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4장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오심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스스로 해낼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스스로 해낼 수 없는 일 가운데 가장 어려운 일은 스스로 죄를 청산하고 스스로 믿고 스스로 영생을 얻어 스스로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과연 누가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단 한 사람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없습니까? 있습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오시면 됩니다.
4장 개요
✙✙✙ 4장 구절
요한복음 4장에서 대표적인 구절을 선정한다면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시라고 하는 29절입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 4장 주제
요한복음 1-6장을 전체적으로 본다면 아버지로부터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어떤 예수님이신가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4장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오셨다는 관점에서 이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4장에서는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의 구주이신 그리스도로 오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장을 보면 이러한 흐름이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주제를 도출해 본다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오심이 됩니다.
✙✙✙ 4장 구조
4장에서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오신 것을 사마리아 동네에서 일어난 일과 갈릴리에서 일어난 일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1-42절인데 사마리아에서 그리스도이심을 밝히신 장면이고 후반부는 43-54절인데 갈릴리에서 그리스도로서 고치신 장면입니다.
이러한 전반부를 보면 25절, 29절, 42절에서 예수님은 온 세상의 구주이신 메시야, 곧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후반부를 보면 거의 죽게 된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신 일을 볼 수 있는데 이 일은 4장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세상의 구주이신 그리스도로서 실제적인 사역을 행하신 하나의 예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4장에서는 그리스도로 오신(25, 26, 29, 42) 예수님께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어주시고(14) 아버지께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게 해주시고(23, 24) 영생의 열매를 거두시는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보내신 이의 일을 온전히 이루시고(34) 다 죽게 된 왕의 신하의 아들의 병을 고쳐주시는 것을(53)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에서 일어난 일을 보면 야곱의 우물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자가 먼저 믿고 전하자 동네사람들이 많이 믿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갈릴리에서 일어난 일을 보면 곧 죽게 된 왕의 신하의 아들이 살아나자 그와 온 집안이 믿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믿음을 통해 동네사람들이 믿게 되고 온 집안의 사람들이 믿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4장 개관
단락 | 단락별 개요 | |
1-42 |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밝히심 | |
43-54 |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서 고치심 |
4:1-42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밝히심
● 4:1-15 생수를 주시는 예수님
1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2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사마리아의 수가라 하는 동네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는 1-42절 가운데 1-15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실 때 사마리아를 비켜가지 않으시고 곧바로 통과하여 가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상종하지 않고(9) 기피하는 사마리아인들을 예수님께서는 만나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마 9:13, 막 2:17, 눅 5:32)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러 피곤하셔서 야곱의 우물 곁에 앉으셨습니다. 그때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기에 “물을 좀 달라”(7)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자 사람이시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피곤하셔서 우물 곁에 앉으신 것과(6) 목이 말라 물을 달라고 하신 것에서(7)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을 달라고 하자 사마리아 여자는 “당신은 유대인이면서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는데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10)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물을 길을 그릇도 없고 우물 또한 깊어서 물을 구하지 못해 자기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 처지이면서 어디서 어떻게 생수를 구해준다고 하는지 의아해 하였습니다.
이와 같으므로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물을 계속해서 마실 수 있도록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12)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처해 있는 형편을 보면 사마리아 여자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만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육체가 마시는 물을 의미하신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영원히 살아 있는 물인 생수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생수”(10, 11)의 원어원형을 보면 잘 알 수 있는데 생수는 “ζάω(자오)”와 “ὕδωρ(휘도르)”의 합성어로 “살다”와 “물”이란 뜻으로 살아 있는 물을 의미합니다. 영어성경에서는 “living water”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번 마시고 사라지는 물이 아니라 영원히 계속 살아 있는 물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사마리아 여자는 육적으로 판단하고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대답해주셨는데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13-14)고 보다 자세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게 되므로 생수, 즉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은 영적으로 보면 예수님의 피는 영생을 주시는 참된 음료이므로(요 6:54-55) 그러한 자신을 주신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고 예수님께서 영생을 주신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0절 가운데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고 말씀하신 것과 14절 가운데 두 번씩이나 “내가 주는 물”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생수를 주신다는 것인데 생수가 되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주신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고 영생을 주신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요한복음 7장 37-39절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자는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데 그것은 성령님을 가리킨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이러한 문맥에서 10절 가운데 “하나님의 선물과”라고 한 것을 보면 은혜로 구원 받은 것을(엡 2:8) 가리키기보다는 성령님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행 8:18-20).
이렇게 보면 10절의 “하나님의 선물”은 성령님을 가리키고 “네게 물 좀 달라고 하는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10절의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는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네게 주었으리라고 말씀하신 의미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생수를 주신다는 의미를 해석함에 있어 폭넓게 해석해 본다면 예수님 자신을 주신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고, 영생을 주신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으며, 성령님을 주신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사마리아 여자는 안타깝게도 계속해서 이러한 것을 육적으로 판단하였습니다. 이와 같으므로 “그런 물을 내게 주셔서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을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 4:16-24 아버지께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심
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사마리아 여자가 육적으로 판단하자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더 이상 설명하지 않으시고 육의 껍질을 깨뜨리기 시작하셨습니다. 육의 상태로는 영의 것을 알 수도 없고 영의 것을 가질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영의 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알게 되고 가질 수 있게 되기에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이러한 것을 알아 볼 수 있도록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16)고 짧고도 강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이 말을 듣고 솔직하게 남편이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남편이 없다는 말이 옳다고 하시면서 그 이유는 남편이 다섯 명이나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므로 참되다고 하셨습니다(16-18).
그러자 사마리아 여자는 자신에 대해 훤하게 아시는 것을 보고는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19)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의 상태보다는 많이 좋아져서 이렇게 놀라운 고백을 하게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완전히 깨뜨려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수 이야기를 하다가 다소 다른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예배에 대해 말했습니다. 어쩌면 좋지 않은 이야기를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 화제를 돌리려고 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선지자로 여겼기에 이 기회에 그동안 궁금하게 생각했던 예배에 관한 것을 알고 싶어 여쭈어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이렇든 저렇든 사마리아 여자는 아직도 육의 상태에서 벗어나 영의 상태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하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곧바로 잡아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육신의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영적으로 해결을 받아야 되기에 생수에 이어 예배에 있어서도 영적인 것으로 해결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21-24).
예배드림에 있어 육적인 어떤 장소나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되게 예배하려면 “영과 진리로”(23, 24) 드려야 하는데 영적인 상태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상태가 아니고서는 올바른 예배를 드리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육의 상태로는 종교적인 의식을 행할 수는 있지만 영이신 하나님께 영적인 예배를 드리지는 못하게 된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진리로 드려야 한다고도 하셨습니다. 임의대로 드리는 예배가 하나의 의식에 불과하게 될 수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진리의 말씀에 따라 예배드릴 때 영적인 상태로 드리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영”과 “진리”(23, 24)의 원어원형은 각각 “πνεῦμα(프뉴마)”와 “ἀλήθεια(알레데이아)”인데 “바람, 숨, 영, 성령”이라는 뜻과 “진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은 성령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는 사람의 영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NASB NIV NKJV 등의 영어성경에서는 “in spirit and truth”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의 원어원형은 “ἐν(엔)”으로 “안에”라는 의미가 있기에 “in”으로 한 것입니다.
● 4:25-29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함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셔도 사마리아 여자는 영적으로 말씀하신 생수와 예배에 대한 의미를 깊이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앞에 계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줄도 모르고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이러한 모든 것을 알게 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생수와 예배를 포함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실 분은 메시야, 곧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알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25절을 보면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26)고 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는 말씀을 듣자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29)라고 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이제야 비로소 영의 상태로 바뀌게 되었고 앞에 계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육체의 목마름을 해결해주던 물동이를 버려두고 자기가 만난 예수님이 영적인 목마름까지도 온전하게 해결해주시는 그동안 고대해왔던 메시야, 곧 그리스도이신 것을 동네사람에게 전하게 된 것입니다.
● 4:30-38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양식에 대해 말씀하심
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32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는 1-42절 가운데 30-38절입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전하자 사람들이 동네에서 나와서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이러는 사이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잡수시기를 청하였습니다(31).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32)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육적으로 이해하였으므로 서로 말하기를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양식”(32)의 원어원형은 “βρῶσις(브로시스)”로 “먹는 것, 음식”을 뜻합니다. 이어서 나오는 34절의 “양식”의 원어원형도 “βρῶμα(브로마)”로 “음식”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러한 양식은 여기에서는 육체적으로 먹는 음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음식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아버지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일을 마치 매일 음식을 먹듯이 일상적이면서도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말씀하시기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34)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음식은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시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시는 것인데 이러한 일의 예로 보내서 거두시는 일을 하신다는 것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심는 자와 거두는 자를 통해 거두러 보내시는 일에 관한 것인데 제자들이 뿌리고 심고 추수하고 거두는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35-38).
“추수”(35)의 원어원형은 명사인 “θερισμός(데리스모스)”인데 동사인 “θερίζω(데리조: 거두다, 추수하다)”에서 유래한 용어입니다. 이후에 나오는 “거두는”(36), “거둔다”(37), “거두러”(38)는 모두 동사에 해당되는데 동일한 의미의 어원입니다.
이처럼 4장에서도 여전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보내신 것과 영생에 관한 것입니다. 보내신 것에 관한 것은 34절 가운데 예수님께서 양식과 관련해서 언급하실 때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라고 하신 말씀에서 볼 수 있으며, 38절에서 “거두러 보내었노니”라고 하신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생에 관한 것은 36절 가운데 볼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 추수와 관련해서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고 하시는 것에 관해 언급하실 때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라고 하신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보내신 것과 영생은 요한복음에서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주제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와 같은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추수사역에 참여하게 해주시고 함께 즐거워하게 해주시므로 기쁘고 영광스럽게 된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천국에 가면 이러한 일을 더욱 더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전도를 받아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이 막상 천국에 와보니 지옥에는 절대 갈 곳이 못되더라는 것을 알고 반대로 천국은 상상 이상으로 얼마나 좋은지를 알고서는 만날 때마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할 때 그 기쁨이 매우 클 것입니다.
● 4:39-42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
39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39절 이후를 보면 사마리아 여자가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고 증언하므로 그 동네 가운데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자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자 거기서 이틀을 유하셨습니다(40). “유하시”(40)의 원어원형은 “μένω(메노)”인데 “머무르다”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이틀을 머무시면서 말씀하시자 예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41) 졌습니다.
여기서 살펴볼 용어가 하나 있는데 “더욱”(41)이라는 용어입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용어의 원어원형은 “πλείων(플레이온)”인데 “πολύς(폴뤼스: 많은)”의 비교급으로 “더 많은, 더 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용어 다음에 곧바로 이어서 사용된 용어는 “많아”(41)라는 용어인데 이 용어의 원어원형이 “πολύς(폴뤼스: 많은)”입니다.
이러한 것을 통해 “더욱 많아”(41)라는 말씀은 많아도 더 많은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대부분의 영어성경에서는 “many more”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많고 많은 사람들이 믿은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롬 10:17). 예수님의 말씀은 이처럼 위력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자 그 사람들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42)고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은 세상의 구주로 오신 분이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요일 4:14). 이처럼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보내신 세상의 구주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세상의 구주이십니다. 구원해주시는 구주, 곧 그리스도이십니다(눅 2:11).
이처럼 위로부터, 즉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알면 알수록 구주가 되시는 것을 더욱 더 믿게 되고 더 널리 증언하게 되는 것입니다.
4:43-54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서 고치심
● 4:43-54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서 고치심
43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44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45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9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갈릴리에서 일어난 일은 그리스도로서 실제적인 사역을 하신 예로 제시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43-54절까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틀 후에 사마리아를 떠나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갈릴리에 오셨을 때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들도 명절에 예루살렘에 갔는데 명절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에 다시 오셨는데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왕의 신하가 있는데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어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47)라고 요청하였는데 자기 아들이 곧 죽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48)고 하자 신하가 거듭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49)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50)라고 하자 그 사람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갔습니다. 내려가다가 종들을 만났는데 아이가 살아 있다고 하였습니다.
원어성경 51절의 부사 “ἤδη(에데)”를 살펴보면 “이미”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에 가서 만난 것이 아니라 내려가다가 만나게 된 것은 아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종들이 얼른 가서 주인에게 전해주려고 이미 출발하였기 때문에 만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아이가 이미 살아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은 때를 물었더니 “어제 일곱 시에 열이 떨어졌습니다”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라고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는 자신과 그의 온 집안이 다 믿었습니다.
이와 같으므로 사마리아 여자와 왕의 신하의 경우를 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 주위의 사람들도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39절의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는 말씀과 53절의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라는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표적에 이어 두 번째 표적에 해당합니다.
이와 같은 43-54절을 보면 그리스도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믿었다고 하는 것을(53)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하와 그의 온 집안사람들은 어떤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까? 4장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온 세상의 구주이신 메시야, 곧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었다고 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예루살렘에서만이 아니라 갈릴리에서도 병을 고쳐주신 것은 예수님께서 온 세상의 구주로서 고쳐주신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재개정일 2024년 1월 12일
개 정 일 2020년 9월 17일
발 행 일 2018년 9월 5일
지 은 이 이서영
출 판 사 퍼플
출판등록 제300-2012-167호 (2012년 9월 7일)
주 소 서울시 종로구 종로1가 1번지
대표전화 1544-1900
홈페이지 www.kyobobook.co.kr.
ISBN 978-89-24-12034-9
ⓒ 이서영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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