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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개관/요한복음

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2장 예수님께서 표적을 행하심

by 이서영 목사 2018. 10. 2.

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2장 예수님께서 표적을 행하심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많이 있습니다. 천재라 하더라도 컴퓨터와 겨루어 다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초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자연현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한계와는 다르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표적을 거침없이 행하십니다.   

 

 

     2장 개요

 

✙✙✙ 2장 구절

 

요한복음 2장에서 대표적인 구절을 선정한다면 예수님께서 표적을 행하신다는 11입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 2장 주제

 

요한복음 1-6장을 전체적으로 본다면 아버지로부터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어떤 예수님이신가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2장은 예수님께서 표적을 행하신다는 관점에서 이러한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2장에서는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님께서 표적을 행하셔서 영광을 나타내셔서 믿게 해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장을 보면 이러한 흐름이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주제를 도출해 본다면 예수님께서 표적을 행하심이 됩니다.

 

✙✙✙ 2장 구조

 

2장에서는 세 가지 유형의 표적을 볼 수 있습니다. 가나의 혼인집에서의 표적과 성전에서의 표적과 예루살렘에서의 표적입니다.

이러한 것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1-12절인데 예수님께서 혼인집에서 표적을 행하심이고 중반부는 13-22인데 성전에서 성전과 연관된 표적을 행하심이고 후반부는 23-25절인데 예루살렘에서 표적을 행하심입니다.

세 부분은 믿었다는 말씀을 기준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11절 가운데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22절 가운데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23절 가운데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라는 말씀을 기준으로 각각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 측면의 표적을 보면 예수님에 대한 세 가지 측면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모습의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역사해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2장에서는 표적을 행하시는(11, 21, 23) 예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셔서 제자들이 믿게 해주시고(11) 성전을 깨끗하게 정화하시면서 사흘 동안에 일으키신다고 하셔서(19, 21) 이후에 제자들이 믿게 해주시고(22) 다른 표적들도 행하셔서 많은 사람들이 믿도록 해주시는 것을(23)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2장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통해 믿음을 얻도록 해주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2장 개관

 

단락
단락별 개요
1-12
예수님께서 혼인집에서 표적을 행하심
13-22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표적을 행하심
23-25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표적을 행하심



              2:1-12 예수님께서 혼인집에서 표적을 행하심

 

2:1-12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심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12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거기에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표적을 나타내 보여주십니다. 이러한 표적 가운데 첫 번째 표적이 갈릴리 가나”(11)에서 일어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10절을 보면 가나의 혼인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자 이를 본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11).

6-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포도주가 담겼던 빈 통에 물을 채우도록 하지 않으시고 정결예식에 사용되는 돌항아리에 물을 채우게 하시고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장의 주제에 따라 표적과 관련하여 살펴본다면 포도주전용 통이 아니라 손을 씻는 용도로 사용하는 돌항아리에 물을 채워 포도주로 변하게 한 이유는 물이 전혀 다른 포도주로 변했다는 것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영광을 더 크게 나타내려 하신 것으로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겨우 만든 품질이 낮은 포도주가 아니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칭찬할 정도로 매우 좋은 포도주로 만들었으니(9-10) 그 영광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이러한 광경을 바로 곁에서 실제로 생생하게 바라본 제자들이 얼마나 놀라워하였겠습니까?

 

2:11 제자들이 영광을 나타내신 예수님을 믿음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제자들은 어떤 예수님을 믿었을까요? 11절을 보면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제자들이 그를 믿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무엇을 믿었다고 하였습니까? 영광을 나타내시는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영광을 나타내시는 예수님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먼저 배울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은 영광스러우시다는 것입니다.

물이 천년을 지난다고 하더라도 포도주가 되겠습니까? 이제까지 그 어떤 사람도 물을 포도주로 바꾼 사람은 없었습니다. 포도를 가지고 포도주를 만들 수는 있어도 물을 바꾸어 만들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은 하인들처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을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7-8절을 보면 하인들이 예수님께서 돌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시니까 가득 채웠고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시자 그대로 갖다 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하인들이 왜 손을 씻는 통에 물을 채우라고 하십니까?”라고 따지거나 이런저런 의심과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서 물을 채우지도 않고 갖다 주지도 않았다면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표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배울 수 있는 것은 영광을 보았을 때 믿게 되는 것은 귀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11절을 보면 제자들은 믿었지만 동일한 현장에 있었던 하인들과 연회장은 물이 포도주로 변한 영광이 나타났지만 믿었다고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하인들은 직접 겪은 일이라 잘 알고 있었지만 연회장은 하인들이 말해주지 않아 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포도주가 되었는지 몰랐습니다. 하인들은 직접 보고도 믿지 않았고 연회장은 전해주어도 믿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전해 듣지 못해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으므로 예수님의 영광을 보여주셨을 때 믿어지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또 하나 배울 수 있는 것은 변화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이 좋은 포도주로 바뀌는 것처럼 바뀌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주신 것처럼 인격과 삶과 사역과 환경도 예수님께서 변화시켜주시면 얼마든지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좋은 상태로 바뀌어져서 좋은 성품을 가진 좋은 일꾼으로 바뀌어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2:13-22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표적을 행하심

 

2:13-22 예수님께서 성전을 아버지집이라고 하심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예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 위해 보여주신 표적 가운데 하나가 아버지의 집인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표적이 있습니다.

14-1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것을 보시고는 정화하신 다음에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은 내 아버지의 집”(16)이라고 하셨는데 이러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드리는 집에서 세상의 정욕을 위해 장사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행하시는 것을 본 제자들이 17절 가운데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는 시편 699절을 기억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럴 때 18절을 보면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말하길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장은 표적과 관련된 장인데 여기에서 표적에 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공관복음인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을 보면 성전은 기도하는 집(21:13, 11:17, 19:46)이라고 하였지만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육체라는 표적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질문하자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19)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이 성전은 사십 육년 동안에 지었는데 어떻게 삼일 동안에 일으키느냐라고 반문하였습니다(20). 어림도 없는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옳은 이야기입니다. 인간적인 입장에서 보면 삼일 만에 어떻게 짓습니까? 최신 기술을 갖춘 현대에서도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도무지 상상하지도 못하는 일이 일어나서 믿게 하는 것이 표적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표적을 보여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유형의 성전이 아니라 성전인 자기를 가리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21).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그 당시에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후에야 이 말씀을 기억하고 믿었습니다(22).

 

2:21-22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음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제자들은 어떤 예수님을 믿었습니까? 표적을 보여 달라고 했을 때 2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말씀하시자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가나의 혼인집에서는 즉시 믿게 되었지만 여기에서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믿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무엇을 믿었다고 하였습니까? 성경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어떤 성경을 가리키는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그 당시로 보면 구약성경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에 관한 말씀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24:27).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게 되었는데 19절 가운데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믿게 되었고 그 실체가 되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2:19-22 예수님께서 자기를 가리켜 성전이라고 하심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이러한 성전이신 예수님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표적과 관련하여 기술하고 있는 요한복음 2장의 주제에서 본다면 성전정화에서 더 나아가 부활의 표적으로 성전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전을 통해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 만에 부활하신 후에 성경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19) 기억하고 믿게 되었다는(22) 사실을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자신을 가리켜 나는 부활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25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독생자 예수님께서 영생을 주시려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육체의 죽음은 피할 수 없으므로 때가 되면 모두 죽게 되지만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마지막 날에는 다시 살아나서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현세에서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함께 해주시고 역사해주시면 죽은 것들이 살아나게 됩니다. 생명이 거듭나게 될 뿐만 아니라 인격과 삶과 사역과 환경 가운데서도 살아나게 됩니다. 요한복음 1139-44절을 보면 죽어서 나흘이나 되어 냄새가 나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부활이시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함께 해주시고 역사해주시면 죽어서 가망이 없는 그 무엇이라 할지라도 다시 살아나게 해주십니다.

 

              2:23-25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표적을 행하심

 

2:24-25 예수님은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심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2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예수님의 이름을 믿었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의 표적이 나오는 24-25절인데 예수님께서 사람의 속에 있는 것”(25)을 잘 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신 것은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시기 때문이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셨습니다.

이와 같으신 예수님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면 예수님의 전지하심에 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모든 언행심사를 아십니다(왕상 8:39, 139:2-3, 12:3). 예수님은 그러한 전지하심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성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있으신 것입니다.

23절의 믿었으나24절 말씀의 의탁하지의 원어원형은 πιστεύω(피스튜오)”로 동일한 용어입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으나 예수님은 많은 사람을 믿지 않으셨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사람이 어떤지를 너무도 잘 아시기에 사랑하는 대상으로는 여기시지만 믿고 의탁할 대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사람에 대한 것도 증언을 받으실 필요도 당연히 없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사람의 속까지 모두 아시는데 굳이 다른 사람의 속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증언으로 받으실 필요가 없으시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경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자증하고 있기에 사람들의 증거가 필요가 없으신 것입니다. 여기에 집중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표적에 관심을 가집니다. 하지만 표적보다는 성경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237절을 보면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표적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연약하여 표적에 집중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모든 것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사람을 믿고 의탁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모든 사람의 인격과 형편과 삶을 아시고 개개인의 속마음까지도 어떤지를 아십니다. 멀리 떨어져 계셔도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고 아셨습니다(1:48).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아셨습니다(9:4, 12:25, 6:8).

모든 것을 아시기에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으십니다. 사람을 모르게 되면 잃게 되지만 아니까 한 사람도 잃지 않고 다 살리게 되는 것입니다(18:9).

 

2:23 많은 사람이 여러 가지 표적들을 보고 믿음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예루살렘에서의 표적에서 보아야 할 것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23절에 표적을 보고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표적에 관한 것입니다.

11절 가운데 보면 첫 표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이후에 나오는 454절 가운데 보면 두 번째 표적이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23절에 나오는 표적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211절의 첫 번째 표적과 454절의 두 번째 표적 그 중간에 나오는 23절의 표적은 어떤 표적을 말합니까?

23절에 나오는 표적σημεα(세메이아)”σημεον(세메이온)” 복수형입니다. 복수인 표적들이라는 뜻입니다.

가나의 혼인집에서의 표적을 보았다고 한다면 단수여야 합니다. 그런데 복수입니다. 두 번째 표적은 아직 나타나지도 않은 상태인데 복수이므로 다른 표적들도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문은 23절의 예루살렘에 계시니라는 말씀에서도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갈릴리가 아닌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표적도 있었다는 것을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표적의 원어를 살펴보면 복수로 표적들의 시작을 가리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서수로 첫 번째가 아니라 여러 표적들가운데 처음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두 번째 표적의 원어를 살펴보면 서수로 두 번째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번째 표적은 모든 표적들 가운데 두 번째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454절 가운데 보면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나의 혼인집에서의 표적은 21절에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라고 하고 있으므로 이 표적은 갈릴리에서 행하신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표적은 갈릴리 가나로 다시 오셔서(4:46)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두 번째 표적은 갈릴리와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모든 표적들 가운데 두 번째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갈릴리에서 행하신 표적 가운데 두 번째라는 것입니다.

니고데모와의 대화가 기록된 3장 가운데 2절을 보면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표적은 복수형입니다. 가나의 혼인집에서의 표적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표적들까지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가나의 혼인집 표적을 보고 믿었다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표적들을 보고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2:23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을 믿음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보고 그의 이름을 믿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무엇을 믿었다고 하였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을 믿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예수님의 이름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의 뜻을 보면 예수님에 대해 더 잘 알게 됩니다.

사도 요한이 기록할 당시에 이미 알려졌고 믿고 있는 예수님의 이름의 뜻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보다 먼저 기록된 마태복음 1장에서 찾아보면 예수(ησος, 이에수스)와 임마누엘(μμανουήλ, 엠마누엘)입니다.

예수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고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121-23절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1:21-23).

이처럼 요한복음보다 이전에 알려진 예수님 이름의 뜻은 이미 전해졌고 알고 있으므로 더 이상 반복해서 언급할 필요성을 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대부분 독특한 사건과 용어로 설명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으므로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강조하면서 독생자와 같은 독특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유명한 요한복음 316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이어서 나오는 318절에서도 알게 됩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이와 같이 예수님의 이름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1:12) 생명을 얻게 되고(20:31) 성령님을 받게 되고(14:26) 기도 응답도 받게 됩니다(14:14, 16:23-24).

먼저, 하나님의 자녀에 관한 말씀인데 요한복음 112절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고 한다는 2031절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그 다음, 성령님을 받게 된다는 말씀인데 1426절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그 다음으로는 기도응답에 관한 말씀인데 1414절과 1623-24절입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이처럼 예수님의 이름은 단순히 누군가를 부를 때 사용하기 위해 지은 이름과 같은 이름이 아닙니다. 그저 이력서에나 하나의 입력정보에 사용하는 이름도 아닙니다.

매우 실제적인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생명을 얻게 하고 성령님을 받게 해주시고 기도응답과 치료를 받게 해주는 이름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바로 그러한 이름입니다.

 

 

 

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재개정일 2024년 1월 12일

개 정 일 2020년 9월 17일

발 행 일 2018 9 5

지 은 이 이서영

출 판 사 퍼플

출판등록 300-2012-167 (2012 9 7)

주 소 서울시 종로구 종로1 1번지

대표전화 1544-1900

홈페이지 www.kyobobook.co.kr.

ISBN 978-89-24-12034-9

 이서영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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