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하시는 하나님 (빌 2:12,13)
오늘은 제헌절입니다. 국경일로 정했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적으로 중요한 날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국경일은 몇 개일까요? 2004년까지는 4개였고, 2005년부터는 한글날이 추가되어 5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4개는 무엇일까요? 3·1절, 광복절, 개천절, 그리고 한 개는요? 앞에서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제헌절입니다.
제헌절이 얼마나 중요하기에 국경일로 정했을까요? 1848년 7월 17일에 헌법이 제정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기에 중요합니다.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한 헌법을 제정한 날이기에 역사적인 날이 된 것입니다. 일제 치하부터 시작된 임시정부가 국가가 되려면 국호를 정하고 헌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나라는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국가 설립의 요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나라가 없으면 세계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대한민국이란 국가는 없습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주민등록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나라는 무엇으로 세워질까요?” 요즈음 유행하는 말은 경제입니다. 경제가 일어서면 나라가 일어서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경제가 매우 중요한 것은 맞습니다. 경제가 일어서야 합니다. 그러나 경제가 만능이 되고 경제가 원칙이 없으면 안 됩니다.
아무리 경제가 일어서도 투명경제, 공정 경제, 가치 경제, 분배 경제가 되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경제는 기형적이 되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됩니다. 힘 있고 수단 좋은 사람이 경제를 휘어잡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경제가 일어서면 나라도 일어서고, 직장도 가정도 일어선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경제가 올바르게 건강하게 일어서야 합니다. 이러한 경제를 일으키려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움직이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똑바로 서야 합니다. 그럴 때 투명 경제, 공정 경제, 가치 경제, 분배 경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법입니다. 나라가 서려면 경제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경제가 올바로 작동하려면 법이 바로 서있어야 합니다.
법이 바로 세워지고 법을 제대로 지킬 때 경제도 일어서고 모든 분야도 일어섭니다. 신문과 방송이 전하는 뉴스를 보면 오늘날 부정부패가 사회 각 분야에 널리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도덕보다는, 법보다는 수단과 방법이 앞서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수단과 방법은 일시적으로는 잘 살게 해줍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경제 침체와 같은 불황을 부메랑처럼 맞게 됩니다. 나만 살아나면 된다고 하지만 결국은 함께 고통 받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잘 살려고 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잘 살려고 한다면 잘 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행동의 원리와 법부터 바로 세워야 합니다. 어떤 분은 법이도 산다고 하십니다. “양심대로 살면 되지”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 양심도 다릅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 양심이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양심의 기준이 서로 다릅니다. 그러므로 양심에 맡겨두면 어디로 끌고 가겠습니까?
껌을 씹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데 이 껌은 입안에 있을 때는 기분 좋게 만듭니다만 입 바깥으로 나가면 사정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떤 분은 껌을 꺼낸 다음 종이를 호주머니에 보관합니다. 껌을 씹고 난 다음에 종이에 싸서 휴지통에 버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껌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아무 곳에나 뱉어버리는 분이 일부 계십니다. 그러면 보기에도 흉하고 신발에 붙으면 기분이 많이 나빠집니다. 찍찍 붙는 껌을 자기가 밟아도 기분나빠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심도 믿을 게 못 됩니다. 그러기에 공통적으로 서로 지키자고 하는 법이 필요합니다. 서로의 편안함과 질서를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아시아 최대의 법치국가요 선진 국가인 싱가포르에 가서는 절대로 껌을 씹으면 안 됩니다. 벌금이 35만원이고, 재차 적발되면 70만원에서 140만원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서울시에서 껌을 뱉으면 3만원에서 5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됩니다(강남 종로 중구 등은 5만원, 광진구 중랑구 등은 3만원). 2010년 9월 이전에는 담배꽁초와 휴지만 무단투기로 보았지만 이후로 법이 개정되어 껌도 해당됩니다.
법이란 서로간의 약속입니다. 법은 양심을 통제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것을 통제합니다. 그리고 법은 힘이 없는 약자를 보호합니다. 선의의 공정한 경쟁을 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법이 바로선 나라는 선진국입니다. 그러나 후진국으로 갈수록 법은 있으나 마나입니다. 그러나 선진국으로 갈수록 법은 엄격하게 지켜집니다. 자율적으로 지킵니다. 이처럼 법이 바로 선 나라는 결과적으로 경제도 살고, 물가도 안정되고, 사회도 안정되고, 복지도 실현됩니다.
그런데 어느 나라든 국가의 최고의 법은 헌법입니다. 그러므로 이 헌법 조항이 중요합니다. 모든 법의 정신이 되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이념도 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세워질까요? 물론 우선적으로 백성과 영토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가 되려면 역시 법이 있어야 합니다. 법, 즉 율법이라고 하는 성경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법 가운데 최고의 법은 무엇일까요? 모든 법의 어머니격인 모법은 십계명입니다. 이 십계명은 성경 말씀의 헌법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이 십계명은 하나님 나라의 방향과 정신을 말해줍니다.
출애굽한 이후 이스라엘은 나라로 세워지기 위해서 법이 필요했습니다. 거의 2백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민족이 영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질서정연하게 살아가기 위해 법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를 위해 법을 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의 핵심원리를 십계명에 담아 친히 돌판에 써서 모세에게 주었습니다. 두 번째까지 친히 써서 주셨다는 것은 십계명이 일반적인 법이 아니라 매우 특수한 법이요 귀중한 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법궤 안에 보관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각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도록 내버려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뒤죽박죽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우리를 세워주는 것도 율법, 즉 성경 말씀입니다. 출애굽한 이후의 백성, 즉 구원을 받은 이후의 사람은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순종할까요? 하나님 나라의 법을 알아야 순종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하라, 무엇을 하지 말라”는 법을 알아야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십계명부터 시작해서 성경 말씀을 하나씩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 가운데 최고의 법은 십계명입니다. 그 정신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 나라인 천국을 세우는 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법을 지킵니다. 법을 잘 지킨다는 것은 사랑을 잘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롬 13:10). 껌을 아무 곳에 버리지 않습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고전 13:6). 부정부패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또한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합니다(고전 13:5). 자신의 주장만 늘어놓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입니다.
이것이 법을 지키는 것인데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잘 살게 합니다. 이러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롬 13:10)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랑과 법은 너와 나, 우리 모두가 서로 간의 약속을 잘 지켜서 함께 편안하게 잘 지내고 함께 잘 살게 만듭니다. 이처럼 법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너와 나, 우리 모두를 위한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와의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이 살아있는 국가는 선진국입니다. 그들은 선진 시민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 하나님의 국민도 하나님 나라의 선진 시민입니다. 우리 모두가 선진 시민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법을 지키기는 해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을 잘 지켜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선진 시민이 되고 싶은데 역시 잘 되지 않습니다. 법이 있고 성경 말씀이 있어도 마치 무용지물과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고백하며 탄식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그런데 사도 바울이 비결을 발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했습니다. 육신이 약해서 율법을 잘 지킬 수 없는 것을 아들인 예수님의 육신에 죄를 지우심으로 해결해 놓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님을 따라 행하므로 율법이 요구하는 법을 이룰 수 있도록 길을 터주신 것입니다(롬 8:1-4). 이후로 성령님과 함께 행하면 법을 잘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그 비결로 법을 지키고 사명도 잘 감당했습니다. 골로새서 1장 29절을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그렇게 살았으며 또한 우리도 그렇게 살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이 본문 12절에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한 것처럼 사도 바울이 없는 지금 우리도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때 말하는 구원은 자격의 구원이 아니라 삶의 구원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을 얻는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다음에 구원 받은 사람으로 살아갈 때 삶 속에서 구원받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은 선물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믿게 해주셔서 믿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공로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이후의 삶은 인간의 공로와 상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공경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여 자기 자신이 자신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삶의 구원에 있어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여전히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일어서게 하십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주저앉아 있지 않도록 건져주십니다. 질병, 경제, 가정, 앞길, 생업, 학업, 인간관계 등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도와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연약해서 신앙생활을 잘하지 못하고 특히 성경 말씀을 잘 지키지 못하는 것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데 잘 지키지 못합니다. 인간의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내주신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지키도록 해주셨습니다. 이것은 이미 구약에서부터 예고하신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7). 성령을 보내어주겠으니 성령을 따라 율법을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선진 시민은 종교적이고 신비적인 방식으로 자기 몸을 괴롭게 하면서 경건하게 살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셔서 행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경건하게 살려고 애씁니다. 성령님께서 행하시도록 의지하고 기대하면서 힘을 다합니다. 그러므로 행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고 기대하십시다. 성령님께서 오늘, 내일, 이번 주에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역사하실지 기대하십시다.
성령 하나님은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마음 안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성령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함께 동행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차이는 있습니다. 어떤 분은 성령님과 적극적인 교제로 실제적으로 함께 살고 있습니다. 법적인 부부가 아니라 실제적인 부부로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법적인 부부처럼 성령님이 마음속에 계시는 것을 의식조차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장하기까지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식하든 못하든 예수님을 믿고 천국 시민이 되고 영생을 얻었다면 그 사람 안에는 성령님께서 내주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의지하십시다. 기대하십시다. 성령님께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하십니다. 도와주십니다. 그리하여 잘 지킬 수 없는 성경 말씀도 잘 지키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주위 환경이 좋아지고 주위 사람도 변하게 하십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성령님께서 바꾸어 놓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이와 같이 행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고 기대하실 줄로 믿습니다.
모세가 출애굽할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 앞에서 심히 두려워 떨었습니다. 심지어 애굽에 있었으면 목숨은 붙어 있을 수 있었는데 이 광야로 끌어내어 여기서 죽게 하느냐고 원망까지 했습니다. 모세는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 14:13). 아멘. 성령님께서 행하셔서 우리의 힘들고 절망적인 삶도 구원해주시는 것을 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역시 하나님은 행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전해주었습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렘 33:2).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특히 우리 안에도 계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잘 행할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 행할 수 있도록 하시는지 세 가지만 간략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을 생각나게 해주십니다. 성경 말씀을 모르고 잘 행할 수 없습니다. 성경 말씀이 생각나야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보고 들은 성경 말씀을 필요할 때마다 생각나게 해주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이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아멘.
2)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게 하십니다. 생각만 하고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런데 생각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행할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그리하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받는”(롬 2:6, 시 62:12, 마 16:27, 계 22:12) 순종의 축복과 순종의 상급을 누리도록 하십니다. 에스겔 36장 27절입니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아멘. 오늘 본문 13절에서도 역시 말해주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3)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게 하십니다. 생각나서 행동에 옮기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행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많이 보았으면 전하게 됩니다. 많은 체험적인 신앙은 살아계시고 행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제발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자꾸만 말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4장 31절을 보면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아멘. 요한복음 15장 2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성령이 자신을 증거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아멘.
사도 바울은 자신의 학식과 재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도하지 않았다고 고백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1-5). 아멘.
살아계신 하나님은 꾸어다놓은 보릿자루가 아닙니다. 함께 동행하시면서 행하십니다. 그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말씀을 지키게 하시고, 말씀을 증언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우리를 바르게 세워주시고, 나라도 경제도 가정도 교회도 똑바로 세워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기쁘게 행하시도록 하십시다. 행하시는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대하는 가운데 힘써 행하십시다.
[2011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78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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