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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교리강해

그리스도인의 생전과 생후와 사후 (롬 8:30)

by 이서영 목사 2020. 6. 4.

그리스도인의 생전과 생후와 사후 (롬 8:30) [교리성경강해 2020.6.4. 참좋은제자들교회 이서영 목사]

 

● 성경구절을 중심으로 교리적인 측면을 가미하여 파워포인트를 사용해 성경강해한 영상입니다.

● 영상과 원고는 제가 쓴 『한눈에 보는 그리스도인의 일생』 가운데 인용한 것입니다.

● 유튜브: 로고스성경연구소  https://youtu.be/EksjVMuJ4TQ

 

 

 

그리스도인의 생전과 생후와 사후 (롬 8:30)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모든 사람은 태어나서 살다가 죽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디서 와서 어떻게 살다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해서 이러한 것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 주제는 나는 어디서 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할 사람을 미리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에 자연인으로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정하심으로 언약을 받게 된 언약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주제는 나는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의롭다고 하셔서 이후로 의로운 존재로 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신 이후 중생인과 성화인과 견인인으로 현생을 의롭게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주제는 나는 어디로 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하셔서 죽은 이후에 영화롭게 살 수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죽은 이후에는 낙원인과 영화인으로 내생을 영화롭게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서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어디서 왔다가 어떻게 살다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질문은 인류의 역사 기간동안 계속 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살다가 죽었지만 이러한 질문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답을 알고 죽은 사람도 있고 모르고 죽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어디서 왔다가 어떻게 살다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적절한 대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앞으로 말씀드릴 내용은 제가 쓴 『한눈에 보는 그리스도인의 일생』 가운데 인용한 것입니다. 성경구절을 통독할 수 있도록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주제와 연관된 성경구절을 순서대로 선정해서 쓴 성경통독 부분은 제외하고, 핵심주제를 파악할 수 있도록 간략하게 쓴 개요 부분만 인용하였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내 인생의 여정과 삶에 대한 해답은 무엇인가? 나의 출생과 현생과 내생은 어떻게 되는가? 이번 기회를 통해 이러한 것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나를 아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입니다. 다른 사람이 대신 내 인생을 살아줄 수 없습니다. 함께 살고 있지만 결국은 각자 자신의 삶에 대해 결산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영생의 삶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영생은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으로 거듭날 때 한순간만 주어지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이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이후의 모든 과정이 포함된 것을 의미합니다.
영생은 천국에 가서 누리게 되는 내생만이 아닙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자녀로 출생한 이후부터 이미 시작됩니다. 영생이란 이 땅에서의 현생과 낙원과 천국에서의 내생을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영생은 비그리스도인이 겪게 되는 영벌과는 대비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흔히 기독교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이라는 말도 많이 듣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도 역시 많이 듣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말의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이러한 것을 알려면 먼저 기독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기독은 한자어로 基督인데 그리스도(Christ)를 의미합니다.
이와 같으므로 기독교(基督敎)는 그리스도교(Christianity)를 의미하고 기독교인(基督敎人)은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는 뜻이 됩니다.
기독은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기독교인이라고 하기도 하고 그리스도인으로 부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독 또는 그리스도는 누구를 가리키십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유일한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밝혀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와 같으므로 그리스도인이 되느냐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느냐의 중요한 분기점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기독교인이라 하고 또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기에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하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존재부터 알아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인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앞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죽은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일생에 대한 것을 살펴보기 위해 “나는 어디서 왔다가 어떻게 살다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주제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려고 합니다.
로마서 8장 30절을 보면 그리스도인의 일생에 대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리스도인의 생전과 생후와 사후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미리 정하신”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상황,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신 이후의 상황, “영화롭게”는 그리스도인이 죽은 이후의 상황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나는 어디서 왔다가”에 대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생전, “어떻게 살다가”는 그리스도인의 생후, “어디로 가는가”는 그리스도인의 사후에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인은 거듭난 이후부터는 영원불멸의 영원한 생명을 가진 영생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천국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천국인은 이 땅에 사는 동안 현세천국을 경험하면서 살게 되고 사후에는 중간천국인 낙원에서 살게 되고 최후 심판 이후에는 최종단계의 천국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살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존재를 첫번째 주제에서는 자연인과 언약인으로, 두번째 주제에서는 중생인과 성화인과 견인인으로, 세번째 주제에서는 낙원인과 영화인으로 나누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구체적인 언급은 각 장에서 설명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연인은 부모로부터 자연 상태로 출생하여 자연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언약인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선택하시고 구원해주시기로 언약하신 사람을 의미합니다.
중생인은 때가 되자 자연인 상태에서 언약하신 대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나게 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성화인은 중생한 사람이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하게 살아가고 있는 과정에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견인인은 중생한 사람으로서 성화인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끝까지 책임져주시고 이끌어주시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낙원인은 죽은 이후에 영혼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중간상태의 천국인 낙원에서 천국과 같은 영화를 누리고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영화인은 죽었던 몸이 부활하여 낙원에 있던 영혼과 합하여 영화롭게 변한 다음에 영화로운 최종단계의 천국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영화롭게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존재는 전환기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연인과 언약인 상태로 살다가, 때가 되자 다시 태어나서 중생인과 성화인과 견인인으로 전환되고, 그렇게 살다가 죽은 이후에는 낙원인으로 살다가, 세상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는 몸도 부활하여 영화인으로 전환되어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환기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권능과 지혜로 역사해주셔서 변혁이 일어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그리스도인의 일생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태초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과 언약을 입고 구원을 받아 하늘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중생의 구원을 받아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삶 속에서 성화의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현세의 천국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끝까지 책임지고 돌보아주시는 견인의 구원도 받고 있습니다.
죽은 이후에는 낙원의 구원도 받아 우리 영혼이 중간천국인 낙원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 몸이 부활하여 낙원에 있던 영혼과 합하여 영화롭게 변하게 되는 영화의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새 하늘 새 땅의 최종단계의 천국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영화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처럼 영원히 죽지 않고 영생하는 영생인과 현세와 내세의 천국을 누리게 되는 천국인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전달되는 방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믿음의 방편인 전도를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믿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격과 공로로 믿게 된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우리가 믿어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셔서 받게 된 것입니다.
사랑도 우리가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랑과 구원의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가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이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을 향해 떠나는 여행처럼 우리 역시 이러한 이야기를 기대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출발해 봅시다.

 

앞서 말씀드린 부분은 전체적인 서론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이제부터는 본론에 들어가겠습니다. 첫번째 주제부터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 주제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 상황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단계인데 그리 스도인으로 다시 태어나기 이전에 처해 있었던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미리 정하심을 받은 그리스도인에 대한 것인데 이러한 것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드리겠습니다. [자연인]과 [언약인]에 대한 것입니다.

 

먼저 [자연인]에 대한 것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자연인]에 대한 것은 모든 사람의 최후에 대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모두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최후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난 자연인은 모두가 죽게 됩니다. 그리고 모두 지옥에 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미리 정하심을 받고 예수님을 믿고 죽은 그리스도인은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가게 됩니다.
세상이 불공평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그 누구나 똑같이 공평합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남자나 여자나 노인이나 아이나 건강한 자나 아픈 자나 모두가 공평합니다. 그것은 죽음입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죽음을 피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모두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사람이라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고 해놓고서는 왜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사람은 죽는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불로초와 같은 것을 먹지 않아도 무조건 누구나 영원히 죽지 않고 영원히 삽니다.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사람들은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끝이 아닙니다.
죽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죽지만 반드시 다시 살아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살아나서 무조건 누구나 영원히 살게 되어 있습니다.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죽어도 다시 살아나서 영원히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된다니 이 얼마나 좋은 소식입니까?
그런데 다시 살아난 이후에 어떻게 되는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영원히 살기는 사는데 어디에서 영원히 살게 되느냐입니다.
다시 살아나게 되면 두 곳 가운데 한 곳으로 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 아니면 지옥입니다.
천국에 들어가 영원히 영생복락을 누리든지 아니면 지옥에 들어가 영원히 고통 가운데 비참하게 살든지 두 곳 가운데 한 곳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어떤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게 되고 어떤 사람은 지옥에 들어가게 됩니까?
기준은 하나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예수님을 믿느냐 예수님을 믿지 않느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살아 있을 때 예수님을 믿어서 영생복락의 천국에 들어가 그 좋은 천국에서 다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사십시다.
이러한 것을 보면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든 믿지 않는 비그리스도인이든 죽는 것은 똑같이 죽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서 똑같이 영생한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죽지 않고 영생한다는 것은 좋은 일인 것처럼 보이지만 각각 차원이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천국에서 행복하게 영원히 살게 되어 있고 비그리스도인은 지옥에서 영원히 불행하게 살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이렇게 되게 되어 있으므로 살아 있는 동안에 우리 모두 예수님을 믿어서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이러한 개요의 의미가 내포된 전도지를 직접 제작하여 전도하고 있는데 아래 전도지와 같습니다.
사람은 모두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사람이라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사람은 죽는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불로초와 같은 것을 먹지 않아도 무조건 누구나 영원히 죽지 않고 영원히 삽니다.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사람들은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끝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죽지만 반드시 다시 살아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죽어도 다시 살아나서 영원히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된다니 이 얼마나 좋은 소식입니까?
그런데 다시 살아난 이후에 어떻게 되는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다시 살아나면 두 곳 가운데 한 곳으로 가게 되어 있기 때문인데 천국과 지옥입니다.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든지 아니면 지옥에 들어가 영원히 비참하게 살든지 두 곳 가운데 한 곳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어떤 사람은 천국에 가고 어떤 사람은 지옥에 갑니까? 기준은 하나입니다. 이 세상에 살 때 예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가 살아 있을 때 예수님을 믿어서 영생복락의 천국에 들어가 그 좋은 천국에서 영원히 다함께 행복하게 사십시다.

 

이제부터는 [언약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언약인]은 언약의 상태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상황인데 구원을 받기로 작정한 언약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미리 정하심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진실로 사랑을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과 이웃으로부터 사랑받고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이 인류 역사에 있어서 왜곡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완벽한 사랑이 회복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해주시고 온전히 구원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하나님께서 태초에 그리스도인으로 선택해주시고 말씀을 통해 구원해주실 것을 언약해주셨습니다.
언약인은 이러한 하나님의 미리 정하심을 받게 되었으므로 그렇지 않은 자연인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언약을 받은 언약인은 언약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됩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고 예정을 받았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언약인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에 이미 미리 정하심을 받은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로부터 시작하신 그리스도인을 향한 이러한 사랑과 구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어디서 왔다가 어떻게 살다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 가운데 첫번째 주제인 “나는 어디서 왔다가”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전에 대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시기 이전에 자연인과 언약인으로 살게 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심으로 말미암아 자연인 상태에 머물지 않고 태초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었고 그리하여 구원을 언약 받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리시길 바라고, 미리 정하심을 받은 언약인으로서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말씀에 따라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어디서 왔다가 어떻게 살다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두번째 주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떻게 살다가”에 대한 것입니다.

 

두번째 주제는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의 상황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의롭다고 하신 단계인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의롭다함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드리겠습니다. [중생인]과 [성화인]과 [견인인]에 대한 것입니다.

 

먼저 [중생인]에 대한 것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중생인]에 대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에 대한 것입니다. 중생의 생활에 관한 것인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난 자연인의 상태로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자연인 상태에서 성령님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렇게 다시 태어난 사람을 중생인(重生人)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의롭다함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러한 중생인으로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그리스도인은 중생인으로서 중생의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생인이 되게 된 것은 스스로 중생하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님으로 거듭나게 해주셔서 중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생 즉 영원한 생명을 얻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중생인은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구원을 받아 이제 새로운 삶과 영원한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되었고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통해 부어주시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무엇보다 영원한 구원을 얻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중생인은 신분에 있어서의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신분에 있어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동안 자연인과 언약인의 상태로 있었는데 언약 받은 대로 때가 되자 실제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영생은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이후부터 영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생의 자격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구원을 받아 영생을 받고 영생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아 보이지만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눈으로 보고 만지는 육체는 동일하게 보이지만 아닙니다. 하늘에 속한 자로 살아가는 자와 땅에 속한 자로 사는 자는 차원이 다릅니다.
겉모습은 같아 보이지만 영적으로 보면 다른 존재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중생인은 하나님의 자녀로 하늘에 속한 시민권을 가지고 하늘에 앉힌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죽고 나면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죽는 것은 똑같이 죽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중생인의 영혼은 곧바로 중간천국인 낙원으로 가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지 못한 비중생인의 영혼은 곧바로 중간지옥인 음부로 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세상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죽을 때 영혼과 분리되고 사라졌던 각자의 몸이 다시 부활하여 영혼과 다시 결합하게 됩니다.
중생인은 영화로운 형태로 변화된 영화인이 되어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되고 비중생인 역시 몸이 부활하여 영혼과 결합을 하게 되지만 영화롭지 못한 채 영원히 지옥에서 비참하게 살게 됩니다.
이처럼 중생인은 중생 이후 영원히 죽지 않고 영생하게 되는 영생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이 땅에서는 현세의 천국을 누리다가 사후에는 중간천국인 낙원과 최종단계의 영원한 천국을 누리게 되는 천국인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성화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성화인]에 대한 것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것입니다. 성화의 생활에 관한 것인데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의롭다함을 받고 중생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동안은 죄의 본성이 우리 안에 남아 있습니다. 법적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칭의인이 되었지만 아직 완전한 형체의 영화인이 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는 완전해 질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성화를 통해 변화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화인으로서 전 생애를 통해 성화의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법적인 의인에서 실제적인 의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화인은 삶에서의 구원을 받습니다. 대신관계 뿐만 아니라 대아와 대인관계와 대사회와 대국가관계와 대환경관계에서 변화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대악령관계에 있어서는 대적하게 됩니다.
이러한 성화의 구원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계속 충만하게 받으면서 행할 때 점점 더 많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과 교회와 인도자와 예배와 같은 은혜의 방편을 힘입을 때 보다 더 장성하게 되고 능력 있게 되고 거룩하게 됩니다.
이러한 성화의 삶은 헛되게 사라져버리지 않고 심고 행한 대로 영원한 상급이 되어 현세와 내세에 되돌아옵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사는 동안 천국의 삶을 살게 하고 영원히 상급을 누리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견인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견인인]에 대한 것은 이 땅에 사는 동안 견인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것입니다. 견인의 생활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끝까지 받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의롭다함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영이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견인을 받습니다. 견인인은 견인에 있어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불멸할 수 없습니다. 구원의 대열에서 탈락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을 져주시고 끝까지 사랑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통해 견인해주시고, 성경을 통해 견인해주시고, 교회와 인도자 등을 통해 견인해주십니다.
우리의 반응과 순종을 통해 이루어지는 상급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분은 결코 달라질 수 없습니다. 영원하도록 변함없이 확고부동합니다.
어떤 분들은 구원의 확신이 없어서 기분에 따라 어떤 때는 지옥에 가고 어떤 때는 천국에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오락가락하지 않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다고 해도 구원 자체를 잃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의 기쁨과 평안은 누릴 수 없어도 이미 확정된 구원은 무효가 되지 않습니다. 마치 부모가 낳은 자녀를 부인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부모와 자녀 사이에 틈이 생기면 관계가 중단된 것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사이가 원만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와 자녀 사이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혈연관계는 변함이 없습니다. 부정하려고 해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떤 상황이라도 끊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은 영원히 변함이 없으십니다.
이렇게 구원을 확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신실하신지를 깨닫고 감사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이 얼마나 큰지 깨닫고 영광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평안하게 기쁘게 살게 됩니다.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이겨냅니다. 청지기임을 깨닫고 하늘에 속한 것을 위해 자원하여 봉사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약속 또한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과 말씀은 하나라도 남김없이 모두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편과 감정에 따라 흔들리지만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므로 꿋꿋하게 우리를 끝까지 사랑해주시고 구원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고 우리의 생명 또한 영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원히 보장을 받은 견인인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확정해주시기 위해 성령님으로 인을 쳐주신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해주셨듯이 오늘날에도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어디서 왔다가 어떻게 살다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 가운데 두번째 주제인 “어떻게 살다가”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후에 대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신 이후에 중생인과 성화인과 견인인으로 살게 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의롭다하심으로 말미암아 부르심을 받고 의롭다함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의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불러주시고 의롭게 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리시길 바라고, 부르심을 받고 의롭게 된 중생인과 성화인과 견인인으로서 말씀에 따라 의로운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어디서 왔다가 어떻게 살다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세번째 주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세번째 주제는 그리스도인이 죽은 이후의 상황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하시는 단계인데 그리스도인이 죽은 이후에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낙원과 천국에서 영화롭게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드리겠습니다. [낙원인]과 [영화인]에 대한 것입니다.

 

먼저 [낙원인]에 대한 것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낙원인]에 대한 것은 낙원의 입성에 관한 것인데 낙원에 들어가 낙원에서 영화를 누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낙원인에 대한 것은 세상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죽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후에 처하게 되는 중간상태에 관한 것입니다.
재림하시기 전에는 완전한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중간상태의 천국으로 있게 됩니다. 이런 상태를 중간천국으로 지칭하겠습니다.
이와는 다르게 예수님을 믿지 않는 비그리스도인들이 가게 되는 중간상태의 지옥도 있습니다. 이런 상태를 중간지옥이라고 지칭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살아 있는 동안에도 중간상태가 되기 때문에 이 땅에서도 중간천국과 중간지옥과 같은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사후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에 성화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순종과 불순종에 따른 중간천국과 중간지옥의 현상이기에 현세천국과 현세지옥으로 지칭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낙원인은 사후에 재림 전까지 낙원상태에 있어서의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때는 그리스도인이 비록 낙원에 가서 영화롭게 머물게 되지만 구원이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몸이 없기 때문입니다. 몸은 썩어서 사라져버리고 영혼만 낙원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재림하신 이후에 몸이 부활해서 영혼과 다시 합하여 영화롭게 되면 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인은 이러한 과정을 거친 그리스도인을 의미하는데 최후 심판 이후에 최종단계의 천국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 영원히 영화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에 비해 비그리스도인은 최후 심판 이후에 최종단계의 지옥인 불못에 들어가 영원히 비참하게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인 등에 대한 최종단계의 천국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대한 것은 다음 장에 설명해두었으므로 다음 장을 보시면 됩니다.
이러하므로 중간상태에 대한 것을 정리해보면 살아있는 동안에 겪게 되는 생후의 현세천국과 현세지옥이 있고 죽은 이후에 겪게 되는 사후의 중간천국과 중간지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낙원인에 대한 것도 정리해보면 사후에 중간천국인 낙원에 머물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후에 있는 중간상태에 대한 것을 누가복음 16장 19-31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부자는 비싸고 좋은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지만 거지는 헌데 투성이의 몸으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물로 버텼습니다.
그러나 부자든 거지든 죽음 앞에서는 공평했습니다. 똑같이 죽었습니다. 부자도 죽게 되었고 거지 나사로도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중간지옥인 음부에 가게 되었고 나사로는 중간낙원인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부자가 불꽃의 고통 가운데 괴로워하다가 나사로를 보고는 아브라함에게 말했습니다.
나사로를 보내 나사로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자기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사로를 다섯 형제에게 보내서 이 고통 받는 곳에는 오지 않도록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대답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서로 건너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가 살아나서 전해도 권함을 받지 않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낙원과 음부가 얼마나 좋고 나쁜지 그 차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보내 달라고 하는 것을 보면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다는 것이므로 아직 세상 끝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태는 세상 끝 날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중간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중간상태의 지옥인 음부와 중간상태의 천국인 낙원에 대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끝날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이전에 죽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이 겪게 될 사후의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후의 중간상태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낙원인과 음부인이 있습니다.
낙원인은 중간천국인 낙원에 들어간 그리스도인을 의미하고 음부인은 중간지옥인 음부에 들어간 비그리스도인을 의미합니다.

 

이제부터는 [영화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영화인]은 천국의 입성에 관한 것인데 영화롭게 변화를 받은 이후에 천국에 들어가 영원히 영화롭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모든 사람은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든 비그리스도인이든 모두 흙이 되어버린 죽은 몸이 다시 살아납니다.
비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영혼과 몸이 다시 결합하여 최후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인 불못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영혼은 완벽하게 변화를 받은 영화로운 몸과 결합한 다음에 최종단계의 천국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을 믿고 생명책에 기록된 그리스도인은 영화인이 되어 최종단계의 천국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됩니다. 영화로운 형체로 부활해서 하나님 보좌 앞에 서게 됩니다.
이처럼 영화인은 영화에 있어서의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때 비로소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의 완성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 다음에 완성되기 시작해서 부활하여 최후 심판할 때 영화의 구원이 완성됩니다.
그리하여 지긋지긋한 죄와 영원히 결별하고 영원히 햇빛보다 더 빛나고 깨끗한 모습으로 살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좋은 세계가 기다리고 있기에 죽음조차 무서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뻐할 수 있는 것은 몸이 부활한 이후에 완벽한 영화로운 형체로 변화하여 완벽한 최종단계의 천국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서 영화로운 삶을 영원히 살기 때문입니다.
질병과 눈물과 한숨과 고통과 괴로움, 연약함과 죄가 하나도 없는 곳에서 삽니다.
그동안 끊임없이 괴롭히던 공중권세 잡은 이 세상의 임금인 마귀와 그의 추종자들이 사로잡혀 최종단계의 지옥인 불못으로 분리됩니다.
대신관계의 온전한 회복뿐만 아니라 대아와 대인관계가 온전히 회복하게 됩니다. 또한 환경도 온전하게 회복되어 모든 것이 온전하게 되어 온전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의 몸도 영도 마음도 정신도 생각도, 즉 육체도 영혼도 그 모든 것이 회복되어 점도 티도 없이 완벽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꿈꾸고 오셨던 일들이 드디어 실현이 된 것입니다. 영원토록 항상 함께 참되고 완벽한 사랑을 나누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온전한 복을 받고 서로 나누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이 땅에 사는 동안 심고 쌓아놓은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생각과 행동에 따라 상급이 주어집니다. 우리의 눈물과 수고와 헌신과 희생을 갚아주십니다.
이후로는 우리는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 것입니다. 이웃과도 천사와도 자연과도 온전한 교제를 누릴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랑의 하늘나라는 완성이 되고 그 사랑을 변함없이 영원토록 나누게 됩니다.
이제까지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어디서 왔다가 어떻게 살다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 가운데 마지막 세번째 주제인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후에 대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이 죽은 이후에 낙원인과 영화인으로 영화를 누리게 하신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영화를 누리게 된 그리스도인이 낙원과 천국에서 영화를 누리게 된다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리시길 바라고, 낙원과 천국에서 영화를 누리게 되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가운데 말씀에 따라 삶과 사역을 잘 감당해나가시길 바랍니다.

 

이제까지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어디서 왔다가 어떻게 살다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생전에는 자연인과 언약인으로 있다가 생후에는 중생인과 성화인과 견인인으로 살다가 사후에는 낙원인과 영화인으로 살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 세 가지 주제를 총정리하면서 마치겠습니다.

 

인생에서 최고의 복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해주셔서 모든 것을 용서해주시고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독생자 예수님과 더불어 모든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얻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구원을 얻어 우리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복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과 구원과 영생의 복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점점 더 큰 복을 받고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복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큰 복을 주시기 위해 사랑과 구원의 여정을 계획하시고 신실하게 지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좋은 복을 주시려고 만물을 새롭게 하시고 새 창조까지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난과 손해를 보면서도 이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바로 이 영화로운 삶을 믿고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때론 힘들고 지치고 답답할지라도 이러한 소망 가운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현실의 세상과 비교할 때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고 부족해 보여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이 내가 머물 곳이 아님을 알고 나그네와 청지기로 살아갑니다. 잠시 지나고 나면 고통도 슬픔도 우울도 없는 참 좋은 곳에서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그 모든 것을 쌓지 않고 영원한 하늘 창고에 보화를 쌓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맹목적인 부유함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의 진정한 성공과 번영을 추구합니다.
성화인으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면서 삽니다. 그래서 몸과 본성을 이기고 거룩하게 살고 받은 사랑과 구원과 복을 나누기도 하면서 예배드리고 사명 감당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애타게 기다리시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어떤 모습으로 만나면 좋겠습니까? 우리와 함께 영원한 사랑을 나누시려고 우리의 거처를 마련해놓으시고 우리를 데리러 오시는 예수님을 어떤 마음으로 만나면 좋겠습니까? 그때까지 우리는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면 좋겠습니까?
지금 이 시간 모든 것을 일일이 설명해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인도와 성경이 필요하고 교회가 필요하고 인도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은혜의 방편을 통해 하나씩 가르쳐주시고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통해 잘 배우시고 따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더욱 더 놀라운 사랑과 구원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작정하심과 부르심을 받고 칭의인이 되었고 영생인과 천국인이 되어 이 땅에서는 성화의 삶을 살다가 낙원과 천국에서는 영화를 누리는 하늘나라 시민이 되었습니다. 생전에는 자연인과 언약인으로 있다가 생후에는 중생인과 성화인과 견인인으로 살다가 사후에는 낙원인과 영화인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해주신 삼위일체의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그리고 로마서 1장 7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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