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19:56) 내 소유는 이것이니
금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귀하게 취급한다. 금덩어리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예외적인 인물이 가끔은 있다. 고려시대 최영 장군과 그의 아버지는 황금을 우습게 여겼다. 최영 장군은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한 부친의 말을 듣고 평생을 청렴결백하게 살았다.
하지만 대부분 금덩어리를 좋아하는 편이다. 금괴가 하나만 있어도 얼마냐? 골드 바 1킬로그램 1개 가격이 5천만 원~6천만 원 정도한다. 두 개 있으면 1억~1억 2천만 원정도이다. 그렇다면 금을 많이 소유하면 영원히 “떵떵” 거리면서 잘 살 수 있나? 영원히 부자로 살 수 있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금은 부패하거나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나 금은 변함없이 좋은 것은 사실이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금이 가치가 있다. 그러나 내가 죽는 순간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죽은 사람이 금을 들고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무덤에 금덩어리를 많이 묻어줘도 소용이 없다. 금을 가지고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게 있어서 진정한 금은보화는 무엇인가?
본문인 시편 119편 56절은 말한다.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 진정한 소유는 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것이다. 이것이 보물인줄 아는 사람은 119편 14절과 같이 고백하게 된다.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어떤 자들이 복이 있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고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 119편 1~2절이 그것을 말해준다.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복이고 나의 진정한 소유물이 된다.
영원한 나의 기업은 무엇인가? 119편 111절이 말해준다. “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이것이 진정한 소유가 되므로 금을 얻는 것보다 더 기쁘고 즐겁다는 것이다. 그래서 119편 127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들을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또한 119편 72절에서도 고백하였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좋으면 실제로 그렇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좋아 보이고 더 크게 보이고 더 귀하게 여겨진다.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사모하고 찬송하게 된다. 힘써 지키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금과 은보다 더 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최영 장군의 아버지처럼 말한 성경의 인물이 있다. 욥기에 나오는데 데만 사람 엘리바스이다. 엘리바스가 세 번째로 대답한 말인데 욥기 22장 24절에 나온다. “네 보화를 티끌로 여기고 오빌의 금을 계곡의 돌로 여기라.” 그리하면 하나님이 고귀한 보화가 되어주신다고 하였다. 25절이다.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화가 되시며 네게 고귀한 은이 되시리니.”
솔로몬 왕이 잠언 8장 10절에 이렇게 교훈하였다.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잠언 16장 16절에서 말하기는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고 하였다.
이런저런 경험을 다 겪어보았던 솔로몬 왕이었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도서 2장 8절에 보면 어떻게 살았는지 고백하고 있다. “은 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금과 은이 흔할 정도로 많이 소유했지만 별 볼일 없더라는 것이다. 역대하 9장 14~22절이 그 사실을 잘 말해준다.
“그 외에 또 무역상과 객상들이 가져온 것이 있고 아라비아 왕들과 그 나라 방백들도 금과 은을 솔로몬에게 가져온지라. 솔로몬 왕이 쳐서 늘인 금으로 큰 방패 이백 개를 만들었으니 방패 하나에 든 금이 육백 세겔이며, 또 쳐서 늘인 금으로 작은 방패 삼백 개를 만들었으니 방패 하나에 든 금이 삼백 세겔이라 왕이 이것들을 레바논 나무 궁에 두었더라.
왕이 또 상아로 큰 보좌를 만들고 순금으로 입혔으니, 그 보좌에는 여섯 층계와 금 발판이 있어 보좌와 이어졌고 앉는 자리 양쪽에는 팔걸이가 있고 팔걸이 곁에는 사자가 하나씩 섰으며, 또 열두 사자가 있어 그 여섯 층계 양쪽에 섰으니 어떤 나라에도 이같이 만든 것이 없었더라.
솔로몬 왕이 마시는 그릇은 다 금이요 레바논 나무 궁의 그릇들도 다 순금이라 솔로몬의 시대에 은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함은, 왕의 배들이 후람의 종들과 함께 다시스로 다니며 그 배들이 삼 년에 일 차씩 다시스의 금과 은과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을 실어옴이더라.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천하의 모든 왕들보다 큰지라.”
이렇게 천하의 모든 왕들보다 거부였지만 정말 귀한 소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지키는 것이더라는 것이다.
신약시대의 인물 가운데 황금보기를 돌같이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긴 인물이 나온다. 사도 바울이다. 사도행전 20장 17~18절을 보면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고 그들이 오니 그들에게 말한 장면이 나온다. 18절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라고 하면서 33절에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사도 바울은 집을 건축하는 것을 비유하면서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 것이 상급으로 남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고린도전서 3장 10~15절이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겨우 턱걸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천국에 가져갈 만한 소유가 없다는 것이다. 천국에 가는 성도는 크든 작든 100% 자기의 상을 받는다. 내가 영원히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받을 상은 무엇인가? 장사도 밑천이 있어야 한다. 천국에서 영원히 누릴 수 있는 밑천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다. 그것이 복된 방식이다. 길이 된다. 찬송가 가운데 “주를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라는 찬송이 있다. 진실로 그러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는 것이 영원히 변하지 않고 가치 있는 금은보화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내게 있어서 진정한 금은보화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잘 순종한 것임을 믿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순종해야 하나?
우리가 순종을 잘하기 위해 무엇을 순종해야 하는가를 성경 말씀 가운데 몇 가지를 뽑아 제시해보겠다. 먼저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겠다. 사도 바울이 남자와 여자들에게 당부하는 말이 있다. 디모데전서 2장 4~12절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사도 베드로 역시 그러한 말을 하였다. 남편들과 아내 사이를 말하면서 역시 기도와 말씀 순종에 대한 것이다. 베드로전서 3장 1~7절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금보다 낫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말씀이 막히고 남편이 아내를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가 막힌다. 그러면 가정은 어떻게 되겠나? 축복의 통로가 막히고서야 어떻게 잘 될 수 있겠나? 서로 이기려고 다투기에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콩가루가 된다.
막히면 끝이다. 남자와 여자의 모델은 어디에나 적용되는 모델이다. 기도가 막히고 말씀이 막히는 가정, 사회, 국가는 비참해진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다툰다. 복이 날아간다. 서로 피곤하게 산다.
우스운 말을 하자면 남자 성도는 부인이 필히 두 명은 되어야 한다. “자기야~”하고 부르는 함께 살고 있는 자기의 부인과 자기 자신이 순교하는 “자기를 부인”하는 부인이다.
순종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자기가 살아 있으면 순종하지 못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가 순교해야 가능하다. 자기가 죽어야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이 먹히게 된다. 죽으면 순종하기 쉬워진다.
그 다음으로 우리의 진짜 소유, 우리의 진짜 금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겠다. 첫째, 교회를 금처럼 귀하게 여겨야 한다. 요한계시록 1장 20절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일곱 금 촛대는 일곱 교회를 말한다. 예수님의 몸인 교회는 그만큼 귀하다는 것이다. 교회를 금과 같이 귀하게 여기고 섬기는 자는 복을 많이 받게 된다.
둘째, 성령의 불을 통과한 금이다. 성령으로 불태워지고 회심한 사람이 소유하는 금이다. 요한계시록 3장 18절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인간의 욕심으로 사들인 금은 진짜 금이 아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자신의 정욕이 불태워진 성령의 사람이 사용하는 금은 진짜 금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진정한 부자인 것이다.
셋째, 기도를 금처럼 여기고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요한계시록 5장 8절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은 기도를 가득 담은 금 대접이다. 우리가 한 기도는 금과 같이 여김을 받는다. 금 대접에 담겨진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금과 같이 귀하게 여기고 기도드려야 할 것이다.
넷째, 사랑은 진정 영원히 변하지 않는 정금이다. 순종은 금과 같이 귀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가운데 최고가 사랑이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13장 10절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성경 말씀을 순종하였다는 것은 사랑하였다는 말이 된다. 로마서 13장 8절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갈라디아서 5장 14절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성경은 복음이고, 복음은 예수님이고, 예수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므로 사랑하지 않으면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된다. 또한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뛰어난 말도, 예언의 능력도,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알아도, 산을 옮기는 믿음을 가져도, 심지어 구제하고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고전 13:1~3). 사랑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랑은 고귀한 것이다. 마치 변하지 않는 금처럼 사랑도 영원히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3장 8절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13장 13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천국에 가도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이 얼마나 고귀한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순종 가운데 최고의 순종은 무언가? 사랑이다.
제가 고려신학대학원에 입시 면접시험을 칠 때이다. 면접받기 위해 대기해 있던 면접실 문 앞에서 기도드렸다. “하나님, 면접관에게 면접받기 전에 하나님께 먼저 면접 받고 싶습니다.” 응답이 왔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은 나의 모든 생각과 마음과 말과 행동과 그 모든 것을 모두 다 아신다. 내가 주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지 모두 다 아신다. 그러기에 사도 베드로처럼 저도 역시 똑같은 고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가 예수님께서 맡겨주시는 양들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먼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여쭈어보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자신의 양들을 사랑할 줄 아시기에 우리에게 그 양을 맡기시는 것이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때 더 잘 감당할 수 있다.
얼마 전에 기도드릴 때이다. 주님께서 “특명을 주노라!”고 하셨다. 이미 제자 삼는 사명을 받았는데 어떤 사명을 말하는지 의아했다. 한편으론 부담이 오기도 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특명이다.” 서로 사랑하는 것(요 13:34, 15:12),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는 것(고전 16:14)이 제자 삼는 사명보다 더 우선이라는 것이다. 진실로 그러하다.
사명을 감당하다보면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이 땅에서 더 이상 고생하지 말고 그만 고생을 끝내고 그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저 좋은 천국에서 편안히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주님, 제발 저를 데려가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는 중에 데려가시면 모양새도 괜찮지 않겠습니까?”라고 할 때도 있었다.
이러한 기도를 들으시고 때가 되자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너를 이 땅에 남겨둔 이유를 알겠느냐?” 대부분의 사명자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저도 역시 그렇게 대답했다. “제가 받은 제자 삼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아니다. 사명감당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그것보다는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이다.”
천국에는 자동으로 사랑하게 되어 있다. 그곳은 누구나 사랑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 땅에서는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고 슬프고 괴롭고 답답할지라도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 사랑을 나누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을 함에 있어 때론 아픔이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고귀한 정금과 같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너무나 감격스러운 주님과의 만남이었다. 흙속의 진주와 같이 영롱한 사랑을 나누기 위해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가 살아 있는 이유, 내가 이 땅에 남아 있는 이유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사랑할 수 없는 가운데에서도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이다.
이제 말씀을 맺기로 한다.
순종이 진정한 금이다. 순종이 진정한 우리의 영원한 소유이다. 솔로몬 왕에게 있어서 더 이상 금이 소용없게 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소유가 되고 영원히 가져갈 수 있게 된다. 이 세상의 금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천국에 들고 갈 수는 없다. 천국에 가져갈 수 있는 진짜 금, 진짜 소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것이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 본문인 시편 119편 56절은 말한다.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 진정한 소유는 이 세상의 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복이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나의 영원한 소유가 된다. 119편 111절 “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이것이 진정한 소유가 되므로 금을 얻는 것보다 더 기쁘고 즐겁다는 것이다. 그래서 119편 127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들을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또한 119편 72절에서도 고백하였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말씀이 좋으면 실제로 그렇게 된다.
그렇다면 말씀을 구체적으로 순종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 앞서 말씀 드린 것 가운데 말씀드리면. 남편들이여 기도하라. 아내들이여 순종하라.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귀하게 여기고 교회의 덕을 세우라. 서로 위하여 기도하라. 서로 사랑하라.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이것이 나의 영원한 소유가 되고 나의 진정한 금이 될 것이다. 이런 복 있는 성도들이 모두 되기를 바란다.
[2014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276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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