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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주일설교

[성령강림주일] 성령님의 떠나심 (삼상 16:14~23)

by 이서영 목사 2015. 12. 29.

성령님의 떠나심 (삼상 16:14~23)

 

성령님이 임하셔야 권능을 받습니다. 위대한 일을 하려고하면 성령님의 권능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잘 해낼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의 능력과 증거가 나타나야 됩니다. 성령님께 붙잡혀야 자신이 변화를 받고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있어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해져야 사명을 잘 감당하고 신앙생활도 잘 할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잘 할 수가 없습니다. 예배든 선교든 양육이든, 직장생활이든 가정생활이든 성령님의 능력이 있어야 잘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살리는 영이시고 주님의 일을 하게 하시는 영시고 하나 되게 하시는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분열이 심한 곳은 성령님보다는 악령이 더 활동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악령은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게 만들고 하나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깨지게 만들고 주님의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훼방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신 다윗과는 달리 사울 왕은 악령이 임했습니다. 본문 14절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더 나아가 다윗은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었으나(13절) 사울 왕은 악령이 힘 있게 내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18:10).

 

사울 왕은 악령이 임하자 성령이 임한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습니다. 두 번씩이나 창을 던져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이 잘 피해서 죽음을 면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도망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 왕은 오랜 세월동안 뒤 따라다니면서 군대까지 동원해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처럼 악령은 살리지 않고 죽이려고 덤벼들고 화합하지도 않고 자꾸만 관계를 깹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봅시다. 지금 형편이 어떻습니까? 나라는? 학교는? 가정은? 교회는? 화목하면 성령님의 역사이고 분열하고 다투면 악령의 역사입니다. 에베소서 4장 3~5절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아멘. 성령님의 역사는 이처럼 하나 되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하나 되게 하시는 영이십니다.

      

오늘날 성령님의 임하심은 많이 강조하나 성령님의 떠나심은 상대적으로 강조가 약한 편입니다. 지금은 이미 성령님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성령님과의 동행에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성령님을 받은 이후의 삶이 거룩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사울 왕도 처음엔 기름 부으심을 받았습니다(10:1).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새 마음을 주셨고 하나님의 영도 크게 임하셔서 예언까지 할 정도였습니다(10:9~10).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지 않자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악령이 들어차버린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울의 집은 점점 몰락하고 다윗의 집은 점점 흥왕해졌습니다. 사무엘하 3장 1절입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출발은 다윗보다 모든 면에서 사울이 월등하게 앞섰습니다. 다윗이 양치기 소년일 때 사울은 이미 왕이었습니다. 그 후에 다윗이 사울의 사위로서 곁에서 식사할 정도로 직분이 상승했지만 여전히 사울보다 낮은 신분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다윗이 늘 쫓겨 다닐 때 다윗은 도망자 신세였지만 사울 왕은 추격자 신분이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면에서 불리하였지만 결과는 반대가 되었습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나중은 창대해진 것입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된 것입니다. 사울 왕은 악령에 시달렸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영의 도우심을 받았습니다. 사울 왕은 마지막 전투에서 아들 요나단과 함께 전사했고 장사마저 제대로 치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왕이 되어 평온하게 죽어 다윗 성에 장사되었고 아들 솔로몬은 왕이 되었습니다. 사울 왕의 가문은 몰락했지만 다윗의 가문은 영원히 서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악령의 임함과 성령님의 임하심에 따라 인생이 역전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성령님을 최우선적으로 받아야 하지만 받고 난 이후의 삶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사울 왕처럼 성령님이 떠나고 악령에 시달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사울 왕처럼 권력이 있고 재산이 있고 용모가 좋고 가정이 있어도 결국 기울고 맙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받은 이후에 끝까지 잘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성령님이 임하셨다면 우리는 이제 자연 출생한 육적인 몸이 아닙니다. 육안으로 보면 신자나 불신자나 똑같은 몸으로 보이지만 예수님을 믿는 신자의 몸을 영안으로 보면 전혀 다릅니다. 신자의 몸은 이미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령님의 성전이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아멘.

 

내 몸이라고 해서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기에 내 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소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이 계시는 성전이 되었기에 모든 일을 함에 있어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결하게 유지하고 거룩한 삶을 살고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데 잘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술 취함과 방탕함과 호색함과 음행과 불순종에 사용하면 성령님이 떠나시게 됩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에 말한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사울 왕이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런데 거룩하지 못하면 견디지 못해서 떠나십니다. 그런데 떠난다고 해서 완전히 결별할 정도로 떠나시지는 않습니다. 본문 14절의 “떠나고”라는 말의 원어는 ‘수르’입니다. 이 단어는 떠난다는 의미도 있지만 “옆으로 빗나가다, 고개를 돌리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성령님이 신자에게 임하시면 영원히 함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또한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고 떠나시지도 않는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이 그러한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조금 섭섭하다고 해서 인간들처럼 그렇게 훌훌 떠나시지 않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시고 끝까지 함께 해주십니다. 성령님께서 신자를 떠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다만 떠나지 않지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허물어 질 수 있습니다. 마치 성령님이 안 계신 것과 같은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예수님께서 성전답지 못한 성전을 정화하시고 결국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무너지도록 하신 것처럼 성전인 우리 몸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떠난다는 의미보다는 빗나간 상태입니다. 서로 얼굴을 돌린 상태가 됩니다. 하나님과 화목해야 하는 일들이 잘 됩니다. 그런데 사울 왕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꼬박꼬박 토를 달고 변명하고 불순종하고 합리화시키면 하나님께서는 마음 상해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외면하셔서 빗나간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더 충만하게 임하십니다. 사도행전 5장 32절입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사울.왕이 불순종해서 성령님이 떠났고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기에 성령님이 크게 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영육의 직분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변화도 받을 수가 있고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오직 성령님으로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과 늘 함께 해야 합니다. 특별히 잘 순종하는 관계여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해주시고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무엇을 도와주십니까? (1) 성령님께서 기도를 도와주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과 27절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 진리도 깨닫게 해주시고 미래 일도 알게 해주십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3) 진리를 증거도 하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예수님의 영시시기에 예수님을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4) 우리를 자유하게 해주십니다. 고린도후서 3장 17절입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5) 성품도 좋아지게 하십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과 23절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아멘. 성령님이 임하시면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기에 이것을 금지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것을 무시하고 불순종하면 성령님과 빗나간 상태가 되고 멸하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입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육체의 일을 하면 천국의 거룩함과 풍성함은 점점 멀어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령님께서 함께해주시지도 않으시고 도와주시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종함으로 성령님과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무엘하 3장 1절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우리는 어느 집안을 따라가야 하겠습니까? 누구를 따라가야 하겠습니까? 불순종하여 성령님은 떠나고 악령이 힘 있게 임한 사울입니까? 아니면 성령님이 크게 임한 다윗입니까?

 

갈라디아서 3장 3절은 우리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라디아서 6장 8절을 봉독해드리면서 마치겠습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아멘.

 

 

[2010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20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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