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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교리강해

물세례와 거듭남의 성령세례와 충만함의 성령세례 (요 1:31, 3:7-8, 행 1:5)

by 이서영 목사 2020. 5. 20.

물세례와 거듭남의 성령세례와 충만함의 성령세례 (요 1:31, 3:7-8, 행 1:5) [교리성경강해 2020.6.7. 참좋은제자들교회 이서영 목사]

 

● 성경구절을 중심으로 교리적인 측면을 가미하여 파워포인트를 사용해 성경강해한 영상입니다.
● 유튜브: 로고스성경연구소  https://youtu.be/NJyDmIIrH_8

 

 

 

물세례와 거듭남의 성령세례와 충만함의 성령세례 (요 1:31, 3:7-8, 행 1:5) 

 

요 1: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요 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요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행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세례에는 물세례와 성령세례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세례에는 거듭남의 성령세례와 충만함의 성령세례가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교리적인 측면을 가미해서 성경구절을 중심으로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번째 주제는 물세례에 대한 것입니다. 물세례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려는 것입니다.

두번째 주제는 성령세례에 대한 것인데 거듭남에 대한 것입니다. 거듭남의 성령세례를 받을 때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주제는 성령세례에 대한 것인데 충만함에 대한 것입니다. 충만함의 성령세례를 받을 때 구원을 받은 자답게 사명을 감당하게 되고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세례에 대한 것을 성경구절을 중심으로 해서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번째 주제는 물세례와 성령세례 가운데 물세례에 대한 것입니다.

 

세례에는 물세례와 성령세례가 있고 성령세례에는 거듭남의 성령세례와 충만함의 성령세례가 있습니다.

이러한 세례 가운데 물세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물세례를 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물세례를 받는 이유는 이스라엘에 나타내려는 것입니다.

즉 교회의 공적인 신분으로 인정하고 공표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한 말을 보면 그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31절: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물세례는 나타냄의 표시인데 교회의 법적상 행정상 정식 구성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추지 말고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종교적으로나 행정적으로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천국의 실질적인 일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6-7절입니다.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이렇게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은 성령세례로 볼 수 있습니다. 물세례만 받아도 충분하다면 굳이 성령세례를 받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세례를 받아야 하나님 나라의 실제적인 구성원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실제적인 자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성령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세례를 받기만 하면 되는데 왜 물세례를 받아야 합니까? 물세례는 나타내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받아야 합니다. 성령세례를 받은 것을 공적으로 인정하고 나타내기에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눈에 보이는 물세례를 통해 교회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아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물세례를 받게 되면 공적으로 교인으로 인정을 받고 교회의 권리와 의무를 수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물세례도 성령세례에 못지 않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로 세례를 주고 물로 세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살펴볼 것이 하나 있습니다. 물세례와 성령세례의 시기에 대한 것입니다.

언제나 항상 동시에 이루어진다면 물세례도 받게 되고 성령세례도 받게 되니까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로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물세례를 받는 시기와 성령세례를 받는 시기가 일치하는 경우도 있고 물세례가 먼저이고 성령세례가 이후인 경우도 있고 성령세례가 먼저이고 물세례가 이후인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세례를 먼저 받은 이후에 물세례를 나중에 받게 된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47절: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사도 바울의 경우에도 성령세례를 받은 이후에 물세례를 받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9장 17-18절입니다.

9: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9: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이러한 경우를 사도행전에서 또 볼 수 있는데 10장 44-48절입니다.

10: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10: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10: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10:47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10: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이와는 반대로 물세례를 먼저 받은 이후에 성령세례를 나중에 받게 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8장 14-17절입니다.

8: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8:15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8: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8: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그리고 물세례는 아는데 성령세례는 알지 못하는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그 시점의 아볼로가 그러하였는데 사도행전 18장 24-25절입니다.

18: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18: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사도 바울이 이러한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안수하여 성령세례를 받도록 해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9장 1-6절입니다.

19: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19: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19: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19: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19: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이러하므로 세례를 받는 시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물세례만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세례를 받아야 하고 성령세례만 받는 것이 아니라 물세례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세례도 꼭 받으시고 성령세례도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모두 다 꼭 받게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번째 주제는 성령세례 가운데 거듭남의 성령세례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례에는 물세례와 성령세례가 있고 성령세례에는 거듭남의 성령세례와 충만함의 성령세례가 있습니다.

이러한 성령세례 가운데 거듭남의 성령세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러한 거듭남의 성령세례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성령님께서 동일하게 임하시게 됩니다. 이때 받게 되는 성령세례가 있는데 거듭남의 성령세례입니다.

이러한 거듭남의 성령세례는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해주시는 세례입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3장 7-8절입니다.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이러한 거듭남의 성령세례는 언제 받았는지 의식도 못하는 사이에 받게 됩니다. 어떠한 뚜렷한 표시가 나타나지 않아 알 수는 없으나 참된 성도라면 구원에 있어 필수인 거듭남의 성령세례를 모두 다 받게 됩니다.

거듭남의 성령세례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 그러한 거듭남에 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요 3:3-8).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3: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이처럼 성령님께서 거듭나게 해주시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6절을 보면 부모님으로부터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의 상태이기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성령님으로 거듭난 영의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절과 5절을 보면 성령님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부모님으로부터는 거듭나지 못하나 성령님으로는 거듭 태어날 수 있습니다.

8절을 보면 바람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듭나게 되므로 거듭난 날짜와 시간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거듭남의 성령세례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집니다. 그리하여 아빠 아버지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로마서 8장 14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로마서 8장 15절: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이러하므로 최우선적으로는 성령님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님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성령님으로 인치심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증해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22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에베소서 1장 13절: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에베소서 4장 30절: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인을 쳐주셨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원히 변함없는 나의 자녀라고 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한번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므로 중간에 탈락해서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되는 일은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 죽는 순간까지 죄를 짓지 않고 살면서 어릴 때부터 지은 죄를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회개할 수 있겠습니까?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떤 노력이나 선행으로는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단 한 사람도 있을 수 없습니다. 

있다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와는 아무 상관이 없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량해 주신 은혜에서 떨어진 자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만들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자가 되어버리는 것이 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 4절: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이러하므로 우리의 행위로는 아무도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선물로 은혜로 주신 믿음으로 말미암아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거듭나게 되면 마치 태어나면 호적에 올린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생명책에 기록이 됩니다. 그리하여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가게 되고 그 좋은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5절: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요한계시록 21장 27절: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이러하므로 성령님으로 거듭나고 인치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 일이 결코 없는 것입니다. 오직 은혜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유분방하게 살아도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을 받았으니까 지옥에 갈 일이 없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라고 해서 똑같은 자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지라도 회개하지 않고 반복해서 불순종하게 되면 친밀하게 지내는 자녀가 아니라 법적인 상태의 자녀로 머물 수는 있습니다.

천국과 구원의 확신도 들지 않고 신앙생활도 무기력하게 할 수 있습니다.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죄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도 있습니다. 분별력도 없으므로 세상 풍속에 따라 살아가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은 분명하나 마치 세상에 속한 자녀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세상 사람과 구분이 잘 되지 않고 때론 세상 사람보다 더 못할 수도 있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각 행위에 따라 상과 벌을 분명하게 갚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더라도 불순종하고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이 땅에서 생지옥을 겪게 됩니다.

그리하면 성경 말씀에 따라 잘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일반적인 은총을 받아 잘 되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자들보다 더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은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어야 하고 상을 주시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책 마지막 장에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 22장 7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22장 12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어떻습니까?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고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러한 것을 보면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그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으로 만족해 하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성령님을 충만하게 받게 되면 가능하게 됩니다.

이러하므로 물세례와 거듭남의 성령세례에서 머물지 말고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임하시면 받게 되는 충만함의 성령세례를 꼭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듭남의 성령세례를 받게 해 주신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깊이 감사드리시는 가운데 충만함의 성령세례도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모두 다 꼭 받게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세번째 주제는 성령세례 가운데 충만함의 성령세례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례에는 물세례와 성령세례가 있고 성령세례에는 거듭남의 성령세례와 충만함의 성령세례가 있습니다.

이러한 성령세례 가운데 충만함의 성령세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하시면 받게 되는 충만함의 성령세례를 받게 되면 성령님의 변혁과 은사와 열매와 율법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충만함의 성령세례로 충만해지면 근본적인 변혁이 일어나게 됩니다.

비전을 보고 꿈을 꾸게 됩니다.

(욜 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요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육적인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롬 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영안이 열려 보이게 됩니다.

(행 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고전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성경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충만함의 성령세례로 충만해지면 성령님의 은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주신 은혜대로 은사를 받게 됩니다(롬 12:6-8).

(12: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12: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12: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은사를 주십니다(고전 12:8-10).

(12: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12: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2: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몸된 교회에 은사를 주십니다(고전 12:28).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충만함의 성령세례로 충만해지면 성령님의 열매가 열리게 됩니다.

육체의 일은 천국을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갈 5:19-21).

(5: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5: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인격적인 성품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갈 5:22-23).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을 위하여 착한 일을 심게 됩니다(갈 6:7-8, 10).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6: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충만함의 성령세례로 충만해지면 율법을 성취하게 됩니다.

율례를 행하게 해 주십니다(겔 36:26-27).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36: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주십니다(롬 8:2-4).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8: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율법 아래에 있지 않게 해 주십니다(갈 5:16-18).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오늘 본문인 1장 5절입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물세례도 받아야 하지만 궁극적으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 가운데 거듭남의 성령세례는 구원에 있어 필수이므로 반드시 꼭 받아야 하는 세례입니다.

하지만 성령님으로 거듭난 상태로는 하나님의 자녀다워지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자라나야 합니다. 바뀌어야 하고 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그 다음 단계인 충만함의 성령세례를 꼭 받아야 합니다. 이러하므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엡 5:18)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충만함은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임하시는 충만의 정도에 따라 각각 다르게 나타납니다. 알 수 없는 거듭남의 성령세례와는 다르게 알 수 있게 됩니다.

받은 능력의 크기와 유형이 다르고 받게 되는 시기도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서서히 나타나기도 하고 서서히 변화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극적인 변혁이 일어나서 근본적인 변화와 혁신이 일어나기도 하고 극적인 회심도 하게 됩니다.

때론 열렬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도 하고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지혜와 총명이 임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성령으로 충만해질 수 있겠습니까? 다시 말씀드리면 충만함의 성령세례를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겠습니까?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님의 역사는 충만함의 성령세례를 받게 됨으로써 일어나게 된 역사입니다.

이러한 역사가 일어나게 된 시작점은 사도행전 2장 1-4절과 같이 오순절에 충만함의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고 충만함의 성령세례를 받게 된 시작점은 1장 12-14절처럼 모여서 전심으로 합심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이들이 모여서 합심기도를 드리게 된 이유를 오늘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1장 4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장 4절: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기다리라고 해서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님은 간절히 사모하고 구하는 자에게 임하시게 되므로 구하면서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1장 13절: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받으려면 모여서 간절히 기도하여야 하는데 그들이 그러한 기도를 드렸으므로 충만함의 성령세례를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렇게 간절히 사모하고 모여서 뜨겁게 간절히 기도를 드리면 충만함의 성령세례를 받게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살펴볼 것이 하나 있습니다. 대부분은 “성령 받으라”고 하면 병을 고치는 능력부터 떠올립니다. 그러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골고루 모두 사모하여야 합니다. 이른 바 능력이라고 불리는 성령의 은사만 사모할 것이 아니라 인격과 성품의 변화에 필수적인 성령의 열매도 부어 달라고 사모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보다 더 간절히 사모하여야 할 것은 진리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사모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말씀 순종의 능력은 오늘날 가장 취약한 능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가장 최우선적으로 보완해야 할 능력입니다.

전도의 능력이나 병고침의 능력 등을 받아 교회나 교역자나 성도가 외적으로는 크게 부흥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보면 실상은 모래 위의 집과 같이 허술하다는 것이 입증이 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무엇을 추구하면서 살아왔는지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셈입니다. 말씀에 뿌리내리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사모하고 받아야 할 능력이 무엇인지를 잘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 필요한 가장 큰 은사는 무엇입니까? 가장 큰 능력은 다름 아닌 말씀에 순종하는 말씀 순종의 능력입니다.

이러한 능력이 회복될 때 한국기독교와 한반도한민족이 회복될 것이고 세계를 살리는 한국기독교와 한반도한민족이 될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앞으로 “성령 받으라”고 하거나 “능력 받으라”고 하면 가장 최우선적으로 말씀 순종의 능력을 떠올리시길 바랍니다.

그러한 말씀 순종의 능력을 간절히 사모하시고 받게 해달라고 합심해서 힘써 부르짖으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령님께서 제대로 충만하게 임하시게 되면 이러한 말씀 순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참된 부흥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렇게 진리의 말씀이 제대로 작동하게 되면 자신의 이익이나 주장이나 사상이 우선하지 않게 됩니다. 오직 말씀이 기준이 됩니다. 분별력이 생기게 됩니다.

진리의 말씀에 따라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게 되므로 비성경적인 사상이나 정책에 대해서 옹호하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말씀에 순교하지 않으면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큰 능력과 은사가 있어도 분별력이 없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진리의 말씀보다는 자신의 생각이 앞서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자기 입맛에 맞게 말씀이 따라오도록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됩니다. 자기가 꺾여서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데 오히려 말씀을 꺾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세상 것과 과감하게 끊을 수 없게 됩니다. 세상 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가지 않고 땅을 보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에 자신이 꺾이면 이와는 반대가 됩니다. 세속화를 탈피하게 됩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지역이나 사상이나 욕심 등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목적으로 능력을 추구하게 되면 세상의 영광을 취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물질적인 해결에 필요한 능력을 추구하다 보면 세속화와 거대화를 추구할 수도 있고 능력과 업적과 명예와 재산과 건강을 자랑하게 될 위험성이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능력의 백미는 무엇입니까? 능력의 하이라이트는 무엇입니까?

아픈 것을 해결해주는 병고침도 필요하고 악한 영을 쫓아내 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질병과 악한 영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가난의 저주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이러한 것도 필요하지만 이러한 것에 치중하게 되면 앞서 말씀드린 대로 세속화의 늪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그 무엇보다 갈라디아서 5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가 필요합니다(갈 5:1, 16, 18, 25, 참고 3:13, 4:5).

율법의 종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행하게 되어 율법을 성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36장 27절을 보면 율법을 행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 36장 27절: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그동안 너무 은사 위주로 능력 위주로 치우쳐져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맞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말씀 순종의 능력입니다.

그동안 은사와 능력으로 많은 것을 해결 받고 부흥은 했으나 말씀 순종의 능력이 부족해서 분별력이 떨어지고 말씀에 꺾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앞으로는 말씀 순종의 능력을 받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오늘날 가장 취약한 부분은 어떤 것입니까? 은사 위주로 가다 보니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분은 어떤 부분입니까? 오늘날 더 요청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말씀에 순종하는 능력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해결해 나가는 성경적 세계관을 확립하고 무장하여야 합니다.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엡 6:17). 악한 날에 능히 대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하여야 하는데 말씀은 무기에 해당됩니다.

이와 같으므로 사도들이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을 쓰겠다고 하였을 것입니다(행 6:4). 그만큼 말씀이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전 분야가 살아나게 됩니다. 한국기독교를 비롯해 우리 모두가 살아나게 되고 한반도한민족이 살아나서 세계가 살아나게 됩니다.

아울러 말씀드릴 것은 거듭남의 성령세례는 한번 받으면 되지만 충만함의 성령세례는 충전을 받는 것처럼 계속 충만하게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충만함의 성령세례를 보다 더 충만하게 받게 되시길 바랍니다. 그 무엇보다도 말씀 순종의 능력을 더 많이 받게 되셔서 자신의 기준 때문에 말씀을 꺾어버리는 자가 아니라 자신이 말씀에 꺾여서 잘 순종하게 되는 그런 진정한 능력을 소유한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세 가지 주제를 총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세례에는 물세례와 성령세례가 있고 그 가운데 물세례는 나타냄의 세례를 의미합니다. 성령세례에는 거듭남의 성령세례와 충만함의 성령세례가 있습니다.

물세례는 교회의 행정상 공적인 일원이 되었다는 표시로 받게 되는 나타냄의 세례입니다.

이러하므로 물세례를 받게 되면 교회의 정식 교인이 되고 권한과 의무가 따르게 됩니다.

성령세례는 법적이고 행정적인 교인의 자격을 얻게 되는 물세례와는 다르게 실제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이 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세례 가운데 거듭남의 성령세례는 성령님의 중생의 역사에 대한 것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임하시게 되면 받게 되는 충만함의 성령세례는 성령님께서 일으켜 주시는 변혁과 은사와 열매와 율법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성령님의 변혁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면 비전을 보게 되고 영적인 상태로 되고 영안이 열리게 되고 성경말씀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니다.

성령님의 은사의 역사가 일어나면 사역에 있어 필요한 여러 가지 능력들이 각 사람의 상황에 따라 주어지게 됩니다.

성령님의 열매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면 성품에 있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성령님의 율법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행하게 됩니다. 율법을 성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렇게 말씀에 순종하는 능력이 오늘날 시대에 요청되고 있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세례도 받으시고 거듭남의 성령세례도 받으시고 충만함의 성령세례도 꼭 받게 되시길 바랍니다. 특별히 말씀 순종의 능력을 꼭 받게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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