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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자료/기독자료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 세계 기독교의 동향과 한국교회에 드리는 조언

by 이서영 목사 2018. 12. 7.

세계 기독교의 동향과 한국교회에 드리는 조언

 

 

※ 이 글은 2013년 11월 8일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목사, 한복협)에서 '세계 기독교의 동향과 한국교회에 드리는 조언"이라는 주제로 발표회를 가졌는데 그 가운데 1980년 여의도 세계복음화대성회에서 강연했던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전 튀빙겐대학교 교수)가 발표한 내용입니다. 

 

세계 기독교의 동향

 

오늘의 서구 기독교가 심각한 영적인 위기에 처해 고통을 당하고 있는 반면 동양과 남반구의 교회들은 영적으로 건강하며 철저하고 광범한 세계선교와 복음화의 도구들이 되고 있다는 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아마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제10차 총회를 한국의 부산에서 개최한 중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WCC는 서구교회들의 약점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 영향은 후원의 감소로 인한 재정적인 결핍에 국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적이고 신학적인 자세에도 관련이 있습니다. 제네바의 지도자들은 서구교회들과 대변인들의 탈선적인 입장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첫째, 신앙과 윤리의 성경적인 기초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독론과 구원론과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대한 왜곡에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둘째, 전통적인 주류 교회들과 선교단체들이 복음화의 정력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치명적인 것은 서구 나라들 안에서 무신론적 인본주의가 교회들을 도전하고 있고 반 기독교적인 종교 혼합주의가 젊은 신자들의 마음을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세우신 일부일처 제도와 가정 제도가 무시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혼이 빈번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전통적인 결혼이 적당히 교제하면서 함께 사는 잡동사니 가정으로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동성애가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법적으로 받아 드려지기도 하고 교회들에 의해서 받아 드려지기도 합니다. 현대 신학자들은 동성애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또 하나의 결혼 제도라고 선언합니다.

 

이와 같은 어두운 그림이 우리들의 교회 안에 널리 퍼져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주로 고백하는, 복음주의적인 신앙을 포기하지 않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주 하나님의 십계명을 무효화하지 않는 소수의 신실한 자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하나의 중요한 운동은 '다른 복음은 없다' 고백운동입니다. 그것은 1966년에 시작된 운동인데, 현대 신학자들의 급진적인 성경 비판과 신약 학자 루돌프 불트만의 '비 신화화' 프로그램에 대한 변증법적인 응답으로 시작한 운동입니다. 1978년에 독일의 고백운동은 세계적으로 확장되어 런던에서 '국제 기독교 네트워크'가 설립되었습니다. 이것은 한국복음주의협의회와 상통한다고 생각되는데 우리는 한국복음주의협의회와 친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분명 서구교회의 위기는 서구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현대적인 신학 사상을 전달하고 불행하게도 이단적인 사상까지 전달하는 영향력이 있는 기관이 세계교회협의회(WCC)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제3세계 학생들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방법, 문서들을 보급하는 방법, 신학교들을 후원하는 방법, 여러 종류의 신학적인 모임들을 모이게 하는 방법 등으로 이단적인 사상까지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전적인 에큐메니칼 회의들의 높은 지위를 즐기면서 그들이 발견하고 결정하고 선언한 메시지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받아드려야 하고 존중하여야 하는 현대적인 신조들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르틴 루터가 1519년 라이프찌히에서 교황의 신학자 요하네스 엑크와의 논쟁에서 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황들과 에큐메니칼 회의들도 잘못을 범할 수 있고 역사적으로 여러 번 잘못을 범했습니다."

 

오늘의 독일교회 안에서 성경에 집중하는 목회자들과 장로들과 신학자들은 1966년부터 모든 교리적인 이탈과 윤리적인 비행은 총괄적인 위기의 한 가지 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자기 스스로 선택한 하나님과 그의 거룩한 말씀으로부터의 분리로 인한 영적인 굶주림입니다. 그러므로 병들어 죽어가는 교회에 있어 참으로 필요한 것은 몇 가지를 수정하거나 개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만으로는 교회를 치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서구교회들과 교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의 부으심을 새롭게 받아 참된 부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우리들의 부모들에게 약속하신 것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하신 것과 그리고 오순절 날 성령의 강림으로 이루신 것인 영생의 선물을 다시 발견해야 합니다.

 

'생명의 주님 - 우리들에게 정의와 평화를 주소서'

 

'영원한 생명', 이것과 관련해서 저는 여러분들이 제10차 WCC부산총회의 주제인 '생명의 주님 - 우리들에게 정의와 평화를 주소서'에 관심을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부산에 모인 교회의 대표들이 그들의 토의와 성명의 초점을 생명 자체가 되시고 유일하게 살아계시는 하나님께 둔 것은 올바른 일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과 동물의 생명과 식물의 생명 등 모든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그런데 WCC에 초청받은 지도자들과 신학자들이 생각하는 생명은 어떤 종류의 생명입니까? 저는 이와 같은 질문을 작년 중반, 제가 WCC의 새로운 선교 선언문을 받아 들었을 때 했습니다. 그 선언문의 제목은 '함께 생명을 향하여 : 변화하는 전망 안에서의 선교와 복음화'였습니다. 제가 이 문서를 분석하면서 저는 황당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선언문의 저자들이 성경이 가장 중요하게 구분하고 있는 두 종류의 생명, 즉 희랍어로 '비오스'라는 생명과 '조에'라는 생명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비오스'는 모든 살아있는 생물들이 공유하고 있는 생물학적인 생명을 의미하고, '조에'는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는데 이와 같이 참되고 영원한 생명은 갈보리의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 예수님의 속죄의 제사로 우리들에게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생명'이 영원하고 신적인 생명이라는 것은 요한복음에 나타난 중심적인 구속론적 개념입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이와 같은 귀중한 생명의 선물을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과 분리되어 죄악 가운데서 죽어가는 이방 세계에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교회에 주어진 성스러운 특권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부산총회와 준비문서 가운데서는 이와 같은 진리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총회에서 생명은 주로 세속적이고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이 두 가지로 나타난다는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인도하소서'라는 표현에 나타나 있습니다. 정의는 우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의를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독재정권에 의해서 박탈당한 시민권의 회복을 의미했습니다. 부산총회는 그와 같은 무자비한 제도와 행동들에 대한 분노를 나타낼 것으로, 그리고 가능하면 학대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행동을 취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저는 분명히 구약의 선지자들인 이사야와 아모스와 미가가 했던 것처럼 오늘의 교회가 선지자적인 사역을 하도록 부름 받았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약교회의 주된 사명은 아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교회의 사역이 사회 정치적인 선언이나 행동을 하는데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성경의 복음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데 있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있고,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궁핍한 사람들을 위해서, 특히 핍박 당하며 순교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간구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같은 일을 부산총회가 어느 정도 했고 준비 문서들도 어느 정도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참관자들과 제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부산총회와 총회를 준비한 사람들이 서울에서 불과 100마일 떨어져 있는 북한에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무자비한 방식으로 순교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부산에서 북한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도하거나 공감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총회의 준비자들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조정을 받는 북한 당국의 교회를 초청하려고 했습니다. 부산의 WCC총회가 북한의 고통당하는 형제, 자매들을 위한 목소리를 높였어야 했을 것입니다.

 

한국교회에 조언을 드립니다.

 

여러분, '영생'이란 말이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의미한다는 것을 깊이 파헤쳐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 11:25). 영생을 '하늘에 떠 있는 과자'라며 비현실적으로 생각하는 무신론적 막스주의자들의 조소에 귀를 막지 마십시오. 오히려 영생이 우리들에게 슬픔의 때에 위로를 가져다 줍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십시오. 또한 죽기까지 충성한 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하늘의 상급인 '생명의 면류관'(계 2:10)을 얻기 위해 세상의 생명을 희생한 순교자들의 간증을 기억하십시오. 핍박을 당해서 정의가 유린당한 북한의 형제자매들을 위해서 공개적으로 기도하십시오. 소리를 낼 수 없는 저들을 위해서 소리를 지르십시오.

 

2만 4000명의 초 문화적인 한국 선교사들이 170여 나라에서 수행하고 있는 화해의 사역을 강화하고 계속해서 지원하십시오. 그러나 지금은 동시에 이전에 기독교국들이었던 나라들을 유린한 반 기독교적인 세력들에게 노출된 한국을 재복음화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의 보좌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가르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월간고신 생명나무 Tree of Life. 2013년 12월호, pp. 97-101.)   

출처 : LBI 로고스성경교육원
글쓴이 : 이서영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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