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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개관/요한복음

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7장 예수님께서 안식을 주시나 율법 미준수로 배척 받으심

by 이서영 목사 2018. 10. 2.

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제2부 7-12장 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세상에 오셨으나 배척받으심

 

  요한복음 7-12장을 전체적으로 본다면 아버지로부터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배척 받으시는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간혹 믿는 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주로 믿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배척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으므로 7-12장에서는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도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께서 보내신 아버지에 관한 것을 계속 강조하시고 믿음과 영생에 관한 것을 계속해서 강조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7장에서는 초막절을 배경으로 율법의 진정한 의미가 담긴 안식에 관한 것을, 8장에서는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배경으로 자유에 관한 것을, 9장에서는 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이 보게 된 것을 배경으로 빛에 관한 것을, 10장에서는 목자와 양의 비유를 배경으로 영생에 관한 것을, 11장에서는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배경으로 부활에 관한 것을, 12장에서는 마리아가 향유를 부은 배경으로 죽으심에 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장별 주제
7   예수님께서 안식을 주시나 율법 미준수로 배척받으심
8   예수님께서 자유를 주시나 진리 부재로 배척받으심
9   예수님께서 빛을 주시나 출교 결의로 배척받으심
10   예수님께서 영생을 주시나 신성모독 규정으로 배척받으심
11   예수님께서 부활하게 하시나 신고 명령으로 배척받으심
12   예수님께서 죽음을 예고하시나 불신으로 배척받으심

 

 

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7장 예수님께서 안식을 주시나 율법 미준수로 배척 받으심

 

  단호하게 배척하는 것을 보면 어떻게 배척합니까? 아무리 좋아도 온갖 꼬투리를 잡아 배척합니다. 아예 처음부터 받아들이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처럼 배척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그러한 방식으로 배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7장 개요

 

✙✙✙ 7장 구절

 

요한복음 7장에서 대표적인 구절을 선정한다면 예수님께서 율법의 진정한 의미가 담긴 안식을 주신다는 23절과 배척자들이 이러한 율법을 지키지 않고 배척한다는 19절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 7장 주제

 

요한복음 7-12장을 전체적으로 본다면 아버지로부터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배척받으시는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7장은 예수님께서 안식을 주시나 율법 미준수로 말미암아 배척받으신다는 관점에서 이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초막절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율법의 진정한 의미가 담긴 안식을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배척자들은 초막절을 지키면서도 율법의 정신은 배제시켜버리고 율법조항을 들어 그와 같으신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7장을 보면 이러한 흐름이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주제를 도출해 본다면 예수님께서 안식을 주시나 율법 미준수로 배척받으심이 됩니다.

 

✙✙✙ 7장 구조

 

7장에서는 초막절을 날짜별로 구분해서 초막절 전과 중간과 끝나는 날로 구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초막절 전과(2, 8) 초막절 중간과(10, 11, 14) 초막절 끝날(37)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분을 하면서 이와 관련하여 배척하는 사람들을 세 부류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초막절 전에는 첫 번째 부류가 등장하는데 예수님의 형제들이 믿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고, 초막절 중간에는 두 번째 부류가 등장하는데 유대인들이 믿지 않고 죽이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초막절 끝에는 세 번째 부류가 등장하는데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믿지 않고 잡으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예수님과 배척하는 사람들이 서로 주장하기를 율법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죽이려 한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누가 옳다고 하겠습니까? 배척하는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죽이려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율법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을 모르면 배척하게 되고 알게 되면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참된 의미대로 안식을 주시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되면 믿지 않게 되고 심지어 잡아 죽이려 하고 저주를 받은 것으로까지 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초막절이나 안식일과 같은 율법의 형식적인 규정을 지키면서도 율법의 진정한 내용은 잘 알지 못하게 되므로 율법의 규정을 들어 정죄하고 배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7장에서는 안식을 주시는(23) 예수님을 볼 수 있는데 율법의 진정한 정신으로 안식일을 지키셔서 병든 사람을 고쳐주시므로 안식을 누리게 해주시고(23) 성령님을 주셔서 율법을 행할 수 있도록 하심으로 안식을 주시려는 것을(39)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배척자들은 믿지 아니하고(5, 12, 20, 26, 41, 47, 48) 그러하신 예수님을 죽이려하고(19, 25) 잡으려는 것을(30, 32, 44, 45)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유대인의 명절에 대해 많이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명절에 관한 성경구절을 찾아보면 마태복음이 2, 마가복음도 2, 고린도전서는 1개인데 이에 비해 요한복음은 무려 13개나 됩니다.

이러한 요한복음 가운데 7장에 6개를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살펴보기 전에 6장을 살펴보면 유대인의 명절 가운데 유월절”(6:4)과 연관하여 언급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으므로 유월절 어린 양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6:53-58)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러한 가운데 생명의 떡과(6:32-33, 35, 48-51) 생명의 말씀에 대해(6:63, 68)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어서 나오는 7장에서는 유대인의 명절 가운데 초막절”(2)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초막절의 의식과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말씀은 실로암 못에서 물을 길어와 제단에 붓는 의식과 연관되어 보이는 37-39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목마른 자는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시면서 나를 믿는 자는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님을 가리킨다고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외에 초막절과 연관된 것을 살펴보면 날짜별로 구분해서 초막절 전과(1-9) 중간과(10-36) 끝나는 날로(37-53) 구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기도 하겠지만 배척하는 사람들의 부류에 따라 나눈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배척하는 사람들을 세 부류로 나누어 살펴보면 초막절 전에는 첫 번째 부류가 등장하는데 예수님의 형제들이 믿지 않는 것을(5) 볼 수 있습니다.

초막절 중간에는 두 번째 부류가 등장하는데 유대인들이 믿지 않고 죽이려는 것을(11, 13, 20, 25, 30) 볼 수 있으며, 초막절 끝에는 세 번째 부류가 등장하는데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믿지 않고 잡으려는 것을(45, 47, 49) 볼 수 있습니다.

 

 

     7장 개관

 

단락   단락별 개요
1-9   예수님의 형제들이 믿지 아니함
10-36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함
37-53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 함



              7:1-9 예수님의 형제들이 믿지 아니함

 

7:1-9 예수님의 형제들이 믿지 아니함

 

1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5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8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9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1-9절의 장면은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 전에(2, 8) 일어난 장면입니다. 여기에서는 예수님의 형제들이 믿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초막절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께 명절에 올라가라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올라가지 않으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는 것을(8-9) 볼 수 있습니다.

71절을 시작하면서 그 후에”(1)라고 하고 있습니다. “를 원어로 보면 지시대명사 οτος(후토스)”의 복수인 ταῦτα(타우타)”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으므로 그 후에는 어떠한 일들이 있은 후에 일어난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시대명사는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으므로 무슨 큰 의미가 있다고 골치가 아프게 원어로 살펴보느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7장의 주제를 여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살펴보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일들은 무엇을 가리키고 있습니까? 그것은 5-6장의 일들을 가리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5장에 나오는 베데스다 못의 삼십 팔년 된 병자를 고치신 것과 관련된 일과 6장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표적과 관련된 일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 후에 예수님께서 유대에서 다니시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갈릴리에서 다니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죽이려고 하는 이유는 5장에 나오는 일과 관련된 것입니다. 518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이와 같으므로 7장을 처음 시작하면서 나오는 어떠한 일들에 대한 중요성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한 것은 안식일을 어겼고 하나님을 친 아버지라고 하여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것으로 말미암아 죽이려고 하였는데 7장 이후로부터는 본격적으로 죽이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그 후에라는 말씀은 간단해 보이는 것처럼 보여도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말씀인 것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7장의 주제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배척한다는 7-12장의 주제까지도 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먼저 살펴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하였는데 얼마나 죽이고 싶어 하였겠습니까? “죽이려”(1)라는 용어 가운데 의 원어원형은 ζητέω(제테오)”찾다, 갈망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얼마나 죽이고 싶어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을 갈망하기에 찾아 죽이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앞으로 전개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1-9절의 장면에서는 예수님의 형제들이 믿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5)고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형제들이 예수님께 은밀하게 행하지 말고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도록 여기를 떠나 유대로 떠나가서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시라고 한 것은(3-4)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형제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어떤 특별한 존재로 보이기보다는 육체의 형제로만 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일반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떠나 가버리기를 바랐으므로 3절에 떠나···가소서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소서떠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용어의 원어원형은 πάγω(휘파고)”인데 떠나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가 떠나가소서를 보면 둘 다 모두 명령형이므로 형제들이 얼마나 떠나 가버리기를 원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으므로(6, 8)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6-8).

예수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시고는 갈릴리에 머무르셨습니다. 여기까지가 초막절 전에 일어난 장면에 대한 것입니다.

 

              7:10-36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함

 

7:10-24 유대인들이 율법 미준수로 죽이려 함

 

10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 11 명절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12 예수에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한다 하나 13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없더라 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15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1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20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로 말미암아 이상히 여기는도다 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23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24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

 

10-36절의 장면은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 중간에(10, 11, 14) 일어난 장면입니다. 여기에서는 유대인들이 믿지 않고 죽이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명절 중간에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율법을 준수하지 아니하므로 죽이려고 한다는 것과(10-24)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는 것을(25-36) 볼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10-24절의 장면입니다.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예수님께서는 공개하지 아니하시고 은밀하게 올라가셨습니다. 명절 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무엇을 하려고 찾았겠습니까?

무리들 가운데 예수님께 대한 수군거림이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무리를 미혹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무도 예수님께 대하여 드러내어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말조차도 조심한 것을 보면 유대인들이 찾으려고 한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찾아서 죽이려는 상황이므로 자칫하다간 불똥이 튈 우려가 있으므로 모두가 드러내어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자 예수님께서 성전에 올라가 가르치셨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배우지 아니하였는데 어떻게 글을 아느냐라고 하면서 놀라워하였습니다(4:13).

이렇게 유대인들이 놀라워하자 예수님께서 대답해주시기를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16-18)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신 이의 교훈이라는 것에 대해 말씀하신 후에 이어서 대답해주셨는데 율법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19).

율법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고 적용하고 행하였다면 예수님을 죽일 리가 없지만 율법의 정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율법을 지키”(19)지 아니하였으므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라고 준 율법규정이 오히려 죽이는데 사용되어버린 것입니다.

무리가 예수님께 대답하기를 당신은 귀신이 들렸습니다라고 하면서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합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제대로 된 율법의 정신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안식일에 할례를 받기도 하듯이 안식일에 삼십 팔년 된 병자의 전신을 건전하게 할 수도 있는데 이러한 것으로 성을 내느냐고 하셨습니다.

21-24절을 보면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로 말미암아 이상히 여기는도다.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고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으므로 율법을 지킴에 있어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로운 판단을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안식일을 지켜야 율법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12:7, 10-13).

이렇게 안식일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은 할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많이 아프고 괴로우면 안식을 누리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런데 위로나 도움을 받게 되거나 더 나아가 고침을 받게 된다면 얼마나 즐겁고 평안하겠습니까?

이렇게 된다면 안식을 제대로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율법 준수의 정신이요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7:25-36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 함

 

25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되 이는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26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그들이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27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28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29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30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31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32 예수에 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 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아가겠노라 34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35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36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25-36절을 보면 유대인들이 예수를 잡고자”(30)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들이 죽이려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라고 하였으며 보라 드러내어 말해도 아무도 말하지 아니하므로 당국자들이 혹시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이신 줄로 알았느냐라고 하면서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만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드러내어 말씀하셔도 아무도 말하지 않고 있지만 자기들은 예수님이 어디에 사는 사람이고 어디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육의 입장에서만 알고 있고 영적으로는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바로 코앞에 두고도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27)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면서 크게 외치셨습니다. 28-29절을 보면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오신 것이 아니라 보내셔서 오셨는데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말씀하셨는데 이에 대한 반응이 어떠합니까?

아멘이라고 크게 화답하였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잡으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무도 손을 대는 자가 없는 것을(30) 볼 수 있습니다.

이들과는 다른 반응을 보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무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31)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믿기는 믿었는데 무엇을 믿었는지는 불분명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많은 표적을 보고 믿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앞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라고 말한 것을 보면 아직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명확하게 알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믿을 때 보다 정확하게 알고 믿어야 할 필요성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장면이 진행되는 가운데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45-52) 단서를 제공해주는 장면이 살짝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2절인데 예수님에 대한 무리의 수군거림을 바리새인들이 듣고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낸 장면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어서 계속 무리와 말씀을 나누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33-34)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보내신 이에게로 떠나가신다고 하시자 유대인들이 서로 말하기를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찾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가라고 하면서 흩어져 사는 헬라인에게로 가서 가르치려고 하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육의 상태로 보았으므로 나를 찾아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요 나 있는 곳에 올 수도 없다는(34)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으므로 이 말씀이 무슨 말이냐라고 하였던(36) 것입니다.


             7:37-53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함


7:37-44 예수님을 믿는 자는 성령님을 받음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40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41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42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43 예수로 말미암아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44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37-44절의 장면은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 끝에(37) 일어난 장면입니다. 여기에서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믿지 않고 잡으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명절 끝날에 예수님께서 믿는 자가 받을 성령님에 대해 말씀해주시는 것과(37-44) 예수님을 잡으려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들먹이면서 사람들에게 따지는 것을(45-53) 볼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37-44절의 장면입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반석이신(17:6, 고전 10:4) 예수님께서 서서 크게 외치시기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37-38)고 말씀하셨습니다.

39절을 보면 배에서 흘러나올 것이라는 생수의 강은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님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이처럼 성령님을 받게 됩니다. 진리의 성령님을(14:17, 23, 15:26, 16:13) 받아야 율법을 제대로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예수님을 배척하지 않고 믿고 따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율법을 알아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되고 결국은 예수님을 배척하게 됩니다. 율법의 진정한 내용은 모르고 율법의 껍데기 규정만 알고 그 규정으로 정죄하고 배척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이 말씀들을 듣고는 쟁론이 일어나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0-43절인데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예수로 말미암아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쟁론”(43)의 원어원형은 σχίσμα(스키스마)”인데 문자적인 뜻은 잡아 찢기, 갈라진 틈이며 은유적인 뜻은 분열, 분쟁, 언쟁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볼 때 쟁론은 쟁론할수록 분열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이가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배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참으로 선지자라고 하기도 하고 그리스도라고 하기도 하였지만 쟁론수준을 넘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가운데 그리스도를 언급한 성경구절을 찾아보면 18개가 나오는데 그 가운데 7장에 가장 많은 5(26, 27, 31, 41, 42)가 나오지만 애석하게도 그리스도로 믿었다는 구절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믿지는 않고 이론적으로만 쟁론한 것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그들 가운데에서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다고 한(44)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으므로(30) 손을 대는 자, 곧 잡는 자가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7:45-53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 함

 

45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46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47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48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49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50 그 중의 한 사람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51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52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53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45-53절을 살펴보면 예수님을 잡으려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들먹이면서 사람들에게 따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돌아오자 그들이 말하기를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잡아오지”(45) 아니하였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랫사람들이 대답하기를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결코 없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대답하기를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49)라고 하였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의 규정에 대해서는 잘 알았지만 예수님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율법에 기록된 예수님이시라는 것을(5:39, 46) 알지 못하고 잡으려 한 것입니다.

심지어 그러면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율법을 알지 못하는 자로 보고 저주를 받은 자라고까지 하였습니다. 너무나 어이가 없는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자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인 전에 예수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51)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대답하기를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라고 하였습니다.

찾아보라”(52)는 것은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율법으로 따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율법을 살펴보기는 살펴보는데 부정적인 측면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율법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과 율법을 바르게 해석하지 못하고 적용하지 못하는 것의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면 사람을 살리게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사람을 죽이게 됩니다. 심지어 예수님까지도 잡아 죽이게 되고 저주를 들먹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재개정일 2024년 1월 12일

개 정 일 2020년 9월 17일

발 행 일 2018 9 5

지 은 이 이서영

출 판 사 퍼플

출판등록 300-2012-167 (2012 9 7)

주 소 서울시 종로구 종로1 1번지

대표전화 1544-1900

홈페이지 www.kyobobook.co.kr.

ISBN 978-89-24-12034-9

 이서영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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