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영 목사의 간증입니다
새 사람으로 태어나던 해는 모두가 들뜬 새 천년을 맞이하는 2000년이었습니다. 그 새 천년이 시작되던 해에 저의 인생도 회심하여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해 봄부터 시작해서 주 하나님의 놀랍고도 강력한 은혜가 임하셔서 이전의 모든 것과 바뀐 것입니다.
서울에 살 때 입니다. 당초 계획한 일들을 추진해 나갔지만 차질이 자꾸만 생겼습니다. 이러다가 자칫하면 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생을 무엇을 해야 주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면서 신명나게 일할 수 있습니까?”를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러던 중 대구에 사는 동생의 권고로 40일 작정 새벽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여름부터는 자꾸만 목사가 되라는 감동이 왔습니다. 그러나 목사로서 자격이 너무나 부족하기에 이를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도 잘 대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거부 이유였습니다. 목사는 사람을 상대로 하는데 저는 그렇게 잘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도 거의 모르고 찬송도 몇 곡만 알뿐 음이 높아 찬송을 부를 때 목이 아플 정도였습니다. 무엇 하나 목사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여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새벽기도도 하지 못하고 가정 형편도 목회하지 못할 것 같고 이런 저런 사유로 말미암아 계속 미루었습니다.
그러나 가을이 되면서 강력한 은혜가 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일천번제 등의 기도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님을 충만하게 부어주셨습니다. 어떤 때는 하루 종일 몸이 해파리처럼 공중에 붕붕 떠다니는 것과 같은 체험을 할 정도로 넘치도록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온 은혜의 강물에 몸이 떠올라 헤엄칠 정도로 부어주신 것입니다.
이후로 세상과 분리된 채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로 떠다니게 되었습니다.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크고 작은 모든 죄를 생각나게 하시고 회개시켜주셨습니다. 또한 신앙과 사랑을 고백하게 해주셨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해주셨고 전도도 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과의 달콤한 만남의 시간들이 주어졌습니다. 성경도 점점 잘 알게 해주셨습니다. 찬송도 보다 잘 부를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새벽기도도 안하면 죽는 줄 알고 꼬박꼬박 나가게 해주셨습니다.
어느 날 서울 집에서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제자 삼아라!”는 우렁찬 큰 음성을 듣고는 깜짝 놀라 스프링이 튕겨 나오듯이 벌떡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누가 이렇게 큰 소리로 말하는가 싶어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기도 하였습니다.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아직도 미약해서 제자 삼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깨닫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성경에 대해 너무 무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산에 있던 목사 형님께 전화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설명을 듣기는 하였지만 말귀를 잘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체험을 하면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사람들도 그렇게 예쁘게 보일 수 없고 나무와 풀들이 손바닥을 치면서 노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흐르는 물소리도 아름답게 노래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전의 좋던 것은 이제는 값없이 보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배설물로 여긴 것처럼 그렇게 여겨졌습니다. 재벌 회장도 권력가도 부러운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모르고 믿지 못하는 것이 불쌍하게 보였습니다. 이후로 글쓰기 시작하고 전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보라매공원과 영등포역 등을 다니면서 전도지를 제작하여 전도하였습니다.
성경이 무엇인지도 몰라서 “성경이 무엇입니까?”를 하나님께 여쭈면서 시작할 정도였지만 진리의 성령님께서 성경을 점차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조직신학에 관한 것들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진리를 알게 해주셨습니다. 성경이 생명과 같이 귀중한 것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성경 안에 있었습니다. ‘진작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어린 시절부터 성경을 알게 해주어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성경이 진리요 생명의 말씀이요 길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후로 광야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려움이 닥쳐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1년도에 부산에 있는 고신대학교 신학과에 수시모집으로 입학시켜주셨습니다. 부산이 복음화가 낮으므로 부산에서 목회해야 하고 부산에 있는 고신대학교에서 신학도 해야 하니 부산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져 수술받는 등의 어려움도 극복하고 학업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3학년까지는 오직 주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하셨습니다. 이 혹독한 시련의 광야를 통해 하나님을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의로우심 등에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귀하신 말씀은 하나도 틀림이 없는 진리의 말씀이고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도 더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과 죄와 사탄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끈질긴 죄악으로부터 건져주신 구원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리하여 더 깊은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4학년이 되면서 주위 신학생과 교제를 허락해주셨습니다. 그 이전에는 오직 고독한 시간을 보내도록 하셨습니다. 오직 주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고신대학교 뒷산에서, 때론 기도실에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밤 12시가 되도록 경건서적을 읽도록 하셨습니다. 한편으론 힘들고 답답한 시기였지만 한편으로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하박국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지만 오직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게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신학을 하면서 소명과 사명 때문에 씨름을 무척 많이 하였습니다. 현실과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 자신을 바라볼 때 여러모로 목사로는 부적격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만두는 것조차 제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그만두려고 해도 그만 둘 수 없도록 하셨습니다. 매학기 등록을 거부하거나 기도원과 고향집으로 도망을 쳐도 끝끝내 고신대학교에 다니게 하셨고 졸업시켜주셨습니다. 영어까지 극적으로 통과시켜 졸업하게 해주셨습니다.
고신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여전히 어려움에 처해 있었지만 고려신학대학원에 곧바로 입학시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이한 방식으로 원서를 제출하게 해주셔서 시험을 치게 되어 하루 전날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려운 상태에서 시험을 친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철야기도를 하였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으셨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시험 치는 날 학교 뒷산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기도하였습니다. 응답이 없다가 갑자기 눈물 콧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사명을 생각나게 해주시고 재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뛰어서 산에서 내려와 보니 이미 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 다 아시지요. 제 형편이 어떤지를 말입니다. 시험지 빈칸을 채워주시길 기도드립니다.” 영어 시험을 간략하게 치고 논술시험을 대비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영어 시험이 너무 쉽게 보였습니다. 중학교 수준으로 보였습니다. ‘신학대학원이니까 이런 문제를 출제하는가 보다.’ 혼자 생각하면서 시험을 치렀는데 합격하였습니다. 그 다음 해에 누군가 출제경향과 문제를 풀어달라고 하기에 풀어보니 영어 문제는 접근하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합격시켜주신 것을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또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그래서 학기 시작하기 전에 거의 학교에 개강 예배드리러 올라가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어려움이 생기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1학년 마치고는 이제는 정말 더 이상 버틸 수도 더 이상 신학을 해서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도드린 후에 자퇴하였습니다. 그 순간에는 날아갈듯이 기뻤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였습니다. 마음이 교회를 향하고 신학하는 것으로 끌렸습니다. 방황을 하면서 사막처럼 긴 모래사장을 터벅터벅 걸을 때 감동이 왔습니다. ‘나는 산모다. 내 안에 잉태되어 있는 생명이 있는 산모다. 내가 건강해야 잉태된 아이도 건강하고 내가 살아야 아이도 산다.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내 안에 교회와 성도가 있고 내 안에 나라와 민족이 있다.’ 이들이 마치 내 뱃속에서 태동하는 태아처럼 꿈틀대는 것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기필코 살아야 할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신학을 계속할 이유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고려신학대학원의 박00 교수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미 자퇴 처리하였지만 한 번 올라와서 면담하자고 하셨습니다. 처음엔 간다고 해 놓고 소리도 없이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만나 뵈었습니다. 면담 끝에 교수님께서는 제가 소명을 받은 것이 틀림이 없다면서 교수회의를 다시 열어 복학시켜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이후 복학되어 학업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참 좋으신 하나님,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초지일관 주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가셨습니다. 신학을 그만 두었으나 계속하게 해주셨습니다. 교회를 그만 두었으나 계속 하도록 하셨습니다. 목사고시를 거부하였으나 목사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일일이 말 못할 어려움과 사정들이 참으로 많았고 저와 저를 둘러싼 상황은 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고 교회와 사역을 할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하지만 주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붙잡아주셨습니다. 붙들어주셨기에 지금의 제가 있게 된 것입니다.
고신대학교 시절에 전도티슈 등을 제작하여 전도하였습니다. 교육전도사로 사역하기도 하였습니다.『그리스도인의 참 자유』라는 책과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고려신학대학원 시절에는『내 아들아』를 썼으며 제자들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신구약 성경 맥 잡기』를 편집하여 강의하기도 하였습니다. 졸업 후 강도사 시절에는『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쓰게 되었습니다. 제자들교회의 후신인 참좋은제자들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목사가 된 이후에는『거둘 것이 있으려면』이라는 설교집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후 고신대학교 일반대학원 신학석사과정까지 공부시켜주셨고 문서 선교와 인터넷 선교에 힘쓰도록 해주셨습니다. 지금은 성경 말씀으로 선교하여 세계와 미래를 제자 삼을 수 있도록 성경을 전문으로 연구하고 교육하는 일에 집중하도록 해주고 계십니다.
이러한 것은 전적으로 주 하나님의 은혜와 주 하나님의 섭리이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이룬 것이 아니라 주 하나님께서 주 하나님의 열심과 신실하심으로 이루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 여러 가지 유익을 주셔서 정금같이 제련해주시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고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러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영광을 주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그 영광을 조금이라도 제가 가로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은 주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저는 내세울 것 없는 부끄럽고 무익한 종일뿐입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저는 그저 심부름꾼으로 사용되었을 뿐입니다. 오직 주 하나님께만 영광, 오직 주 하나님의 은혜일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토록 나의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의 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나의 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나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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