밧데리가 방전하면 전기코드를 꽂아 충전하면 됩니다. 자동차의 기름이 떨어지면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채우면 됩니다. 가스 자동차는 가스 충전소에 가서 가스를 채우면 됩니다. 사람은 휴가를 떠나는 등으로 생활에 활력소를 충전하면 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도 탈진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적 충전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충전소에 와서 충전을 받아야 합니다. 영적인 충전소인 교회에 와서 성령의 기름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러면 신이 나서 힘차게 “쌩쌩” 잘 달릴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겟세마네로 가셔서 절박한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런데 함께 간 수제자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피곤해서 태평스럽게 잠을 잤습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보시고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라고 하셨습니다. 영적인 상태가 되지 못하면 이렇게 됩니다. 제자들은 아직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힘으로 살다보니 힘이 빠져버리니까 피곤하고 지쳐서 잠을 잔 것입니다. 몸이 영혼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오순절에 성령으로 충만해지자 이제는 반대로 영혼과 마음이 몸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육적인 상태에 있을 때는 겁이 나서 도망치면서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 앞에서나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왜 신앙생활이 힘이 들까요? 기름이 떨어지니까 힘이 드는 것입니다. 자동차의 기름이 떨어지면 앞으로 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고급스럽고 성능이 아무리 뛰어난 자동차라해도 소용없습니다. 포크레인이 힘이 좋아도 기름이 떨어지면 맥을 못 춥니다. 우리가 푸는 삽질보다 더 못합니다. 그럴 땐 기름을 채우면 됩니다. 그러면 포크레인은 힘이 생겨서 산과 같은 높이 쌓인 흙더미도 “푹푹” 퍼서 손쉽게 옮겨 버립니다. 우리 역시 우리 힘으로 신앙생활하면 힘이 듭니다. 노력에 비해 얻는 성과가 별로 없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기름이 채워지면 포크레인보다 더큰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적 충전소인 교회에 나와서 영적인 기름인 성령의 기름을 채우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 무엇이 가득 차 있으면 좋을까요? 길을 가다가 보니 이런 간판이 눈에 띠었습니다. “맥주 충전소” 술을 즐기는 사람은 술로 충전시킵니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술잔 삼아서 자신의 몸에 술로 가득 채웁니다. 그래서 술기운으로 살아갑니다.

 

탈무드를 보면 술에 대한 역사를 이렇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 최초의 인간이 포도나무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때 악마가 찾아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인간이 대답하기를 '지금 근사한 식물을 키우고 있다'고 말하자 악마는 ‘이런 식물은 처음 보는 것이군'하면서 놀라워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악마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식물에는 아주 달콤하고 맛있는 열매가 열리는데, 익은 다음 그 즙을 내어 마시면 아주 행복해진다네.’

 

악마는 자기도 꼭 한몫 끼워 달라고 애원하고는, 양과 사자와 원숭이와 돼지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악마는 이 짐승들을 죽여 그 피를 거름으로 썼습니다. 포도주는 이렇게 해서 세상에 처음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술을 처음 마시기 시작할 때에는 양같이 온순하고,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납게 되고, 조금 더 마시며 원숭이처럼 춤추거나 노래를 부르고, 더 많이 마시게 되면 토하고 뒹굴고 해서 돼지처럼 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술에 취하면 대부분 이러한 모습으로 변합니다. 술은 이처럼 사람을 나쁜 쪽으로 끌고 갑니다. 방탕한 쪽으로 끌고 갑니다. 방탕은 과도한 것, 초과한 것, 지나친 것을 의미합니다. 절제가 안 되고,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와 같게 됩니다. 그리하여 기차가 레일 위에서 탈선하듯 선한 행동에서 탈선합니다. 그리고 거칠고 무질서한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갈 5:21) 했습니다. 그러나 신자는 “영적 충전소”에 와서 성령으로 충전시킵니다. 그래서 성령의 기운으로 살아갑니다. 성령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성령은 성령의 능력과 은사로 살아가게 합니다. 성령은 이처럼 좋은 쪽으로 끌고 갑니다.

 

술 취하는 것과 성령 충만한 것이 겉으론 같은 것 같으면서도 내용면에서는 현저하게 다릅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먼저 주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지배하는 주인은 같지만 지배하는 존재가 다릅니다. 술이 취하면 술이 사람을 지배하고, 성령 충만하면 성령님께서 사람을 지배합니다. 술취한 사람은 “주(酒)님”이라고 부르지만 성령 충만한 사람은 주님을 다르게 부릅니다. “창조주님”(하나님 아버지), “구세주님”(예수 그리스도), “동행주님”(보혜사 성령님)으로 부릅니다.

 

그리고 기분이 다릅니다. 둘 다 충만해 지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러나 술에 취해서 얻는 기분은 가짜 기분입니다. 오래가지도 못하고 금방 사라지고 금방 허전해집니다. 그러나 성령이 충만해지면 진짜 기분이 좋아지고 샘솟는 기쁨이 지속됩니다. 또 다른 점은 말이 많아집니다. 둘 다 말이 많아지는데 술에 취한 사람은 했던 말을 지겹도록 또 합니다. 소용없는 말을 계속 합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사람은 교회이야기, 하나님이야기, 복음과 진리와 성경에 관한 이야기를 귀가 따갑도록 합니다.

 

또 다른 점은 담대함입니다. 둘 다 담대해지는데 다른 것은 술 취한 사람은 담대해져서 평소 안하던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사람은 겁쟁이, 부끄럼쟁이에서 담대한 복음의 증인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다른 점은 돈 개념이 없어지는 점입니다. 둘 다 아낌없이 “펑펑” 쓰는 점에서는 같으나 술에 취하면 술값을 “펑펑” 씁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그리고 이웃의 연약한 자를 위해 아낌없이 “펑펑” 씁니다. 이렇게 서로 같은 점이 많지만 내용은 엄청나게 다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술로 충전하지 말고 성령으로 충전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채우긴 채워야 하는데 얼마만큼 채워야 할까요? 얼마나 충전시켜야 할까요? 가득 채워야 합니다. 조금 채우면 금방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가득 채우지 못하고 성령을 조금 채우면 본능에 따라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몸을 이기지 못하게 됩니다. 어린 아이처럼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갑니다. 그리고 생떼를 쓰기도 합니다. 일은 하지 못하면서 사고는 칩니다. 어지럽힙니다. 한마디로 제 멋대로 삽니다. 그렇다고 이런 상태에 있다고 해서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이것은 정상입니다. 어릴 때 뒤뚱거리면서 걷는 모습이 참 귀엽습니다.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모습도 싱긋이 미소를 띠우게 만듭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도 계속 그 상태로 있으면 귀엽지도 기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걱정이 앞섭니다. 어느 부모가 나이에 맞게 자라나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하는데 좋아하겠어요? 나이에 맞게 성장하고 발달해야 합니다. 영적 나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라나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어린 아이가 먹는 음식을 버리고 단단한 음식을 먹는 장성한 사람이 되고(히 5:12~14), 어린아이의 초보적인 티를 벗어나서 장성한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했습니다(고전 13:11). 이렇게 나이에 맞는 분량을 채워나가면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엡 4:12). 이렇게 채우면 채울수록 성숙해집니다. 철이 들어서 절제하게 됩니다. 능력을 발휘해서 생산적인 일을 하게 됩니다. 육체의 정욕에 따라 살지 않고 거룩한 마음에 따라 살게 됩니다. 몸을 이기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을 충만하게 채우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먼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충만 받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휴대폰에 충전하려면 휴대폰 밧데리가 있어야 충전할 수 있습니다. 이것처럼 기름을 채우려면 먼저 기름통을 준비해야 합니다. 기름통 없이 기름을 채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충만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기름통을 준비해야 합니다. 기름통은 바로 그리스도의 영(롬 8:9), 곧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 받기 전에 성령의 존재를 먼저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급선무입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고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령 받지 못하고 교회에 다니면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아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구원을 얻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꼭 성령부터 받아야 합니다. 

 

그런 후에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성령을 받아라”(요 20:22)고 하신 것입니다. 성령을 받아야 기름통이 마련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께서 성령을 아버지께로부터 받아서 부어주셨습니다(행 2:33).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은 성령을 받은 이후에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라”(엡 5:18)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성령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성령을 이미 받은 사람은 성령으로 가득 채워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언제까지 채워나가야 할까요? 죽을 때까지입니다. 계속 충전시켜야 합니다. 한번 채웠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쓰고 나면 또 계속해서 채워야 합니다. 기름 한 번 넣고 다니는 자동차는 없습니다. 휴대폰에 한 번 충전하고 계속 쓰는 휴대폰도 없습니다. 계속 채워야 합니다. “충만을 받으라”는 명령은 문법적으로 현재 수동태형입니다. 지금 현재 채워져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가득 채웠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 없으면 아무리 성능이 좋고 고급스런 자동차라해도 달릴 수가 없습니다. 과거에 성령 충만 받았다고 자랑하거나 안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잘 나가는 이야기는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성령 충만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지금 계속해서 영적 충전소에 나와서 충전하라고 하십니다.

 

계속 잘 달리고 계속 잘 사용하려면 충전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우리는 더욱 더 영적 충전소에 나와서 성령의 기름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런데 영적인 충전은 어디에 가서 충전해야 합니까? 영적 충전소인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교회는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고,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영적 무기력증을 해결해주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적 충전소에 나와서 성령의 기름을 조금이 아니라 가득 채우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교회에 계속 나와서 지금 현재 채워져 있는 상태가 되도록 충전시키시길 바랍니다. 이것을 잊지 마시고 먼저 성령을 받으시고, 그런 다음에 성령을 충만하게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리하면 순식간에 “푹푹” 퍼서 옮겨버리는 포크레인처럼 우리 앞에 높다랗게 쌓인 수많은 문제투성이의 흙더미가 옮겨져 버리고 평평하게 될 것입니다. 스가랴 4장 6절 하반절에서 7절 상반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아멘. 그러므로 우리는 맥주 충전소에 가서 우리의 몸에 술로 충전시킬 것이 아니라 영적 충전소인 교회에 와서 성령으로 충전시키시길 바랍니다.

 

 

[2010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34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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