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1:15-21)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15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16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18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 19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아멘)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십브라와 부아라는 히브리 산파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산파들은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하기 전에 살았던 산파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하나님을 어떻게 경외하였겠습니까?
애굽으로 이주해 살던 이스라엘 자손이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출애굽기 1장 7절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아멘.
이렇게 된 상황에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이들을 두려워하여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출애굽기 1장 8-11절 말씀입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이렇게 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감소될 줄 알았는데 학대하면 학대할수록 더 크게 번성하였습니다. 그러자 더 엄하게 일을 시켰습니다. 출애굽기 1장 12-14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애굽 왕은 이렇게 하고도 안심하지 못해 히브리 산파인 십브라와 부아에게 히브리 여인이 해산할 때 살펴보고 아들이면 죽이고 딸이면 살려두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1장 15-16절 말씀입니다.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그러나 산파들은 이러한 왕의 명령을 듣고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를 살려주었습니다. 그러자 애굽 왕이 산파들을 불러 어찌하여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고 다그쳤습니다. 산파들은 애굽 여인과는 다르게 히브리 여인이 건장하여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1장 17-19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산파들이 이렇게 하자 하나님께서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게 해주셨습니다. 아울러 하나님을 경외한 산파들의 집안도 흥왕하게 해주셨습니다. 출애굽기 1장 20-21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아멘.
자, 어떻습니까? 산파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경외하였다고 하였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1장 17절 말씀을 보면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라고 한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산파들이 왕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였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서슬이 시퍼런 대제국의 왕인 애굽 왕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어기게 된 겁니다.
산파들은 당장 목숨을 거두어갈 수 있는 눈에 보이는 왕보다는 까닥하면 목숨이 달아날 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였던 겁니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더 경외하였던 겁니다.
이렇게 산파들이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여 경외하게 되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번성하고 매우 강해질 뿐만 아니라 산파들의 집안도 흥왕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히브리 산파들처럼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모든 걸 아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경외하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겠습니까?
사람 사이에도 만만하면 두렵지 않게 될 겁니다. 그러므로 모든 면에서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가 되면 그때서야 머리를 숙이게 될 겁니다. 하나님과 사이에서도 그러한 게 필요한 겁니다.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낮아지게 되고 경외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먼저 영원부터 영원까지 그 모든 것을 훤히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지혜 면에서는 이 세상의 솔로몬 왕보다 더 뛰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러한 솔로몬 왕이 전도서에서 고백한 게 있습니다. 아무리 연구하고 살펴보아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도저히 모른다는 겁니다.
좀 길지만 전도서를 통해 말하고 있는 솔로몬 왕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전도서 7장 14절 말씀입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아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지만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한다는 겁니다. 8장 7절 말씀과 17절 말씀입니다.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아멘.
알지 못한다는 말씀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9장 1절 말씀입니다.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 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 아멘.
또한 9장 12절 말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 아멘.
10장 14-15절 말씀에서도 알지 못한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우매한 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나중에 일어날 일을 누가 그에게 알리리요. 우매한 자들의 수고는 자신을 피곤하게 할 뿐이라 그들은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함이니라.” 아멘.
마지막으로 11장 말씀에서 살펴보겠는데 2절 말씀과 5-6절 말씀입니다.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아멘.
이렇게 길게 살펴본 본 것은 사람은 아는 데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은 모르는 게 없다는 겁니다. 이와 같으므로 사람은 전지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경외하는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의 앎의 한계를 인정하시고 무궁하신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더 깊이 깨닫게 되셔서 하나님을 더욱 더 두려워하는 가운데 경외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 2018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cafe.daum.net/truegooddisciples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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