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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주일설교

그리고 부모들아 (엡 6:4)

by 이서영 목사 2015. 7. 17.

그리고 부모들아 (엡 6:4)

 

요즘 유행하는 개그콘서트로 “아버지와 아들”이 있습니다. 좋든 나쁘든 “밥 먹으러 가자”는 한 마디에 아버지와 아들은 그저 싱글벙글합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서로의 관심사가 같기 때문입니다. 공통의 관심사가 밥을 맛있게 먹는 것이기에 부자 사이가 그렇게 좋아진 것입니다. 

 

세익스피어가 쓴『리어왕』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아비가 누더기를 걸치면 자식은 모르는 척하지만, 아비가 돈주머니를 차고 있으면 자식들은 모두 다 효자가 된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재산 때문에 분쟁이 일어날 확률도 많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요즈음 부모와 자녀 사이가 법적인 관계만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법적인 관계는 혈연관계입니다. 지울 수가 없는 관계입니다. 공부상 관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다른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있어야 진정한 부모와 자녀 사이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실러가 쓴『군도』라는 책을 보면 “우리들을 부자지간으로 맺어주는 것은 혈육이 아니라 애정이다”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모 자녀 사이를 끈끈하게 맺어주는 것은 애정이라는 것입니다. 이 애정이 부모 자녀 사이를 잘 유지시켜줍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이 애정이 많아지길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그런데 이 애정을 표현할 때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좋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주어야 합니다. 너무 지나치면 오히려 부담이 됩니다. 고민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면, 어떤 딸은 엄마가 아침 점심 저녁 세끼와 간식과 후식까지 푸짐하게 차려주어서 고민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얼핏 보면 행복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많은 식사분량을 먹기엔 위가 큰 부담이 됩니다. 딸은 음식을 줄여달라고 하고 엄마는 더 먹으라고 합니다.

 

서로 잘 해보려고 한 것이 결과는 서로 섭섭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애정을 표현할 때 상대방의 입장과 의사를 존중해주고 배려해주어야 합니다. 막무가내식의 애정 표현은 오히려 부담만 가중시키고 사이를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좀 더 지혜롭게 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로의 기호나 형편이나 원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이것을 서로 잘 맞추어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사이가 좋은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목욕하러 함께 갔습니다. 아버지가 열탕에 들어가니 뜨뜻한 게 좋았습니다. 온몸의 피로가 쫘악 풀리고 시원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아들보고 “여기 시원하니까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풍덩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뜨거운지 곧바로 뛰어나오면서 말했습니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네.”

 

서로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잘 알고 상대방을 대해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좋다고 상대방도 좋게 생각한다고 여기면 큰 오산입니다. 그런 생각이 애정을 망가뜨리고 좋은 관계를 깨뜨립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특히 하늘에서 내려오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 속에 있는 지혜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부모 자녀 간에 대해 어떻게 대하라고 말씀하십니까? 지난주는 자녀의 입장에서 부모님을 공경하는 법에 대해 도전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를 대하는 법에 대해 도전받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4절인데 “또 아비들아”라고 하였는데 부모입장에서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를 말해줍니다. 이렇게 “또 아비들아”라고 말한 다음에 부모 입장에서 자녀를 대하는 방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살펴볼 말씀은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자녀를 화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화를 격동시킬 것이 아니라 너그럽게 대하라는 말입니다. 자녀를 분노하게 만들면 자녀의 마음 문이 닫힙니다. 그러면 귀도 덩달아 닫힙니다. 그러나 애정과 관용은 닫힌 마음 문도 열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권하거나 책망할 때는 더욱 더 노엽게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책망이 도를 지나쳐 아이들을 노엽게 만들고 억울한 감정을 가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애정은 이해해주고 존중해주고 배려해주고 너그럽게 대해줄 때 깊어집니다.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아동청소년상담센터 소장으로 재직 중인 신철희 소장은 이렇게 충고합니다. “항상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제멋대로에 매일 떼를 쓰고 심술을 부리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다 지쳐갑니다. 말귀를 알아듣는 듯하다가도, 곧 심사가 틀어지면 울며 보채고 떼를 쓰는 아이들, 아무리 아이를 타일러도 달래 봐도 방법이 없다는 부모들, 화를 내고 혼을 내야만 버릇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 따끔하게 혼을 내지 않으면 아이 버릇이 나빠진다고 생각하고 아이를 엄하게 키우는 부모들, 이 모든 방법이 틀렸습니다. 아이에게는 화를 내서도, 다그쳐서도 안 됩니다.”

 

『소학(小學)』의「선행편(善行篇)」을 보면, 왕응(王凝)이 쓴 글이 나옵니다. “御家以四敎 勤儉恭恕(어가이사교 근검공서)”라는 말이 나옵니다. “집을 다스리기를 네 가지 가르침으로써 할지니, 그것은 곧 부지런하고 검소하고 공손하고 너그럽게 용서하는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무슨 일이든 성공한 사람들의 생활 태도를 보면 부지런하고 검소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습니다. 잠언 31장을 보면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말한 현숙한 여인도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얼마나 부지런하게 일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남편과 자녀로부터 감사와 칭찬의 말을 듣고 많은 이웃으로부터 크게 칭찬을 듣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공손한 자세로 대하고 너그럽게 용서하면서 살아가면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자신을 낮출 줄 알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게 됩니다. 부모 자녀 간의 사이도 아주 좋아집니다.

 

잠언을 10장 12절을 보면,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자꾸만 자녀의 허물을 들추는 사람은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오히려 자녀의 허물을 가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잔소리하고 들추어내어 화를 돋우면 결국 서로가 피해를 입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피하고 서로 사이좋게 잘 지내도록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노엽게 하다”는 말의 원문은 ‘파로르기조’라고 하는데 ‘격노시키다’(enrage), ‘노하게 하다’(make angry)라는 뜻입니다. 화나게 해도 많이 화나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격분을 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 문이 닫혀서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귀에 들리지 않게 됩니다. 과학적 시험결과를 보면 마음 문이 닫히면 말하는 사람의 소리가 청각을 느끼는 뇌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때 들립니까? 마음 문이 열려서 듣고자 할 때 들립니다. 화를 풀고 말할 때 잘 받아들이고 잘 들립니다. 그러므로 화를 내게 만들어놓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화가 나 있다면 풀어놓고 말하시길 바랍니다.

 

한때 크게 유행했던 시가 있습니다. “연탄재”라는 시입니다.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단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부모 자녀 사이에도 이 시는 적용됩니다.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것입니다. 깊은 애정이 들어가면 사람은 변화 받게 되어 있습니다. 돌이키게 됩니다.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됩니다.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시절 공부가 하기 싫고, 사는 것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 가출을 하였습니다. 칫솔 하나를 주머니에 꽂고 헤르만 헤세의 시집 한 권을 들고는 일 년 반을 무전여행 다녔습니다. 경상남도로 전라도로 두루 다니며 바늘장사도 하고 볼펜장사, 화장품 장사를 하기도 하고, 식당에서 심부름도 하고, 농촌에서 머슴살이도 하는 등으로 지내다가 일 년 반이 지난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다니는 것이 지금은 괜찮지만 나중에 나이가 든 후에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집으로 들어가 공부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이젠 그만 돌아다니고 공부하겠습니다”라고 여쭈었더니 “그래 너는 그렇게 허송세월하기에는 너 머리가 아깝다”하시고는 “네가 공부하겠다면 이 어미가 열심히 일해서라도 너를 밀어줄게”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저는 “다시 공부하려면 참고서가 필요하니까 구입할 돈을 구해 주십시오”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 책값을 구하러 나가신 어머니께서 저녁나절이 되어도 돌아오시지 않다가 밤 9시경에야 들어오셔서는 책값을 주셨습니다. 저는 “감사합니다. 내일 나가서 책을 사다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하고는 계속 공부를 하였는데, 밤이 깊어질 때에 주무시는 어머니를 보았더니 머리에 수건을 쓰신 채로 주무셨습니다. 나는 무심결에 ‘어머니가 왜 수건을 쓰신 채로 자나?’하며 수건을 벗겨드렸더니, 어머니 머리에 머리카락이 없었습니다. 그때서야 ‘아하 어머님이 하루 종일 책값 구하려 다니시다 못 구하시니 가발가게에 가서 머리카락을 파셨구나. 내게 주신 돈이 바로 머리카락을 파신 돈이로구나’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에 저는 맹세하였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어머니께 효도하여야지’하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런 다짐으로 열세 달을 공부하여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지방대학이지만 수석으로 들어가 4년간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매우 가난했던 어머니는 고등학생인 아들의 책을 사기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팔아 아들의 책을 샀던 것입니다. 소년은 삭발모정(削髮母情)에 통곡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목사가 됐습니다. 그가 바로 김진홍 목사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가 자녀를 분노하게 만들어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가버리게 만들지 마십시오. 자녀를 대할 때 분노가 아니라 애정과 너그러움으로 대해주셔서 자녀의 마음을 풀어주어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이끌어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그 다음에 오늘 본문은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습니까?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눈여겨볼 단어는 “주의”라는 단어입니다. 주님이신 예수님과 관계된 것으로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자녀가 잘되기를 원하십니까?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를 잘하기를 원하십니까? 부모와 자녀의 사이가 좋아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주님이신 예수님과 관계된 것으로 잘 양육하십시오.

 

옌트쉬(W. Jentsch)는 주님과 함께 행하는 교육은 “주님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님 안에서 양육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부모가 바라는 것보다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가르쳐주고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부모가 바라는 대로 자라나게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과 함께”, “주님 안에서”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주님의 말씀 안에서” 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것은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입니다.

 

“교양”은 ‘파이데이아’인데 ‘교육’, ‘훈련’, ‘징계’, ‘교양’을 뜻합니다. 이것은 행동으로 교육하고 훈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훈계”는 ‘누데시아’인데 ‘훈계’, ‘경고’, ‘교훈’이라는 뜻입니다. 말로 하는 권면을 뜻합니다. 행동으로하든 말로하든 이 모든 주님의 훈계와 교양은 애정의 징표입니다. 그러므로 말이든 행동이든 그 모든 것에 있어서 주님의 말씀으로 자녀를 잘 양육하시길 바랍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후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순종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순종하지 않고 따 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이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을 아시고는 아담에게 물었습니다. “그 과일은 먹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먹었느냐?” “저는 모릅니다. 하와가 먹자고 해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뭐가 잘못되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자 부모에 해당되시는 자신의 속을 박박 긁은 아담과 하와에게 어떤 벌을 내릴까 고민하시다가 아담과 하와의 말을 듣지 않고 속 썩이는 자식을 갖도록 만드셨습니다. 그게 가인이라는 것입니다. 유머이지만 우리에게도 속 썩이는 자식이 있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속을 많이 부글부글 끓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주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하려면 부모가 먼저 주님의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말씀으로 잘 양육할 수 있습니다. 유명한 신명기 6장의 말씀이 바로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절에서 9절입니다.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부모와 자녀가 모두 잘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멸시하고 외면해버리면 어떤 결과가 오겠습니까? 그 반대 결과가 옵니다. 그러면 부모나 자녀 모두에게 좋지 않습니다. 생각이 다르고 공통관심사가 달라서 애정에 금이 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는 하나가 됩니다.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고 주님의 말씀 안에서 한 뜻이 됩니다. 진정한 행복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이 신명기 6장의 말씀대로 자녀에게 부지런히 주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주고 잘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부모가 먼저 잘 배우고 잘 깨닫고 잘 믿으시길 축원 드립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는 어떤 관계입니까? 혈연으로 맺어진 법적관계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친밀한 애정관계도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면 안 됩니다. 존중해주고 이해해주고 배려해주고 너그럽게 대해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주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해서 믿음의 사람으로 길러줘야 합니다. 그럴 때 자녀들이 잘되고 크게 번성하며 하나님 나라의 큰 일꾼이 됩니다.

 

그런 실제적인 큰 일꾼인 있는데 2011년 미스 코리아 이성혜양입니다. 이성혜양의 아버지는 울산 소망정형외과 원장이며 코스타 강사인 이선일 장로입니다. 이성혜양의 증조할아버지는 평양에서 교회 영수셨는데 공산군에게 순교당하셨고, 할아버지는 이윤하 목사님이십니다. 아버지도 신학공부를 하셨지만 안수는 받지 않으시고 평생 의사로서 청년사역을 해오셨습니다. 아버지의 모토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자”는 건데, 청년들이 하나님의 열정을 품고 한번뿐인 인생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보다 더 멋진 일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버지는 말씀 암송을 강조하셨는데, 어릴 때부터 하루에 한 구절씩 무조건 암송시키셨습니다. 암송 못하면 용돈이 없었습니다. 주일 성수는 기본이었습니다. 그렇게 말씀으로 양육하는 엄마와 아빠 덕분에 믿음 생활을 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상 소감 때도 주최 측에서 요청하는 것을 뿌리치고 분명히 말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나를 세우시고 이 모든 것을 행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이렇듯 주님의 말씀으로 양육한 믿음의 자녀는 가정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크게 쓰임 받습니다. 우리 모두 이렇게 자녀를 말씀으로 잘 양육하셔서 자녀들이 모두 잘되고 크게 번성하고 귀하게 쓰임받기를 축원 드립니다.

 

 

[2012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121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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