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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자료/신앙간증

[이혜좌 집사] 하나님이 행하셨던 사랑과 계획

by 이서영 목사 2018. 12. 7.

자랑거리는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 가운데 제대로 된 좋은 자랑거리가 많으면 좋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의 자랑거리는 무엇이어야 할까요? 우리 교회의 자랑거리는 무엇입니까? 시설입니까? 괜찮은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까? 재정이 든든한 것입니까? 성도가 많은 것입니까? 그런 것도 자랑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자랑거리는 아닙니다.

 

우리 가정의 자랑거리는 무엇입니까? 범위를 좁혀 나 자신의 자랑거리는 무엇입니까? 평소에 다른 사람들에게 가장 자랑스럽게 내 놓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자랑은 복음을 잘 전하고 영혼 구원을 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창원교회 이혜좌 집사님은 자신의 아픔을 딛고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구원한 이야기를 귀하게 여기고 있는 것을 그의 간증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셨던 사랑과 계획

(창원교회 이혜좌 집사)

 

봄이 오고 있습니다. 내 나이 쉰아홉에 간증수기 공모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에 감사의 노래를 올리며 함께 하는 인생의 동반자인 남편을 바라봅니다. 저 높은 곳 본향을 향해 걸어가는 그 길에 내 손잡아 이끌며 길동무 해주는 당신께 감사하며 언제나 저는 당신의 핑크빛이고 싶습니다.

 

199711월에 목사님의 주례로 지금의 남편과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없었던 저는 그 때부터 교회생활을 통해 주변 사람들의 삶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교회라는 데가 모여서 어떤 일들을 하는지, 왜 많은 사람들이 저녁에도 새벽에도 그렇게 열심히 모이는지, 그들의 대화 내용이 무엇인지, 어쩌면 저렇게 행복해 하는지, 이 곳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내게 어떤 유익이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그들의 모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당시 제겐 예배도 기도라는 것도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기도시간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들(방언기도), 큰소리로 기도하는 사람들(부르짖는 기도), 손을 높이 들고 온 몸을 흔들면서 노래하는 모습들, 눈물 흘리며 애통해 하는 사람들. ‘왜 저렇게, 저런 모습이어야 할까궁금해 하는 저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붙여서 차근차근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생전 남에게 빚이라곤 져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복음에 빚진 자라는 것을 깨우쳐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믿음의 어른들을 통해, 그분들의 삶을 통해 제 마음의 문을 열어 가셨습니다.

 

그러던 중에 아기를 임신하게 되었고 그 아기를 낳을 때 난산으로 인해 고생해야 했습니다. 꼬박 하루를 진통해야 했으니까요. 아기를 낳고 저는 감사할 겨를도 없이 기진맥진하여 잠시 기절했습니다. 그 이튿날 새벽에 느낌이 이상해서 놀라 눈을 떠보니 아기가 이상했습니다. 입술 주변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고 아기가 숨쉬기를 힘들어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지쳐 잠이 든 사이에 초유도 먹지 못한 아기가 목말라 울자 시어머니께서 저를 깨우기 안쓰러워 분유를 진하게 타서 먹이셨던 모양입니다.

 

이 사실을 모른 채 아기를 안고 급하게 택시를 타자 운전수 아저씨가 당황해 하시며 병원으로 데려다 주시고 택시비도 받지 않고 바로 응급실까지 데려다 주셨습니다. 새벽이라 의사도 안 보이고 간호원 두 명이 저희를 맞이했습니다. 응급처치를 하지 않은 채 책상 위에 아기를 뉘어두고 입원실이 없다고 우왕좌왕하는 그들을 뒤로 하고 저는 아기를 안고 대학병원으로 갔습니다. 패혈증 같다며 아기 머리를 깎고 링겔을 꽂는 것뿐 그들도 원인을 잘 몰라서 치료조차 하지 못하고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아기는 곧 숨이 멎어버릴 것 같이 괴로워했습니다.

 

저는 교회 목사님께 전화로 상황을 말씀드리고 기도부탁까지 드렸습니다. 곧 목사님과 어떤 중년의 여자 분이 달려와 주셨습니다. 그 분이 아이를 보시더니 간절히 기도하시고 바늘을 꺼내 아기 코밑 인중에 바늘을 찔러 피를 내고 꼭 주먹을 쥐고 있는 아기의 손가락을 억지로 펴서 열 손가락 모두 바늘을 찔러 피를 냈습니다. 그 때서야 아기는 신음소리 같은 울음을 토해냈습니다. 그 분이 큰 일 날 뻔 했네요. 아이가 체해서 경기를 했네요. 이렇게 시간이 많이 지났으면 매우 위험할 지경인데··· 하나님께서 크게 일꾼 삼으실 모양입니다. 이제 아기에게 젖을 먹여보세요라고 말해주셨습니다.

 

그 때서야 아기에게 젖을 먹이려니 아기는 젖을 먹을 힘도 없어 힘들어하더군요. 저는 아기에게 입술을 적셔주면서 아가! 힘내서 젖을 먹어보자며 아기의 온 몸을 주물러 주면서 하나님이 너를 이처럼 사랑하신다. 그리고 엄마도 널 사랑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떨리는 제 음성을 듣고 아기는 겨우 눈을 떠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입술을 움직였습니다. 그 때서야 아기는 젖을 먹기 시작했고 차츰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병원 생활 중에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저를 혼자 있게 하셨습니다. 오직, 위에 계신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시고 하나님과 제가 일대일 교제를 그 때서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표 속으로 저를 부르시고 저를 단련하시 시작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크신 사랑과 엄위하심과 긍휼하심이 저를 조금씩 바꾸어 가기 시작하셨으니까요. 하나님은 제게 순종을 배우게 하셨고 하나님 앞에 앉아 하나님의 행하심을 인내로 바라보게도 하셔서 하나님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하셨습니다.

 

퇴원 후에 아기와 저는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게 되었고 영아를 위한 찬송가도 배워서 찬송도 불러주며 말씀도 읽어주며 지냈습니다. 하나님이 살려주신 이 아이를 어떻게 양육할 것인가를 생각하니 내 힘으로는 내 정성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거의 매일 아기와 함께 성전기도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때마다 목사님께서 기뻐하시며 아기를 위해 축복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그 아기는 자라서 두 살이 되었고 그 아이는 어미인 저보다 믿음이 더 좋았지요. 언제나 찬송하고 놀이도 예배놀이였습니다. 들려준 말씀을 외우기도 하고 성경책 거꾸로 펴서 들고 성경을 읽기도(?) 하면서 베게 위에 올라가 목사님 흉내 내며 축도도 하였습니다. 온 교회와 우리 집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말을 빨리 배워 곧잘 하는 아기에게 우리들은 찬송가를 신청해서 듣고 함께 손뼉치며 그렇게 감사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조금 이상해서 병원에 갔더니 암인 것 같다며 정밀검사를 해보자는 의사의 말에 병원에 입원시키고 검사와 치료를 시작했고 수술도 시켰습니다. 암이라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악독한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저는 수술했으니 괜찮을 거야. 그래··· 괜찮을테지하며 지냈고 아이도 건강하게 잘 자라며 책도 곧 잘 읽었습니다. 어느 날 잘 놀던 아이가 배가 아프다며 배를 만져 달래서 만져보는데 아이 주먹만 한 것이 만져졌습니다. 아이를 수술했던 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의사는 저에게 위험부담이 크지만 항암치료를 권했고, 저는 어쩔 수 없이 의사가 시키는 대로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의료보험 혜택이 없던 터라 치료비도 엄청났습니다 1차 항암치료 후 담당의사는 제게 고개를 흔들며 퇴원해도 좋다는 말을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힘이 없어 예배놀이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아파했습니다. 아무 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겨우 하는 말은 엄마, 찬송 불러주세요. 기도해 주세요.” 마시면 토해내는 그 아이는 물 한 컵을 놓고도 감사기도를 올렸고 하나님을 노래했습니다. ‘예수 나를 오라 하네의 찬송을 불러달라는 그 아이는 아빠의 손을 잡고 밤새도록 시편 23편 말씀을 들으며 힘들어 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차라리 하나님··· 데려가세요. 고통 없는 곳으로···’ 하는 심정이었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그 새벽에 하나님은 그 아이를 데려가셨습니다. 저희 부부는 그렇게 그 아이를 보냈습니다.

 

저는 한동안 그 아이를 잊지 못해 아니 죄책감에 시내버스를 타고 멀미를 참아가며 둘째를 업고 부산 시내를 헤매고 다녔습니다. 집에 우두커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친정에도 이 사실을 알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저는 혼자 내던져진 기분이었습니다. 미친 듯이 다니는 제게 하나님은 업혀 다니느라 지친 아이를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둘째도 무릎에 큰 혹을 달고 태어났습니다. 악성 종양은 아니지만 수술이 불가하다는 그 아이를 잠시 잊고 있었던 터라 저는 미안하고 가여워서 그 아이를 안고 일주일을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래··· 엄마탓이다. 그래 아가···” 미안하다며 울기만 하는 제게 하나님은 기도할 마음과 생각을 주셔서 아이의 무릎에 손을 얹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밤낮 집에서 아이와 눈을 맞추며 예배하고 기도하기를 6개월이 지난 어느 새벽, 배고파 칭얼대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면서 평소의 습관대로 오른쪽 무릎에 손을 얹어 기도하려는데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혹시 내가 아이의 왼쪽 무릎에 손을 얹었나 싶어 다시 무릎을 만져보는데 혹이 만져지질 않았습니다. 불을 켜고 무릎을 살펴본 저는 한동안 꿈을 꾸는 듯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급한 마음에 연신 주님만 불러대며 뛰는 제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그 새벽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감사부터 먼저 하고 싶었습니다. 그 때는 그랬습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저는 울음이 터졌습니다. 저는 그렇게 서럽게 울었습니다. 아이 하나를 먼저 천국에 보내고 둘째마저 잃을까봐 마음을 졸였던 저였기에 더욱 그러했나 싶습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예배를 올렸고 마음이 좀 진정이 된 저는 사택에서 몇 시간을 죽은 듯이 잤습니다. 그러면서 저희 가정은 시골교회를 돕기 시작하며 그 교회를 찾아 교제도 나누고 열심히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또 양로원, 감별소(소년원)를 찾아다니며 나보다 더 약한 그들의 위로가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양로원 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길에 시부모님의 영혼을 구원하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떠올랐습니다. 저는 성령님께서 주신 마음이라 생각하여 즉시 순종하기로 결심하고 남편과 의논하여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창원 어느 교회의 관리자로 오게 되었습니다.

 

관리자의 삶이 어떠한지, 얼마나 힘들지는 제 안중에는 없었습니다. 오직 시부모님의 영혼 구원 외에는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학교문제와 친구들, 아이들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다 해결하실 거야. 하나님께서 좋은 선생님, 좋은 친구 만나게 해 주실 것이라는 내 믿음 때문에 아이들은 그렇게 좋은 친구와 선생님과 헤어져야 하는 아픔을 일찍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대가를 치를 아이들에게도 하늘의 상급이 있으리라 믿으며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시부모님을 찾아뵙고 섬기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안에 용산사라는 절이 있는 저희 시집에 복음이 전해진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부터 집안 구석구석에 부적이 붙기 시작하는 영적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잘 보이지 않는 식탁 밑에도, 베게 속에도, 달력 첫 장 뒷면에도, 장롱 속 서랍 밑에도 계속 붙이기 시작하시면서 시어머니의 우상숭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4:7)는 말씀이 생각나서 단호하게 말씀드렸지요. “어머니, 이것이 우리 가정에 복을 주는 것이 아니고 복은 하나님만 주실 수 있어요하며 눈에 보이는 대로 부적을 떼어내고 정성스레 떠 놓은 물을 쏟아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시어머니께선 저를 만류하지 못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제 몰래 붙여둔 부적을 제가 찾아내서 없애버리니까요. “니 우째 알고 찾아내는 기고?” “, 어머니, 하나님께서 제게 보여주시니까 제가 알지 예.” 두려워하시는 시어머니께서 걱정마시라는 말씀과 함께 부적이 붙어 있는 곳마다 뱀이 혀를 낼름거리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두통으로 고생하시는 시어머니께 온 집안에 뱀이 우글거리게 하시면 어머니 정신 사나워 어찌 사시겠느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런 생활이 2년 넘게 계속되었으므로 그 동안 제 삶의 무게는 더 무거워졌습니다. 교회관리집사로 일주일 내내 교회를 섬기다가 시집에 와서 또 다른 일을 해야 했으니까요. 이처럼 쉼이 없는 제게 하나님께서는 다른 쉼을 주셨습니다. 다름 아닌 말씀으로 하신 약속이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16:31). 그래··· 우리 집이 구원을 받는다 하셨는데···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급(3:14)이 있다는데 싶어 힘을 내고 또 힘을 내게 되었습니다. “기도하고 기도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6-7). 이 말씀이 내게 능력이 되어 나에게 역사하셨기에 참고 인내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인내의 한계를 아셨던 것입니다. 말 없는 전쟁 속에서 우리 시어머님께서도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런 시어머님을 하나님께서 만지시고 치료하시고 회복시켜주셔서, 집중으로 전도를 시작한지 2년 되는 주일 아침 니나 잘 믿고 천당가라하시던 시어머님께서 나도 네가 다니는 교회 갈란다하시며 전화를 주셨고, 시어머님은 새벽기도부터 교회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교회 생활 중에 궁금한 것이 있으면 수시로 제게 물어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연히 시어머니의 교회생활 도우미가 되었습니다. 첫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에 모든 열매의 첫 것을 교회 목사님께 드렸고 봄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쑥과 냉이마저 목사님 먼저 드시게 하신 시어머님의 순수한 섬김 속에서 학습문답이 있는 저녁에 회심하셨고, 그 날 꽃다발을 들고 간 저에게도 미안하다며 우셨습니다.

 

시아버님 또한 시어머님 교회 생활 시작하신지 두 달 후에 나도 니 댕기는 교회 갈란다하셨습니다. 시아버님은 노환으로 병원생활을 몇 개월하셨습니다. 그런 시아버님의 귀에다 나지막히 속삭여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아버님을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 지게 하셨습니다.” 저는 시아버님 돌아가시기 전에 다시 한 번 귀에 대고 천천히 감히 말씀드렸습니다. “아버님, 혹시 아직 회개하지 못한 것이 있으시면 지금 하세요, 저를 따라 하세요. 아버님께서 비록 소리내어 말씀은 못하셔도 아버님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이 받으세요. 예수님 제가 미처 용서를 구하지 못한 잘못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기억나게 하셔서 회개할 수 있는 복을 주세요. 예수님의 보혈로 저를 깨끗케 해주셔서 천국가는 제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시아버님의 손은 이미 차가워져 있었으나 눈가에 맺히는 이슬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 “아버님 걱정 마세요. 가시는 길 혼자가 아니고 예수님이 함께 하세요라고 말씀드리며 야윈 얼굴을 두 손으로 만져 드렸습니다. 시아버님께서는 임종 예배 중에 찬양을 들으시며 조용히 그리고 고요히 눈을 감으며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시아버님 가신 후, 시어머님도 노환(83)으로 주일 예배 잘 드리고 그 다음 화요일에 천국 가셨으니 온 교회가 아쉬워하셨습니다. 그 분들은 전심으로 예배생활 교회생활 잘하신 천수금 할머니 집사님이 남기고 가신 삶을 본받아야 한다며 앞으로 우리 시어머니가 많이 보고 싶을 거라며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사도행전 1631절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한 제게 응답해 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하며 가끔은 천국가신 시부모님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복음을 전하려는 마음과 발걸음을 쉬지 않으려 애쓰며 저의 간증을 마치려 합니다. 할렐루야!

   

 

(요약 편집 출처 : 월간고신 생명나무 20133월호 신앙간증수기 은상 수상작”)

 

 

 우리 참좋은제자들교회도 복음을 잘 전하고 영혼 구원을 잘하는 교회로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저 자신도 복음을 잘 전하고 영혼 구원을 잘하는 목사로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출처 : 참좋은제자들교회
글쓴이 : 이서영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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