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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주일설교

빛이 있으라 하시니 (창 1:1-5)

by 이서영 목사 2015. 7. 17.

빛이 있으라 하시니 (창 1:1-5)

 

11월 11일 빼빼로 데이라고 모두가 좋아하던 그 날에 인터넷에 올라온 SBS 8시 뉴스를 보면 참담합니다. “CCTV 화면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아연실색한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옵니다. 순식간에 건물이 무너지면서 뿌연 먼지를 내뿜고 이젠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습니다. 같은 시각, 뒤편 건물에서 번개가 치듯 수차례 불빛이 번쩍이더니, 거리는 금세 암흑천지로 변합니다. 현지 시간으로 그제(9일) 터키 동부 반 시에서 규모 5.7의 지진이 발생한 순간입니다.”

 

지진이 일어나자 순식간에 암흑천지가 되었습니다. 암흑은 빛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암담하고 비참한 상태를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암흑은 축복이 아닙니다. 오히려 재앙입니다.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 가운데 한 가지가 암흑입니다. 지난 9월에 우리나라도 전국적으로 동시에 어두웠던 상태가 잠깐 있었습니다. 전기가 갑자기 정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 국민이 의아해하고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잠시 동안이지만 큰 불편을 겪었습니다. 그러므로 암흑은 축복이 아니라 사라져버려야 할 재앙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를 받으면 빛이 납니다. 하나님을 만난 모세의 얼굴이 빛났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곳에는 빛이 있습니다. 캄캄한 흑암은 물러가고 밝은 빛이 들어옵니다. 우리 얼굴도 은혜를 받으면 모세와 같이 그런 영광스러운 얼굴로 빛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빛을 은혜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제사장의 축복인 민수기 6장 25절은 말합니다.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시며.”

 

그래서 사망의 그늘진 땅에서 흑암 가운데 살고 흑암처럼 살던 인생이 큰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사 9:2). 그리하여 영광스러운 빛이 그들을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찬란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어주었습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우울하게 지내던 그들이 밝은 빛 가운데서 해맑게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빛은 일시적인 빛이 아닙니다.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비추어주셔서 우리 인생의 흑암을 영원히 몰아내주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60장 1-3절에서 말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사도 요한은 성경책 마지막 부분인 요한계시록 21장 23-25절에 반복해서 강조하였습니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모든 빛은 에너지가 있어야 빛납니다. 전깃불은 전기가 있어야 합니다. 손전등은 건전지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빛은 유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빛은 이처럼 영원합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고 비춰주는 빛입니다. 그리하여 그 빛은 어둠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흑암 가운데서 불편하게 괴로워하며 답답하게 살지 않게 합니다. 영원한 빛은 우리를 흑암에서 영원히 벗어나게 해줍니다.

 

그런데 빛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세상이 창조되던 때 첫째 날에 무엇이 창조되었습니까? 빛입니다. 자연계에서 처음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빛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빛은 누가 창조하였으며 그 빛은 무엇으로 창조하였으며 그 빛이 창조된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1. 누가 빛을 창조하셨습니까?

 

빛은 분명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빛을 누가 처음에 창조하였을까요? 본문 1절을 합독하겠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3절을 합독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창조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창조할 수 없습니다.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만이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빛은 이처럼 진화의 산물(産物)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의 산물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다른 성경책에서는 볼 수 없는 이곳에만 나오는 특이한 표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처음 문단을 시작할 때 각 절에 시작하는 단어가 대부분 “하나님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3절, 5절, 6절, 7절, 8절, 9절, 10절, 11절, 14절, 16절, 17절, 20절, 21절, 22절, 24절, 25절, 26절, 27절, 28절, 29절, 마지막 31절에 나옵니다. 이외에 1절, 2절, 4절, 12절, 18절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구절 속에 빠지지 않고 나옵니다.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빠진 절은 13절, 19절, 23절인데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째 날이니라”는 형식입니다. 그리고 15절과 30절인데 “~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는 형식이 있습니다. 단순히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이 두 가지 형식은 어떤 행동의 결과를 말해줍니다. 이 형식을 제외하고는 모든 구절이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조의 주역으로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강력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책 가운데 가장 앞서 나오는 창세기 첫 장에서부터 이것을 강조한 것은 처음 출발을 잘하라는 것입니다. 기초를 튼튼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합니다. 건물도, 공부도, 운동도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기초가 부실하면 내내 흔들립니다. 산수 공부할 때 산수공식을 모르면 산수 공부가 어렵습니다. 영어도 기초 문법이 흔들리면 영어 공부가 어렵습니다. 건물도 기초가 부실하면 언제 금이 가고 무너질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인생도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특히 신앙의 기초는 더욱 더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기초와 신앙의 기초는 무엇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이 세상은 어떻게 생겨났습니까? 저절로 생겨났습니까? 진화해서 생겨났습니까? 그 모든 것이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이 빠진 세계는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창조주 하나님이 빠진 기독교나 신앙은 있을 수 없습니다. 창조가 흔들리고 창조주 하나님이 흔들리면 신앙도 흔들립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빛을 창조하신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이 찬송이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흘러나와야 합니다. 79장(통 40장) 1절과 2절을 함께 찬양하십시다. “1절.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2절. 숲속이나 험한 산골짝에서 지저귀는 저 새소리들과 고요하게 흐르는 시냇물은 주님의 솜씨 노래하도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아멘.

 

주일학교에 다닐 때 가을에 야외 소풍을 갔습니다. 먼 길이지만 참으로 신나고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이 찬송가처럼 절실하게 아름답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실감하고 창조의 솜씨를 실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저 어렴풋하게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2천년이 시작 되던 해에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게 되자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사실이 확실하게 믿어졌습니다. 그리고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조차도 하나님을 노래하는 찬양으로 들렸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믿어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빛을 창조하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에 더 큰 기쁨이 있고 더욱 더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힘입어 창조주 하나님과 창조의 사실을 더욱 더 절실하게 느끼시길 바랍니다.

 

2. 무엇으로 빛을 창조하셨습니까?

 

창조를 어떻게 합니까? 무언가를 가지고 만든다면 창조가 아닙니다. 아메바가 진화되어 만들어졌다면 창조가 아닙니다. 아메바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어떤 최초의 생물체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디서 시작되었습니까? 진화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창조주께서 만물을 창조하실 때 어떤 도구로 창조하셨을까요? 빛은 무엇으로 창조하셨을까요? 본문 3절을 합독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하시니 빛이 있게 되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빛을 창조하셨느냐하면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미술 시간에 만들기를 합니다. 종이로 코끼리 모양을 만들기도 합니다. 나무로 집을 만들고 비누로 자기 얼굴을 조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드는 것을 보면 기존에 있던 것을 가지고 만듭니다. 여러분, 만들기 시간에 아무 것도 없이 만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한 분도 없을 것입니다. 불가능합니다. 종이나 나무나 비누 등을 만드는 최초의 재료는 창조된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물건은 창조된 원료나 재료를 조합해서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해주신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이 만들고 건설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창조가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쓰임 받고 있는 것으로 봐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최초의 원료나 재료를 창조할 때 무엇으로 창조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어떤 원료나 재료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이미 창조가 아닙니다. 창조가 창조다워지려면 무에서 유가 창조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흔히 “말로만 한다”는 말을 자주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합니다. 인간의 말은 온전하지 못해 말로만 하고 끝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은 다릅니다.

 

우리 인간이 말은 물거품처럼 사라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위대한 창조를 가져다줍니다. 이 세계의 기초 원료나 재료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3절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아멘.

 

그래서 이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빛을 창조하셔서 흑암을 몰아내어버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하실 때만 유효하고 지금은 모두 사라져 버렸을까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도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4장 12절은 말씀이 살아 있다는 것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아멘.

 

아브라함은 부족장이고 재산도 많고 어여쁜 아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랑할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불가능한 상태였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아들이 없어 흑암 가운데 살았지만 말씀대로 아들이 창조되어 빛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자식이 없어 기죽고 살았는데 자식이 생기자 싱글벙글하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로마서 4장 18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아내는 출산이 100% 불가능한 상태에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것은 창조의 역사가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창조라야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처럼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은 이처럼 사람을 살려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6장 7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부흥이 어떻게 온다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여 부흥하면 교회에 부흥이 옵니다. 심령의 부흥, 가정의 부흥도 옵니다. 죽은 교회, 죽은 심령, 죽은 가정이라 해도 살아납니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했습니다(요 6:68).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그러므로 생명을 가져다주는 영생의 말씀이 우리 앞에도 있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있어서 우리의 삶 가운데 창조하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3. 빛을 창조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과가 없는 것을 보셨습니까? 모든 일에는 결과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렇다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셨을 때 어떤 결과가 왔을까요? 본문 4절을 합독하겠습니다.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아멘. 좋았다는 것입니다. 빛은 이처럼 좋게 만듭니다. 빛이 들어왔는데 나빠지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어도 빛이 들어오면 좋아집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아지고 우리가 보기에도 좋아집니다.

 

불을 왜 밝힙니까? 어두컴컴한 것은 싫고 불편하기에 불을 밝힙니다. 밝은 빛이 좋아서 애써 불을 밝힙니다. 밝게 하려면 에너지가 많이 들어갑니다. 금전적인 소모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을 밝혀 빛을 내는 것은 빛이 좋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빛도 참 좋습니다. 사도 바울이 빛을 보고 어둠의 일을 깨닫고 청산하고 주님의 충성스러운 종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6장 18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증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빛은 우리의 눈을 뜨게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진리를 깨닫게 합니다. 사명도 깨닫게 합니다. 인생을 사는 방법도 깨닫게 합니다. 어둠의 일과 빛의 일을 분별하는 분별력도 생깁니다. 진리 안에서 살려고 합니다. 또한 그 아름다운 덕을 전도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어두운 데서 빛 가운데로 불러냄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의 빛은 이처럼 우리의 육안으로는 잘 볼 수 없는 빛입니다. 그러나 영안으로는 우리의 어둠을 보게 하고 주님을 바라보게 하고 주님의 말씀을 보이게 합니다. 주님의 빛은 이처럼 좋아지게 만듭니다. 사도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광채가 나는 주님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행 12:7).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빛이 들어오면 쇠사슬이 벗겨집니다. 우리 역시 우리 인생에 빛이 들어오면 우리 인생을 묶고 있는 지긋지긋한 쇠사슬이 벗겨집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빛이요 세상의 빛입니다. 요한복음은 신약의 창세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셨다는 것을 1장에서부터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을 증언하면서 참 빛에 대해서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참 빛에 대한 증언을 1장에 머물지 않고 빛에 대한 말씀을 계속 이어나갑니다. 8장 12절에 예수님께서 “나는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아멘.

 

예수님은 참 빛이십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좋아집니다. 예수님이 들어오시고 빛이 들어왔는데 어두워지고 나빠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거듭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 9:5).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요 12:46). 아멘.

 

그러나 예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어두워집니다. 누가복음 23장 44절을 보면 십자가에서 매달리신 제 육시부터 제 구시까지 어두웠다고 하였습니다.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그러나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고 찾아오시면 빛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4장 16절은 그 사실을 말해줍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아멘.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조주 하나님을 굳게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 창조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을 믿으시고 말씀과 더불어 살아가셔서 삶 가운데서 말씀으로 창조하는 창조의 역사가 많이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특히 참 빛이신 예수님께서 오시면 흑암이 물러가고 보기에 모든 것이 좋아진다는 것을 굳게 믿으시길 바랍니다.

 

 

[2011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96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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