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6장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으로 오심
하늘에서 무엇이 내려옵니까? 계절에 상관없이 볼 수 있는 것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입니다. 가끔 눈이나 우박 같은 것도 내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은 살아가는 동안에 필요한 것입니다. 만일 하늘에서 비나 눈이 그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식수가 부족하게 되고 농사일도 공장일도 지장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반드시 내려와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6장 개요
✙✙✙ 6장 구절
요한복음 6장에서 대표적인 구절을 선정한다면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으로 오셨다는 51절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 6장 주제
요한복음 1-6장을 전체적으로 본다면 아버지로부터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어떤 예수님이신가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6장은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으로 오셨다는 관점에서 이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6장에서는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으로 오셔서 영생을 얻도록 해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6장을 보면 이러한 흐름이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주제를 도출해 본다면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으로 오심이 됩니다.
✙✙✙ 6장 구조
6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시고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신 다음에 가버나움 회당에서 떡에 대한 의미를 가르쳐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1-21절인데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시는 장면이고 후반부는 22-71절인데 오병이어의 표적 이후에 예수님께서 떡의 의미를 가르쳐주시는 장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표적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배부르도록 넉넉하게 주신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떡의 의미에 대해 가르쳐주신 것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생명의 떡이시며 예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영생의 말씀이시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육체의 일시적인 배고픔만 해결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배고픔의 문제까지 넉넉하게 해결해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생명의 떡을 주시고 영생의 말씀을 주셔서 영원히 배부르게 해주시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영생을 얻게 해주시고 영생의 삶을 살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보내신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한 사람도 잃지 않고 모두 살려주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며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시고 오게 하여주시므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6장에서는 생명의 떡이신(35, 48)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떡으로서(32, 50, 51, 58) 보내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셔서(38) 아들을 보고 믿는 자에게 영생을 얻게 해주시고(40, 47, 51, 54) 생명의 말씀을 주시는 것을(63, 68)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떡에 관한 말씀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31-33).
여기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응을 볼 수 있는데 41-42절입니다.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려, 이르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예수님께서 이와 같은 유대인들에게 대답하신 말씀인데 50-51절입니다.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이어서 계속 말씀하셨는데 58절입니다.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떡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와 연관하여 생명에 대해 언급하신 말씀도 볼 수 있는데 33절입니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5절과 48절을 보면 친히 생명의 떡이라고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또한 51절과 53절에서도 생명의 떡이신 것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살과 연관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6장 개관
단락 | 단락별 개요 | |
1-21 |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심 | |
22-71 | 예수님께서 떡의 의미를 가르쳐주심 |
6:1-21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심
● 6:1-15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먹여주심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시는 장면은 1-15절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큰 무리에게 먹여주시는 장면과 16-21절에 나오는 오병이어로 큰 무리에게 먹여주신 이후에 건너편으로 가시는 장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나오는 장면은 1-15절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큰 무리에게 먹여주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큰 무리에게 먹을 것을 주셨는데 매우 기이한 방식으로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9)로 먹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 그러자 큰 무리가 따랐는데 병자들에게 행하신 표적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셔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에 앉으셨습니다. 그 무렵은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큰 무리가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말씀하셨습니다. 5절인데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5)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먹기 위해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6) 빌립을 시험하려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실지를”(6)의 원어원형은 “μέλλω(멜로)”인데 “곧 ~하려고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무엇을 곧 행하려고 하는 것인지를 아셨다는 것입니다. 조금 후에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먹이시는 것을 아셨지만 빌립을 시험하시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빌립은 대답하기를 “각 사람이 조금씩이라도 받게 하려면 이백 데나리온 어치의 떡이 부족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백 데나리온을 현재가치로 환산해본다면 1데나리온은 하루 품삯에 해당하므로 하루 품삯을 100,000원으로 가정해서 계산해보면 200데나리온×품삯 100,000원=20,000,000원이 됩니다.
떡 값으로 이 정도 지불하려면 큰 금액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금액조차도 넉넉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남자 오천 명이 조금씩 먹을 빵 값만 계산해도 5,000명×1인당 빵 2,000원=10,000,000원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이 먹을 빵 값을 모두 합친다면 이보다 몇 배 더 많을 것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빌립의 대답은 틀린 대답이 아닌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우리가”(5) 어디서 떡을 사서 먹이겠느냐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능력이 없어서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빌립을 시험하려고 하신 말씀인데 빌립은 인간적인 계산을 한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있고 난 이후에 제자들 가운데 시몬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가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9)라고 하면서 그러나 이것이 이 많은 사람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지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병이어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먹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살펴볼 용어가 하나 있는데 “아이”입니다. 아이가 자기 혼자 먹으려고 오병이어를 꼭꼭 숨겨 놓고 없는 척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오병이어의 표적에 있어 종자에 해당하는 것이 오병이어인데 그것을 내놓지 않았다면 오병이어의 표적은 없는 것입니다.
꾀가 많은 어른들은 어떻게 했겠습니까? 누군가는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지고 있어도 안색하나 바꾸지 않고 마치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조용히 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들킬까봐 옷자락으로 얼른 덮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린아이는 아낌없이 내어 놓았습니다. 이처럼 가지고 있는 것이 보잘 것 없어보여도 내어 놓을 때 오병이어와 같은 표적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드레가 말씀드리자 예수님께서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10)고 하셨습니다. 그곳에 잔디가 많아서 사람들이 앉으니 오천 명쯤 되었습니다. 한 장소에 오천 명 정도가 유대인들이 식사할 때 가지는 자세인 비스듬하게 누워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어마어마하지 않겠습니까?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은 오병이어뿐인데 예수님께서 먹을 준비를 하라고 하시자 시키는 대로 제자들이 그 수많은 사람들에게 앉으라고 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순종했다는 것은 더 놀라운 사실입니다. 이처럼 믿고 순종할 때 오병이어와 같은 표적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앉자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시고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주셨는데 그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습니다.
“축사하신”(11)의 원어원형은 “εὐχαριστέω(유카리스테오)”인데 “감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감사를 드리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많은 사람들에게 오병이어로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라는 식으로 걱정이 가득한 모습으로 원망불평을 하셨겠습니까? 아닙니다. 주신 오병이어에 대해 감사하셨습니다.
이처럼 오병이어와 같은 표적은 감사할 때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자에게 놀라운 응답을 주시고 해결해주시고 더 풍성하게 주시고 구원해주십니다(시 50:23, 대하 20:21-22).
이처럼 감사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응답은 감사할 때 위로부터 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 감사를 많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장면을 보면 예수님께서 주실 때 조금씩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원대로”(11)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먹고 싶은 대로 풍성하게 주셔서 “배부”(12)를 정도로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배부르게 된 후에 제자들에게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12)고 하셔서 모으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13) 열두 바구니에 찰 정도였습니다.
“남은”(12, 13)의 원어원형은 “περισσεύω(페릿슈오)”인데 “남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지만 “넘치다, 초과하다, 풍성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남는다는 것은 넘쳤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넘치도록 풍성하게 주십니다. 예수님의 성품은 이와 같습니다. 먹고 남을 정도로 풍성하게 주시지 모자라거나 겨우 허기를 면할 정도로 주시지 않으십니다. 차고 넘치도록 주십니다(왕하 4:42-44).
요한복음 10장 10절을 보면 그러하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와 같은 풍성함이 오병이어의 표적의 현장에도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14)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오시는 그 선지자라고 한 것은 모세가 여호와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신다고 한 말이 실현된 것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그 근거가 되는 말씀은 신명기 18장 15절인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고 한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되자 예수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것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셨습니다.
● 6:16-21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으심
16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20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16-21절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큰 무리에게 먹여주신 이후에 건너편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가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건너편으로 가시는데 매우 놀라운 방법으로 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다 위로”(19) 걸으신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표적 이후에 저물었을 때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바다로 내려갔습니다. 배를 타고 바다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님은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런데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18)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파도”의 원어원형은 “θάλασσα(달랏사)”인데 “바다”라는 뜻입니다. 바다가 일어났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파도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배에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무서워하였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20)고 하시니 제자들이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습니다.
“기뻐서”(21)의 원어원형은 “θέλω(델로)”인데 주로 “바라다, 원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또 다른 뜻인 “좋아하다, 기뻐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NKJV 영어성경은 “willingly”(기꺼이)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이와 같은 자세로 영접하였기에 목적지에 무사하게 잘 도착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장면을 공관복음인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과는 다른 측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가시다가 제자들이 타고 가던 배를 타고 가셨는데 요한복음에서는 여기에 대한 의미를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는 다르게 이러한 일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보면 그 의미를 마지막 부분에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4장 33절을 보면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고 의미를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마가복음 6장 52절에서도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고 그 의미를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에서는 왜 언급하지 않고 있겠습니까?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이미 언급하고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를 살펴보면 이후에 전개되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보면 바다를 건넌 후에 동일하게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시는 장면이 나오고 그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떡을 먹을 때 손을 씻지 않아 장로들의 전통을 어겼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시고 바다를 건너신 다음에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에 대해 가르쳐주시는 장면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오병이어의 떡에 대한 의미를 직접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떡이라는 주제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으신 장면을 간략하게 언급하고 다른 두 장면은 아예 생략해버리고 곧바로 오병이어의 떡의 실체이신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생명의 떡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6:22-71 예수님께서 떡의 의미를 가르쳐주심
● 6:22-29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일에 대해 말씀하심
22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23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께서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24 무리가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떡의 의미를 가르쳐주시는 장면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신 이후에 나오는 장면인데 떡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가르쳐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22-29절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일에 대해 가르치시는 장면과 30-59절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에 대해 가르치시는 장면과 60-71절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에 대해 제자들이 반응하는 장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나오는 장면은 22-29절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일에 대해 가르쳐주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신 이후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떡이 가리키는 의미에 대해 가르쳐주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일에 대해 가르쳐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에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간 것을 보았습니다.
무리가 거기에 예수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보고서 배들을 타고 예수님을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갔습니다.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라고 여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26-27)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은 이유는 표적보다는 떡을 먹고 배부르기 때문이라고 하시면서 떡에 대한 의미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썩을 “양식(βρῶσις, 브로시스)” 곧 음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오히려 영생에 머무는 음식을 위해 일하라고 하셨습니다.
“썩을”(27)의 원어원형은 “ἀπόλλυμι(아폴뤼미)”인데 “멸망시키다, 파괴되다, 상실하다, 사라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대부분의 영어성경은 “perish”(사라지다, 파괴되다)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썩는다는 것은 멸망당하고 파괴되는 것을 의미하고 상실하고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이렇게 몰아가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에 머무르게 하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러한 양식을 “인자가 너희에게”(27)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을 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줄 수 있는 자는 누구나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을 치신 자여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아들로 인을 치셨고 생명의 떡으로서 생명의 떡을 주시는 것에 대해 인을 쳐주셨기 때문에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기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29)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27) 일하는 것인데 그러한 것이 의미하는 것은 영생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6:30-59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생명의 떡이심
30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31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41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려 42 이르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4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45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46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52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59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30-59절은 예수님께서 “하늘에서”(33, 38, 50, 51, 58) 내려오신 떡이라고 가르쳐주시는 장면입니다.
떡이 가리키는 의미에 대해 가르쳐주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영생을 주는 생명의 떡에 대해 가르쳐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자 “그러면 우리가 알고 당신을 믿도록 하기 위해 무슨 표적을 행하시고 무슨 일을 행하시겠습니까?”라고 여쭈었습니다. 이어서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고 기록된 것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32-33)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하늘로부터 진짜 떡을 주시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먹고 사라져버리는 세상으로부터 오는 떡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떡은 영원히 생명을 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이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34)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육체에 필요한 떡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야곱의 우물에 물을 길으러 왔던 그리스도이신 줄 알기 이전 상태의 사마리아 여자처럼(요 4:15)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그들을 위해 대답하시기를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35)고 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씀하신(요 4:14) 것과 매우 비슷한 말씀을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원히”의 원어원형은 “πώποτε(포포테)”인데 “언제나 항상, 어느 때든지”라는 뜻이 있습니다. 시간의 제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속 이어서 대답하시기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고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36-37).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셨는데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고 한다고 하셨습니다. 보내신 아버지의 뜻은 내게 주신 자 가운데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셨는데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38-40).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관련된 용어를 살펴보면 “다시 살리”(39, 40)의 원어원형은 “ἀνίστημι(아니스테미)”인데 “일어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대부분의 영어성경은 “raise”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부활한다는 것은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부활하게 되면 죄와 저주와 사망으로 말미암아 넘어져 있던 것에서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하자 유대인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수군거리기를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42)라고 하였습니다.
“수군거려”(42)와 “수군거리”(43)의 원어원형은 “γογγύζω(공귀조)”인데 “속삭이다, 불만하다, 불만을 표현하다, 불평하다, 투덜거리다”의 뜻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처럼 믿고 감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중얼거리고 불만을 드러냈습니다(고전 10:10).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이시라는 것은 알지 못하고 육체의 부모로부터 온 것만 알았던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는 믿어 영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원망불평하게 되면 멸망하게 되므로 이러한 것을 교훈으로 삼아 두렵게 여기고 더 이상 원망불평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수군거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43-44절을 보면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고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끌지”(44)의 원어원형은 “ἑλκύω(헬퀴오)”인데 “끌어당기다”의 뜻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대부분의 영어성경은 “draw”(잡아당기다)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부드럽게 인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강제로 잡아서 끌어당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선택해주셔서 초자연적인 힘과 사랑으로 이끄시면 저항하지 못하고 이끌려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끌어주시지 아니하시고 가고 싶은 대로 두셨다면 부활과 영생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끌어주시므로 잃지 않고 끊어지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가 놓여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끊어질 수도 없고 벗어날 수 없으며 부어주시는 그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롬 8:38-39).
이렇게 바로 앞에 나오는 37절 이후를 보면 아버지께서 주시는 자와(37, 39)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시는 것에 대한 말씀과(44)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린다는 말씀을(39, 40, 44) 반복해서 계속 강조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 일이 필수적이면서도 귀중하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 이후에 아버지와 관련하여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45-46)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이어서 믿음과 영생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생명의 떡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47-51).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예수님은 영생을 주시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살아 있는 생명의 떡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살을 주셔서 생명의 떡을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듣고서는 서로 다투면서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52)라고 하였습니다.
아직도 육의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의 눈과 육의 눈의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의 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의 눈은 하늘의 것이 보이고 육의 눈은 하늘의 것은 보이지 않고 땅의 것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말씀하셨습니다. 53-57절을 보면 이곳에서도 또다시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신다는 것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시면서 내 살을 먹는 자는 나로 말미암아 살게 된다는 것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셔야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영생을 가졌으므로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에 다시 살려주셔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육체의 양식과 음료는 먹고 사라지지만 참된 양식과 음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찢어주시고 흘려주신 살과 피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예수님과 상호거주하게 하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게 해주는 것입니다.
“나도···거하나니”(56)의 원어원형은 “κἀγώ(카고)”인데 “그리고 나, 나도 역시, 나도 마찬가지로, 나도 같은 방식으로”라는 뜻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처럼 나도 역시 그렇게 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라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냥 거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밀접한 관계로 거하게 된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거하시는 예수님도 단수이시고 거하는 그 사람도 복수가 아닌 단수라는 것을 보면 1대 1의 관계로 상호 거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상호 거하게 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여기에서 살펴볼 용어가 하나 더 있는데 먹는다는 용어입니다. “먹게”(52)와 “먹지”(53)의 원어원형은 “φάγω(파고)”인데 “먹다”라는 뜻입니다. 이에 비해 “먹고”(54, 56)와 “먹는”(57)의 원어원형은 “τρώγω(트로고)”인데 먹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깨물거나 씹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먹는다는 행위는 같아 보이지만 전자의 먹는다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면 54절 이후에 나오는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아가 성찬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 다른 것입니다.
성찬을 거행할 때 깨물거나 씹어 먹는 모습의 용어를 사용한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마치면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58)고 하셨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떡은 먹어도 당연히 죽습니다. 그런데 다 같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라 하더라도 먹어도 죽는 것이 있고 먹으면 죽지 않고 사는 것이 있습니다.
만나가 하늘에서 내려왔지만 조상들이 먹고도 죽었습니다. 육신의 만나로는 영원히 살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온 참 만나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시고 마치셨는데 이러한 말씀은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말씀하신(59) 것입니다.
예수님의 전파하시고 가르치시고 고치시는 3대 사역 가운데 가르치는 사역을 수행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6:60-71 예수님의 말씀은 영생의 말씀이심
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6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62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65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71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60-71절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에 대해 제자들이 반응하는 장면입니다.
떡이 가리키는 의미에 대해 반응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영생의 말씀”(68)에 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여럿이 듣고 말하기를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60)라고 하였습니다.
“어렵”(60)의 원어원형은 “σκληρός(스클레로스)”인데 “굳은, 마른, 어려운”이라는 뜻입니다.
듣기에 딱딱하다거나 어렵다는 것인데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런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굳어져 있고 귀가 닫혀 있으므로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마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눅 8:8, 15).
예수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것을 아시고 말씀하시기를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61-63)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신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라는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63)인데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이 영이므로 생명을 주어 살린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육의 양식인 떡은 생명을 일시적으로 연장시키지만 영의 양식인 예수님의 말씀의 떡은 영원히 살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예수님의 말씀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영생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64)고 하셨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자기를 넘겨줄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예수님께서 영생의 말씀을 주셔도 믿지 아니하고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애석하게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또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65)고 하셨습니다. 앞에서도 이미 언급하신 말씀인데 여기에서 거듭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오게 하시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고 귀한 일이라는 것이고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아버지께서 오게 하셔서 믿게 된 자가 받은 복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시자 그때부터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뒤로 돌이켜 떠나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도 말씀하셨는데 “너희도 가려느냐”(67)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68-69)라고 하였습니다.
시몬 베드로의 이러한 믿음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시몬 베드로를 이끌어주시고 오게 하여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고백을 들으시고는 대답하시기를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70)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말씀하신 것인데 그는 열둘 가운데 하나로 곧 예수님을 넘겨줄 자였던 것입니다.
똑같이 살면서도 한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어 천국에 가고 한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마귀의 종노릇하면서 육으로 살다가 지옥에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재개정일 2024년 1월 12일
개 정 일 2020년 9월 17일
발 행 일 2018년 9월 5일
지 은 이 이서영
출 판 사 퍼플
출판등록 제300-2012-167호 (2012년 9월 7일)
주 소 서울시 종로구 종로1가 1번지
대표전화 1544-1900
홈페이지 www.kyobobook.co.kr.
ISBN 978-89-24-12034-9
ⓒ 이서영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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