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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주일설교

지혜를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 1:5)

by 이서영 목사 2015. 7. 17.

지혜를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 1:5)

 

무더운 여름이 끝나가고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풍성한 수확의 기쁨은 누가 누립니까? 씨를 심고 땀을 흘린 사람이 많이 누립니다. 그런데 수확의 계절이 되었는데도 곳간이 썰렁하고 텅 빈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심지 않고 가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이치가 그러하고 성경의 원리가 그렇습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갈 6:7).

 

평소에 심은 것이 많은 사람은 많이 거둡니다. 인심을 후하게 베푼 사람, 학창시절과 젊은 날에 열심히 책을 읽으면서 연구하고 공부한 사람, 기술을 연마한 사람, 운동을 많이 한 사람은 그만한 결과를 풍성하게 거둡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를 열심히 한 사람, 순종을 잘 한 사람, 충성봉사한 사람은 풍성하게 거둡니다. 가면 갈수록 거둘 것이 많아집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응답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기도의 씨를 심은 사람이 거둡니다. 평소에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은 응답을 많이 받습니다. 씨를 심지 않고 추수하려고 한다면 연목구어(緣木求魚)입니다.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려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응답받으려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누가 응답을 받습니까? 기도하면서 구한 사람이 받습니다. 구할 때 받게 됩니다. 이처럼 기도의 응답도 기도의 씨를 많이 심은 사람이 풍성하게 거둡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열심히 기도의 씨를 많이 심으셔서 응답을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무슨 기도의 씨를 많이 심어야겠습니까?

 

지난 주 본문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 지난 주에는 “성공하기에 유익한 지혜”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일상적인 세상의 지혜와 하늘의 신령한 지혜를 겸비할 때 참된 성공을 하기에 유익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선수가 경기할 때 힘들어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학생도 공부하는 것이 힘들어 보일 때도 있습니다. 사업하는 것도 힘들고 사는 게 힘들 때도 있습니다. 왜 이렇게 힘이 들까요? 평소 갈고 닦아놓은 게 부족하니까 힘이 드는 것입니다. 주방에서 음식을 썰 때 칼이 무디면 어떻게 되지요? 잘 썰리지 않고 힘이 듭니다. 힘이 든 이유는 날을 세워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잘 갈아놓은 칼은 싹싹 잘 듭니다. 힘이 들지 않는 것은 날을 잘 세워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힘이 덜 들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날을 세워놓으면 됩니다. 지식의 날, 체력의 날, 기술의 날, 교양의 날, 경제의 날, 관계의 날 등의 날을 잘 세워놓으면 운동하기도 쉬어지고 공부도 쉬워지고 사업도 쉬워지고 사는 것도 쉬어집니다.

 

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혜가 부족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겠습니까? 분별력과 판단력이 부족해서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손해를 볼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지혜의 날을 세워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혜가 있어야 성공하기에 유익한데 그 지혜가 부족하기에 성공보다는 오히려 실패를 더 많이 겪습니다. 그러나 지혜의 날을 세워놓으면 성공하기에 유익합니다.

 

요즘 좀 힘이 드십니까? 우리가 힘들어하는 것은 그 분야의 철 연장이 무디어졌기 때문입니다. 날을 갈지 않았기에 연장을 사용할 때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운동선수가 체력과 기술을 갈면 경기하기가 쉽습니다. 사업가는 재력과 전략이 있으면 기업하기가 쉽습니다. 군인은 훈련이 되어 있으면 전쟁에서 이기기 쉽습니다. 학생은 반복해서 암기하고 문제를 풀면 시험이 쉽습니다.

 

농사든 주부든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입니다. 평소 날을 잘 갈아놓으면 일할 때 쉽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칼을 잘 갈아놓으면 음식을 썰 때 편안하게 썹니다. 낫을 잘 갈아놓으면 풀을 벨 때 잘 벨 수 있습니다. 칼을 잘 갈아놓으면 보검이 보검답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녹슨 칼이나 무디어진 칼은 막상 쓰려고 하면 힘이 들 뿐입니다. 인생살이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살이와 신앙생활을 할 때 힘이 들 때가 있습니다. 힘에 부쳐 비틀거릴 때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평소 그 분야에 필요한 것을 잘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삶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과 건강과 경제력과 믿음과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를 갖추면 성공하게 유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철 연장 날을 잘 갈아놓듯이 지혜를 잘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철 연장 날을 잘 갈듯이 지혜를 잘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합독하겠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아멘. 기도하면 지혜를 가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필요한 것도 많이 구해야 하지만 특히 지혜를 구하는 기도의 씨를 많이 심어놓으시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누가 기도할까요?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기도합니다. 지혜가 부족한 줄 아는 사람이 기도할 필요성을 느끼고 기도하게 됩니다. 지혜가 부족한 줄 아는 사람이 지혜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지혜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지혜는 어떤 상태입니까? 지혜가 풍족한 상태입니까? 아니면 지혜가 가난하고 부족한 상태입니까?

 

‘부족하다’(레이포)는 ‘처지다, 뒤떨어지다, 열등하다. 결핍하다’는 뜻입니다. 또한 ‘모자라다, ~을 필요로 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의 상태도 이러해야 합니다. 지혜가 결핍한 상태, 지혜가 뒤떨어진 상태여서 지혜가 모자라서 지혜를 필요로 하는 상태인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만이 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3장 18절은 말합니다.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우리가 기도하면 지혜를 가질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 먼저 지혜가 부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지혜가 부족한 줄 알고 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지혜가 부족한 것을 먼저 잘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그런 다음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지혜가 부족한 줄 알기만 한다고 해서 지혜가 저절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때 지혜가 생깁니다. 지혜를 구할 때 지혜를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어떤 분이시기에 그런 분께 기도하여 지혜를 얻으라고 예수님의 친동생인 야고보가 말했습니까?

 

1)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동서고금에 관계없이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하지 않고 주시는 분이십니다. 본문을 보면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바라십니다. 빠짐없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다만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도 아니고 더 나아가 거절하고 대적하기 때문에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지혜를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은 후하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영생만 주시고 끝이라고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더 풍성한 삶까지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주님은 우리에게 영생과 더불어 더 풍성함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시고 영생을 얻고 더 풍성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도 말합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에 있어서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넘치도록 주시는 분이십니다.

 

본문의 ‘후하게’(하플로스, 부사)는 ‘단순히, 공개적으로, 성실하게, 전심으로’라는 뜻입니다. 신약 성경에 한 번 나오는 단어입니다. ‘숨은 동기가 없는, 솔직한, 천진난만한, 순진한’이란 뜻을 가진 ‘하플루스’(형용사)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 단어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닙니다. 좀 어려워 보입니다. 원어의 뜻과 번역한 뜻이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묵상해보면 좋은 번역입니다.

 

원어의 뜻으로는 숨은 동기가 없이 성실하게 전심으로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지고 있는 것을 숨기지 않고 아낌없이 그대로 다 주는 것을 의미하기에 그것을 후한 것으로 보고 ‘후하게’라고 번역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NIV NASB NRSV 등의 영어 성경은 ‘generously’(후하게, 푸짐하게, 관대하게)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KJV ASV 등은 ‘liberally’(자유롭게, 후하게, 관대하게, 개방적으로, 편견없이)로 번역하였습니다.

 

이 두 개의 영어 단어에는 또 다른 대표적인 특이한 뜻이 있습니다. ‘활수(滑手)하게’라는 뜻이 있습니다. 매우 생소한 단어인데 활수(滑手)는 ‘손이 미끄럽다. 술술 잘 통하도록 미끄럽게 하다’라는 한자어의 뜻입니다. 거침없이 잘 준다는 의미입니다. 국어사전에서는 ‘돈이나 물건을 아끼지 않고 시원스럽게 쓰는 씀씀이. 또는 그런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 분이시기에 지혜가 부족하다고 여기고 구하면 받게 됩니다. 지혜를 후하게 주셔서 날을 잘 세우도록 도와주십니다. 로마서 8장 32절을 보면 주님의 손길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므로 아끼지 않으시고 아들과 함께 그 모든 것을 주시는 주 하나님께 지혜를 많이 구하시길 바랍니다.

 

3) 하나님은 꾸짖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를 향해 꾸짖지 아니하십니다. 오히려 귀찮을 정도로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친하지도 않은 친구의 강청 비유를 통해 그렇게라도 구하면 들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강청하는 자가 받을 수 있습니다. 한 과부가 재판관에게 끈질기게 구하는 비유를 통해서도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꾸짖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더 귀하게 여겨주시고 응답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 1-8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런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지혜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에게 후하게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고 주시는 하나님께서 지혜가 부족한 사람에게 지혜를 가득 채워주십니다. 이렇게 지혜는 구하는 사람이 받습니다. 솔로몬 왕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솔로몬 왕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해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이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셨습니다.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왕상 3:11,12).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 지혜가 부족한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은 말합니다.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겸손한 사람이 더욱 큰 은혜를 입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비추어보면 자기 자신이 지혜가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더욱 큰 은혜를 입어 더욱 큰 지혜를 받습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 모두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후하게 꾸짖지 아니하고 주시는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또한 야고보서 4장 2절이 말합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해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하면 됩니다. 구하는 사람이 겸손한 자입니다. 그런 사람이 더 큰 은혜를 입습니다. 더 많은 지혜를 받습니다.

 

이렇게 지혜를 많이 얻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됩니까? 잠언 3장 13절은 말합니다.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복은 정말 큰 복입니다. 지혜가 모든 것을 활용해서 성공하기에 유익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 지혜의 소중함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6절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음이 착하고 순결하기도 해야 하지만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세상과 마귀를 정복할 수 있는 지혜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혜가 많아야 판단을 잘해서 말과 행동을 올바르게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언 4장 7절은 말합니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가 제일인 줄 알고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우리 모두 지혜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 다음에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간구하는 우리 모두에게 지혜가 부족하지 않도록 풍성하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우리 안에 지혜를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지혜를 많이 받아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든, 무슨 일을 하든지 더 잘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2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137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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