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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개관/요한복음

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1장 예수님께서 세상에 거하심

by 이서영 목사 2018. 10. 2.

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제1부 1-6장 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세상에 오심

 

  요한복음 1-6장을 전체적으로 본다면 아버지로부터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어떤 예수님이신가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생을 주시기 위해 영생에 필수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먼저 믿음의 대상인 예수님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으므로 1-6장에서는 보내신 아버지와 보내심을 받은 아들에 대해 언급하는 가운데 믿음과 영생에 대해 집중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1장에서는 세상에 거하심에 관한 것을, 2장에서는 표적에 관한 것을, 3장에서는 하늘에서 오심에 관한 것을, 4장에서는 그리스도로 오심에 관한 것을, 5장에서는 아버지로부터 오심에 관한 것을, 6장에서는 생명의 떡으로 오심에 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장별 주제
1
예수님께서 세상에 거하심
2
예수님께서 표적을 행하심
3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오심
4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오심
5
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오심
6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으로 오심

 

 

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1장 예수님께서 세상에 거하심  

 

  자기를 알아주고 반기고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미워하거나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대적하는 사람에게 찾아간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찾아오셔서 함께 거하여 주십니다.

 

 

     1장 개요

 

✙✙✙ 1장 구절

 

요한복음 1장에서 대표적인 구절을 선정한다면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14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1장 주제

 

요한복음 1-6장을 전체적으로 본다면 아버지로부터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어떤 예수님이신가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1장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거하신다는 관점에서 이러한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1장에서는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님께서 다양한 측면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셔서 거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장을 보면 이러한 흐름이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주제를 도출해 본다면 예수님께서 세상에 거하심이 됩니다.

 

✙✙✙ 1장 구조

 

1장에서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말씀이시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예수님은 생명이시고 참 빛이시고 독생자이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시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며 성령님으로 세례를 베푸는 분이시기도 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메시야 곧 그리스도이시고 이스라엘의 왕이신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1-3절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거하심, 4-13절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의 참 빛으로 거하심, 14-18절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독생자로 거하심, 19-36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거하심, 37-42절 예수님께서 메시야로 거하심, 43-51절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거하심입니다.

이러한 표현방식은 결국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데(1:34, 49) 어떤 모습의 아들이신지를 다양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통해 그만큼 더 충만한 은혜와 진리를(1:14, 16)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이신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보다 더 충만하게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1장에서는 예수님을 증언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1, 2) 세상에 거하시는(9, 10, 11, 14)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고(1) 말씀이시고(1) 창조의 근원이 되시고(3, 10) 생명이 있으시고(4) 참 빛이시고(14) 독생자이시고(14, 18)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시고(14)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고(29, 36) 성령님으로 세례를 베푸시고(33) 하나님의 아들이시고(34) 메시야 곧 그리스도이시고(41) 이스라엘의 왕이신 것을(49)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1장에서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세상에 오셔서 거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태초에 계셨던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거하시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여러 측면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영생에 관련된 책인 요한복음을 시작하면서 영생을 얻기 위해 필요한 믿음에 대해 언급하기 이전에 믿음의 대상을 먼저 언급하고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영생을 주시기 위해 영생에 필수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먼저 믿음의 대상인 예수님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것을 독특한 용어를 사용해서 자신의 증언과 아울러 세례 요한,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 빌립과 나다나엘의 증언을 통해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1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거하시기 위해 오셨는데 이러한 여섯 가지 측면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통해 믿음의 대상이신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어떤 분으로 오셨는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장 개관

 

단락
단락별 개요
1-3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거하심
4-13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의 참 빛으로 거하심
14-18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독생자로 거하심
19-36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거하심
37-42
예수님께서 메시야로 거하심
43-51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거하심

 

 

              1:1-3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거하심

 

1:1-2 태초에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음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신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1, 2) 계셨다고 하였습니다.

계시니라, 계셨으니, 계셨고”(1, 1, 2)의 시제를 보면 미완료형입니다. 미완료형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계속 계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1-2절을 보면 하나님과 함께라고 하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함께라는 말씀은 주된 용어가 아닌 한낱 전치사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용어입니다.

일반적으로 함께 한다는 의미는 139절 가운데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여기서 볼 수 있는 함께의 원어원형은 παρά(파라)”인데 “~의 곁에라는 뜻으로 그야말로 곁에서 함께 하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1-2절에 나오는 함께는 의미가 남다릅니다. 이 용어의 원어원형은 πρός(프로스)”인데 “~을 향하여(toward)”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자적인 뜻으로 보면 하나님을 향하여 있다는 것입니다.

시간이든 장소든 사람이든 물건이든 자신의 입장에서 볼 때 귀하게 여기고 중요하게 여기는 쪽으로 향하지 않겠습니까? 간절한 마음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향하고 있는 것과 사이가 친밀하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것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 바로 πρός(프로스)”의 의미인 것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하고도 가까운 좋은 관계 속에서 함께 하고 계셨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좋은 사이를 마다하고 어떻게 보면 외면하거나 푸대접하거나 심지어 대적하기까지 하는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1:1 예수님은 하나님이심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절을 보면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라고 하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이때의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원어원형은 θεός(호 데오스)”인데 관사 ()”를 사용해서 유일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하는 말씀에서 가리키는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이때의 하나님의 원어원형은 θεός(데오스)”인데 관사가 없이 호칭하고 있습니다.

유일하신 성부 하나님과 다르게 표시하기 위해 관사를 사용하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이시지만 다만 이곳에서는 성부 하나님과 혼돈하지 않도록 구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삼위일체의 하나님 가운데 한 하나님이시지만 성자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1:1 말씀은 예수님을 가리키심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태초에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는데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고 하였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이신데 그렇다면 어떤 하나님을 가리키겠습니까?

요한복음 1장에서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13절까지는 잘 드러내지 않고 있다가 14절에서 어렴풋이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게 되셨다는 것을 밝혀주면서 그 말씀이 하나님 아버지의 유일한 독생자이신 것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분명하게 드러내주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17절과 18절에 이르게 되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이제 말씀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1:3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됨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3)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3)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가리킵니까? 말씀이신 예수님이십니다.

10절에서도 이러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창조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 없이는 창조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1:15-17). 창조는 이처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습니다.

지금 보고 있는 하늘과 땅만이 아니라 더 놀랍고 궁극적인 새 창조가 있습니다. 부분적인 이 세상에서의 창조가 아니라 완전한 창조가 이루어집니다(65:17, 21:1).

그러한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떠한 곳입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해주시므로 죽음이 없으며 애통과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도 없으므로 슬프고 괴롭고 답답해서 흘리게 되는 눈물이 없는 곳입니다(21:3-4).

 

             1:4-13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의 참 빛으로 거하심

 

1:4 예수님 안에는 생명이 있으심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4절을 보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었다는 것인데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요일 1:1-2).

성자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나타내신 바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나타내신 바가 되었는데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나타내신 바가 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주시되 더 풍성하게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10).

그리하여 성도들은 죽어도 살게 되었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1:25, 14:6).

이와 같으므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이 예수님을 믿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임을 2031절에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이처럼 예수님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이러한 생명을 주셔서 생명을 얻게 되는 은혜와 축복을 받게 해주신 것입니다.

 

1:4-9 예수님은 참 빛이심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세례 요한의 증언을 통해 예수님께서 어떤 예수님이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예수님을 증언하는 자이지 증언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6-8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이렇게 세례 요한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증언자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15절에서도 그러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세례 요한은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증언하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은 이와 같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증언하는 자라는 것을 먼저 분명하게 밝혀준 다음에 예수님께서 어떤 예수님이신가를 세례 요한을 통해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무슨 빛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참 빛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9).

예수님은 참 빛이신데 이러한 용어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가운데 사도 요한만이 요한복음 19절과 요한일서 28절 두 곳에만 사용하고 있는 독특한 용어입니다. “의 원어원형은 ληθινός(알레디노스)”인데 진짜의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빛이 있지만 예수님께서 진짜 빛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빛은 일시적으로 밝게 해줄 수는 있지만 생명을 주는 빛을 비추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주는 빛으로 영원히 비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가능합니다(21:23).

이처럼 예수님은 영원히 비추어주시는 참 빛이십니다. 뒤덮고 있는 온갖 어두움들을 밝혀주시고 궁극적으로는 어두움이 전혀 없도록 영원히 밝혀주시는 것입니다.

어두움의 악한 영과 어두움의 악한 일 가운데 살아가야 한다면 그곳이 천국이 되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할 뿐입니다. 벗어나서 빛 가운데 거해야 비로소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참 빛이 되셔서 이러한 어두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1:10-13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됨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하늘에서만 계셨다면 구원은 이루어질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건 누구나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더라도 영접하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예수님 이름을 믿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12)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110-13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이렇게 찾아오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의 양자가 되어(8:15) 자녀가 되었으며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게 되는(8:17) 권세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귀와 지옥의 권세에서 벗어나 천국에서 사는 권세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1:14-18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독생자로 거하심

 

1:14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심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1-2) 성육신하시므로(14) 우리와 함께 거하게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세상에 와서”(9) “세상에 계셨으며”(10) “자기 땅에 오매”(11)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14절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하시매의 원어원형은 σκηνόω(스케노오)”인데 장막을 치다, 거주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3절을 보면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장막σκηνή(스케네)”로 앞의 σκηνόω(스케노오)”의 명사형으로 어원이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영원히 거주해주신다는 것입니다.

 

1:14-17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심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님의 영광을 보게 되었는데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시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14).

여기서 또 하나 알 수 있는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14)가 충만하신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은혜와 진리가(17) 충만하신(14) 예수님의 충만한 데서 받게 되었으니 은혜 위에 은혜가(16) 아닐 수 없습니다.

 

1:14, 18 예수님은 아버지의 독생자이심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14절에서는 예수님에 대해 아버지의 독생자라고 호칭하고 있으며 18절에서는 아버지의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라고 호칭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독특한 용어인 독생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독생자 하나님이신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1장 이후에 나오는 316절과 18절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독생자를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영생을 얻게 해주시는 것을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유일한 아들이신 독생자이십니다. 그러하신 독생자를 보내주셔서 영생을 얻게 해주신 것은 사랑하신다는 표시인 것입니다(요일 4:9).

 

             1:19-36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거하심

 

1:19-36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심

 

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21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22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24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25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28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또 다른 세례 요한의 증언을 통해 또 다른 측면에서 예수님께서 어떤 예수님이신지를 볼 수 있습니다. 19-36절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세례 요한에게 보내 네가 누구냐”(19)라고 묻자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20) 하였으며 엘리야도 아니고(21) 그 선지자도 아니라고(21) 하였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들이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22)라고 하자 23절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그러자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선지자도 아닌데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라고 하자 26-27절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세례 요한처럼 자신을 증언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이름을 높이려 할 것이 아니라 주 예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자기 자신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어떤 예수님이신가를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세례 요한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6절 가운데 보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라는 말씀과 33절 가운데 나를 보내어라고 한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내심을 받은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단순히 예수님에 관한 지식과 정보만 제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믿게 하여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게 해서 생명을 얻게 하려는 데(20:31) 있습니다.

이와 같으므로 요한복음 1장에서 세례 요한을 통해 믿게 하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7).

그러므로 요한복음 전체에서도 믿는 것과 관련된 구절이 85개나(1:7, 12, 50, 2:11, 22, 23 ) 될 정도로 다른 어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보다 많이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믿어야 영생을 얻게 되므로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을 믿게 하려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 요한복음인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믿음의 주가 되신 예수님께서 어떤 예수님이신가를 1장에서 먼저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29-36절에서는 세례 요한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어린 양”(29, 36)이시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들에게 대답한 그 이튿날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시는 것을 보고 말할 때 그렇게 증언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29).

그리고 이어서 15절과 동일하게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30)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이 있은 지 그 이튿날에 자기 제자 가운데 두 사람과 함께 서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거니심을 보고는 또다시 증언하였습니다. 나님의 어린 양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36).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데 이러한 용어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가운데 사도 요한만이 사용하고 있는 독특한 용어이며 129절과 36절에만 나오는 용어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이미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릴 때 예표하고 있지 않습니까?(22:8) 또한 유월절의 어린 양으로도 예표하고 있지 않습니까?(12:3) 어린 양의 피에 옷을 씻어 희게 한 것에서 알 수도 있지 않습니까?(7:14)

예수님은 이처럼 어린 양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양이 되시어 죄를 지고 가셔서 생명을 얻게 되었고 구원을 얻어 천국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죄를 그대로 지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생명을 얻겠습니까? 구원을 얻겠습니까? 천국에 가겠습니까? 영원히 지옥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시어 죄를 지고 가셨기에 죄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1:31-33 예수님은 성령님으로 세례를 베푸심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푸는 것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에 나타내려는 것입니다. 또한 그가 성령님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이신 것을 증언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이신가를 볼 수 있는데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33)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32-33).

성령님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으므로(3:3, 5) 성령님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은 크고도 귀한 일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 진리의 영이신(14:17) 성령님께서 말씀을 알게 하시고(16:13, 고전 2:12) 가르쳐주시고 생각나게 하시고(14:26) 행하게 해주시고(8:4, 5:16) 영적인 일을 분별하게 해주시고(고전 2:13) 아울러 은사와 열매를 맺게 해주십니다(고전 12:11, 5:22-23).

또한 성령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아빠 아버지로 부르게 하시고(8:15, 4:6)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게 하시고 증언하게 해주십니다(15:26, 고전 12:3). 이렇게 귀하신 성령님을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1:34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것에 대해 증언한 다음에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증언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이신가를 볼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34)이시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고백한 요한복음 149절 가운데서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요한복음에서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언급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아들이라는 관점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강조하고 있으면서 이와 동시에 예수님은 그러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보내신 아들을 믿게 하여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 요한복음의 목적에 해당되므로 아들이 어떤 아들인지에 대해 계속 알게 해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을 믿고 경배를 드리게 함과 아울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생을 누리면서 살아가도록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1:37-42 예수님께서 메시야로 거하심

 

1:37-42 예수님은 메시야이심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예수님을 만난 사람에 의해 예수님이 증언되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를 통해 증언되고 있는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이십니까?

35-42절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 곧 메시”(41)시다는 것입니다. 이 용어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통틀어 사도 요한만이 사용하고 있는 독특한 용어인데 요한복음 141절과 425절에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메시야의 원어원형은 Μεσσίας(멧시아스)”입니다. 이를 번역하면 Χριστός(크리스토스)”인데(1:41)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시야그리스도”(4:25)라는 뜻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뜻을 사마리아인들이 우물에서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만난 여자에게 말한 가운데서 찾아보면 구주시라는(2:8-11)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4:40-42).

이러한 용어와 관련해서 살펴볼 말씀은 35-42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를 만나는 과정에서 예수님이 어떤 예수님이신가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먼저 만난 사람은 안드레입니다. 안드레는 세례 요한과 함께 서 있던 세례 요한의 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두 제자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36)라고 하자 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1:35-37).

이럴 때 예수님께서 돌이켜 따르는 것을 보시고는 무엇을 구하느냐”(38)라고 하시면서 와서 보라”(39)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거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따르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였습니다(40). 안드레는 먼저 자기의 형제인 시몬 베드로에게 찾아가 말했습니다.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1:41).

안드레가 시몬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려오자 예수님께서 장차 게바”, 베드로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42).

이처럼 예수님은 메시야이십니다. 안드레와 시몬 베드로가 만난 예수님은 메시야이셨습니다.

메시야를 만나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상의 그 모든 것으로부터 구해질 수 있겠습니까?

구해지지 못하고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생지옥에서 살아야 하고 세상 종말 이후에는 지옥에서 영원히 지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메시야로서 구해주셨기에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1:43-51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거하심

 

1:43-51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심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만난 사람에 의해 예수님이 증언되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빌립과 나다나엘을 통해 증언되고 있는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이십니까?

43-51절을 통해 볼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임금”(49)이시다는 것입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한 것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임금”(49)의 원어원형은 βασιλεύς(바실류스)”인데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으므로 이스라엘의 임금이란 이스라엘의 왕을 가리킵니다.

1213절에서도 왕으로 인정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님께서 빌립을 만나 나를 따르라”(43)고 하셨습니다. 이후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아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46)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46)라고 하였는데 빌립이 와서 보라”(46)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나아오자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47)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나다나엘이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48)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48)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나다나엘이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49)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50)고 하시고 이어서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51)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시라는 것을 빌립의 초청을 받은 나다나엘의 고백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빌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난 나다나엘은 이스라엘의 왕을 만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왕이신 예수님의 선한 통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을 만나지 못하고 그러한 왕의 선한 통치를 받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이고 빼앗는 악한 왕인 마귀의 악한 통치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끊임없이 서로 빼앗고 죽이면서 살아가야 하고 세상 종말 이후에는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 가운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셨기에 예수님의 선한 통치를 영원히 받게 된 것입니다.

 

 

 

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재개정일 2024년 1월 12일

개 정 일 2020년 9월 17일

발 행 일 2018 9 5

지 은 이 이서영

출 판 사 퍼플

출판등록 300-2012-167 (2012 9 7)

주 소 서울시 종로구 종로1 1번지

대표전화 1544-1900

홈페이지 www.kyobobook.co.kr.

ISBN 978-89-24-12034-9

 이서영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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