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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주일설교

지혜와 총명의 영의 강림 (사 11:1-2)

by 이서영 목사 2015. 7. 17.

지혜와 총명의 영의 강림 (사 11:1-2)

 

평화로운 마을에 사자가 나타나 동물들을 마구 잡아먹었습니다. 이 때 토끼가 사자로부터 마을의 동물들을 지켜냈습니다. 어떻게 했기에 연약한 토끼가 힘센 사자로부터 지켜낼 수 있었을까요? 우물 속에 빠지게 만들어서 지켜냈습니다. 어떻게 했기에 사자가 우물 속에 빠졌을까요? 토끼의 꾀에 속아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사자가 우물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자로 착각해서 힘을 겨루기 위해 우물 속에 들어갔다가 빠져버린 것입니다.

 

요즈음 애정남이 매우 인기가 높습니다. 기발하게 애매한 것을 정해주니 재미가 있기도 하고 실제로 사용하기에 좋은 것도 있습니다. 인터넷을 보면 애매한 질문과 답변이 있습니다. “상황에 맞춰 꾀를 잘 쓰는 사람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답변하시겠어요? 답변을 몇 가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오목공부가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빠져나갈 구멍을 다 차단하세여.ㅎㅎ 머리를 쓰세여..” “더 좋은 머리를 가지고 꾀를 못 부리게 다 막을 자신 없으시면 꾀돌이들에겐 무대포 우격다짐 우김성 공격이 차라리 확률이 높아요.”

 

그런데 이러한 답변은 약간의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큰 도움은 되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눈에 띄는 답변이 있었습니다. 무엇일까요? “더 꾀를 잘 쓰면 됩니다.” 당연히 꾀를 더 잘 쓰면 상대하기가 쉬어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더 꾀를 잘 쓸 수 있을까요? 여기에 대한 답변은 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는 사람 위에 걷는 사람 있고 걷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나는 사람 위에 또 다른 어떤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지요? 나는 사람 등에 업혀 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꾀는 끝없이 부려야합니다. 그렇게 살려면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인간의 꾀는 좋은 일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인간의 꾀가 등장하였을까요? 창세기 3장 6절을 보면 인간이 보기에 그럴듯한 인간의 꾀가 생기기 시작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선악과를 먹으면 지혜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따 먹었습니다. 그러자 실제로 지혜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지혜는 하늘의 지혜가 아니라 육신의 지혜였습니다. 이때부터 지혜는 변질되었습니다. 잘 해보려고 생각하지만 변질된 지혜는 인간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그 육신의 지혜는 행복한 삶을 깨뜨려버렸습니다.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축복된 만남도 깨뜨려버렸습니다.

 

그래서 꾀를 내어도 잘 풀어나가지도 못하고 잘해내지도 못하고 잘 살지도 못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꾀가 맞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변질된 지혜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꾀를 잘 내지만 사람과의 관계도 하나님과의 관계도 멀어지게 합니다. 사람의 생각이 병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타락한 인간의 생각이 어떻게 병들었는지를 노아 시대인 창세기 6장 5절에서 진단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그리하여 인류는 지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홍수를 겪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또 기발한 꾀를 냅니다. 꾀를 자꾸 내는 것은 인간의 지혜가 변질되었고 타락하였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1장 4절을 보면 바벨탑을 만드는 동기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그런데 이 꾀대로 이루어졌습니까? 오히려 이름은 땅에 떨어지고 온 세상으로 흩어져서 서로 말도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꾀는 잘 살게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요셉이 죽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애굽의 새로운 바로 왕이 즉위하였습니다. 이 왕은 꾀를 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힘으로 눌러서 약화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1장 10절과 11절에서 그 사실을 전해줍니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바로 왕은 강제 노역을 시켜 괴롭게 하고 힘을 빼게 만들어서 약하게 만들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꾀는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학대받을수록 오히려 더 번성하고 더 강해졌습니다. 인간의 꾀는 이처럼 일시적으로는 통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이 말에 별로 수긍하지 않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 말을 해야 인정하시겠어요? 이 지구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말하면 믿으시겠어요?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솔로몬 왕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인정한 사람이요 수많은 지혜자와 사람들도 인정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왕상 4:29). “솔로몬의 지혜가 동쪽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왕상 4:30). “그는 모든 사람보다 지혜로워서 예스라 사람 에단과 마홀의 아들 헤만과 갈골과 다르다보다 나으므로 그의 이름이 사방 모든 나라에 들렸더라”(왕상 4:31). “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왔으니 이는 그의 지혜의 소문을 들은 천하 모든 왕들이 보낸 자들이더라”(왕상 4:34).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세상의 그 어느 왕보다 큰지라”(왕상 10:23). “온 세상 사람들이 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주신 지혜를 들으며 그의 얼굴을 보기 원하여”(왕상 10:24).

 

솔로몬 왕은 세상 사람이 그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지혜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 지혜는 하늘의 지혜라기보다는 인간의 삶을 위한 육신의 지혜였습니다. 백성을 재판하는데 필요한 지혜였습니다(왕상 3:9). 그래서 솔로몬 왕은 말년에 그러한 지혜도 헛되다는 것을 탄식하였습니다. 전도서 2장 19절입니다. “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에서 내 지혜를 다하여 수고한 모든 결과를 그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 그러므로 솔로몬 왕이 헛되다고 했으면 헛된 줄을 잘 아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인간이 만들어내는 육신의 꾀는 참된 만족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지혜가 있다고 하나 그것은 육신에 속한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8장 9절은 말합니다.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며 두려워 떨다가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에스겔 28장 17절도 말합니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 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로 인간의 지혜는 탐스럽고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겨우 생각을 짜낸 것이 오히려 자기 꾀에 자기가 속아 넘어갑니다. 꾀를 내어 힘을 얻고 꾀를 내어 살아남으려고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로 옵니다. 그러므로 호세아 7장 11절은 우리 인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 인간적인 꾀를 내어 위기를 벗어나고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고 하지만 육신의 꾀는 생각해낼수록 오히려 일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지혜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육신에 속한 지혜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지혜를 입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늘로부터 입으려면 예수님을 통해서 입을 수 있습니다. 타락하고 변질된 육신의 지혜를 치료하고 회복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치료받고 회복될 수 있습니다. 

 

본문 1절과 2절을 합독하겠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이 영이 강림하시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타락하지도 변질되지도 않은 지혜가 생깁니다. 이 지혜와 총명의 영이 탄생하신 예수님께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 영이 예수님께 임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매우 지혜롭고 총명하셨습니다.

 

의사출신인 누가는 그 사실을 자신이 쓴 누가복음 2장 52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하늘의 이 지혜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지게 만듭니다. 타락하고 변질된 인간의 생각으로부터 나오는 꾀는 사랑스럽게 만들지 못합니다. 오히려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하늘의 지혜를 얻어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지혜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 역시 예수님께 그 하늘의 지혜가 있는 것을 골로새서 2장 3절에서 말해주었습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치료자이신 예수님 안에 그 놀라운 하늘의 지혜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온 우주만물과 인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지혜로우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당부하셨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누구냐?” 이 사실을 마태복음 7장 24절에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지혜로운 사람은 “내가 하는 말을 듣는 사람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러한 하늘의 지혜를 가지고 살아라고 마태복음 10장 16절에서 당부하신 것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는 모든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해주십니다. 사랑이 넘치게 해주십니다. 잘 풀어나가고 잘해낼 수도 있게 해주십니다. 출애굽기 31장 3절을 보면 하나님의 영이 충만해지자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가 더 좋아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성전을 더 잘 만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31장 6절에서 보다 더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가 또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세워 그와 함께 하게 하며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모든 자에게 내가 지혜를 주어 그들이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을 다 만들게 할지니.” 

 

하늘의 지혜가 임하면 이렇게 놀라운 일을 하게 됩니다. 하늘의 역사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자신의 임무를 끝내고 후계자인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습니다. 그럴 때 무슨 일이 일어났지요? 신명기 34장 9절입니다.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그 귀하고 그 놀라운 지혜의 영이 충만하게 되자 가나안까지 잘 이끌고 잘 배분하고 잘 정착시켰습니다.

 

다윗이 성군이 될 수 있었던 것도 하늘의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18장 5절은 말합니다.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를 군대의 장으로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 18장 14절도 말합니다. “다윗이 그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하늘의 지혜가 임합니다. 하늘의 지혜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이 충만하셔서 하늘의 지혜를 크게 힘입으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은 어린 나이에 그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타국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수많은 세계적인 인재를 물리치고 총리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다니엘 1장 17절은 그 이유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 이 하늘의 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지혜로웠는지는 1장 20절이 말합니다.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주시는 지혜는 우리를 놀랍게 만듭니다. 우리를 복되게 만들어줍니다. 어떻게 만들어줍니까? 성경 말씀을 연달아 봉독해드리겠습니다. “시 119:98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시 19: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잠 3:14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잠 3: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잠 11:30 의인의 열매는 생명 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잠 12:8 사람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으려니와 마음이 굽은 자는 멸시를 받으리라. 전 10:10 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 약 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잠 4:7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 아멘.

 

사도 바울 역시 인간의 꾀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사명을 감당하였다고 인정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4절과 5절입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그래서 하늘의 지혜로 전도하고 하늘의 지혜로 살아가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골로새서 4장 5절입니다.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땅의 지혜로 헛수고하고 낭비하지 말고 하늘의 지혜로 시간을 비롯해서 모든 에너지 등을 쓸데없이 힘 빼지 말고 아끼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지혜를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의 권고를 들을 때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잠언 12장 15절과 19장 20절입니다.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 그리고 디모데후서 3장 15절은 성경에서 얻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아멘.

 

그 무엇보다 하늘의 지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옵니다. 잠언 2장 6절은 말합니다.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고린도전서 12장 8절을 보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를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간구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엡 1:17).

 

우리가 지식을 쌓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나이와 학력과 건강과 지능과 여러 가지 환경에 따라 쌓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이 지혜는 남녀노소 빈부귀천과 아무런 상관없이 모두가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지혜를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습니까?  남녀노소 빈부귀천과 상관없이 간절히 구하는 사람이 받을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은 말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저도 역시 사랑하는 여러분께서 이 하늘의 놀라운 지혜를 힘입으시기를 늘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이 하늘의 지혜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어 충만하게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서로를 위하여 이 하늘의 지혜를 충만하게 받을수 있도록 서로서로 간절히 구해주시기 바랍니다.

 

 

[2011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99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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