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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주일설교

(창 33:1-11) 원수도 하나로 만드는 은혜

by 이서영 목사 2016. 5. 1.

(창 33:1-11) 원수도 하나로 만드는 은혜

 

33:1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33:2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33: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33: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33:5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33:6 그 때에 여종들이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33:7 레아도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33:8 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33:9 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33:10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33:11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 적의를 품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있게 된 경우나 서로 협력하여야 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중국 춘추 전국 시대에, 서로 적대 관계인 오나라의 왕 부차(夫差)와 월나라의 왕 구천(句踐)이 같은 배를 탔으나 풍랑을 만나서 서로 단합하여야 했다는 데에서 유래합니다.

 

이 말은 오나라의 손무(孫武)가 쓴 손자병법(孫子兵法)에 나온 말입니다. “서로 적대시해 온 오(吳)나라 사람과 월(越)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타고(吳越同舟) 강을 건넌다고 하자.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큰 바람이 불어 배가 뒤집히려 한다면 오나라 사람이나 월나라 사람이나 다 같이 평소의 적개심(敵愾心)을 잊고 서로 왼손, 오른손이 되어 필사적으로 도울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오로지 필사적으로 하나로 뭉친 병사들의 마음이 중요하다.” 

 

하나 된 마음이 전쟁에서 승리함에 있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분열하면 적에게 유리할 뿐입니다. 전장에서 서로 의견을 달리하고 서로 싸우면 어부지리는 누가 얻겠습니까? 이처럼 서로 다투고 싸우면 서로 손해가 날 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다투는 것을 중지하고 서로 하나가 되고 한 마음이 되어 똘똘 뭉쳐야 합니다. 이 마음은 오늘날 가정이든 직장이든 학교든 교회든 나라든 그 어디든 절대적으로 필요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원수는 멀리 있지 않고 항상 가장 가까이에 있습니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원수가 됩니다. 이해관계가 밀접한 사람 사이에 원수가 잘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멀리 있는 사람과는 잘 지냅니다. 그러나 진짜 관계가 좋은 사람은 가까운 사람과 관계가 좋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관계 회복을 위해 중요한 처방전을 내려주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27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아멘.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자를 선대할 때 관계가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끝까지 고집부리고 원수맺으면 천국의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0절과 21절 말씀입니다.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아멘.

 

만약 원수를 끝까지 용서하지 않는 것이 성경의 법이라면 우리 모두는 구원을 얻지 못하고 모두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지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대적한 원수였습니다. 로마서 8장 7절 말씀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아멘. 야고보 4장 4절 말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아멘.

 

우리 모두가 이렇게 하나님과 원수였으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10절 말씀입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아멘.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였으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어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5장 8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아멘. 하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셨기에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어떤 관계든 원수가 되면 담이 쳐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든 부부간이든 어디든 보이지는 않지만 담이 쳐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임하면 무너집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 말씀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아멘. 2장 16절 말씀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아멘. 

 

이처럼 십자가가 들어가면 화목하게 됩니다. 원수도 하나가 됩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으면 사랑하게 됩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들어오면 화목해지고 화평해지고 상부상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사이에, 우리 가정에도, 우리 교회에도, 우리 직장에도, 우리 학교에도, 우리나라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으므로 원수된 것이 소멸되고 둘이 하나가 되고 서로 사랑하게 되길 바랍니다.

 

출애굽기 34장 6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아멘. 사람은 서로 원수처럼 여기고 속이 좁지만 하나님은 용서해주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시고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원수지간도 형제가 되고 맙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형제간에 화해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친동생 사이요, 쌍둥이 형제 사이임에도 사이가 매우 나빴습니다. 형인 에서는 동생 야곱을 원수로 알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고향에 돌아올 때 형이 400명의 장정을 데리고 나오자 그만 겁을 덜컥 집어 먹었습니다. 얼마나 겁이 났든지 일곱 번씩이나 땅에 납작 엎드리면서 만났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맨 앞에 형님께 줄 예물을 앞세우고 그 뒤에 자기 처자들을 따르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자 서로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서로 목을 끌어안고 울면서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처럼 원수도 하나 되게 만듭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고 하나님과 원수였으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의인이 되고 용서받았습니다. 죄인이었던 우리가 화목제물이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 말씀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아멘.

 

그러므로 우리도 서로 용서가 필요합니다. 서로 은혜가 필요합니다. 서로 사랑이 필요합니다. 요한일서 4장 11절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아멘.

 

그런데 우리는 이런 큰 은혜를 입고도 다른 사람을 잘 용서하지 못하고 은혜를 베푸는데 인색합니다. 마태복음 18장을 보면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은 종들과 결산하려는 어떤 임금과 같다고 했습니다. 천국이 되려면 용서를 해야 천국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산할 때 일만 달란트를 빚진 자에게 자기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팔아서 갚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금액이라 갚을 수가 없는 금액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은 불쌍히 여겨 탕감을 해주고 놓아 보냈습니다.

 

일만 달란트는 얼마입니까? 얼마나 탕감을 받았을까요? 1일 품삯을 7만 원으로 잡으면 무려 4조 2천억 원이나 됩니다. 1데나리온은 1일 품삯에 해당하고 1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에 해당합니다. 그러면 10,000달란트는 10,000달란트×6,000데나리온×품삯 70,000원=4조 2천억 원이 되는 것입니다. 일평생 안 쓰고 일해도 못 갚을 돈입니다. 햇수로는 164,383년입니다. 10,000달란트×6,000데나리온÷365일=164,383년이 됩니다.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백 데나리온의 빚을 진 동료의 목을 잡고 빚을 갚으라고 했습니다. 100데나리온은 얼마입니까? 7백만 원에 해당합니다. 품삯 70,000원×100데나리온=7백만 원이 됩니다. 100일만 일하면 되는 금액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참아달라고 했으나 허락하지 않고 옥에 가두어버렸습니다.

 

동료들이 이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임금에게 가서 다 말했습니다. 그러자 임금이 노하여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전부 탕감하여 주었는데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 같이 네 동료도 불쌍히 여겨야 마땅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빚을 다 갚을 때 까지 감옥에 가두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5)고 하셨습니다.

 

용서해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모습은 빚을 탕감 받은 자의 모습이 아니라 빌려준 채권자의 입장에서 살아갑니다. 줄줄 모르고 베풀어 줄줄 모르고 자꾸만 내놓으라고 합니다. 따지고 맞대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죄에서 구원받아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은혜를 입은 것을 알고 이웃을 불쌍하게 여기고 너그럽게 대하고 용서해주는 것입니다.

 

세상이 다 바뀌고 세상 사람이 다 바뀌어도 혼자 바뀌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은 모두 행복한 삶을 살아가지만 혼자 불행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내가 변하면 세상이 그대로이고 다른 사람도 그대로여도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사람들이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내가 은혜를 입을 때 내 안에 천국이 임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웃과의 사이에도 천국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신앙생활, 가정생활, 직장과 학교생활을 기쁘게 신이 나서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가 떨어지면 모든 것이 귀찮고 힘들고 짜증납니다. 원망불평이 쏟아져 나옵니다. 괴롭고 답답합니다. 그러므로 이 은혜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은혜가 있어야 참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입고 사람들입니다. 은혜를 받은 은혜의 사람은 넉넉한 사람, 따뜻한 사람, 용서하는 사람, 부드러운 사람이 됩니다. 은혜의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입고 그 은혜를 크게 베풀면서 사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가면 독기를 품은 눈이 아니라 자애로운 눈길로 보게 됩니다. 가시 돋친 말이 아니라 다정한 말씨로 대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그리고 나에 대해서도, 동료와 이웃과 사회에 대해서 그렇게 합니다. 모든 관계가 부드러워지고 따뜻해집니다. 같은 일을 해도 충돌과 대립이 아니라 상부상조하고 화합하면서 일합니다. 상대방을 비난하기보다는 용서하고 실수와 잘못을 이해하는 넉넉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압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과 원수였던 우리가 사랑을 입고 은혜를 입어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은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럴 때 비로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제대로 알게 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며 자신을 용서하고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대하게 됩니다. 비난하거나 꾸짖지 않고 용서하고 은혜를 베풀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찾아오게 되고 함께 천국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원수도 하나로 만드는 하나님의 이 놀라운 은혜를 힘입어서 이러한 용서의 사람, 은혜의 사람, 사랑의 사람으로 화목하게 살아가시길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2010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25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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