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물 (롬 12:1-2)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물이 무엇인지 크게 도전을 받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 기뻐하다는 말씀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의 ‘기뻐하시는’과 2절의 ‘기뻐하시고’는 같은 단어입니다. 원어로는 ‘유아레스토스’인데 ‘마음에 드는’(acceptable), ‘기쁘게 하는’(pleasing)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유아레스토스’라는 단어는 ‘유’(잘, Well)와 ‘아레스코’(기쁘게 하다)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기쁘시게 함으로 마음에 드시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단어가 사용된 고린도후서 5장 9절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그러므로 성도인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으로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의 산 제물입니다. 그런데 산 제물이란 무엇을 뜻합니까? 구약의 제사에서 제물을 드릴 때 산 제물이 아니라 희생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도 우리 자신이 죽기를 바라셨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어야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볍씨 한 알이 그대로 있으면 한 알만 이 가을에 거둘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한 알이 죽었기에 40개에서 80개까지의 낟알을 추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비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부활은 죽음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죽어야 살아날 수 있습니다. 알고 보면 죽는 것과 사는 것이 맥이 닿아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죽는 것과 사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자아가 살아있으면 영이 살아나지 못합니다. 영이 살아나려면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죽어야 산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자아가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산’(조산, living)은 ‘살다’(자오, live)의 분사형입니다. 분사는 사물에 대하여 비유적으로 사용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생명 등에 대해 말합니다.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벧전 1:23), ‘살 길’(히 10:20), ‘살아 있는 떡’(요 6:51) 등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 육에 속한 자아가 살아 있으면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러나 영이 살아나면 문제를 해결 받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아, 바꾸어 말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난 영을 제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습니까? 산 제물을 드리면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물은 무엇을 말합니까? 육의 사람은 죽고 영의 사람으로 다시 살아난 제물입니다. 여기에 대한 해석은 로마서 8장 5절에서 8절에 나옵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육의 상태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육의 생각은 하나님과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마음에 들어 하시는 일을 하지 않거나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육의 사람이 죽고 영이 살아난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산 제물을 기쁘게 받으시고 흡족해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육의 상태는 죽고 영은 살아난 제물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육의 상태는 죽고 영은 살아나겠습니까?
본문 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본받다’(쉬스케마티조)는 ‘~같은 모양이 되다’, ‘~에 순응시키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의 풍속을 따름으로 그와 같은 모양이 되거나 그 풍속에 자신을 순응시키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마음의 변화나 새로운 도덕관으로 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전혀 다른 변화를 뜻합니다. 건강한교회연구소 대표 김종윤 목사는 “라오디게아교회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 위해서는 위치 이동, 즉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변화는 단순히 마음을 바꿔먹는 것이 아니라 위치 이동을 해야 합니다. 육의 상태에서 영의 상태로 이동시켜야 합니다.
‘변화하다’(메타몰포오)는 ‘다른 형상으로 바꾸다’, ‘변형하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모양으로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것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에서는 그러한 변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자기 자신의 힘으로 변화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가능합니다.
로마서 8장 1절에서 4절이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이 연약해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짊어지시므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법을 적용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이 법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 각자 안에 계신 성령님에 의해서 변화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육신에서 벗어나 영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내주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습니다. 성도의 첫 열매(아파르케, 롬 8:23)요 보증(알라본, 고후 5:5)이신 성령님을 이미 성도들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에 의해 성도의 생각과 의지가 새로워짐으로 변화됩니다. 인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를 받습니다. 성도 안에 내주하신 성령으로 변화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성령으로 변화를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건강한교회연구소 대표 김종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건강한 교회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하면서 “예수님이 요한계시록 7개 교회를 향해서 교회는 이러해야 한다고 보여주셨습니다. 그 모습을 따르는 것이 건강한 교회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일 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건강한 교회의 척도로 8가지를 제시했습니다. 7개 교회의 대표적인 척도 인 “△사랑이 많고 △고난을 극복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굳건하게 서고 △거룩한 삶을 추구하며 △교회 구성원들이 영적으로 살아 있고 △어려운 상황과 환경에서도 인내하며 △그리스도를 향한 영적 열정이 있고”의 7가지 척도와 7개 교회를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교회” 1가지의 척도입니다.
김 목사는 “건강한 교회는 예수님이 원하는 교회”라고 하면서 “성령의 음성에 민감한 교회가 되어야만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럴 때 한국교회의 미래가 밝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풍성할 때 비로소 변화를 받고 변화를 받은 삶과 사역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실 때 우리는 “나보다 훨씬 더 큰 내가 될 수 있습니다. 훨씬 더 좋은 내가 될 수 있습니다.” 겨자씨 비유에서 성장의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오순절 성령님이 임하시자 그런 성장과 성숙과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비겁한 베드로가 용감한 사도로 변했습니다. 박해자 사울이 예수님의 충성된 일꾼으로 변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자 크게 변화 받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산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죄의 성질이 의의 성질로 변화됩니다. 이신칭의(以信稱義)을 바탕으로 이신성화(以神聖化)의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의 피로 의로워진 것을 근거로 해서 실제로 의로워져나가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성령님에 의해서(以神)입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성도는 많은 변화를 받습니다. 죄의 몸이 의의 몸으로 변화되고, 어둠의 일을 벗어버리고 빛의 일에 동참하게 됩니다. 마귀에게 충성하고 세상을 더 좋게 여기는 것에서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 나라를 더 좋게 여기게 됩니다.
인류는 낙원을 건설하기 위해 그동안 도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 어떤 나라도 그 어떤 사람도 완성시키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못 이뤄낼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또한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을 향해 못된 성질을 고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손쉽게 말은 잘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못 고칩니다. 아무리 성품훈련을 하고 가다듬는다고 해도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노력에 앞서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통해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님을 충만하게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이 충만해져서 성령님을 더욱 의지할 때 변화를 더 큰 변화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는 한 사람의 변화가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개입하시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고려신학교 교수였던 박도호(존 마이클 배튜, John Michael Batteau) 교수가 다닌 미국의 성공회는 영국 성공회의 분과였고 매우 자유로웠습니다(liberal). 성경적이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대부분 자유롭고 물론 동성애도 허용합니다. 그런 교회에 다닐 때에는 희생적인 죽으심과 놀라우신 부활로써 생명의 길을 열어 주시고 망가진 피조세계를 구속하는 구주 예수님을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1964년 가을, 장로교인이었던 프란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 목사님이 하버드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의 강의를 통해서 정통 기독교 신앙을 확신하게 되었고 세속적인 인본주의를 지양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전적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비로소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성경을 전적으로 영감 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박도호 교수의 이 모든 역사는 자신도 알 수 없는 사이에 성령님께서 강의시간을 통해 빛을 비추어주시자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러자 변화를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요한복음 14장 26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 임하시자 변화를 받고 성경을 깨닫고 믿게 된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말한 고린도전서 12장 3절을 봐도 박 교수가 변화를 받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님이 임하시자 변화를 받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변화는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성령을 충만하게 받으셔서 변화를 많이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본문 2절에 “마음을 새롭게 하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새롭게 할 수 있습니까?
변화를 받으면 됩니다. 그러면 변화는 어떻게 됩니까? 성령님을 의지할 때 변화를 받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라고 했는데 우리가 새롭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 또한 성령님으로 가능합니다.
디도서 3장 5절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그러므로 사모하는 자에게 임하시는 성령님을 우리 모두가 간절히 사모하셔서 충만하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셔서 하나님께서 몹시 기뻐하시는 크게 변화를 받은 산 제물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012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145 담임목사 이서영]
'성경적강해 > 주일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 (출 14:10-14) (0) | 2015.07.17 |
---|---|
듣고 행하라 그리하면 (신 6:1-9) (0) | 2015.07.17 |
모든 일에 항상 넉넉하여 (고후 9:8) (0) | 2015.07.17 |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감 (창 12:1-4) (0) | 2015.07.17 |
지혜를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 1:5) (0) | 2015.07.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