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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개관/요한복음

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9장 예수님께서 빛을 주시나 출교 결의로 배척받으심

by 이서영 목사 2018. 10. 2.

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9장 예수님께서 빛을 주시나 출교 결의로 배척받으심

 

  캄캄하게 어두운 길을 가는데 편안하게 가기는 어렵습니다. 돌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고 괜히 무섭기도 하고 이래저래 편안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어두움에 속한 일도 좋을 리가 없습니다. 음란방탕하거나 훔치고 빼앗는 등의 일이 일어납니다. 이와 같으므로 어두움 가운데서는 안식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두움을 해결 받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영적인 영원한 어두움과 어두움의 영들로부터 해결 받아야 합니다. 


     9장 개요

 

✙✙✙ 9장 구절

 

요한복음 9장에서 대표적인 구절을 선정한다면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으로 계신다는 5절과 배척자들이 출교하기로 결의하였다는 22절입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 9장 주제

 

요한복음 7-12장을 전체적으로 본다면 아버지로부터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배척받으시는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9장은 예수님께서 빛을 주시나 출교 결의로 말미암아 배척받으신다는 관점에서 이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8-12장의 구조를 보면 먼저 어떤 일이 일어나고 이후에 그러한 것에 대한 의미나 결과에 대한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9장에서는 예수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의 눈을 뜨게 해주시는 일이 먼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후로는 예수님께서 맹인의 의미에 대해 가르쳐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 된 사람이 보게 된 것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을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배척자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를 출교하기로 결의하여 배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9장을 보면 이러한 흐름이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주제를 도출해 본다면 예수님께서 빛을 주시나 출교 결의로 배척받으심이 됩니다.

 

✙✙✙ 9장 구조

 

9장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보게 되는 것과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분을 통해 영적인 맹인에 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1-7절인데 예수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을 보게 하시는 장면이고 후반부는 8-41절인데 이러한 일과 관련하여 일어나는 장면인데 보게 된 맹인과 부모에게 질문하는 장면입니다.

후반부 장면은 다섯 편의 장면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이 세 번에 걸쳐 묻거나(10, 15, 18) 불러서 말하거나(24) 예수님께서 만나서 말씀하시는 것을(35) 기준으로 장면이 시작되고 전환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질문을 보면 사람들이 질문한 네 번의 질문은 육의 입장에서 질문한 것이므로 적정한 해답을 얻지 못한 채 끝나게 되었지만 마지막으로 질문하신 예수님께서 완결시켜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맹인이 보게 된 이후에 다섯 편의 장면을 볼 수 있는데 네 편의 장면에서는 부정적인 반응을 볼 수 있으며 마지막 다섯 째 장면에서는 긍정적인 믿음의 반응을 볼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배척자들은 자신들이 생각하기에는 안식을 누리고 있는 의인인 줄로 알고 있었지만 죄가 그대로 있는 맹인인 상태로 있으므로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다가 보게 된 사람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출교를 당할 심각한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믿고 시인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크고 굳센 믿음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장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네 번에 걸쳐 질문하였지만 결국은 해답을 얻지 못한 채 미완성으로 끝이 나는 것을 볼 수 있지만 마지막으로 질문하신 예수님께서 맹인에 대한 의미를 명쾌하게 결론지어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9장에서도 8장에 이어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특별히 9장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사람을 출교하기로 결의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조치가 얼마나 강력하고도 무서운 조치였던지 맹인의 부모조차도 아들에게 떠넘길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을 강력하게 배척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빛으로 계시면서 육적인 맹인의 눈도 뜨게 해주시지만 영적인 맹인들에 대한 것도 가르쳐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육적인 흑암 가운데 있으면 육적으로 안식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영적인 흑암 가운데 있으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여 영원히 흑암 속에서 살아야 하므로 영원히 안식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해결해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시고 자신을 보내신 이의 일을 하시는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해주셔서 세상의 빛으로 계시면서 이러한 맹인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셔서 안식을 누리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9장에서는 맹인에 대한 것과 빛으로 계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적인 어두움도 해결해주시지만(7) 영적으로 어두움 속에 있는 영적인 맹인을 고쳐주시려는 것을(39)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맹인에 대해 가르쳐주시는 것도(39, 41)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배척자들은 본다고 하였지만 정작 보아야 할 것을 못 보는 영적 맹인이 되어(41) 누구든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한 것을(22)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9장을 보면 8장에 이어 계속 배척받으시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러한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세상의 빛으로 계시면서 빛을 주시는 예수님께서 맹인의 의미에 대해 가르쳐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9장은 진짜 맹인이 누구이며 진짜 죄인이 누구인지에 대해 시작에서부터 끝에까지 언급해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판가름 나게 되는 것은 심판하러 이 세상에”(39)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9장에서는 이렇게 맹인이 보게 된 것과 관련된 이야기가 주로 등장하므로 7-8장처럼 예수님을 직접 잡으려고 하거나 죽이려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유형의 배척을 볼 수 있는데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22)하였다는 것입니다.

출교를 결의한 유대인들이 얼마나 무서웠는지에 대해 살펴보면 보게 된 맹인의 부모조차도 직접 답변하지 않고 아들에게 물어보라고(21) 떠넘길 정도로 무서워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후에 나오는 1242절에서도 그러한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관리들 가운데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지만 바리새인들로부터 출교를 당하지나 않을까 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배척자들이 그만큼 매우 강력하게 예수님을 배척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출교하였다는 것은 예수님을 핍박하고 배척한 것이나 마찬가지인(9:5, 26:14) 것입니다.

이러한 9장은 맹인”(1)으로 시작해서 맹인”(41)으로 끝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맹인에 대한 의미는 죄에 대한 것이므로 ”(2)로 시작해서 ”(41)로 끝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맹인을 검색해보면 구약성경에는 일부에만 나오는(1, 2, 2, 삼하 2, 1, 1, 8, 1, 1, 1) 편이고 신약성경에서도 마태복음 11구절과 요한복음 16구절 이외에는 일부에만 나오는(6, 7, 1, 1, 벧후 1)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이 16구절로 가장 많으며 이 가운데 9장이 13구절입니다. 나머지 10장과 11장에 나오는 2구절도 9장에 나오는 맹인과 연관하여 언급한 구절이므로 9장과 관련된 구절은 모두 15구절이나 됩니다. 그만큼 9장에서 차지하는 맹인에 대한 의미가 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8장에서는 죄에 대한 것이었다면 요한복음에서 죄에 대해 가장 많이 언급하고 있는 9장에서는(2, 3, 16, 24, 25, 31, 34, 41) 죄를 지은 죄인”(16, 24, 25, 31)에 대한 것을 보다 더 강조하고 있다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으므로 죄인에 대한 논쟁을 볼 수 있는데(16)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고 하는 편과 죄인으로서 어떻게 그러한 표적을 행할 수 있느냐는 편으로 나뉘어 분쟁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배척자들은 예수님이 죄인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24) 보게 된 맹인은 그가 죄인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보게 되었다는 것과(25) 하나님께서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신다는 것을 안다고 하는 것을(31)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죄인에 대한 논쟁의 근본적인 뿌리는 죄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맹인의 죄도 아니고 부모에게 죄가 있는 것도 아니라(3) 본다고 하는 자들에게 죄가 있다고 하신 것을(41)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누가 해결해줄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빛”(5)으로 계시는 예수님께서 해결주실 수 있으십니다.

이처럼 요한복음에서는 과 관련된 용어에 대해 매우 많이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통틀어 사도 요한이 33구절(요한복음 16, 요한일서 5, 요한계시록 12)로 가장 많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세상의 빛과 관련된 구절은 요한복음 812, 95, 119절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으로 계시기에 맹인을 고쳐주시고(7) 심지어 영적인 맹인까지도 고쳐주시는(39) 것입니다.

8장에 나는 세상의 빛이니”(12)라고 말씀하신 것은 선언적 측면이라고 본다면 9장에 내가 세상에 있을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5)고 말씀하신 것은 역할수행의 측면에서 말씀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8장은 예수님께서 γώ εμί(에고 에이미: 나는 나이다)”라는 자기선언방식을 통해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이시라는 존재에 대한 것을 가리키고 있다면 9장에서는 세상의 빛으로서 세상에 계시면서 맹인의 눈을 뜨게 해주시는 역할을 수행하시고 계시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9장 개관

 

단락
단락별 개요
1-7
예수님께서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심
8-41
예수님께서 맹인에 대한 의미를 가르쳐주심



              9:1-7 예수님께서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심

 

9:1-7 예수님께서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심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1-7절의 장면은 예수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을 보게 해주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지나가시다가 출생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을 보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쭈기를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나게 된 것이 누구의 죄인 것인지 여쭈었는데 자기의 죄인지 부모의 죄인지에 대해 여쭈었습니다.

9장은 이처럼 맹인과 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1-2) 맹인과 죄에 대한 이야기로 끝이 나는 것을(41) 볼 수 있습니다. 그 중간에 일어나는 이야기도 맹인과 죄인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로 봐서는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창세 이후로 맹인이 보게 되는 일은 그동안 본 적이 없었습니다(32).

이와 같으므로 구약성경에서 맹인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성경구절은 20구절 정도로 매우 적으며 그 가운데 영적인 맹인에 대한 구절이 10구절(29:9, 18, 35:5, 42:16, 18, 19, 56:10, 59:10, 4:14, 1:17)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도 53절에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라고 맹인이 베데스다 못에서 고침을 받으려고 등장한 사실은 언급하고 있지만 고쳐졌다는 말은 볼 수 없습니다.

이후로 맹인이 언급된 곳은 9-11장에 나오는데 모두 9장의 맹인이 고쳐진 것과 관련된(10:21, 11:37) 이야기입니다. 맹인과 관련된 이야기는 모두 9장에 집중해서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미나 중요성은 무엇이겠습니까? 맹인에 대한 것을 언급하면서 어둠속에 있는 죄인을 구원해주시는 세상의 빛으로 계시는(5) 예수님을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시작하면서 세상의 빛으로 계시면서 맹인을 보게 해주시는 것을 언급하고 있으며(7) 마치면서 못 보는 자들은 보게 해주시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시려는 것을(39)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질문한 누구의 죄인지에 대한 질문에 예수님께서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3)고 대답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고 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4-5).

이곳에서도 나를 보내신 이”(4)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그만큼 아버지와의 친밀하고도 특수한 관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보내셔서 세상에 오신 아들이시며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는 분이시다는 것입니다.

그러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4)고 하셨습니다. 보내신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이 예수님의 일이시며 또한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빛”(5)으로 계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 영적인 맹인들을 보게 하시는 일을 하시는데(29:18, 35:5, 42:16) 한 사람의 맹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맹인인 수많은 죄인들을 보게 해주시는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을 요한복음에서는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으므로 과 관련된 언급을 그 어떤 성경책보다도 가장 많이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통틀어 사도 요한이 가장 많은 33개의 성경구절(요한복음 16, 요한일서 5, 요한계시록 12)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찾아보면 요한복음이 16구절로(1:4, 5, 7, 8, 9, 3:19, 20, 21, 5:35, 8:12, 9:5, 11:9, 10, 12:35, 36, 46) 가장 많이 언급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예수님께서 직접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구절은 812, 95, 119절입니다.

빛을 이처럼 강조하고 있는 것은 빛이 아닌 어두움의 영에 사로잡히거나 어두움의 일을 하게 되는 영적 맹인인 채로 영적인 어두움에 있으면 결국은 죽게 되고 영원히 깊은 흑암에 갇히게 되므로(1:6, 13) 이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상의 빛이 들어오게 되시므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고(12:46)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냄을 받아(1:13) 영원히 빛 가운데 살게 되기를(21:23, 22:5) 원하기에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8장 가운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보면 이러한 것을 알 수 있는데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8:12)고 하신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9장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보게 되는 것을 통해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8:12)을 얻게 되는 실제 사례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8장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선언하시는 성격의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다면 9장에서는 세상의 빛으로서의 역할을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5)는 말씀을 하시고는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6) 맹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7)고 하셨습니다.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름의 뜻과 같이 예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맹인이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습니다.

어두운 세상을 밝히시는 세상의 빛으로 계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어두움 가운데 지내다가 밝은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9:8-41 예수님께서 맹인에 대한 의미를 가르쳐주심

 

9:8-14 이웃 사람들 등이 바리새인에게 데려감

 

8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2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13 그들이 전에 맹인이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14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태어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이 보게 된 이후의 장면에 대한 것인데 8-41절이 이에 해당됩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을 보게 해주신 이후에 나타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다섯 편의 장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장면이 전환될 때 이러한 것을 암시하는 말씀을 기준으로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묻거나 말하거나 만나는 것을 통해 장면이 시작하고 전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 장면의 시작은 10절의 그들이 묻되”, 둘째 장면의 전환은 15절의 바리새인들도···물으니”(15), 셋째 장면의 전환은 유대인들이···불러 묻”(18), 넷째 장면의 전환은 그들이···두 번째 불러 이르되”(24), 다섯째 장면의 전환은 예수께서···그를 만나사 이르시되”(35)라는 말씀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8-14절에 나오는 장면인데 이웃 사람들과 보게 되기 이전에 맹인이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맹인에게 묻고는 바리새인들에게”(13) 데려가는 장면입니다.

이들이 보게 된 맹인에게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묻고는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안식일을 어긴 것에 대해 따지려고 바리새인들에게 데려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14)이라고 언급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안식일에 일한 것으로 보았으므로 안식일을 어겼기 때문에 데려간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앉아서 구걸하던 자라고 하거나 비슷하다고 하자 보게 된 맹인이 자기가 그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눈이 어떻게 떠졌는지 물었습니다. 보게 된 맹인이 대답하기를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11)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고쳐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하므로 그들이 그가 어디 있느냐고 묻자 알지 못한다고 하자 그들이 전에 맹인이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13) 갔습니다.

이렇게 언급하면서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14)고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바리새인들에게 데려갔다고 하면서 안식일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은 안식일에 대해 시사하는 의미가 매우 크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단락으로 이어지므로 그때 가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보게 된 것은 깜짝 놀랄만한 일이므로 예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찾기는 찾았는데(12) 알고 보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고 따지려고 찾으려고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맹인이 보게 된 것에 대해 감사와 영광을 돌린 것을 볼 수 없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게 되자 바리새인들에게 데려간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9:15-17 바리새인들이 서로 분쟁함

 

15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이르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16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17 이에 맹인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

 

15-17절에 나오는 장면은 바리새인들이 이웃 사람들 등이 데려온 맹인이었던 사람에게 묻는 장면입니다.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에 대해 묻고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고 하느냐고 묻는 장면입니다.

그러자 맹인이었던 사람이 말하기를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15)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바리새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고 하여 분쟁이 일어났습니다(16).

이와 같으므로 맹인이었던 사람에게 다시 묻기를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고 하자 선지자니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17).

분쟁의 주된 이유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쟁 가운데 보아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진흙을”(6, 11, 14, 15) 이겨 눈에 바르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반복해서 나오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려고 하시는 것(3), 곧 보내신 이의 일을 하시려는 것과(4)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냥 고쳐주면 분간이 잘 되지 않기에 눈에 뜨일 정도로 하셨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인데 안식일과 연관되어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안식일에 일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안식일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하고 생명 살리는 일은 오히려 안식일에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여러모로 힘들어 하는 것들 가운데 놓여 있어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함께 안식을 실제로 누릴 수 있도록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진정한 의미라는 것입니다. 규정으로 얽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을 실제로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을 누리시고 안식을 누리게 해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난 이후에 안식하셨고(2:3) 언약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 안식을 누리게 해주셨으며(12:10)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신 이후에는 영원히 안식을 누리게 해주시는 것을(21:4)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안식을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어두운 가운데 살아가느라 안식을 누리지 못하던 맹인의 눈을 뜨게 해주셔서 안식을 누리게 해주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영적인 맹인까지도 보게 해주시고 안식을 누리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9:18-23 유대인들이 출교하기로 결의함

 

18 유대인들이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19 이는 너희 말에 맹인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 20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23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 보소서 하였더라.

 

18-23절에 나오는 장면을 보면 유대인들이 맹인의 부모를 불러 묻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않고 그 부모를 불러 묻기를 맹인으로 태어난 아들이 맞는지와 지금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부모가 대답하기를 자기 아들이 맞고 맹인으로 태어난 것을 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21)라고 하였습니다.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22)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부모가 아들에게 은근슬쩍 떠넘기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출교가 매우 강력한 조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출교를 결의한 유대인들을 그만큼 무서워하였다는 것입니다.

출교”(22)의 원어원형은 ποσυνάγωγος(아포쉬나고고스)”인데 회당에서 추방된, 회중에서 추방된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통틀어 요한복음에만 3구절(9:22, 12:42, 16:2) 나오는데 회당에서뿐만 아니라 몸을 담고 있는 집단으로부터 추방되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결의를 한 유대인들이 무서웠으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 보소서”(23)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크게 환영할 일이므로 할렐루야라고 하면서 더 잘 믿으라고 격려해주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히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로 시인하면 출교하기로 결의하였던 것입니다.

맹인도 이보다 더한 맹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세상의 빛으로 계시면서 맹인의 눈을 뜨게 해주셔서 안식을 주시는 예수님을 배척함으로써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캄캄한 어두움 가운데서 방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9:24-34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죄인으로 여김

 

24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26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27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28 그들이 욕하여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29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30 그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31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32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33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34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24-34절의 장면은 유대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말하는 장면입니다.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에게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24)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은 좋은 말이지만 안타깝게도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죄인으로 알고 있고(24) 예수님께서 어디서 오셨는지도 알지 못하고 있기(29) 때문입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이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그 분이 죄인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으며 어떻게 눈을 뜨게 했는지를 물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 되자 맹인이었던 사람도 자꾸만 묻자 지쳤는지 이미 말했는데도 듣지 않고 다시 들으려고 하기에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27)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그에게 욕을 하면서 말하기를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지만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겠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30-33)라고 하였습니다.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의 눈을 뜨게 한 사실을 듣지 못하였는데 예수님께서 눈을 뜨게 해주셨으므로 이러한 것은 사람이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만이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죄인으로 여겼지만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듣기에 예수님은 죄인이 아니라 경건하신 분이시고 그의 뜻대로 행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이 대답하기를 온전히 죄 가운데서 태어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라고 하면서 쫓아내어 보내버렸습니다.

죄 때문에 맹인으로 태어난 주제에 감히 누구를 가르치느냐는 것입니다. 들으려고 하지는 않고 오히려 쫓아내버렸습니다.

이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것이 맞느냐 아니냐에 대한 것과 예수님께서 죄인이냐 아니냐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인의 상태에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므로 영광을 제대로 드리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시며(4, 33) 죄인이 아니시라는 것을(16, 31) 알고 믿을 때 하나님께 진정으로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9:35-41 예수님께서 맹인에 대해 가르쳐주심

 

35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8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35-41절에 나오는 장면은 예수님께서 맹인을 만나서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앞서 질문한 사람들은 눈을 뜨게 된 맹인과 부모에게까지 질문하였으나 해답을 얻지 못하였으나 마지막으로 질문하신 예수님께서 맹인”(39, 41)에 대해 가르쳐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만나서 말씀하시자 맹인이었던 사람이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등장한 사람들을 보면 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처럼 제대로 된 믿음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그를 만나셔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인자를 믿느냐”(35)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대답하기를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36)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37)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주여 내가 믿나이다”(38)라고 하고 절하였습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을 보면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아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씻고 밝은 눈으로 돌아왔을 때(7) 감사하거나 고백한 것을 볼 수 없고 다만 선지자로 알고 있는 것을(17) 볼 수 있습니다.

그러던 그 사람이 이제는 부모조차도 출교하기로 결의한 유대인들이 무서워서 아들에게 떠넘기는 상황과(21) 자신이 유대인들에게 쫓겨난 상황에서(34) 그러한 위험을 무릎 쓰고 시인하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크고 굳센 믿음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은 그만큼 예수님을 분명하게 알고 믿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시인하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만나주시고 말씀하여 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와 같으므로 세상의 빛으로 계시는(5) 예수님께서 못 보는 자들은 보게 하시고 본다고 하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39)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 가운데 예수님과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는 우리도 맹인인가”(40)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41)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의인인 줄로 알고 있지만 예수님께서 보실 때는 겉만 깨끗한(23:25) 죄를 죄로 알지 못하는 영적 맹인들이라는 것입니다.

 

 

 

한눈에 보는 요한복음 (재개정판)

재개정일 2024년 1월 12일

개 정 일 2020년 9월 17일

발 행 일 2018 9 5

지 은 이 이서영

출 판 사 퍼플

출판등록 300-2012-167 (2012 9 7)

주 소 서울시 종로구 종로1 1번지

대표전화 1544-1900

홈페이지 www.kyobobook.co.kr.

ISBN 978-89-24-12034-9

 이서영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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