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적강해/주일설교

[성령강림절] (마 7:7-11)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by 이서영 목사 2016. 5. 12.

[성령강림절] (마 7:7-11)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7: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7: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7: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아버지는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줍니다. 자녀가 “아빠, 배고파요. 빵 좀 사다 주세요!”라고 하는데 “이 돌이나 먹어라!”고 하면서 돌을 주는 아버지가 어디 있겠어요? “아빠, 삼겹살 먹고 싶어요!”라고 하는데 징그러운 뱀을 던져주지도 않습니다. 삼겹살을 노릇노릇하게 맛있게 구워줍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자녀 사이가 되기만 하면 저절로 모든 것을 공급받는 것은 아닙니다. 법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실제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아기는 법적으로는 자녀입니다. 그런 사이라 해도 가만히 있으면 부모가 모든 것을 알아서 공급해주지는 않습니다. 배가 고플 때는 응애응애 울고 잠이 올 때는 칭얼거려야 합니다. 그럴 때 해결 받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이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특별히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더 많이 주십니다. 구할 때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하는 자가 받습니다. 떡 달라고 하면 떡을 받습니다. 생선 달라고 하면 생선을 받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도 좋은 것을 주시는데 하늘에 계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더 좋은 것을 더 잘 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길 간절히 원하시므로 우리에게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좋은 것을 꼭 주고 싶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아버지의 마음을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 말씀인 마태복음 7장 7-11절 말씀을 통해 알게 해주셨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아멘.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응답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여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간절히 부르짖으라고 하십니까? 오늘 본문 말씀과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11장 5-13절 말씀 가운데 5-8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아멘.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길 원하셔서 우리가 간절히 부르짖어 구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줄기차게 포기하지 말고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응답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히 구하여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는 것을 많이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좋은 것”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간절히 부르짖어 구하면 좋은 것을 받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좋은 것을 받기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이 말하는 기도 제목이라는 것입니다. 그 기도 제목으로는 “좋은 것”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좋은 것은 무엇입니까? 성령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간절히 구하면 좋은 것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성령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마태복음 7장 11절 하반절 말씀에서는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되어 있습니다.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11장 13절 하반절 말씀에서는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 받을 수 있고 그렇게 기도할 제목은 “좋은 것”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좋은 성령님을 받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님을 부어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는 숨은 기도 제목인 것입니다.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는 성령님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 예수님을 통해 성령님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버지께 기도하여 성령님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구하셔서 성령님을 충만하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이 좋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 말씀을 잘 순종하게 하시므로 좋은 것입니다.

 

말씀 순종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 곳곳에 얼마나 많은 명령이 나옵니까? 오늘 본문 말씀 앞에 7장 1-5절 말씀에 나오는 명령 한 가지만 보더라도 과연 이것을 잘 지킬 수 있을까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아멘.

 

아무리 잘 해보려고 해도 또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가 더 크게 보이고 자꾸만 그것을 비판하게 됩니다. 내 눈 속의 들보를 빼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장벽을 넘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시므로 해결해주셨습니다. 구약성경에서부터 이것을 약속해주셨습니다.

 

에스겔 36장 24-27절 말씀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아멘.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새 영이신 성령님을 우리 마음 안에 부어주셔서 성령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킬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좋은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경건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인 사도 바울 역시 우리와 같은 난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처절하게 절규하였습니다. 무엇을요? 자신 안에 있는 죄 때문이었습니다.

 

로마서 7장 15-20절 말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아멘.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깊이 탄식하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나오는 21-25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아멘.

 

탄식을 하던 그가 해결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통해 부어주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해결을 받았습니다. 아들 예수님께서 죄를 담당하시고 성령님을 따라 행하게 하심으로 순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오히려 절망을 넘어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7장 25절-8장 4절 말씀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처리해주시고 성령님을 따라 행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게 해주시니 성령님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둘째, 우리 인생의 큰 산을 해결해주시므로 좋으신 것입니다.

 

말씀 순종뿐만 아닙니다. 성령님이 좋으신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더 소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우리 인생의 큰 산도 해결해주십니다. 유다의 총독인 스룹바벨이 그러한 것을 해결 받았습니다. 성전 건축이 토호세력의 반대와 고발(스 4:1-24)로 중단되었습니다. 이러한 극심한 어려움 속에서 스룹바벨 총독은 성전을 다시 건축해서 드디어 완공하게 되었습니다. 이 성전은 솔로몬의 성전에 이어 스룹바벨의 성전 또는 제2의 성전으로 불립니다. 태산과 같은 장애물로 인해 성전 건축이 중단 된 상태였지만 해결을 받아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힘에 막혀서 중단 된 공사가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습니까? 이 모든 것은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가 스가랴 선지자에게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잘 알 수 있는데 스가랴 4장 6-7절 말씀이 그것을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아멘.

 

하나님 아버지는 이처럼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 좋은 것이란 무엇입니까?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을 주시므로 말씀을 잘 순종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성령님을 부어주시므로 큰 산이 평지가 되어버리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십니까?

 

셋째, 지혜와 총명을 주시므로 좋은 것입니다.

 

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천국을 주시고, 구원을 주시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주십니다. 또한 좋은 것인 은혜와 평강도 주십니다. 그리고 좋은 성도도 주십니다. 성도가 지금은 죄의 영향력이 있으므로 다소 까칠한 게 정상 아닌 정상입니다. 하지만 새 하늘 새 땅에서 만날 때는 완벽하게 좋은 성도의 상태로 만납니다. 보기만 해도 어여쁩니다. 좋은 성도를 주신 게 맞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이처럼 좋은 것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주십니다. 그 가운데 성령님을 주십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우리에게 덩달아 임하는 것이 지혜와 총명이 임합니다. 모략과 재능과 지식도 임합니다. “모략”은 “hx;[e(에차)”인데 “조언”이란 뜻이 있습니다. 조언해주면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좋겠습니까? 그런 조언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잘 경외하기도 합니다. 정말입니까?

 

예수님에게 그 영이 임하셨습니다. 이사야 11장 1절과 2절 말씀이 그것을 말해 줍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아멘.

 

이러한 영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도 임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그와 같은 성령님을 우리도 받게 됩니다. 우리에게도 임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빈부귀천과 학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지게 됩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아무리 많이 배우고 학력이 높아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지 않으면 알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성경말씀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낮고 배우지 못해도 성령님이 임하시면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되고 성경도 알게 되고 전도도 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과 27절 말씀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아멘.

 

세계를 정복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이 대단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뻐기고 자만하다가 그만 7년 동안을 짐승처럼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총명을 주시므로 깨닫고 하나님만이 실제 주권자가 되심을 찬송하고 영광 돌리게 되었습니다.

 

다니엘 4장 29-37절이 그 장면을 보여줍니다. 먼저 29-33절 말씀부터 보겠습니다. “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새,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바로 그 때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더라.” 아멘.

 

이어서 나오는 34-3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그 때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내 나라의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찾아오니 내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받고 또 지극한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아멘.

 

하나님은 이처럼 지혜와 총명을 주십니다. 지혜와 총명의 영이신 성령님을 부어주셔서 지혜롭게 하시고 총명하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의 영이신 성령님도 부어주셔서 모략과 재능과 지식이 있게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시고 경외하게 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이처럼 진실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 성령님을 주시니 이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을 통해 이 모든 좋은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 가운데 최고의 것은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길이 되신 그 아들을 통해 다른 모든 좋은 것도 주십니다. 로마서 8장 32절 말씀이 증언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아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 예수님을 통해 좋은 것을 주십니다. 성령님을 부어주십니다. 성령님은 좋으신 것입니다. 성령님 안에는 무한한 좋은 것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말씀을 잘 깨닫고 잘 순종하게 하시고, 큰 산이 평지가 되게 하시고, 지혜와 총명을 주시고, 모략과 재능과 지식을 주시고, 하나님을 더 잘 알게 하시고 더 잘 경외하도록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인격과 성품에 필요한 성령님의 9가지 열매(갈 5:22-23)와 사역과 일에 있어 필요한 다양한 은사들(롬 12:6-8, 고전 12:8-10, 12:28)도 주십니다. 또한 회개하게 하시고, 기도하는 것을 도와주시고, 새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내주하셔서 성화시켜 주시고, 성전 삼아 주시고, 꿈과 비전을 주십니다. 또한 천국 가는 길까지 인도해주시고, 넉넉하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하시고 해낼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믿게 하시고 “아빠”라 부르게 하시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구주”로 믿고 고백하게 하시고, 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하시고 예수님을 닮게 해주십니다.

 

이 좋은 성령님을 충만하게 받으면 스룹바벨처럼 큰 산이 낮아져서 평지가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비록 이방나라의 왕이었지만 총명하게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고 더 잘 경외하게 된 것처럼 성령님이 임하시면 누구나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고 더 잘 경외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처럼 말씀 순종도 더 잘하게 되고 능력 있게 사명도 더 잘 감당하게 됩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이러한 일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됩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이처럼 좋은 것이 셀 수 없이 너무나 많이 임합니다. 성령님이 충만하실수록 좋은 것들이 더 많이 임합니다. 성령님을 받으므로 이 모든 좋은 것을 덩달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히 구하여 이 좋은 성령님을 충만하게 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이처럼 이 모든 좋은 것을 아들을 통해 더 많이 주시길 원하십니다. 성령님을 주시길 원하시고 성령님을 보다 충만하게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간절히 기도하여 이 좋은 것을 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좋은 성령님을 주시길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구하셔서 성령님을 충만하게 받으시길 바랍니다.

 

 

[2014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s://cafe.daum.net/truegooddisciples/IPZB/284 담임목사 이서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