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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개관/요한복음

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8장 예수님께서 자유를 주시나 진리 부재로 배척받으심

by 이서영 목사 2018. 10. 2.

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8장 예수님께서 자유를 주시나 진리 부재로 배척받으심

 

  눈이 내리면 눈이 쌓이고 먼지가 가라앉으면 먼지가 쌓입니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 담는 대로 마음에 쌓이게 됩니다. 어느 순간 그렇게 담긴 것이 바깥으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평소에 선한 것을 쌓아 놓았다면 선한 것이 나오고 평소에 독한 것이 쌓여 있다면 독한 것이 튀어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8장 개요

 

✙✙✙ 8장 구절

 

요한복음 8장에서 대표적인 구절을 선정한다면 예수님께서 진리로 자유를 주신다는 36절과 배척자들이 진리가 없으므로 이를 배척한다는 37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 8장 주제

 

요한복음 7-12장을 전체적으로 본다면 아버지로부터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배척받으시는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8장은 예수님께서 자유를 주시나 진리 부재로 말미암아 배척받으신다는 관점에서 이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8-12장의 구조를 보면 먼저 어떤 일이 일어나고 이후에 그러한 것과 연관된 사람들이 나와서 일의 의미나 결과에 대한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8장에서는 예수님께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시는 일이 먼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후로는 예수님께서 죄의 의미에 대해 가르쳐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자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8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진리로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배척자들은 자유를 주는 진리가 안에 없으므로 죄에서 자유를 주시는 예수님을 오히려 배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8장을 보면 이러한 흐름이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주제를 도출해 본다면 예수님께서 자유를 주시나 진리 부재로 배척받으심이 됩니다.

 

✙✙✙ 8장 구조

 

8장에서는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자와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분을 통해 죄에 대한 의미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1-11절인데 예수님께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자를 정죄하지 않으시는 장면이고 후반부는 12-59절인데 이러한 일이 일어난 이후에 예수님께서 죄에 대한 의미를 가르쳐주시는 장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8장에서도 7장에 이어 예수님을 잡으려 하고 죽이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8장은 돌로 치려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돌로 치려는 장면으로 끝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자와 예수님을 돌로 치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죽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죄에 대한 의미를 가르쳐주시고 이러한 것을 진리와 연관하여 가르쳐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죽는데 간음죄를 지으면 죽게 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를 지으면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진리가 안에 거하지 않게 되므로 자유를 얻지 못하게 되고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겪지 않는데 예수님의 말씀이 거하지 않으므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되고 오히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이려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는 것을(12) 비롯해 7가지 자기선언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죄 가운데서 죽지 않고 살게 된다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보내신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인 영생을 얻게 하는 일을 행하시므로 아버지께서 함께 해주시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8장에서는 죄에 대한(7, 10, 11, 21, 24, 34, 46) 것과 자유를 주시는(36)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정죄하지 아니하셔서 자유를 주시고(11) 믿음으로 죄 가운데서 죽지 않도록 하셔서 죄와 죽음에서 자유를 주시려 하고(24) 진리로 자유를 주시려는 것을(32)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배척자들은 정죄하고(5) 믿지 아니하고(45, 46) 진리가 없으므로(37) 그러하신 예수님을 죽이려 하고(37, 40) 돌로 치려는 것을(59) 볼 수 있습니다.

8장에서도 7장과 같이 예수님을 잡으려 하고(20) 죽이려는 것을(37, 40, 59) 볼 수 있습니다. 8장은 돌로 치려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돌로 치려는 장면으로 끝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자(5, 7)와 예수님(59)을 돌로 치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려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들어 따지기도(33, 39, 52, 53, 57)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죄에 대한 의미가 무엇이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죄에 대한 의미를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죄와 관련된 성경구절은 27개인데 이 가운데 8장에 7(7, 10, 11, 21, 24, 34, 46)가 나옵니다. 9장의 8(2, 3, 16, 24, 25, 31, 34, 41)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8-9장에 나오는 것을 모두 합하면 15개로 다른 장에서 몇 개씩 언급하고 있는 것에 비해 매우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9장은 죄인과 관련하여 4(16, 24, 25, 31)가 나오므로 죄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언급하고 있는 곳은 8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8장에서 죄에 대해 집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8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죄에 대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죄를 지으면 죽는다는 것을 가리켜주고 있습니다. 간음죄를(11) 지으면 죽게 된다는 것을(5) 볼 수 있으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를(16:9) 지으면 죄 가운데서 죽게 된다는 것도(24)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죄가 나타난 현상 가운데 하나를 볼 수 있는데 예수님의 말씀이 안에 거하지 않으므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37) 죄를 짓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면 제자가 되고(31)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바라보지 않는데(51) 예수님의 말씀이 안에 없으므로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45, 46) 죽이려는 것을(37, 40, 59)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것을 역설적으로 생각해보면 결국은 자기가 지은 죄로 자신을 죽이는 것이 되므로 이미 죽은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이 안에 거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시급하고 중대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일은 선택이 아닌 영원히 죽고 사는 생사가 걸린 필수적인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죄에서 벗어나게 하실 수 있으십니까? 아들께서 자유를 주시므로(36)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해주실 때 해결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γώ εμί(에고 에이미: 나는 나이다)”라는 자기선언방식을 통해 생명의 빛을 주시는 세상의 빛”(12)이 되시는 것과 내가 그인”(24, 28) 것을 믿게 해주셔서 자유를 주십니다.

또한 정죄하지 아니하시므로(11) 죄에서 자유를 주시고 진리로 자유를(32) 주시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진리를 검색해보면 신약성경 전체를 보더라도 각 권별로 몇 개의 구절씩만 볼 수 있으며 공관복음에는 각 1구절씩 모두 3구절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요한복음에는 무려 19구절이나 됩니다. 이 가운데 8장이 5구절로 다른 장보다 더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8장 개관

 

단락
단락별 개요
1-11
예수님께서 간음하던 여자를 정죄하지 않으심
12-59
예수님께서 죄에 대한 의미를 가르쳐주심

 


             8:1-11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자를 정죄하지 않으심

 

8:1-11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자를 정죄하지 않으심

 

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1-11절의 장면은 예수님께서 간음하다가”(4) 붙잡힌 여자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자유를 주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으로 가셨다가 이른 아침에 다시 성전에 나타나셨습니다. 모든 백성이 예수님께 오자 앉으셔서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럴 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4-5)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몸을 굽히시고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계속 물으니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대답하시기를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7)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몸을 구부리시고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으나 그들이 계속 묻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시고 다시 쓰셨습니다. 그들이 계속 물으니까 다시 쓰실 때는 예수님께서 죄 없는 자가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더 이상 말하지 못할 정도의 죄를 쓰신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어른들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예수님과 그 가운데 서있는 여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지켜보시고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10)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여자가 주여 없나이다”(11)라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11)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정죄하지 않으신 것은 자유를 주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정죄를 받지 않게 해주시므로(5:18, 8:1) 죄를 사해주시고 구원해주셔서 죄와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11)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전에 지은 간음죄를 정죄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이지 간음죄 자체를 없앴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간음은 분명히 죄라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원어성경을 보면 다시는(μηκέτι, 메케티)” 앞에 πὸ τοῦ νν(아포 투 뉜)”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더 이상 간음죄를 짓지 말라는 의미인데 더 이상 죄를 범하지 말라는 것은 간음은 분명하게 죄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간음하는 것은 죄이기에 또다시 간음하면 또다시 죄를 짓는 것이므로 지금부터는 마음으로까지도(5:28) 더 이상 간음하지 않아서 더 이상 간음죄를 짓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확대해서 적용해보면 이보다 더 심각한 간음인 세상과 벗이 되는 영적인 간음죄도(4:4) 더 이상 짓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간음은 육체적인 간음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짓는 간음과 영적인 간음이 모두 해당되므로 이러한 간음을 더 이상 하지 않아서 간음죄를 짓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8:12-59 예수님께서 죄에 대한 의미를 가르쳐주심

 

8:12-20 예수님의 판단과 증언은 참되심

 

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13 바리새인들이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 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15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16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17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18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19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20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예수님께서 죄의 의미에 대해 가르쳐주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12-59절이 이에 해당됩니다.

예수님께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자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자유를 주시는 일이 일어난 이후의 일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죄에 대한 의미를 가르쳐주시는 부분인데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에 대해 참되”(14, 16)신 판단과 증언을 하신다는 것과(12-20) 유대인들이 죄 가운데 죽게 된다는 것과(21-29) 유대인들 안에 진리가 없으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이려는 것과(30-47) 유대인들의 죄가 나타난 결과에 대한 것으로(48-59) 나눌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12-20절인데 예수님께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자에게 말씀하신 이후에 예수님께서 판단에 대해 가르쳐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정죄하지 아니하시고 자유를 주신 것은 그만한 권위가 있으시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권위가 있으시기에 그와 같은 판단을 하실 수 있으신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먼저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12)셨는데 누구에게 말씀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간음한 여자에게 말씀하신 다음에 나오니까 당연히 여자에게 또다시 하신 말씀으로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된 원어성경을 보면 12절 앞부분에 ατοῖς(아우토이스)” 나오는데 남성 복수입니다. 예수님께서 여자에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남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3) 또다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12)고 하셨습니다.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자도 이와 같은 말씀처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간음이란 어두움에 돌아다니지 아니하고 자유를 얻게 되었고 생명의 빛을 얻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생명의 빛이십니다. 이와 같으므로 당연히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고 자기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그만한 증언을 하실 수가 있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하도다”(13)라고 하였습니다. 두 사람 이상이 증언해야 되는데(19:15) 마치 혼자서 증언하는 것처럼 보였으므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해주셨습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14-18).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 증언하셔도 참되신 것은 예수님은 어디서 오셨고 어디로 가시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십니다.

또한 판단도 참되신데 혼자가 아니시라 오히려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께서 예수님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며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예수님을 위하여 증언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판단은 참되신 판단이시고 예수님의 증언도 참되신 증언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증언과 판단이 참되시지 못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의 정죄에 대한 판단이나 증언은 참되지 못한 것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므로 자유를 얻지 못하게 되고 생명 또한 보장받을 수 없게 되어버릴 것입니다.

이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도 모르고 더군다나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를 모르고 있으므로 예수님께 묻기를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고 하셨습니다(19).

이러한 말씀을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사람들 눈에 잘 뜨이고 많이 오고가는 헌금함 앞에서 말씀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20)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붙잡고 싶지만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붙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배척받으시는 7-12장을 전체적으로 보면 예수님을 붙잡으려 하고 죽이려는 장면을 곳곳에서 볼 수가 있는데 여기에서도 그러한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여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 요한복음의 기록목적인데(20:31) 여기에서 크게 어긋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에 대해 증언하시고 보내신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대해 아무리 증언하셔도 도무지 들리지는 않고 오히려 붙잡으려고 한 것을 보면 예수님을 뒤따르지 아니하므로 생명의 빛을 얻지 못하고 어두운 죄 가운데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8:21-29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면 죄 가운데서 죽게 됨

 

21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22 유대인들이 이르되 그가 말하기를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그가 자결하려는가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2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자니라 26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 하시되 27 그들은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28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21-29절을 보면 유대인들이 죄 가운데 죽게 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죄가 있으면 죄 가운데서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자를 정죄하고 죽이려 하였고 예수님을 죄인으로 취급하고 죽이려고 하였지만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실 때는 오히려 유대인들이 죄 가운데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말씀하시기를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21)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떠나가시면 예수님을 찾을 것이나 죄가 있으므로 그 죄로 말미암아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고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떠나가시는 곳에는 올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가야하는 곳을 가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죄가 해결되어야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갈 수가 있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죄에서 자유를 얻어 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떠나가시는 곳에 올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하시니 자살하려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23-24).

유대인들은 아래에 있고 세상에 속하나 예수님은 위에 계시고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아래에 계시고 세상에 있는데 어떻게 위에 계시고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실 수 있으십니까? 육의 눈으로 보면 알 수 없으나 영의 눈으로 보면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그인 것을 믿지 아니하면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라고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의 심각성이 얼마나 큰지 세 번씩이나 너희 죄 가운데서 죽”(21, 24, 24)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죄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이신 것을(24) 믿으면 됩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분이십니까?

이러한 궁금증이 유대인들에게도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말하기를 네가 누구냐”(25)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기를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25-26)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말씀하여 오시는 분이신데 예수님을 보내신 참되신 아버지로부터 들은 것을 세상에 말씀하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28-29).

이처럼 죄 가운데서 죽지 아니하려면 내가 그인”(24, 28) 것을 믿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까?

내가 그인것을 원어원형으로 보면 γώ εμί(에고 에이미)”입니다. “γώ(에고)”라는 뜻이고 εμί(에이미)”내가 있다, 내가 존재한다, 나는 ~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직역해보면 나는 나이다라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죄 가운데서 죽지 않고 살기 위해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을 믿으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나는 나이다라고 하는 사실을 믿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구약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께서 보내셨다고 하면 그들이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을 때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는지를 여쭈었을 때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3:14)고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3:13-14).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γώ εμί(에고 에이미: 나는 나이다)”라는 표현도 그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으로서 스스로 계시지만 역할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양들을 위하여 버리실 때 스스로”(10:18) 버리신다고 하신 말씀을 제외하고는 스스로”(5:19, 30, 7:17, 28, 8:28, 8:42, 14:10) 오시거나 말씀하시거나 행하지 아니하신다고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든지 스스로 하실 수 있으신 분이시지만 그렇게 하지 아니하시고 주어진 역할에 따라 아버지의 뜻을 철저하게 준행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이신 것을 믿어야 죄 가운데서 죽지 않는데 본 단락의 말씀인 21-29절에서는 어떤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까?

그 누구도 말할 수 없는 나는 나라고 선언하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그러하신 예수님의 여러 모습들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내가 그인나는 나이다라는 것을 문맥에 따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γώ εμί(에고 에이미)”를 요한복음에서 검색해보면 내가 그인”(8:24, 28, 13:19) 것을 비롯해 20개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예수님께서 자기 선언하신 것은 모두 12개인데 중복되는 5개를 제외하면 7개가 됩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6:35), 나는 세상의 빛이니(8:12), 나는 양의 문이라(10:7), 나는 선한 목자라(10:1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11: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14:6), 나는 참포도나무요(15:5).”

이처럼 요한복음 전체에서 광의의 문맥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생명의 , 세상의 빛, 양의 문, 선한 목자, 부활과 생명, 길과 진리와 생명, 참포도나무이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 단락에서 그 당시 상황의 문맥으로 본다면 823절 이전에 그동안 이미 앞에서 말씀하신 것을 가리키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6장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나는 생명의 떡”(6:35)이시다는 것과 8장의 나는 세상의 빛”(8:12)이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되고(6:35)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살아 있는 떡이시므로 이 생명의 떡을 먹으면 영생하게 됩니다(6:48, 51).

또한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뒤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게 되는(8:12)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독특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보내신아버지에 대한 언급인데 816, 18, 26절에 이어 29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보내신 아버지께서 함께 하시는 것은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항상 행하므로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내신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뜻인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도록 하는(6:38-40, 3:16-17, 12:50, 20:31) 일을 항상 행하셨으므로 아버지께서 함께 해주신 것입니다.

 

8:30-47 진리 부재로 예수님을 죽이려 함

 

30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3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37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39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40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1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42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43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46 너희 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30-47절을 보면 유대인들 안에 진리가 없으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고(45, 46) 죽이려는(37) 죄를 짓게 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안에 거하지 아니하므로 일어나게 되는 현상인데 그 결과 믿지 않고 죽이려는 죄를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31-32)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안에 거하게 되는 결과에 대한 것인데 만일 예수님의 말씀이 거하면 참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고 진리를 알게 되면 그 진리가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거하지 않는데 예수님의 제자가 될 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참된 제자라면 당연히 예수님의 말씀이 거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진리를 알게 된다면 그 진리대로 살아가게 되어 있으므로 간음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게 되어 죄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과는 다르게 예수님의 말씀이 안에 거하지 않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믿더라”(30)고 하였으며 믿은”(31) 유대인들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마치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후로 진행되는 예수님과의 대화를 보면 무엇을 믿었는지가 불분명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므로 아무에게도 종이 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자유롭게 되리라고 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34-36)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종이 된 적이 없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기 때문에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나 아들은 영원히 거하시므로 만일 아들이 자유롭게 하면 확실하게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진실로 그렇게 하고도 남지 않겠습니까? 아들을 보내셔서 자유를 주시려는 아버지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으신(4:18) 아들께서 자유를 주셔서(5:1) 진리대로 행할 수 있도록 해주셨으므로(8:2-4)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지 않습니까?

이렇게 예수님께서 아무리 자유를 주려고 하셔도 이를 거부한다면 자유롭게 되지 못하고 오히려 진리가 아닌 자신의 기준에 묶여서 판단을 그르치게 되고 결국은 죄의 종이 되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영원히 죄의 종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37)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였으므로 예수님께서도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을 아시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안에 있을 곳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있을 곳이의 원어원형은 χωρέω(코레오)”인데 받다, 퍼뜨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서 안에 두루두루 퍼져서 가득 차도록 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충만한데 예수님을 죽이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예수님을 경외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거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자유롭게 되는데 거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죄 가운데 있으므로 예수님을 거부하고 죽이려고까지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속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되는 것은 누구로부터 들었느냐에 따라 다르게 된다는 것에 관해 말씀하셨는데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38)고 하셨습니다.

이에 그들이 대답하기를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39-41)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살아 있다면 예수님을 어떻게 대하셨겠습니까? 이와 같으므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한다면 아브라함처럼 행하였을 것이고 진리를 말하는 예수님을 죽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이 대답하기를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41)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을 들먹이다가 여의치 않자 이제는 하나님까지 언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아버지가 누구인가에 관해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42-43)라고 하셨습니다.

이곳에서도 보내신”(42) 아버지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아버지이셨다면 스스로 오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보내셔서 오신 예수님을 사랑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충격적인 사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마귀가 아비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인 것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44)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진리가 안에 없으면 자기 판단대로 진리가 아닌 거짓을 말하게 되고 예수님도 당연히 죽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진리가 안에 없으면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게 되므로 간음죄와 같은 죄를 지어 놓고도 죄를 짓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죄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진리가 안에 없게 되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진리에 비추어보면 엄청나게 큰 죄임에도 불구하고 죄로 여기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면 그 죄 가운데서 죽게 되는(24) 줄도 모르고 죄를 지은 일이 전혀 없다고(요일 1:8) 당당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 놓이게 되면 진리를 말해도 예수님을 믿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예수님께서 계속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45-47)라고 하셨습니다.

진리를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난 하나님의 것인 하나님께 속한 자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10:4-5) 됩니다.

하지만 진리를 거부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게 되는데 이러한 것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8:48-59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치려함

 

48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4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50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52 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53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5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55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57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59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48-59절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에 유대인들이 반응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죄 가운데 있던 유대인들의 죄가 나타난 결과에 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고 받아들였다면 좋았겠지만 오히려 거부하고 돌을 들어 치려(59)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유를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거하지 아니하므로 죽이려 한다는 말씀의(37) 하나의 사례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유대인들이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하고 귀신이 들렸다고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49-50)고 하셨습니다.

앞에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이 육체를 따라 판단한다고(15) 하셨는데 이들도 그렇게 판단하고 무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자유를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거하지도 지키지도 않게 된 결과이므로 자의적으로 판단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51)고 하셨습니.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영원히 죽게 되지만 누구든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바라보게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또다시 귀신 들렸다고 하면서(48, 52)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는데 누구든지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더 크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도 죽었는데 너는 너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54-55)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는 너희가 하나님이라 말하는 그분이라고 하시면서 나는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신다고 하셨습니다. 지키라고 말씀만 하지 아니하시고 몸소 지키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어서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에 대해 거듭 말하였으므로(33, 39, 52, 53) 그들에게 아브라함을 들어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56)고 하셨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네가 아직 오십 세도 안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58)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던지려고 돌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감추시고 성전에서 나가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분명히 그렇게 하였음에도(56)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면서도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하지 않고 오히려 죽이려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믿지 못하고 죽이려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재개정일 2024년 1월 12일

개 정 일 2020년 9월 17일

발 행 일 2018 9 5

지 은 이 이서영

출 판 사 퍼플

출판등록 300-2012-167 (2012 9 7)

주 소 서울시 종로구 종로1 1번지

대표전화 1544-1900

홈페이지 www.kyobobook.co.kr.

ISBN 978-89-24-12034-9

 이서영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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