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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주일설교

[광복절] 나를 섬길 것이니라 (출 7:14-25)

by 이서영 목사 2015. 7. 17.

[광복절] 나를 섬길 것이니라 (출애굽기 7:14-25)

 

우리나라가 일제치하에서 해방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 8월 15일 광복절입니다. 올해는 대통령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올림픽에 참가한 축구 선수가 “독도는 우리 땅”이란 피켓을 들고 경기장을 돌아다닌 것은 정치적인 세리머니에 해당될 수 있다는 이유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광복은 하였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독도 영유권과 종군위안부 문제 등이 남아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운 개입과 관계기관과 전 국민의 지혜로운 대응으로 속히 원만하게 해결되어 선의의 피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영적으로 보면 일제 치하에서의 광복은 정치적인 광복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해방과 광복도 있습니다. 신사 참배로부터 해방입니다. 우상 신으로부터 해방입니다. 일제 당시 신사 참배를 반대하다가 순교 당하거나 옥에 갇힌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핍박을 당하지 않은 사람들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신사 참배를 해야 했고 궁성요배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궁성요배는 궁성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숙여 절하던 예법을 가리킵니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할 목적으로 신사 참배 뿐만 아니라 궁성요배를 강요했습니다. 그러한 이 땅에 신앙의 해방과 광복을 맞이한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400여 년의 긴 세월동안 애굽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정치적인 통치뿐만 아니라 신앙의 통치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노역생활을 하느라 그 고통이 하늘을 찌를듯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는 말씀을 보면 신앙의 자유도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가면 갈수록 학대를 더 많이 받았으므로 괴로움이 더 커졌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의 고통스러운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주셨습니다. 해방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보면 애굽의 바로 왕이 쉽게 보내주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열 번째 재앙까지 당하고 나서야 해방시켜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애굽에 내려진 열 가지 재앙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재앙은 나일 강물이 다 피로 변한 재앙입니다.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 악취가 나서 애굽 사람들이 나일 강물을 마시지 못하였습니다. 애굽의 물들과 강들과 운하와 못과 모든 호수도 피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애굽 온 땅과 나무 그릇과 돌 그릇 안에 모두 피가 있었습니다. 두 번째 재앙은 개구리 재앙입니다. 나일 강에서 무수한 개구리들이 생기고 올라와서 애굽 땅을 덮었습니다. 개구리들이 올라와서 바로의 궁궐과 침실과 침대 위에 올라갔습니다. 바로의 신하와 백성의 집에도 들어가 화덕과 떡 반죽 그릇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집 뿐만 아니라 마당과 밭에도 들어갔으며 바로와 모든 신하와 백성에게도 기어올랐습니다.

 

세 번째 재앙은 이 재앙입니다.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사람과 가축에게 기어올랐습니다. 네 번째는 파리 재앙입니다. 무수한 파리 떼가 와서 바로의 궁궐과 신하의 집과 백성의 집에 가득해졌습니다. 그들이 사는 온 땅이 그러하였으므로 파리로 말미암아 땅이 황폐하여졌습니다. 다섯 번째는 심한 돌림병 재앙입니다. 돌림병으로 가축, 곧 말과 나귀와 낙타와 소와 양에게 더해져서 애굽의 모든 가축이 죽었습니다.

 

여섯 번째는 악성 종기 재앙입니다. 하늘을 향해 날린 화덕의 재 두 웅큼이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되었습니다. 그 티끌이 애굽 온 땅의 사람과 짐승에게 붙어서 악성 종기가 생겼습니다. 요술사들도 악성 종기가 생겨서 더 이상 모세 앞에 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일곱 번째는 우박 재앙입니다. 우렛소리와 함께 불덩이가 섞인 우박이 심히 맹렬하게 내렸습니다. 나라가 생긴 이후로 애굽 온 땅에 그와 같은 일이 없었습니다. 경고를 듣고도 우박을 피해 집에 들어가지 않은 애굽 온 땅의 사람과 짐승은 죽었습니다. 우박이 내리는 그 당시에 있던 밭과 밭에 있는 모든 채소를 치고 들의 모든 나무도 꺾었습니다.

 

여덟 번째는 메뚜기 재앙입니다. 동풍에 날아온 메뚜기가 지면을 덮어서 땅이 어둡게 되고 사람이 땅을 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메뚜기가 우박을 면하고 남은 밭의 모든 채소를 먹고 들에서 자라나는 모든 나무 열매도 먹었습니다. 그리하여 애굽 온 땅에서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메뚜기가 바로의 집과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의 집들에도 가득하였습니다.

 

아홉 번째는 흑암 재앙입니다. 캄캄한 흑암이 삼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볼 수  없고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은 죽음입니다. 유월절의 피를 바르지 아니한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은 왕위에 있는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몸종의 장자와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죽었습니다. 심지어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도 죽었습니다.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때서야 바로 왕이 무조건 항복하고 해방시켜주었습니다.

 

애굽에 왜 이러한 혹독한 재앙이 임했을까요?

 

나일 강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이유입니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아들이면 나일 강에 던져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 피값을 치른 것입니다. 또한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를 엄하게 시키고 고된 노동을 시켜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탄식하면서 부르짖었습니다. 이 신음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그들의 고통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세운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아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보내 해방시켜주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왕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바로의 신하와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호의를 거절하였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면서 해방시켜주지도 않았습니다. 본문 14절을 보면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완강하다’는 ‘카바드’인데 ‘무겁다’는 뜻이 있습니다. 바로의 마음이 꿈적도 하지 않는 것을 말해줍니다. 22절에 나오는 ‘완악하다’는 ‘하자크’인데 ‘강하게 하다’, ‘튼튼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바로가 마음을 점점 더 굳게 만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마음이 국가에 재앙을 불러들이게 하고 가정과 자기 자신에게도 재앙을 만나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재앙을 통해서 몇 가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다른 사람을 학대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학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학대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레위기 19장 33절입니다. “거류민이 너희의 땅에 거류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신명기 24장 14절.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희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예레미야 22장 3절.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외국인이라고 가난하고 힘이 없다고 학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대하면 어떤 결과가 올까요? 잠언 14장 31절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가난하고 힘이 없는 사람을 학대하면 그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 됩니다. 잠언 22장 16절. “이익을 얻으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와 부자에게 주는 자는 가난하여질 뿐이니라.” 잘 살아보려고 힘이 없고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면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난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구약 성경 마지막에 이런 당부의 말씀도 하십니다. 말라기 2장 16절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이혼하는 것도 미워하시고 학대하는 것도 미워하십니다. 그러므로 사회적 약자를 학대하지 마시고 선대하시기 바랍니다.

 

2. 고집을 끝까지 피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주장을 너무 펴면 자가 자신도 망치고 다른 사람도 어려움에 빠뜨립니다. 말세에 어떤 징조가 있다고 했지요? 지진, 전쟁, 기근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자연 재해 말고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말세의 징조도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4절에 나옵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이러한 항목에 해당하면 누구든지 말세입니다. 끝이 안 좋게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교만하고 사납고 자만한 사람은 그렇게 됩니다. 바로 왕이 재앙을 만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음이 너무 꼿꼿해서 만났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끝까지 고집을 피우면 안 됩니다. 진리를 위해 순교정신을 발휘할 때는 고집을 피워야 합니다. 그러나 일상생활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유연해야 합니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물러설 것은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합니다.

 

끝까지 고집피우면 안 됩니다. 바로 왕은 요리조리 변명하면서 끝까지 마음을 굳게 했습니다. 두 번째 재앙을 만나고 말했습니다. “여호와께 구하여 나와 내 백성에게서 개구리가 떠나게 하라 내가 이 백성을 보내리니 그들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것이니라.” 그래놓고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네 번째 재앙을 당한 후에 한 말입니다.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모세가 대답했습니다. “그리함은 부당하니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이 싫어하는 바인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께 제사를 드리되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려 하나이다.” 바로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보내지 않다가 일곱 번째 재앙을 당한 후에 말했습니다.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 여호와께 구하여 이 우렛소리와 우박을 그만 그치게 하라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다시는 머물지 아니하리라.” 보낸다고 해놓고는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덟 번째 재앙을 당합니다.

 

그때서야 또 말합니다. “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갈 자는 누구 누구냐.” 모세가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 노소와 양과 소를 데리고 가겠나이다.” 이에 바로가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그래서 아홉 번째 재앙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또 이런 말을 합니다.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그래서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을 당합니다. 그러고서 바로가 말했습니다.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 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고집은 고집을 피울수록 손해가 옵니다. 그러므로 고집은 버릴수록 좋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 부드러워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주장과 생각과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잘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과 은혜를 많이 받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그 점을 잘 말해주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입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예수님의 친동생인 야고보도 역시 그렇게 말했습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입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고집피우다가 재앙을 만나지 마시고 유연하고 겸손하셔서 은혜를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앙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모두가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생생하게 발견하게 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하나님도 안 계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애굽의 신들을 상징하는 자연현상을 하나씩 깨뜨려 가실 때 애굽사람과 이스라엘 백성이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재앙 때 모세가 바로에게 말했습니다. “왕의 말씀대로 하여 왕에게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같은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니.” 세 번째 재앙을 당하자 요술사들도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바로에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네 번째 재앙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

 

일곱 번째 재앙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온 천하에 나와 같은 자가 없음을 네가 알게 하리라.” “세상이 여호와께 속한 줄을 왕이 알리이다.” 여덟 번째 재앙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그러므로 세상이 하나님께 속한 줄을 아시고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4. 유월절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과 호주에서 순회 성경연구교사로 사역하였으며 영국으로 돌아가 월간『성경연구』를 창간하여 자신의 성경연구내용을 많이 발표한 아더 핑크(A.W. Pink)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하나님의 눈은 집에 있지 않았고 피에 있었다. 그것이 치솟은 집이든지, 견고한 집이든지 아니면 아름다운 집이든지 이러한 것은 아무 상관 없이, 만일 그곳에 피가 없으면 심판은 그리로 들어가서 그 죽음의 일을 행하였다. 그 높이, 그 견고함, 그 장려함도 만일 거기에 피가 빠졌으면 아무 쇼용이 없었다. 반면에 그 집이 초라한 오두막집이거나 긴 풍상에 허물어져 간다고 하더라도 그 문에 피만 있으면 아무 상관없이 그 안에 있는 자들은 온전히 안전했다.”

 

화려하고 웅장한 궁궐이라고 해도, 세도가의 집인 바로의 신하의 대궐과 같은 집이라고 해도 모두 무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꼬불꼬불한 좁은 골목길의 한 귀퉁이에 있던 초라한 노예의 집이라 해도 피가 발린 집은 무사했습니다. 이와 반대로 가난한 집이라 해도 피가 발려 있지 않았다면 무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잘 지은 집이라 해도 피가 발려 있다면 그 집은 무사했습니다. 이처럼 어린양 십자가의 피는 동서고금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넘어서 구원해줍니다. 구원은 이와 같이 인간의 공로나 예식이나 혈통이나 외형의 여부에 있지 않습니다. 구원을 보장받는 것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발려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 피를 개인적으로 적용받느냐의 여부입니다. 

 

아더 핑크는 다시 말합니다.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 하나님은 오늘날도 우리에게 동일한 말씀을 하신다. 만일 당신이 피 아래 있다면 당신은 영원토록 안전하다. 율법뿐만 아니라 마귀도 당신을 상치 못할 것이다.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롬 8:33,34). 구원을 받으려면 그리스도를 영접하라.” 그러므로 어린양 예수님의 피를 믿으셔서 구원을 받으시고 이미 구원받으신 분은 그 피를 찬송하시고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5.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앙이 주는 교훈은 많이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더욱 큰 믿음을 세우기 위해, 믿지 않는 자에게는 크신 하나님을 보여주시려고 한 것도 있습니다. 재앙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능하신 권능을 나타내셨습니다. 재앙은 애굽의 신들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민 33:4). 애굽이 섬기던 신들을 하나하나 꺾으시므로 참 신이신 것도 나타내셨습니다. 재앙을 통해 모든 신들 위에 뛰어나심을 입증하신 것입니다(출 18:10,11 15:11). 또한 세상이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자기 백성을 구별해주시는 것도 나타내셨습니다. 인간의 얄팍한 생각이나 고집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러한 크신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훈과 더불어 또 다른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알게 하고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죽음과 유월절을 통해 출애굽을 시킨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것은 그렇게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섬기라는 것입니다. ‘섬기다’는 ‘아바드’인데 ‘일하다’(work), ‘봉사하다’(serve)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가리키는 것은 제사 곧 예배를 뜻합니다.

 

70인 역본에서는 제사장들만의 공적인 제사 직무를 가리키는데 사용하였는데 헬라어로 ‘라트류오’입니다(히 10:11 ‘섬기며’). 열 가지 재앙과 관련하여 사용한 것을 보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바드’라고 할 때도 있지만 둘째 재앙이 나오는 8장 8절에서는 ‘제사를 드리다’(자바흐, 희생 제물로 도살하다), 여덟째 재앙이 나오는 10장 9절에서는 ‘절기를 지키다’(하가그)라고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에서는 ‘worship’ 또는 ‘serve’로 번역하였으며 표준새번역은 ‘예배’로 번역하였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벗어나야 할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 앞에 성별된 예배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빠져나오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나라 광복절도 정치적인 광복도 있지만 신사참배와 궁성요배로부터 벗어나도록 하신 것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속박에서 구출하기 위한 것(7:4)도 있고 여호와이신 것을 애굽백성에게 알리기 위한 것(7:5,17 8:22)도 있습니다. 그러나 재앙을 받은 것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애굽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반복해서 말씀하신 것은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는 말씀입니다. 곧 예배를 드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애굽에서 보내주면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모세가 바로에게 재앙을 경고할 때마다 한 말이 있습니다. 첫 번째 재앙을 경고할 때 한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왕에게 보내어 이르시되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 하였으나 이제까지 네가 듣지 아니하도다.” 두 번째 재앙.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네 번째 재앙.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다섯 번째 재앙.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일곱 번째 재앙.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여덟 번째 재앙.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서 겸비하지 아니하겠느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 아홉 번째 재앙.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예배는 이처럼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가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피로 세상으로부터 구원을 받고 죄악과 마귀와 사망으로부터 해방을 받고 나서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배를 소중하게 여기시고 하나님께 온 힘과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예배드리시기 바랍니다.

 

 

[2012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134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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