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고전 13:6)
런던 올림픽이 중반에 든 오늘 현재 한국이 종합 4위입니다. 한 때는 3위까지 올랐던 적도 있었습니다. 대단한 성적이요 놀라운 성적입니다. 이러한 성적을 올리게 된 것은 금메달 9개, 은메달 3개, 동메달 5개를 땄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메달을 딴 선수도 감독도 코치도 선수단도, 국내에서 열심히 응원하고 있는 우리 국민 모두도 크게 기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기뻐하는 것이 많습니다. 요즘엔 체중 감량에 성공하면 얼싸안고 서로 기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무엇이 있지요? 내집 마련, 개업, 확장, 입학, 졸업, 취업, 승진, 결혼, 출산, 각종 시험 합격, 당선 등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뻐하는 것은 이처럼 많습니다. 이런 기쁜 일들이 우리의 삶 가운데 많이 일어날수록 좋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과 우리 가정과 하는 일에 기쁜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성도는 이러한 것을 기뻐하는 가운데 근본적으로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을 할 때 더 큰 참된 기쁨이 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와 함께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살펴본 사랑과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랑과도 크게 다릅니다.
사랑은 어떤 것이라고 하였습니까? 이미 살펴본 대로 “하라는 것 하고 하지 말라는 것 하지 않으면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라는 것은 무엇이지요? 오래 참는 것과 온유(친절)한 것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은요? 시기, 자랑, 교만, 무례, 자기의 유익(것), 성내는 것, 악한 것을 생각하는 것, 불의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라고 하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소 전혀 다른 주장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이 무슨 사랑이냐?’,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하고 사랑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냐?’ 얼마든지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진리를 기뻐하는 것과 사랑은 전혀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사랑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 어떻게 사랑일까요?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할 때 예수님께서 응대하시는 장면이 요한복음 18장 37절에서 38절에 나옵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이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진리에 대해 증언하려고 오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진리가 무엇이냐는 빌라도의 질문에 대답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진리가 무엇인지 몰라서 대답하지 않으신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그동안 진리에 대해 많이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진리라고 증거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또한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라고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7절입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도 진리의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진리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진리를 떠나서 존재하실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라(요일 4:8)고 하셨습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중요한 속성 가운데 하나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진리이시기도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진리와 사랑을 떠나서 존재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안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설교에 대한 문제, 당파와 소송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성찬의 문제와 부활의 문제와 헌금의 문제도 등장했습니다. 또한 우상에 바친 제물과 각종 영적 은사의 문제도 나타났습니다. 결혼과 음행의 문제도 생겼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진리로 든든히 세우고 사랑으로 회복시키려고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진리 안에서 사랑의 정신으로 연합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다보니 바울이 쓴 다른 서신들처럼 교리부분과 적용부분이 명확하게 구분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와 논쟁에 대한 답변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론 엄한 내용이 담긴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로 사랑으로 권고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랑의 계명인 것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사랑은 성경의 완성입니다. 또 다른 표현을 하자면 사랑은 진리의 완성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떠난 사랑이 있을 수 없고 성경을 떠난 사랑은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진리를 떠난 사랑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진리와 사랑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진리를 이루어나갈 때 그만큼 사랑도 만들어져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사랑과 진리와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랑과 진리가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십니까?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 어떻게 사랑일까요? 도대체 진리가 무엇이기에 진리를 기뻐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할까요? 진리는 사랑이란 주제와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진리와 사랑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진리를 행하는 것이 사랑에 해당되고 사랑을 행하는 것이 진리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는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진리와 함께 기뻐할 수 있을까요?
본문에서 말하는 사랑은 진리 안에서의 사랑을 말합니다. 진리 안에서의 사랑은 특별한 사랑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은 구속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오직 진리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진리 안에서의 사랑은 세상이 말하고 있는 사랑을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이 쉽게 가르쳐줄 수 없는 사랑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사랑하고 싶지 않은 대상을 향해 의지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바로 그런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자신을 초월하는 사랑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감정으로는 잘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에 따라 의지적으로 자신을 통제하면 사랑하게 됩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할 때 이러한 사랑이 실현됩니다.
이러한 진리 안에서의 사랑은 특이하게도 진리를 기뻐합니다. 이 사랑은 특별히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함께 기뻐하다’(슁카이로, rejoice)는 ‘카이로’(기뻐하다, 즐거워하다)에 ‘쉰’(함께)이 앞에 붙은 단어입니다. 이것이 말하는 의미는 단순히 ‘함께’(쉰) 하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카이로) 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함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실제로 그렇게 기뻐했습니다. 진리를 얼마나 사모했는지 모릅니다. 시편 119편 18절입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그러면서 진리를 매우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시편 119편 14절이 말합니다.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얼마나 기쁘고 즐거워했든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하는 것같이 즐거워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시편 119편 24절입니다. “주의 증거들은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충고자니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다윗과 같이 진리를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할까요?
1)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것은 말씀을 잘 보고 듣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말씀을 잘 읽고 들어야 합니다. 골로새서 1장 5절이 말합니다.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전에 보고 들은 진리의 말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고 들은 것이 없는데 어떻게 진리를 알며 그 진리가 말하는 사랑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진리의 말씀을 평소에 부지런히 잘 보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2)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것은 교회에 잘 출석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잘 출석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3장 15절이 말합니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리고 또한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진리와 항상 함께 하면서 기뻐하려고 한다면 교회에 붙어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부지런히 나오셔서 설교도 듣고 성경공부도 하는 등을 통해 진리를 가까이하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3)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것은 회개를 잘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일서 1장 8절과 9절이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진리가 없으면 죄가 없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면 불의를 행하고 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진리가 마음에 들어와 있으면 회개하게 되고 그러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리와 함께 함으로 회개를 잘해서 더욱 더 사랑을 잘하시기 바랍니다.
4)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것은 순종을 잘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일서 2장 3절에서 5절까지가 말합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진리가 있을 때 순종이 가능합니다. 말씀을 지킬 때 하나님의 사랑이 그만큼 온전하게 됩니다. 진리를 알고 지켜나갈 때 사랑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말씀을 잘 순종하셔서 사랑이 그만큼 더 무르익어 가시기 바랍니다.
5)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것은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이 말합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찾으시는 예배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사람입니다. 진리의 말씀에 따라 예배를 드려야 참된 예배가 됩니다. 그 예배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그러므로 진리 가운데 예배드림으로써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그 예배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6)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것은 진리와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이서 1장 2절과 3절이 말합니다.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로 말미암음이로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진리는 영원합니다. 그 진리가 우리와 함께 영원히 함께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그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는 영원히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 가운데 영원히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7)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것은 진리와 함께 살 수밖에 없는 것을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13장 8절은 말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물고기가 물을 벗어날 수 없고 사람이 공기를 벗어나서 살 수 없듯이 성도는 진리를 벗어나서 살 수 없습니다. 오직 진리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진리와 함께 기뻐할 때 그 진리가 실현됨으로 그때 비로소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이 진리와 사랑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진리와 사랑의 삼위 하나님께서 진리 가운데서 행하시므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또한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 사랑의 진리가 우리 마음에 들어오면 우리로 하여금 형제를 거짓 없이 사랑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전서 1장 22절에 권고하였습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이처럼 우리가 진리를 잘 따를 때 우리 형제를 거짓 없이 잘 사랑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풍성해질수록 진리가 풍성해지고 진리가 풍성해질수록 사랑도 풍성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진리를 늘 가까이 하고 진리를 늘 기뻐함으로 우리 마음에 진리가 풍성해지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 진리로부터 오는 사랑이 우리 가운데 가득해져서 진실하게 서로 사랑하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2012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133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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