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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주일설교

모든 일을 사랑으로 (고전 16:14)

by 이서영 목사 2015. 7. 17.

모든 일을 사랑으로 (고전 16:14)

 

멋진 음식점에서 잘 차려놓은 음식을 먹습니다. 그런데 맛있게 잘 먹었는데 그때뿐입니다. 음식을 먹고 돌아서면 무언가 허전합니다. 아름다운 경치를 잘 구경하고 와도 마찬가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호화롭고 그림 같은 집에서 살아도, 멋진 자가용을 타고 다녀도, 은행에 예금을 잔뜩 쌓아두어도, 하루 종일 걸어가도 끝이 없는 부동산을 가지고 있어도, 이상하게 무언가 허전합니다.

 

그 무엇을 하든 우리의 빈 마음은 잘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빠졌기에 그리도 허전한가요? 우리의 마음에 두 가지가 빠지면 허전해집니다. 먼저 하나님이 빠지면 허전합니다. 인간은 마음속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도록 창조되었는데 하나님이 빠지면 허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늘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나머지 한 가지는 무엇일까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왜 허전할까요? 실컷 먹지 못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폭식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먹어도 해결 받지 못합니다. 여전히 허전합니다. 앞서 말씀 드린 재산 역시 허전한 마음을 달래지 못합니다. 외모를 예쁘게 고치고 꾸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뿐입니다. 무엇이 부족해서 허전할까요? 이것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랑입니다. 육체적인 모든 조건과 환경적인 모든 조건을 잘 갖추고도 여전히 허전한 것은 사랑이 빠졌기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사랑을 거부하고 인간으로부터 오는 사랑을 받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 사랑이 없어서 허전한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지금 얼마나 살기 좋아졌습니까? 얼마나 부유해졌고 얼마나 예뻐졌습니까? 동네에 한 대밖에 없는 전화기가 지금은 아이들 손에까지 전화기가 들려져 있을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과거보다 왜 더 못살겠다고 하지요? 갈수록 현실을 비관하는 사람들이 왜 더 늘어나고 있지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인간의 사랑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좋은 조건과 환경은 주어졌지만 더 힘들게 살고 더 허전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으면 허전하지 않습니다. 기쁘고 힘이 납니다. 그런데 인간만 사랑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물도 식물도 사랑받을 때 윤기가 흐르고 잘 자라납니다. 사람도 사랑이 빠지면 까칠해집니다. 모습도 까칠해지고 성격도 까칠해집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으면 부드러워지고 기쁩니다. 건강하고 행복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랑이 우리의 삶 가운데 넘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사랑은 받기만 하지 않고 사랑은 흘러가기도 합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이웃으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또한 “당신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입니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끼리 서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여러 가지 은사를 말하고 나서 가장 좋은 은사를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그 은사가 무엇입니까? 무슨 신기한 일을 하는 사람일까요? 그것보다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은사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13장을 시작하면서 사랑이 없으면 나머지 은사는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유익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13장 마지막에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롬 13:10)이라고 한 것입니다.

 

참깨를 쥐어짜면 참기름이 나옵니다. 그러면 우리를 쥐어짜면 무엇이 나올까요? 그렇다면 성경책을 쥐어짜면 무엇이 나올까요?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성경책은 러브 스토리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빠진 성경책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쥐어짜면 독한 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나오도록 하십시다.  그러기 위해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서, 주님을 향한 사랑이 뜨거워지고, 한 영혼 한 영혼을 향한 사랑이 뜨거워지십시다.

 

1. 사랑이 뜨거우면 전도합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우리에게 전도하셨습니다. 구약시대를 통해 전도하시고,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을 보내셔서 직접 전도하셨습니다. 오늘날은 성령님과 주님의 심부름꾼을 통해 전도해주십니다. 이 모든 전도의 동기는 사랑입니다. 우리를 향한 사랑이 뜨거우시기에 구원해주시려고 복음을 전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영혼을 향한 사랑이 뜨거우면 전도합니다. 그러므로 전도가 짐이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먼저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면 주고 싶고 또 주고 싶어 합니다. 줘도 줘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더 주고 싶어 합니다. 사랑이 뜨거워지면 그렇게 하고도 남습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뜨거우면 그 영혼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습니다. 그러면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열정이 살아납니다. 가지고 있는 기간과 재능과 물질로 섬깁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뜨거운지 하나뿐인 아들을 주셨습니다. 거기다가 다른 그 모든 것도 아낌없이 쏟아부어주셨고,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부어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32절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자신의 제자들을 향한 사랑이 뜨거우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3장 1절에 그 사랑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살과 피를 비롯해서 모든 것을 다 바쳐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도 한 영혼을 향한 사랑이 뜨거워지면 그 영혼을 위해 우리 자신의 모든 것을 끝까지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사랑이 뜨거우면 됩니다. 전도 못하는 것을 억지로 전도하느라 짐을 지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을 사랑하므로 기쁘게 전도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뜨겁지 못하다고 여겨지십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십시다. “주님, 저도 한 영혼을 향한 사랑이 뜨거워지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에게도 주님의 그 사랑을 가득 채워주시옵소서.”

 

그런 다음에 한 영혼을 한 영혼을 향한 사랑이 뜨거워지기를 애 쓰시기 바랍니다. 애를 써야 애가 나옵니다. 뱃속에 애가 잉태되지 않았는데 애 낳는 것을 보셨어요? 모세가 어떻게 태어났지요? 출애굽기 2장 2절을 보면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출 6:20) 모세를 잉태했기에 모세를 낳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태어나셨습니까? 마태복음 1장 18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는데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잉태하셨기에 태어나셨습니다.

 

이처럼 잉태해야 낳을 수 있습니다. 전도가 잘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마음속에 잉태한 전도대상자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에 영혼을 품고 있지 않는데 어떻게 낳을 수가 있겠어요? 전도대상자를 품고 있어야 때가 되면 출산하지 않겠어요? 그러므로 사랑이 뜨거워지면 전도할 것입니다. 감동이 전해져서  교회에 나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전도대상자를 향한 사랑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단 한 명의 태신자라도 품고 기도하면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야 합니다. 그 영혼을 향한 사랑이 뜨거우면 주님께서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건강하게 낳을 때까지 끝까지 품고 끝까지 돌볼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해 전도하지 마십시다. 한 영혼 한 영혼을 향한 사랑이 뜨거워져서 한 영혼 한 영혼을 마음속에 품고 잉태하십시다.

 

2. 사랑이 뜨거우면 양육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우리를 이제까지 돌보아주시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구약을 통해, 예수님을 통해 가르쳐주시고 돌보아 주셨습니다. 지금도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그렇게 하십니다. 앞으로 영원토록 책임지시고 양육해주십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를 향한 사랑이 뜨겁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을 주셨고, 지금도 주시고, 앞으로도 계속 끝임 없이 주실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아들을 아끼지 않으셨고, 성자 예수님은 자신이 살과 피를 우리를 위해 남김없이 주셨고, 보혜사 성령님은 지금도 쉬지 않고 우리를 위해 수고해주시고 계십니다. 

    

우리도 한 영혼을 향한 사랑이 뜨거우면 양육합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사랑이 가득하면 돌봅니다. 지옥에 갈 것을 뻔히 알고도 무덤덤하지 않습니다. 필사적으로 막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사랑한다면 건져냅니다. 사랑하면 잃어버린 자녀를 찢어지는 마음으로 찾아다닙니다. 그릇된 길로 가면 구경만하지 않습니다. 좋은 것을 가르쳐주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줍니다. 고생하는 것 뻔히 보고도 모른척하지 않습니다.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도와줍니다. 베풀어줍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랑이 뜨거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뜨거워져서 한 영혼 한 영혼을 잘 양육하십시다.

 

3. 사랑이 뜨거우면 교회가 즐겁습니다.

 

교회에 무엇 때문에 다니시지요?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그냥 왔다 갔다 하면 교회가 짐이 됩니다. 그러나 주님을 향한 사랑이 뜨거우면 교회에 나오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기쁜지 모릅니다. 주님의 머리와 몸이 되는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충성하는 것을 행복해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향한 사랑이 뜨거워지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영혼을 향한 사랑이 뜨거우면 성도들을 만나는 것이 반가워서 기다려질 정도가 됩니다. 그 영혼을 사랑하면 그 성도와 함께 신앙생활을 나누고 싶어 합니다. 서로 사랑하면 함께 있고 싶어 합니다. 헤어지기 싫어합니다. 넌센스 퀴즈입니다. “보내기 싫으면 어떻게 합니까?” 가위나 바위를 내면 됩니다. 사랑하면 보내기 싫어하고 꼭 붙어 다니고 싶어 합니다. 사랑하면 모든 삶과 일을 함께 하고 싶어 합니다. 사랑이 뜨거워지면 이렇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이 뜨거워져서 교회에 다니는 것이 즐겁고 신나십시다.

 

4. 사랑이 뜨거우면 사는 것이 만족합니다.

 

사랑하면 동물도 식물도 잘 자랍니다. 감동적인 영화나 드라마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애틋한 사랑입니다. 사랑이 빠지면 감동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애절할수록 감동을 깊이 받습니다. 사람을 울리는 것은 사랑이 가져다주는 감동입니다. 이렇게 사랑이 넘치면 살 맛이 납니다. 행복합니다. 일이 신이 납니다. 잘 됩니다. 건강합니다. 사랑이 묘약입니다.

 

“돈과 건강이 없어도 된다.” 아닙니다. 어느 정도 있을수록 좋은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다 갖출 수는 없습니다. 어디까지 돈을 가져야 하고 어디까지 건강을 갖추어야 만족할 수 있겠어요? 어느 정도까지는 좋아할 수 있으나 만족하지는 못합니다. 끝까지 추구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되면 허전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빈자리는 오직 하나님만이, 사랑이 뜨거워지면 채울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랑받기 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빈부귀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랑 결핍증에 걸려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더 주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지고 그 사랑으로 이웃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주님의 사랑으로 뜨거워져서,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는 교회와 가정과 일터를 만드십시다.

 

 

[2011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75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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