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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주일설교

생명책 (계 20:12~15)

by 이서영 목사 2015. 7. 17.

생명책 (계 20:12~15)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탄생에 기여한 강제수용소의 생존자 레오폴드 페이지(Leopold Page)가 2001년 3월 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에서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2001년 3월 14일 CNN을 통해 방송되었습니다.

 

폴란드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페이지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가 나치에 의해 강제수용소에 수감된 뒤 독일인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Oscar Schindler: 1908-1974)의 도움을 받아 그가 운영하는 무기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그 덕에 그는 쉰들러의 무기 공장에서 유대인 1,100백 명과 일하던 중 아내와 함께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미국 로스앤젤레스 비버리힐즈에서 가죽상점을 운영하던 페이지는 40여 년 동안 상점을 방문하는 작가들에게 쉰들러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나 아무도 흥미를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페이지의 끈질긴 노력으로 1980년 서류가방을 사기 위해 상점에 들른 호주 소설가 토머스 케넬리(Thomas Keneally)에게 부탁하자, 그는 페이지의 진술을 바탕으로 1982년 소설 ‘쉰들러 리스트’를 써서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페이지는 여기에 거치지 않고 이어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게 매주 전화를 걸어 “이 이야기로 아카데미상을 탈 수 있다”며 영화제작을 끈질기게 설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페이지의 끈질긴 설득에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영화 "쉰들러 리스트"가 탄생된 것입니다. 페이지의 예상대로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1993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 등 7개 부문을 휩쓸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유대인들의 시신을 불태우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불못에 던져지는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그런데 불못에 던져지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생명책에 기록된 여부입니다. 쉰들러 리스트에 올라가 있는 유대인은 살아남았지만 리스트에 없는 유대인은 비참하게 죽어갔습니다. 그러기에 영화에서 “이 명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부” 라고 했습니다. 영화의 끝 부분을 보면 쉰들러가 1,100명이나 구했지만 자기가 타고 온 자동차를 팔았으면 열 명의 생명을 더 구할 수 있었는데 팔지 못해서 귀한 생명을 구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하면서 흐느껴 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슨 명부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까? 생명부가 아니라 살생부를 가지고 살지는 않는지요? 원망하고 죽이고 싶은 사람, 끝까지 손 봐야할 사람은 많은데 생명부는 빈칸인 상태는 아닌지요? 내가 책임지고 끝까지 살려내야 할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빠진 것은 아닌지요? 그러므로 생명을 살리지 않고 자꾸만 해치고 죽이는 살생부는 불태워버리고 이제부터는 마음속에 생명부를 품고 삽시다. 내가 가진 열정과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해 살려내어야 할 이름들을 생명부의 빈칸에 채워나가시길 바랍니다.

 

보통 전도는 특정한 사람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전도해야 합니다. 방법은 직접적인 방법과 간접적으로 후원을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가는 선교사, 보내는 선교사” 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내든지 가든지 성도라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전도해야 합니다. 은사와 여건과 기타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전도하는 방법이 다르지만 적극적으로 열성적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이단은 극성입니다. 죽기 살기로 전도(?)합니다.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자기 생명을 죽이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일인데도 자신의 온 몸과 마음과 물질을 바쳐 헌신하고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요? 참된 생명의 성도이면서도 거짓된 이단 성도보다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라면 전도를 세 끼 밥을 먹듯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전도를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는 있지만 전도는 성도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하루 일과 중의 한 가지입니다.

 

그러나 전도가 교회를 부흥시킨다고 해서 전도해서는 안 됩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전도해야 합니다. 생명이 우선이고 생명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귀신을 쫓아내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 10:20)고 했습니다. 우리 이름이, 내 이름이 생명책에 빠졌다면 이 땅에 아무리 남부럽지 않게 살아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이름 역시,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 가까운 사람의 이름도 생명책에 올라가도록 해야 합니다. 이 일을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책은 사랑에 관한 책입니다. 왜 사랑의 책인가요?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에게서 사랑을 빼고 성경에서 사랑을 빼면 사랑의 책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사랑하사 생명책에 기록해주시고 구원해주시고, 우리는 이웃의 생명을 사랑하사 전도하여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을 도와주는 사랑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이 가장 큰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요 14:21). 전도 명령은 어명입니다. 어명을 받았으면 사약인 줄 알고도 먹고 지킵니다. 우리 모두는 복음을 전파하라는 어명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왕, 나의 왕”으로 많이 부릅니다. 실제로 그럴까요? 예수님께서 복을 주시고 구원해주실 때는 왕이시지만 부담스러운 것을 지시하실 땐 왕으로 여기지 않고 슬쩍 무시해버리지는 않는지요?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과 전도하라는 말씀은 못 들은척하지는 않는지요? 우리는 생명 구원에 대한 임무를 망각할 때가 많습니다. 어명을 무시할 때도 많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요일 4:20). 이웃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무엇일까요? 지옥에 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웃에게 전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는 최고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하면서 정작 그 사람의 생명과 영혼 구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면 진실로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전도하여 생명책에 기록되도록 도움을 주어서 이웃을 사랑하고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게 됨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독일의 히틀러를 반대한 본 회퍼 목사님은 어느 날 이런 환상을 보았다고 합니다. 히틀러가 심판대 앞에서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세계가 있는 줄 알았다면 이런 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회퍼는 히틀러를 끌어내리려고 했지만 불쌍히 여겨 전도하지 않았던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생명 구원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전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왜 내게 생명을 주시고 재능을 주시고 건강과 시간과 물질을 주셨을까요? 사도 바울은 내가 받은 사명은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인데 내 생명조차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고 했습니다(행 20:24). 하나님께서 나에게 생명을 주신 것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전도는 특별한 직분을 가진 사람만 전도하는 것 아닙니다. 정해진 사람만 전도하는 것도 아닙니다. 시간과 장소도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성도라면 필수적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이처럼 성도가 되었다면 전도는 피할 수 없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합니다. 고통과 부담과 스트레스가 아니라 즐거워지도록 해야 합니다. “전도가 신난다. 전도가 재미있다”는 생각으로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해도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소홀히 한다면 그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본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필수 전공과목의 학점을 따지 못해 졸업을 못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본분에 대해 잘 말씀하셨습니다. (막 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그러므로 초대교회는 전도했습니다. (행 5: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전도가 빠진 인생은 실패작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도가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전도하여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하여, 생명책에 기록되도록 하면 첫째, 영원히 빛나는 면류관을 받습니다(단 12:3).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동참함으로써 그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영원히 별과 같이 빛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전도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도자임을 명심하고 항상 복음을 전파하면 예수님께서 영광의 면류관을 우리 머리에 씌어주실 것입니다.

 

둘째, 전도하면 참된 기쁨을 거두게 됩니다(시 126:6). 우리는 지금 무슨 기쁨으로 살아가나요? 그냥 인생살이가 잘 되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기뻐하나요? 남부럽지 않게 사니까 기쁜가요? 그 재미로 사나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 되어야 하고 잘 살아야 하는 이유는 생명 구원에 있습니다. 이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살아야 합니다. 영혼을 추수하는 기쁨으로, 생명을 살리는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전도하면 우리는 마음속에 뿌듯함과 샘솟는 기쁨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전도하면 죄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겔 33:9). 신구약 성경 구절을 보면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전도하면 이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는 명령을 어기는 죄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복음 증거의 명령을 어긴 것은 영혼 사랑의 계명을 어긴 것이기에 큰 죄입니다. 단순히 도덕적인 죄보다 더 심각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복음 증거하지 않으면 화가 미친다고 한 것입니다(고전 9:16). 그러나 전도하게 되면 이러한 사랑의 계명과 복음 전파의 계명을 지키게 되므로 죄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넷째, 전도하여 생명책에 기록되도록 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랑에 감동되어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빌 4:3). 그리고 귀한 생명을 얻은 이웃은 그 사랑에 깊이 감사하게 됩니다(롬 16:4). 생명을 구출 받은 사람들이 쉰들러에게 선물을 드리며 몰려들어 감사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생부가 아닌 생명책에 올리기 위해 직간접적으로 헌신하고 희생하고 후원한 것은 결코 헛되지 않고 아름다운 열매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하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당신이 전해준 예수님 때문에 감사드린다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더욱 더 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적극 후원해주시고 힘을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2010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27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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