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적강해/강해설교

(레 19:16-18 강해설교)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by 이서영 목사 2017. 12. 4.

(레 19:16-18 강해설교)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16 너는 네 백성 중에 돌아다니며 사람을 비방하지 말며 네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17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아멘)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게 많이 있지만 그 가운데 꼭 필요한 게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리 예쁘고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리 많이 배우고 유식해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처럼 공허하고 시끄럽고 도무지 살맛이 나지 않게 됩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어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사자성어 맞추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천생연분”이란 사자성어를 맞추기 위해 할머니에게 설명했습니다. “할멈, 우리와 같은 사이를 뭐라고 하지요?” 그러자 할머니는 즉각 시원하게 대답했습니다. “평생원수!”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가 만나는 사람마다 평생원수로 지낼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학교에서든 그 어디에서든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평생원수가 되고 평생지옥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생원수에서 벗어나야 하고 평생지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벗어나서 평생천국이 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16절 말씀과 18절 말씀 가운데 끝부분에 각각 “나는 여호와이니라”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예사롭지 않다는 겁니다. 매우 중대한 명령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어떤 명령을 하고 계십니까? 18절 말씀 가운데 보면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동일한 명령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9절 말씀입니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아멘.


그러면 이웃을 사랑함에 있어 어떻게 사랑하면 됩니까?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세 가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나 자신과 같이 사랑하려면 비방하지 않으면 됩니다.


우리는 살면서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게 버릇처럼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죄성이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에 생각을 빼앗기고 따라가면 안 되는데 자꾸만 끌려들어서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또 비방하고 또 비방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입방아 찧게 되는 건 마치 특별한 외식을 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잠언 말씀을 보면 똑 같은 말씀이 두 번씩이나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다는 겁니다. 먼저 18장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26장 22절 말씀에도 나옵니다.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이와 같이 다른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은 별식을 먹는 것처럼 달달해서 자꾸만 말하게 된다는 겁니다. 별식을 먹으면 얼마나 맛이 있습니까? 하지만 끊어야 합니다. 아무리 그럴듯하고 고소하고 재미가 나는 것처럼 보여도 남의 말을 자꾸만 하게 되는 것에 말려들면 결국은 서로 생지옥을 겪게 되기 때문입니다.


서로 비판하면 서로가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비판하지도 말고 서로 헤아리지도 말라고 한 겁니다. 내가 그렇게 하면 상대방도 역시 그렇게 대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로마서 14장 10절 말씀과 마태복음 7장 1-2절 말씀대로 됩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서로 비판하고 헤아리게 된다면 그런 곳이 천국이 되겠습니까? 마음이 늘 불쾌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곳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 됩니다. 그러므로 할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에 대해 나쁘게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건설적인 선의의 비평은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악의적으로 비판하거나 헤아리는 건 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비방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16절 말씀을 보면 “사람을 비방하지 말며”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비방하지”의 원어원형은 “lykir;(라킬)”인데 “비방하는 자, 중상하는 자, 험담하는 자, 헐뜯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생지옥이 되느냐 마느냐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지상천국이 되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특별히 모욕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 9절 말씀과 10절 말씀을 보면 불의한 자의 유형이 나옵니다. 여기에 해당되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게 됩니다. 생지옥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겁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이와 같으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헐뜯거나 비방하거나 중상모독하거나 험담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야고보 4장 11절 말씀을 보면 판단하는 자는 준행자가 아니라 재판관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그러므로 디도서 3장 2절 말씀은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이렇게 하는 사람은 평생원수, 평생지옥에서 벗어나 평생연분, 평생천국에서 살게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로 비방하다가 평생지옥에서 살지 마시고 서로 비방하지 않으므로 평생천국에서 살아가게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나 자신과 같이 사랑하려면 미워하지 않으면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17절 말씀을 보면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미워하지”의 원어원형은 “anEc;(사네)”인데 “싫어하다, 혐오하다, 증오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미워한다는 건 빛에 있지 않고 어둠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요한일서 2장 9절 말씀과 11절 말씀이 그러한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심지어 미워하는 건 살인하는 걸로 보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5절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미움이 있는 곳은 천국이 아니라 마귀가 설치고 마귀가 들끓는 지옥입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 속하지 않게 되는 건 하나님의 성품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사랑이십니다. 요한일서 4장 8절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아멘.

 

이와 같으므로 사랑하면 하나님께 속하여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당연히 사망에서 생명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지게 되는 겁니다.


요한일서 3장 15절 말씀처럼, 즉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와 같이 계속 미워하면 지옥상태로 머물러 있게 되지만 요한일서 3장 14절 말씀처럼, 즉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와 같이 사랑하면 천국상태로 지내게 되는 겁니다.


이와 같으므로 요한일서 4장 20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형제를 여전히 미워하고 있다면 그건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눈에 보이는 형제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할 때 비로소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도 사랑하고 있다는 게 된다는 겁니다.


누가복음 6장 27-28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미워하는 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미워하지 않고 선대하면 미움이 사라지고 서로 사랑하게 되고 평생천국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계속 미워하면 마음의 고통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계속 지옥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미워하지 말고 오히려 용서하라고 하신 겁니다. 그러나 만약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는다면 계속 생지옥의 감옥에 갇혀서 살게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마태복음 18장 32-35절 말씀입니다.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로 미워하다가 평생지옥에서 살지 마시고 서로 사랑하셔서 평생천국에서 살아가게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나 자신과 같이 사랑하려면 원망하지 않으면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18절 말씀을 보면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원망하지”의 원어원형은 “rf'n:(나타르)”인데 “지키다, 보호하다, 지속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노를 지속적으로 품고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노를 간직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른성경은 “앙심을 품지 말고”라고 하였으며 표준새번역은 “앙심을 품거나”라고 하고 있습니다. “앙심”은 무엇입니까? 영어성경에서는 “grudge(원한)”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원한을 품고 있으면 당연히 원망이 터져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자꾸만 탓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원한은 다른 사람에게 도달하기 전에 나 자신을 다치게 만듭니다. 이와 같은 원한이 뭐가 그렇게 값이 나간다고 계속 품고 간직한단 말입니까? 쓰레기를 깨끗이 버리듯이 싹 버릴수록 좋습니다.

 

이와 같으므로 에베소서 4장 31절 말씀과 26절 말씀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아멘.


이처럼 분은 우리에게 유익이 되지 않으므로 버려야 합니다. 분을 품고 있는데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앙심을 품는 데 생각을 줘버리면 끌려 다니게 됩니다. 끌려 다니면 끝장이 납니다. 찌지고 볶고 싸우면 끝납니다. 서로 분쟁하면 서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5절 말씀입니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마태복음 12장 25절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우리 주위에 툭하면 다투는데 알콩달콩 잘만 살더라는 집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다투는 곳곳마다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좋아지긴 뭐가 좋아집니까? 아닙니다. 섭섭해하고 다투고 원망하면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원망하다가 망한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출애굽한 이후에 원망하다가 멸망당한 것을 고린도전서 10장 10절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러므로 서로 원망하지 않아야 됩니다. 그래야 심판을 받지 않게 됩니다. 야고보서 5장 9절 말씀에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여러분, 망하고 싶습니까? 망하는 걸 뻔하게 알면서도 계속해서 서로 물고 먹으시렵니까? 갈 때까지 가봐야 속 시원하시겠습니까? 원망하고 불평하고 다투는 그 순간에는 속이 시원할지는 몰라도 평생후회하고 평생지옥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쳐야 합니다. 그리하여 모두가 천국이 되시길 바랍니다.


곳곳마다 다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다툼을 일으키는 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다투게 하십니까? 삼위하나님께서 서로 다투십니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상 다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화평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를 어떻게 처리하시겠습니까? 시편 103편 9절 말씀입니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아멘.


그렇다면 이러한 다툼은 어디서 옵니까? 죄에서 비롯되고 육신에서 비롯됩니다. 또한 마귀인 사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탄의 원어원형은 “Satana'"(사타나스)”인데 “대적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원망하고 다투는 순간에는 마귀에게 져서 나오는 행동인 겁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살게 되는 겁니다. 마귀가 좋아하는 마귀 짓을 하고 마귀 영향을 받다가는 평생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마귀의 성질이 어떻다고 했습니까? 미워하고 다투고 이간질시키고 분리시킵니다. 하나님과, 이웃과, 심지어 환경까지도 그렇게 합니다. 그렇게 되면 곳곳마다 깨지게 되어 있고 지옥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좋아하는 대로 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귀와 마귀에게 속한 것은 물리치고 내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냥 두면 우리를 생지옥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나 자신을 불의 병기로 사용하게 합니다. 이런 상태로 두어야 합니까?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냥 두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이어받지 못하게 됩니다. 지상천국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단을 하고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마귀와 죄와 육신대로 사는 것을 물리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라고 했습니까?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떤 사랑을 하셨습니까? 로마서 5장 8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아멘.


요한일서 4장 10절 말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아멘.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죄인이면서 원수였던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분이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요한일서 4장 9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아멘.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귀 짓을 하게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다른 사람도 살리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는 말이 아니라 살리는 말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을 통해 부어질 때 죽일 수가 없습니다. 오직 살리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5장 5절 말씀을 보면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아멘.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임하시면 무엇이 자동적으로 따라오게 됩니까?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임하시면 당연히 서로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차면 까칠한 이웃일지라도 사랑으로 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떨어지면 육신의 바닥이 드러나서 치받게 됩니다. 그러나 가득차게 되면 마귀와 죄와 육신에 끌려가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나님 말씀대로 이웃을 나 자신과 같이 여기고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늘 가득 채워지시길 바랍니다. 거듭 말씀드리면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게 부어져서 서로 사랑하게 되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와 같으므로 원망하는 것을 중단해야 합니다. 결단을 해야 합니다. 내 생각에 따라 살지 않고 내 육신이 좋아하는 대로 살아가지 않겠다고 결단해야 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대하는 게 다른 사람에게 그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그렇게 대하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도 해야 합니다. 이제까지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지 아니하여 이웃을 비방하고 미워하고 원망하였던 것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깨끗이 회개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평생천국을 반드시 이루어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육신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당장은 손해를 보게 되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성경말씀을 굳게 믿고 그대로 따른다면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대로 그대로 반드시 이루어주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고린도전서 16장 14절 말씀에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빌립보서 2장 14절 말씀에는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고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할 때 천국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범사에 이웃을 사랑으로 대하되 원망과 시비가 없이 대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여기고 이웃을 비방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리고 미워하지 않으면 되고 원망하지 않으면 됩니다.


이러한 사랑을 하기 위해 그동안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마귀와 죄와 육신에 끌려 다니지 않고 반드시 언약하신 대로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으시고 사랑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원수까지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더 충만하게 부어져서 그 사랑의 능력으로 더 잘 사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시고 이제부터는 반드시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으시고 그 말씀에 따라 이웃을 나 자신과 같이 사랑하기로 결단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을 통해 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이 늘 가득 채워지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셔서 그 사랑으로 이웃을 나 자신처럼 여기고 사랑하시되 이웃에 대해 비방하지 마시고 미워하지 마시고 원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셔서 서로 평생지옥이 아니라 서로 평생천국에서 살아가게 되시길 바랍니다.


 


찬송: 새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이제까지 이웃을 나 자신과 같이 여기지 않고 이웃에 대해 비방하고 미워하고 원망한 것을 용서해주옵소서. 이제 언약대로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그 말씀에 따라 사랑하기로 결단하오니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을 통해 우리에게 가득 채워주옵소서. 그리하여 그 사랑으로 만나는 이웃마다 나 자신과 같이 사랑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 2017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cafe.daum.net/truegooddisciples 담임목사 이서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