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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강해/강해설교

(마 16:24 강해설교)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by 이서영 목사 2018. 10. 29.


(마 16:24 강해설교)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라는 존재는 자기 혼자만 있을 때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함께 하여야 한다는 필연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합니다.


자기 것만 주장하게 되면 당장은 얻게 되는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잃게 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배려할 때 잃는 것 같지만 오히려 얻게 됩니다. 이와 같으므로 참된 삶을 살려면 자기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성도는 특히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의해서 존재의 의미가 결정되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내세우기 보다는 얼마나 자기 자신을 부인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한 제자들 가운데 가룟 유다는 돈을 좋아해서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므로 결국은 오히려 자기 자신을 망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오늘 본문 문맥에 나오는 베드로에 대해서만 살펴본다면 베드로는 어떤 행동을 하였겠습니까?

 

오늘 본문인 24절 앞에 나오는 21-23절을 보면 베드로가 사람의 생각을 우선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나타내시자 베드로가 붙잡고 꾸짖듯이 말하기를 그렇게 하지 마시라고 하면서 그러한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베드로가 말한 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지 않으셨다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몸을 생각해서 죽지 않으셔야 한다는 베드로의 인간적인 생각에 따랐다면 구원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그렇게 말릴 때 얼씨구나 좋다고 하시면서 못이기는 체하면서 생각만 해도 끔찍한 십자가를 지지 아니하셨다면 영생과 천국은 어떻게 되어버리겠습니까? 이른 바 물 건너갔을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칭찬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23)고 하시면서 크게 책망하신 것입니다.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23)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자기를 부인해야 예수님을 제대로 따르는 성도다운 성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새롭게 되어 자기를 부인할 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고 다함께 아름다운 사랑과 행복을 영원히 누리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자기를 부인하시고 자기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처럼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우리 십자가를 지고 따르게 되면 사랑과 행복의 아름답고도 감동적인 드라마가 쓰여 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다음에 나오는 25-27절을 보면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게 되고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찾게 된다고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에 대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주시겠다고 하시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목숨을 부지하려고 자기를 위해 산 사람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 대해 갚아주실 뿐만 아니라 자기 목숨보다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목숨과 자기의 모든 것을 다해 예수님을 위해 산 사람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 대해서도 모두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자기를 부인하게 됨으로써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잃는 것처럼 보여도 결코 잃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주시므로 어떻게 되셨습니까? 모든 것을 다 잃으셨습니까? 그렇지 않지 않습니까?


이러하므로 우리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면 비록 당장은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여도 결코 그렇지 않고 잃은 것처럼 보이는 그 모든 것을 찾게 되고 다함께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자기”를 언급하고 있는 구절 가운데 오늘 말씀드릴 주제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되는 구절을 선택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지난 주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자기”와 관련된 구절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오늘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 “자기”와 관련된 구절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자기 목숨과 관련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도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목숨을 살린다는 것은 자기 목숨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살리는 길은 자기 목숨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자기 십자가에 대한 구절이 오늘 본문을 비롯해 두 곳에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마태복음 10장 38-39절입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을 파송하는 장면 가운데 나오는 말씀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그리고 오늘 본문인 16장 24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잃으면 구원받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8장 35절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누가복음에서는 자기 목숨을 보전하는 자와 잃는 자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7장 33절입니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오늘 본문 가운데 나오는 “부인하고”(24)의 원어원형은 “ajparnevomai(아파르네오마이)”인데 “부인하다, 제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다, 포기하다”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자기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자기 것을 포기하여야 제대로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자기 목숨보다는 예수님께서 주신 자기 십자가도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십자가로는 무엇이 있겠습니까?


세상살이하면서 힘든 사람과 힘든 일과 힘든 질병을 만나게 되면 십자가라고 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힘드니까 십자가라고 할 수도 있지만 오늘 본문의 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명자로서 받은 십자가가 자기 십자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환경과 처지에서도 받은 사명을 더 귀하게 여기고 감당해 나가야 하는 십자가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사랑과 행복과 구원의 드라마의 완성도가 높아진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진 사람은 자기 자신의 생활이 있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없다고 보십니까? 자기 자신의 삶은 예수님을 위한 삶이기에 마치 자신의 삶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한 삶이 자신의 존재의 의미가 있는 자신의 진정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이 자기의 삶의 가치를 높여주고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4절입니다.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이러한 사명자로서 귀한 자기 십자가가 있기도 하지만 실제 삶 가운데 일어나는 자기 십자가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은 자기를 부인해야 이루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자기 것을 사랑하여 자기가 견고하게 버티고 있으면 하나님도 사랑하기 어려워지고 다른 사람도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내려놓으면 그때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자기의 유익보다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4절입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이러한 것도 넓은 범위에서 보면 예수님을 위해 자기를 부인한 것이 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4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자기 자신의 일도 잘 돌보아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일도 함께 잘 돌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자기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피보다 귀하다는 자기 돈을 부인한다는 것도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귀한 돈을 아낌없이 천국을 위해 투자한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인 것입니다. 그만큼 천국이 더 크게 보이고 천국을 더 크게 본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그리고 마태복음 13장 46절입니다.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그렇다고 해서 천국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돈으로 집을 사야 입주할 수 있듯이 천국을 돈으로 사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의 천국 비유는 천국이 그만큼 값지다는 것을 의미하고 자기의 돈보다 재물과 재산보다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게 될 때 천국의 가치를 그만큼 더 크게 깨닫게 된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직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더 크게 여기는 사람이 천국의 확장을 위해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내어놓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기를 부인하게 되면 나타나는 현상이 또 있습니다. 자기를 높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겸손해지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더 귀하게 여기고 높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4절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자기를 낮추면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높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자기 자신도 다른 사람도 모두 존귀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4장 11절에서도 그러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게 될 때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살아 있고 자기의 것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자기를 비우고 포기할 때 오히려 자기의 모든 것을 더 가치 있게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 자기가 잘 났다고 하면 그곳은 보나마나 으르렁거리고 다투는 지옥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낮추게 되면 그러한 곳은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인하게 되면 나타나나는 중요한 현상이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면 부인할수록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신 창조의 모습대로 아름답게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4장 32절입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거의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보다 귀하고 그 무엇보다 귀한 재산을 이렇게 나누어 쓰게 된 것은 자기를 부인하였기 때문에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이 함께 하였기에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모두가 살기 좋은 천국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의 것을 부인하고 자기를 희생하고 마치 자기를 포기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결말은 어떻게 된다고 하셨습니까?


오늘 본문 다음에 나오는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27)고 하신 말씀대로 은밀한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그 모든 것에 대해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 목숨을 버리고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는 그러한 사람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6장 15절입니다.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자기를 부인하면서 사는 사람은 영광스러운 옷을 입게 되므로 자기를 위해 살다가 더럽혀진 자신의 벌거벗은 부끄러운 몸을 드러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기를 부인하시고 자기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처럼 한평생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성도가 아니라 자기의 목숨과 자기의 것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사는 아름답고 참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셔서 오히려 자기의 존재 가치를 높이게 되시고 존재의 의미를 찾게 되시고 천국의 확장을 위해 귀하게 쓰임 받게 되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날에 좋은 것을 많이 받게 되시고 다함께 사랑과 행복을 누리는 가운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자기를 부인함으로써 인색하다고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영광을 받게 되면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 2018 참좋은제자들교회 http://cafe.daum.net/truegooddisciples 담임목사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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