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절] (요 11:25-26) 이것을 네가 믿느냐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1장 26절 말씀 가운데 보면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해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질문하셨을 때 우리는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것은 두 가지를 믿느냐고 질문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 가지의 믿음의 단계에 대해 대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첫 번째 믿음의 단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믿음은 “너는 내가 부활이요 생명인 것을 믿느냐?”라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믿음은 예수님과 관련된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것으로 예수님께서 부활이시요 생명이신 것을 믿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나의 대답은 “나는 예수님께서 부활이시요 생명이신 것을 믿습니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1장 2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아멘.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에고 ~ 에이미(ejgwv ~ eijmiv)” 즉 “나는 ~ 이다”라는 자기 선언의 형식으로 분명하게 선포하신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자기 선언을 우리는 있는 그대로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십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은 부활(the resurrection)이시라는 것입니다. 부활은 원어 원형으로 “아나스타시스(ajnavstasi")”라고 하는데 “아니스테미(ajnivsthmi)” 즉 “일어나다”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일어남”이란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YLT 영어 성경은 “the rising again”으로 번역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활은 “아니스테미”에서 유래하였다고 했는데 사용된 곳을 찾아보면 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34절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아멘. 여기서 “일으키사”의 원어 원형이 “아니스테미(ajnivsthmi)”입니다. 부활은 이처럼 일어난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으키심을 받으시므로 일어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일어나시므로 무덤에 묻어 놓을 수도 없고 죽음으로 주저앉힐 수도 없는 것입니다. 부활이시므로 일어날 수밖에 없으십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생명은 원어 원형으로 “조에(zwhv)”라고 하는데 “생명(life)”이라는 뜻 그대로 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서도 대부분 “the life”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생명이시므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에서 자신의 생명과 관련된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35절 말씀에서는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아멘. 또한 요한복음 6장 63절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이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아멘. 그리고 요한복음 8장 12절 말씀에서는 생명의 빛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아멘.
예수님은 이처럼 생명이시므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을 요한복음 10장 10절 말씀에 밝혀주셨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아멘. 이와 같으므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이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요한복음 20장 31절 말씀에 언급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아멘.
이와 같으신 부활이시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질문하셨을 때 마르다의 답변은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본문 다음에 나오는 11장 27절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존재를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시라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믿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은 사도 베드로가 고백한 믿음과 같아 보일 정도로 굉장한 믿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고백한 것을 기록한 마태복음 16장 16절 말씀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르다는 이러한 고백을 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마르다가 예수님의 존재에 대해 확실하게 믿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르다가 예수님을 믿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병든 사람을 고치시는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함께 계셨더라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11장 21절 말씀입니다.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또한 예수님의 기도의 능력도 믿었습니다. 이어서 나오는 22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이처럼 마르다가 예수님을 확실하게 믿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 전후에 나오는 말씀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마르다의 이러한 믿음의 고백들은 예수님을 향한 첫 번째 믿음의 단계에 대한 놀라운 대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부활이시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고 믿음의 고백을 통해 예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은 우리들에게도 귀한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마르다처럼 예수님을 믿고 부활이시요 생명이신 예수님께 아름다운 믿음의 고백을 통해 영광을 돌려드리시길 바랍니다.
이제, 두 번째 믿음의 단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두 번째 믿음은 “너는 나를 믿으면 죽어도 사는 것을 믿느냐?”라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믿음은 나와 관련된 나를 향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나에 대한 것으로 부활이시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내가 죽어도 산다는 것을 믿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나의 대답은 “부활이시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내가 죽어도 사는 것을 믿습니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1장 25절과 2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아멘. 부활이시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내가 죽어도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존재에 대한 첫 번째 믿음의 단계에서 나를 향한 두 번째 믿음의 단계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전후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믿게 해주시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요한복음 11장 1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아멘. 나사로가 죽은 현장에 있지 아니한 이유는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요한복음 11장 4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멘. 죽은 나사로를 살리기 직전에 기도드릴 때 하신 말씀입니다. 이 역시 둘러선 그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나사로를 통해 믿음을 가지도록 해주시려는 목적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도록 하신 이유는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하셨는데 이것을 믿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부활이시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고 죽지 않고 산다는 것을 믿으면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 이후에 나오는 요한복음 11장 40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아멘. 부활이시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죽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살아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께서 병든 나사로를 찾기 며칠 전에 말씀하신 요한복음 11장 4절 말씀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아멘.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예수님의 영광을 보게 되고 그 아들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르다는 부활에 대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마르다는 죽은 자기 오라버니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확실하게 믿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오라버니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대답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3절과 24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오라버니가 다시 살아난다고 하셨을 때 의심하지 않고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부활이시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고 있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난다는 것도 확실하게 믿고 있었지만 자기 오라버니가 지금 현재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미래에 이루어질 부활은 믿고 있었지만 현실 속에서의 부활의 영광을 보는 것은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39절 말씀을 보면 이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이미 모든 것이 끝났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는 말씀을 하시자 그때서야 믿고 돌을 옮겨 놓았습니다. 요한복음 11장 40-42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멘.
이렇게 믿고 돌을 옮겨 놓자 부활이시요 생명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게 되는 영광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어서 나오는 43절과 44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아멘.
이렇게 마르다는 첫 번째 믿음의 단계를 통과하고 두 번째 믿음의 단계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부활이시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향한 예수님의 존재를 믿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마르다와 마르다의 집을 향한 부활의 믿음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으며 죽은 오라버니를 다시 만나게 되는 부활의 영광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일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우리는 이러한 일을 통해 믿음은 예수님만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알 수 있습니다. 부활이시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함께 살아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최종적인 영화 단계의 부활뿐만 아니라 현실 속에서의 부활도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시고 생명이십니다. 그러므로 영원히 죽지 않는 영원불멸의 생명이 있으십니다. 그러므로 그 예수님의 생명이 있으면 누구나 죽어도 죽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 영원히 죽으려고 해도 죽을 없습니다. 무조건 영생하게 되어 있습니다. 죽은 사람도, 산 사람도 모두 살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나게 되고 산 사람은 산 채로 살게 됩니다.
마지막 날의 영화 단계의 최종 부활에는 모든 사람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부활하게 됩니다. 이 뿐만 아니라 현실 속에서의 부활도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에 따라 그때마다 극소수 사람들이 부활하게 되어 있습니다. 간혹 죽었다고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간증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부활이시요 생명이신 예수님은 혼자만의 부활과 생명으로 그치지 않으십니다. 나와 함께 연합하셔서 나로 하여금 부활하게 하시고 생명을 얻게 해주십니다. 예수님 혼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지체가 된 나와 함께 역사해주십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예수님께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내 안에 함께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체로서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빠진 영화의 부활과 현실 속에서의 부활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빠진 부활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부활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찌 이 부활을 주신 주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영광을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자, 그렇다면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르다처럼 우리도 마지막 날에 다시 부활하게 된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역시 마르다처럼 죽은 사람이 지금 현실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믿기 어려워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마르다의 교훈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나를 향한 두 번째 믿음의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단계와 관련된 믿음은 무엇입니까? 현실 속에서도 부활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간혹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그야말로 어쩌다 한 번씩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원리를 보다 더 넓게 해석해서 적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죽은 사람만이 아니라 죽은 것과 같은 상태의 사람에게도 적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마치 죽은 사람과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희망조차 기대할 수 없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라고 해서 포기하지 않고 부활이시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되 확실히 믿게 되면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그런 사람이 되살아나게 되는 영광과 기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르다가 예수님을 확실히 믿고 돌을 치우니 영광을 보게 되었습니다. 현실 속의 부활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되 확실히 믿으니까 마르다도 오라버니까지도 확실히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되 확실히 믿으면 나와 네 집이 확실히 구원을 받게 됩니다. 부활의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마지막 날의 부활만 말합니까? 지금의 부활도 말합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부활을 말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에게도 필요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길 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향해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하셨을 때 나는 “이것을 믿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될 것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의 믿음을 의미하는데 예수님과 관련된 예수님을 향한 믿음과 나와 관련된 나를 향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것은 부활이시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고 나에 대한 것은 부활이시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내가 죽어도 산다는 믿음입니다. 이와 같이 믿으면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확보된 영화 단계의 나의 최종 부활에 대해서는 나에게 부활과 생명을 주신 주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현실 속에서의 부활에 대해서는 부활이시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되 확실히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나와 내 집을 되살아나게 해주시는 영광을 보게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광을 보여주시는 주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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