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함께 하는 것 (아 2:10~13)
생이별의 아픔을 겪어 보셨습니까? 생이별은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프게 합니다. 요즈음 코리아 드림과 한류 덕분에 아시아인과의 국제결혼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가족과 생이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머나먼 타국에 왔기에 손쉽게 고국에 가서 친정 식구들을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눈물 흘립니까? 왜 가슴 아파합니까? 이 모든 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미워하면 ‘꼴도 보기 싫은데 참 잘 떠나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사랑하기에 떨어져 사는 것이 가슴 아픈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하면 함께 하려고 합니다. 사랑하면 잠시도 떨어지기 싫어합니다. 데이트할 때 생각나십니까? 실컷 만나놓고도 떨어지기 싫어서 서로 집까지 마중해줍니다. 떨어지기 싫다는 것입니다. 함께 있고 싶다는 것입니다. 집에 가서도 또 전화를 합니다. 그러다가 “자기 없이는 도저히 못 살겠어" 하면서 항상 함께 있으려고 결혼합니다.
창세기 29장 20절을 보면,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백성을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그들을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그들과 함께 하시는 시간을 칠년을 하루 같이 여기시고 계십니다.
신명기 33장 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의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 아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사랑하심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을 찾아와서 한 말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10장 9절입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당신을 기뻐하사 이스라엘 왕위에 올리셨고 여호와께서 영원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왕으로 삼아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셨도다.” 아멘. 하나님께서 영원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신다면 어떻게 나라 없이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말라기 1장 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있는데 사랑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조건을 따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가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참된 사랑을 하려면 조건과 허물이 눈에 더 크게 보이면 안 됩니다. 결혼할 때든, 직장을 얻든, 교회를 선택하든 조건을 내세우면 시작부터 불행이 시작하게 됩니다. 이것저것 따지는 것이 많아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조건이 채워지지 않으면 상대방이 자꾸만 꼴이 보기가 싫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사랑할 때 행복은 시작됩니다. 사랑하게 되면 조건과 허물은 눈에 보이지 않게 됩니다. 뛰어넘게 됩니다. 감싸 안게 됩니다. 오히려 예뻐 보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은 조건을 따지지 않고 허물을 들추지 않는 사랑입니다. 사랑하니까 예뻐 보이고 돈이든 외모든 능력이든 직장이든 그런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조건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조건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얼마든지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사랑하는 사람과 늘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들뿐입니다. 삶을 함께 나누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어디든 같이 가고 싶고 함께 일하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기에 어디든 함께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그만 병이 나고 말았습니다. 본문 2장 5절입니다.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 5장 8절 역시 이것을 말해줍니다. “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얼마나 사랑했는지 병이 났습니다. 얼마만큼 사랑하기에 병이 날 정도일까요? 그것은 어디든 함께 있고 싶어 하는 만큼입니다.
아가서는 이와 같은 애틋한 남녀 간의 사랑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우리의 사랑을 은유적으로 말해주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아가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보다 더 사랑해주시고 계십니다. 스바냐 3장 17절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아멘.
하나님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요한일서 4장 9,10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아멘. 하나님은 나를 위해 목숨을 건 사랑을 하셨습니다. 나의 조건과 죄와 허물의 상태와 아무런 상관없이 사랑해주신 것입니다.
이 사랑은 일시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인간끼리의 사랑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죽음이 갈라놓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니까 헤어지기 싫어도 죽음은 갈라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영원합니다. 로마서 8장 38,39절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아멘.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만 받고 끝내지 말라고 하십니다. 에베소서 5장 2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아멘.
그렇다면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첫째, 고린도전서 16장 14절을 보면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 일 중심 아니라 사랑의 동기로 해야 합니다. 둘째,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벧전 4:8). 조건과 허물을 따지 않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미우면 들추게 되지만 사랑하면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이러한 콩깍지 사랑을 할 때 서로 사랑이 무르익을 수가 있습니다.
셋째, 서로 종노릇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아멘.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것이라면 주인처럼 사랑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방은 주인이고 나는 종입니다. 시키는 주체가 다릅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주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면서 사랑하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상대방을 더욱 더 힘들게 만들고 오히려 원성하도록 만듭니다. 그러므로 지혜롭게 사랑하길 바랍니다.
이제 마치려고 합니다. 사랑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고, 우리들의 사랑은 목숨이 붙어있는 동안 함께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조건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사랑하면서 아름다운 사랑의 동행을 하시길 바랍니다.
[2010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29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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