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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기타설교

(사 49:10)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by 이서영 목사 2018. 7. 30.

 

 

(사 49:10)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49:10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라. (아멘)

 

 

 

요즈음 많이 더워서 수고가 많지요? 계속되는 열대야까지 겹치다보니 더 더운 것 같습니다. 이러한 더위가 우리나라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전 세계가 그렇다고 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 더 건강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더위와 연관된 성경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살펴볼 말씀은 해가 뜨거워지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요나서 4장 8절 말씀인데 해가 뜨거워지면 어느 정도가 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아멘.

 

얼마나 뜨거웠던지 그늘을 만들어 시원하게 해주던 박넝쿨이 사라지면서 해가 요나의 머리에 쪼이자 요나가 혼미하여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를 통해 뜨거움이 지독하게 되면 죽을 지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뜨거움이 주는 배경의 의미는 이러한 것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뜨거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8절 말씀에 이어서 나오는 9-11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아멘.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를 아끼는 마음이 있으시다는 것을 박넝쿨을 아끼는 요나를 통해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른바 뜨거운 맛을 보게 하셔서 니느웨를 향한 계획이 있으시다는 것을 알게 해주시고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십이만여 명의 니느웨 사람들과 심지어 많은 니느웨의 가축까지도 아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살펴볼 말씀은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비유는 천국의 품삯에 대한 비유입니다. 비유에 나오는 품삯에 해당하는 복은 놀랍고도 큰 복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주도적으로 행하여주셔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의 어떤 수고로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셨기에 이루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4장 4-8절 말씀을 보면 그러한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아멘.

 

우리의 어떤 행위가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의로워지도록 해주셔서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복은 수고해서 받게 되는 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에 의해 받게 되는 복입니다.

 

이러한 복은 믿는 자는 누구나 동일하게 받게 됩니다. 크거나 작지가 않습니다. 모두가 똑같이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에 가게 되는 것은 크기에 차이가 없습니다. 건강하든 그렇지 않든, 지위가 높든 낮든, 학식이 많든 적든, 남자든 여자든, 어른이든 아이든 차이가 없습니다.

 

이 복은 모두가 동일하게 받게 되는 복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은 놀랍고 큰 복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우리의 죄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언해주시는 복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사실을 천국의 품삯 비유를 통해 말씀해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0장 말씀을 보면 포도원 주인이 품꾼들의 품삯을 계산해주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찍 온 사람이든 오후에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 온 사람이든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 주었습니다. 그러자 먼저 온 사람이 말했습니다. 20장 12절 말씀인데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럴 때 집 주인이 대답했습니다. 13-15절 말씀인데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일한 분량이나 시간이 기준이 아니라 당초 주기로 약속한 대로 한 데나리온씩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우리에게 큰 은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선행으로는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비록 우리가 좀 부족하더라도 긍휼히 여겨주셔서 의롭다고 하시고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천국에 가게 해주시니 이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까?

 

어릴 때 믿은 사람, 중간에 믿은 사람, 죽음에 앞서 믿게 된 사람 등 다양한 시기에 믿게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기와 관계가 없이 똑같이 믿음을 선물로 받아 똑같이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 믿게 된 것도 내가 수고해서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믿게 된 것이 아닙니까?

 

 

누가 자기 수고와 선행으로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죄의 크기가 차이는 있지만 죄가 없지는 않습니다. 작은 돌이나 큰 바위나 물에 던지면 가라앉듯이 죄로 말미암아 모두 지옥으로 가라앉게 됩니다. 죄를 짓지 않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손에 맡겨두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이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계속되는 더위에 지치게 되지만 더위와 연관된 이와 같은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이 은혜를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께서 붙잡아주시는 사람은 옆에 붙잡고 있는 사람은 타죽어도 머리카락도 그을리지 않고 겉 옷 빛도 변하지 않고 불 탄 냄새도 나지 않을 정도로 보호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지옥불이라 해도 건져주시고 보호해주십니다.

 

이와 같으므로 이 세상에 잠시 사는 동안에 겪는 더위도 참기 힘든데 영원토록 뜨거운 용광로와 같은 지옥불에서 살지 않도록 시원한 천국의 초막에 살도록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시는 계절이 되시길 소원해봅니다. 그러므로 뜨거운 지옥불에서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송을 드리시길 바랍니다.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요즈음 무척 더워서 수고가 많으신데 그렇다면 더위는 어떻게 해서 있습니까?

 

우리가 사는 이 땅에 더위가 없으면 좋겠지만 더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창세기 8장 22절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노아시대에 홍수가 끝나고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서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렸을 때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신 말씀입니다(창 8:13-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아멘.

 

이와 같으므로 인류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더위를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땅에 사는 동물도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하여 더위는 그 누구에게든지 끈질기게 따라붙게 되었고 더위와 씨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입니다.

 

 

야곱 그러한 더위를 겪었다는 것을 창세기 31장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이 급히 추격해온 라반 외삼촌에게 한 말입니다. 더위와 추위를 무릎 쓰고 눈 붙일 겨를이 없이 그것도 무려 이십 년이나 수고하였다는 것입니다.

 

31장 38-40절 말씀입니다. “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아멘.

 

이 세상의 그 누구든 인생살이하면서 더위를 떠나 살 수 없습니다. 더위가 없는 세상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더위가 없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더위를 이겨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더위는 축복이 아닙니다. 이러한 더위는 어떻게 해서 생겼습니까? 인류가 우주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으므로 더위를 자초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견디기가 괴롭고 힘든 것입니다.

 

모세가 출애굽을 마무리하면서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온 이스라엘을 향해 노래한 것이 신명기 32장 말씀에 나옵니다. 이 모세의 노래 가운데 보면 그러한 불행을 자초하게 될 수 있으므로 삼가 주의하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불볕 더위의 화를 당하게 된다는 말씀부터 보겠습니다. 32장 24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주리므로 쇠약하며 불 같은 더위와 독한 질병에 삼켜질 것이라 내가 들짐승의 이와 티끌에 기는 것의 독을 그들에게 보내리로다.” 아멘.

 

이러한 불과 같은 더위에 삼켜지게 된 것은 보호해주시고 인도해주시고 온갖 축복을 풍성하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은 경외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을 섬긴 결과라는 것을 앞에 나오는 9-21절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풍성한 복을 주셨다는 말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9-14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여호와께서 그가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소의 엉긴 젖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에서 난 숫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게 하셨도다.” 아멘.

 

이러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엉뚱하게도 다른 신을 섬김으로 진노를 격발하게 되었다는 말씀이 9-14절 말씀에 이어서 나옵니다. 15-18절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귀신들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이 알지 못하던 신들, 근래에 들어온 새로운 신들 너희의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던 것들이로다. 너를 낳은 반석을 네가 상관하지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을 네가 잊었도다.” 아멘.

 

그리하여 닥치게 되는 환난이 19-26절 말씀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으니 그 자녀가 그를 격노하게 한 까닭이로다.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겨 그들의 종말이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세대요 진실이 없는 자녀임이로다.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그러므로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스올의 깊은 곳까지 불사르며 땅과 그 소산을 삼키며 산들의 터도 불타게 하는도다. 내가 재앙을 그들 위에 쌓으며 내 화살이 다할 때까지 그들을 쏘리로다. 그들이 주리므로 쇠약하며 불 같은 더위와 독한 질병에 삼켜질 것이라 내가 들짐승의 이와 티끌에 기는 것의 독을 그들에게 보내리로다. 밖으로는 칼에, 방 안에서는 놀람에 멸망하리니 젊은 남자도 처녀도 백발 노인과 함께 젖 먹는 아이까지 그러하리로다. 내가 그들을 흩어서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에 대한 기억이 끊어지게 하리라 하였으나.” 아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므로 이처럼 특별히 모세를 통해 노래까지 지어서(신 31:19) 기억하도록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이러한 것을 잘 깨닫지 못하고 무시하고 어긋난 길로 가다가 결국은 24절 말씀처럼 결국은 불과 같은 더위에 삼켜지는 화를 당하게 되는 것을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동일한 잘못을 하지 않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탐심과 같은 다른 신을 추구하다가 견디기 힘든 불볕 더위를 자초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를 택해주시고 우리를 인도보호해주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만복의 하나님을 굳게 섬기시고 따르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더위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위와 관련된 속담을 보면 “더위는 세 번 엎드리면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초복, 중복, 말복을 지내면 선선한 가을이 온다는 것입니다. “복”자를 한자어로 보면 “엎드릴 복(伏)”자인 것을 보면 일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는 누구에게 엎드려야 하겠습니까? 엎드리는 대상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옵니다. 그러므로 엎드려야 할 분에게 엎드리게 되시길 바랍니다.

 

더위는 축복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등질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신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더위를 이기게 해주십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예레미야 17장 8절 말씀에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아멘.

 

하나님을 떠나 사람을 더 크게 믿고 힘으로 삼게 되면 가뭄이 심해질 뿐이지만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예레미야 17장 8절 말씀이 포함된 5-8절 말씀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아멘.

 

그러므로 엎드리려야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하시길 바랍니다. 여호와보다 사람을 더 믿고 사람의 힘을 의지하다가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막아버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여호와를 더욱 더 잘 의지하셔서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복을 받게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속해 있는 이사야서에도 그러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4장 6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이 청결하게 될 때 초막으로 더위를 피하도록 해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초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아멘.

 

오늘 본문 말씀인 이사야 49장 10절 말씀에서도 그러한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고 새롭게 되면 하나님의 축복이 다시 회복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라.” 아멘.

 

이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므로 더위와 볕이 있을지라도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않도록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엎드리셔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셔서 무더위라 할지라도 보다 시원하게 지내시고 보다 건강하게 지내게 되시길 바랍니다.

 

 

 

 

[ⓒ 2018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cafe.daum.net/truegooddisciples/OajJ/40  담임목사 이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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