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눅 5:1-11) 상식과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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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과 말씀, 이 가운데 어느 것을 우선하여야 합니까? 어느 것을 삶 가운데 판단기준으로 삼아야 합니까? 상식을 무시하지도 신봉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 얼마나 좋겠습니까? 상식이 통해야 합니다. 하지만 상식이라고 해서 다 올바른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선하기도 하지만 부패한 본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의 상식이 왜곡되어 있다면 그 상식은 올바른 상식이 아닙니다. 분별력을 잃은 상식입니다.
•이러한 상식은 성경에서 벗어난 경우가 있습니다. 변질된 상식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길을 따라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갑니다. 그러면서도 그 길이 올바른 길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가게 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는 길이라고 해서 맞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인기 있고 유명한 사람이 주장한다고 해도 아닙니다.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남색”(sodomy)이라는 단어는 창세기에 나오는 “소돔(sodom)”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소돔에 대하여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두 천사들이 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모여와 집을 에워싸고 겁탈하려고 하였습니다.
•동성애가 지극히 정상이고 잘하는 일이라면 천사들이 와서 심판하지 않고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시민들이여!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이 인권을 존중하여 동성애를 인정하고 동성애를 하고 있는 것을 참으로 귀하게 보고 크게 칭찬을 하고 돌아오라고 하였소”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였습니다. 칭찬이 아니라 유황불에 타버리는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성경은 소돔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3장 10절과 13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어떻습니까? 칭찬을 하였습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이어서 창세기 18장 20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어떤 부르짖음을 말합니까? 기도입니까? 아닙니다. “내 놔라. 상관하여야겠다”라는 부르짖음입니다.
•창세기 19장 5절에서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상관하다”는 “יָדַע(야다)”인데 “알다, 이해하다, 성적 관계를 가지다”라는 뜻입니다. 이곳에서 의미하는 것은 남자와의 성적인 관계를 통해 아는 것을 뜻합니다.
•롯은 그들의 악행을 막아내려고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사랑하는 두 딸을 대신 내줄 정도로 안간힘을 썼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막아서는 롯을 밀어내고 문을 부수려고 하였습니다(창 19:6-9). 이 끔찍한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을 어떻게 평가하겠습니까? 창세기 19장 13절입니다.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그들의 최후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창세기 19장 24-2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상식은 통해야 합니다. 하지만 변질되고 왜곡된 상식은 위험합니다. 인류를 파멸에 빠뜨립니다.
•특히 동성애도 그러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동성애를 옹호하고 합법화하고 확산시키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이러한 세대일수록 우리 성도는 더욱 더 상식에 대한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 말씀에 비추어 판단해야 합니다.
•넓은 길, 수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라고 해서 올바른 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상식이 통해야 하지만 변질되고 왜곡된 상식은 해를 끼치기에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간다고 해서 따라가지 않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안 믿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길이신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길로 간다고 해서 그 길이 천국길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 길은 지옥행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지옥 가는 길은 결코 천국길이 될 수 없습니다.
•지옥행길은 끝에 가면 지옥에 도착하게 되고, 천국행길은 끝에 가면 천국에 도착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천국행길로 갈 수 있습니다.
•지옥행길과 천국길행으로 좌우로 갈리는 이정표에 이러한 글이 적혀 있다고 가정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믿지 않으시면 좌측 지옥행길로 갑니다. 믿으시면 우측 천국길행으로 갑니다.”
•이것을 보고 ‘웃기는 소리하고 있네!’라고 비웃으면서 좌측길로 가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르르 간다고 해서 따라갔다가는 모두 지옥에 떨어집니다.
•결론은 무엇입니까? 결론은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경 말씀에 따라가는 길이 안전합니다. 생명을 줍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로 인도해주고 천국의 삶을 사는 길로 이끌어줍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의지하여 살아야 합니다! 내 생각, 내 판단, 내 능력, 내 지혜, 내 조건, 내 모습을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식을 의지하면 상식 수준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하지만 말씀을 의지하면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상식을 초월해 버리시는 하나님의 큰 역사와 영광을 보게 되고 참여하게 됩니다.
•마르다는 처음엔 상식을 가지고 판단했습니다. 나사로 오빠가 죽은 지 벌써 나흘이나 되었는데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랬는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는 오빠가 죽었다는 상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하라는 대로 따랐습니다.
•그러자 죽은 나사로 오빠가 다시 살아나는 영광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큰 믿음은 큰 역사가 일어나게 하고 큰 역사는 큰 영광을 보게 합니다. 마르다는 상식이 아니라 말씀을 의지하였기에 큰 영광을 보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39-44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상식대로 판단하면 마르다가 처음에 한 말이 맞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데 어떻게 살아날 수 있단 말인가?’ 마르다는 정확하게 보고 있습니다.
•다만 상식은 보았지만 다시 살리시는 예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영광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뒤늦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식보다 말씀을 믿게 되었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따랐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큰 능력과 영광을 보게 된 것입니다.
•마리아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처녀가 아기를 낳을 수 있습니까? 낳지 못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처녀가 어떻게 아기를 낳을 수 있습니까?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말씀은 처녀가 아기를 낳는다고 하였습니다. 어느 것이 맞습니까? 마리아는 상식이 아니라 말씀을 선택하였습니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말씀을 믿으니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게 되셨습니다.
•누가복음 1장 26-38절입니다.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마리아가 끝끝내 상식을 고집하였다면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하지도 낳지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다른 누군가를 통해 역사되었을 것이고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하는 지극히 큰 하나님의 영광을 입지 못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습니다. 마리아는 이 말씀을 굳게 믿었습니다. 자신의 상식이 아니라 가브리엘 천사가 전해 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자신의 상식만 가지고 살았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영광을 목격하지도 체험하지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식보다 말씀을 선택하였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을 보게 된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 역시 상식보다 말씀을 의지함으로 인해 큰 영광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5장 1-11절입니다.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베드로 일행은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나 잡은 것이 없었지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하니.” 그러자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상식대로 사는 사람은 상식에 갇혀 삽니다. 상식에 머뭅니다. 하지만 베드로처럼 말씀에 비추어 사는 사람은 상식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상식은 상식을 낳고 말씀은 영광을 낳습니다. 우리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잘 알고 있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은 음식이 열두 바구니가 가득 차도록 남았습니다.
•마가복음 6장 35-44절입니다.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이 역시 상식으로는 맞지 않습니다. 맞지 않아도 한참이나 맞지 않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어떻게 남자만 오천 명이 먹을 수 있습니까? 오천 명이 먹은 것 빼고 남은 것만 계산하더라도 열두 바구니입니다.
•남은 바구니만 보더라도 상식에 맞지 않습니다. 한 바구니만 생각해 보더라도 어떻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가득 채울 수 있겠습니까? 우리 상식으로는 한 바구니에 다 채우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남자만 오천 명에다가 다 먹고 열두 바구니나 남길 수 있습니까?
•수량 면에서만 아닙니다. 금전 면에서도 비상식입니다. 이백 데나리온을 현재가치로 일당 칠만 원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1천 4백만 원입니다. 현대적으로 계산해보면 식사 한 끼에 오천 원 잡더라도 오천 명이면 무려 2천 5백만 원이나 됩니다.
•이 돈은 정말 큰 돈입니다. 식사값으로 어떻게 그런 돈을 마련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시자 제자들은 “무슨 돈이 있어 음식을 장만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제자들이 틀린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말입니다. 다만 상식을 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상식을 뒤엎고 말씀을 의지하여 나누어주자 신기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보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은 한때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음식값을 계산해보아야 하나? 아니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어야 하나?’
•우리는 결말을 보고 있기에 당연히 “말씀을 믿어야 한다”라고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 삶 가운데 실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가정하면 그때에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도 상식과 말씀 사이에서 갈등할 것입니다. 어쩌면 상식이 앞설 때가 더 많은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상식은 우리로 하여금 초월적인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목격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지만 그 상식을 제치고 말씀을 의지하면 보게 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자세는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기이한 심부름을 시키셨습니다. 마태복음 17장 24-27절의 장면입니다.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이후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상상에 맡깁니다.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이때 상식이 통합니까? 안 통합니다. 어떻게 물고기 입에서 돈을 얻어서 성전세를 낸다는 말입니까? 하지만 말씀은 거침이 없습니다. 상식을 뛰어넘습니다. 상식을 깨뜨려 버립니다.
•상식은 상식 안의 결과를 가져다 주고 말씀은 상식 밖의 결과를 가져오게 합니다. 성경은 온통 말씀에 의지하므로 상식 밖의 일이 일어난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가는 이야기는 상식 밖의 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일시적인 맨붕 현상이 일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삼년 동안 밤낮 없이 따라다니다가 예수님이 갑자기 안 계시니까 그런 현상이 일어났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당장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생각나지 않아 각자 일터로 흩어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 2절과 3절입니다.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그럴 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실 때 그대로 따라 했더니 물고기가 가득 잡혔습니다.
•21장 5-6절과 11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 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상식으로는 빈 그물, 빈 배가 맞습니다. 삼 년 간 잠시 어부일을 쉬었다고 하나 여전히 전문적으로 잘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밤새 아무 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빈 그물로, 빈 배로 돌아오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지만 말씀은 백 오십 세 마리나 잡게 만듭니다. 백 오십 세 마리나 가득 찬 그물을 손에 잡게 합니다. 백 오십 세 마리나 가득 찬 배를 타고 돌아오게 합니다.
•우리 인생도 상식이 아니라 말씀을 의지하면 빈 손, 빈 삶이 아니라 가득 차게 됩니다.
•상식대로 하면 천국에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 상식대로 생각하면 지옥도 천국도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역사적으로 살았던 한 인물로 봅니다. 성인으로 하나의 종교를 창시한 사람 정도로 압니다.
•그러나 상식이 아니라 말씀을 의지하니까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올바른 상식은 활용하는 것이 좋고 그릇된 상식은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일반인의 입장에서 본 상식에 대한 자세입니다. 성도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말씀을 믿고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성경대로 믿으면 지옥이 있는 것이 믿어지고 천국이 있는 것도 믿어집니다. 예수님도 믿어져서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아 이루 말할 수 없는 그 좋은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것은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의지하면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가는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공허에서 충만으로, 빈곤에서 풍성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병약에서 건강으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능하지 못한 말씀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처럼 우리도 “말씀대로 이루어 주옵소서”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상식을 너무 무시하지도 말고 너무 신봉하지도 말고 말씀을 굳게 믿고 말씀에 비추어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말씀대로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셔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보게 되고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증거할 때도 마찬가지의 원리가 적용됩니다. 전도도 상식대로 전도하면 전도할 수 없게 됩니다. ‘너는 이래서 안 된다. 너는 저래서 안 된다’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너는 죄가 너무 많아 안 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도 대상에는 구분이 없습니다. 상식을 뛰어넘어야 전도할 수 있게 됩니다.
•사도행전 10장 9-16절입니다.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거룩하려면 상식적으로는 먹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방인은 불결하다. 유대인만 성결하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럴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닙니다. 상식이 기준이 아니라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잡아 먹으라.” 이방인도 구원받습니다. 이후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전도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동서고금 각계각층 상관없이 전도해야 합니다. “너는 너무 죄를 많이 지어서 불결하니까 안 된다.” 그게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상식의 잣대로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의지하여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식을 무턱대고 따라가지 않고 말씀을 의지하고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베드로가 한때 감옥에 갇혀 있을 때입니다. 사도행전 12장 1-10절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말씀을 듣고 따라나서니까 그렇게도 삼엄하고 굳게 닫혔던 문도 스르르 열려버렸습니다.
•우리 앞을 막고 있는 닫힌 문도 그렇게 활짝 열립니다. 무엇이 가로 막고 있습니까? 상식대로 하면 갇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따라나서면 풀려납니다. 활짝 열립니다. 벗어납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와 베드로가 상식대로 하였으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상식을 넘어 말씀을 의지하였기에 기적이 일어났고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보게 되었고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식을 무시하지도 신봉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변질되고 왜곡된 상식은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올바른 상식은 적극 활용하여 선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성경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를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지혜롭게 행하므로 상식에 갇혀 살지 않고 말씀이 가져다 주는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우리 가운데 많이 나타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보시면서 살아가시고 그 능력과 영광에 참여하시면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 오늘 말씀드린 것은 2014년 10월 19일자로 참좋은제자들교회 주일설교 게시판에 “(눅 5:1-11) 상식과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게시한 것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파워포인트로 새롭게 만든 것이며 그러한 것을 유튜브에 올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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