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는 에베소서 (재개정판) 2장 구원에 나타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2장 개요
✙✙✙ 2장 구절
에베소서 2장에서 대표적인 구절을 선정한다면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8절입니다.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2장 주제
에베소서 1-3장은 성도들의 신분에 나타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의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은혜를 성도들의 신분에 풍성하게 부어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2장은 풍성한 은혜의 수혜자인 성도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도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풍성하게 베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로 구원받게 된 것과 구원을 받은 이후에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는 것과 성전과 처소로 지어져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2장은 이러한 흐름이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주제를 도출해 본다면 구원에 나타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됩니다.
✙✙✙ 2장 구조
에베소서 2장은 은혜의 수여자이신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의 수혜자인 성도들에게 주시는 구원의 은혜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2장에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하신 것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2장은 모두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10절 구원의 성립, 11-19절 구원의 목표, 20-22절 구원의 성취입니다.
첫 번째 단락인 1-10절은 구원의 성립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죽었던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주시고 함께 일으켜주시고 함께 하늘에 앉혀주셨습니다.
이러한 것은 우리의 행위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락인 11-19절은 구원의 목표에 관한 것인데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 이후에 나아가야 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었는데 자신의 육체로 둘을 하나로 만드시는 화평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한 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게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둘이 한 성령님 안에서 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단락인 20-22절은 구원의 성취에 관한 것인데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 이후에 이루어나가게 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다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으로 지어져 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처소로 지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한 몸이 되어 한 성전으로 지어져 가고 한 성령님 안에서 한 아버지의 처소로 지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2장 개관
단락 | 단락별 개요 |
1-10 | 구원의 성립: 믿음으로 구원받음 |
11-19 | 구원의 목표: 아버지께 나아감 |
20-22 | 구원의 성취: 성전과 처소로 지어짐 |
2:1-10 구원의 성립: 믿음으로 구원받음
1-10절은 구원의 성립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었으므로 구원이 필요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죽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주시고 함께 일으켜주시고 함께 하늘에 앉혀주셨습니다.
이러한 은혜를 베푸셔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우리의 행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선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3절은 구원이 필요한 배경에 대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허물과 죄로 죽은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4-6절은 구원의 수여자에 대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해주시는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7-10절은 구원의 은혜를 입게 된 목적에 대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해주신 목적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 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1-10절은 구원의 성립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2장을 시작하면서 1-3절은 죽은 상태에 대해 먼저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1절은 허물과 죄로 죽은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는 살아났다는 것을 언급하기 위해 죽었다는 것을 언급한 것입니다.
만약 허물들과 죄들이 없어 죽지 않고 영원히 천국에서 살게 된다면 구원의 필요성은 없게 되고 구원은 성립되지도 않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허물들과 죄들은 필연적으로 죽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1절에서는 죽었던 너희를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죽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너희들의 허물들과 죄들로 말미암았다는 것입니다.
이후에 나오는 5절을 보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골로새서 2장 13절을 보면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라고 한 것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들의 허물들과 죄들로 죽은 너희들을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2장은 구원의 은혜에 관한 것이므로 구원의 필요성에 대한 배경을 먼저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살리신 것보다는 죽었다는 사실로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너희들의 허물들과 죄들로 죽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허물들과 죄들로 죽었다는 것은 아무런 소망이 없는 절망적인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태로부터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2:2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1-10절은 구원의 성립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2절은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로 놓여 있는 존재들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그때에(ποτε, 포테)는 “그때에, 전에는, 언제든지” 등의 뜻입니다. 허물들과 죄들로 죽었던 때를 가리킵니다.
⚫ 그 가운데서(ἐν αἷς, 엔 하이스)는 “이것들 안에서”라는 뜻입니다. 허물들과 죄들 안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 행하여(περιεπατήσατε, 페리에파테사테)는 περιπατέω(페리파테오: 돌아다니다, 걷다, 행하다)의 직설법 과거 능동태입니다.
περιπατέω(페리파테오)는 περί(페리: 대하여, 주위에, 두루)와 πατέω(파테오: 밟다, 걷다)에서 유래하였으므로 “두루 다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하므로 어떤 일을 행할 때 일반적으로 단순히 행하는 것보다 더 널리 두루두루 행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허물들과 죄들로 죽었던 때에 너희들이 허물들과 죄들 가운데 널리 두루 행하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행한 두 가지 행위를 볼 수 있는데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른 것과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른 것입니다.
⚫ 풍조를(αἰῶνα, 아이오나)은 αἰών(아이온: 무한히 긴 시간, 시대, 세대, 영원)의 대격 단수입니다. 1장 21절의 세상과 2장 7절의 여러 세대에의 원어원형도 αἰών(아이온)입니다.
이 세상의 시대를 거슬러서 살지 않고 두루두루 이것저것 잘 맞추면서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인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도 따라다닌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공중의(ἀέρος, 아에로스)는 ἀήρ(아엘: 공중, 공기)의 속격 단수입니다. 지구를 둘러싼 하층의 하늘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러하므로 3장 10절에 언급하고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이 있는 하늘과 6장 12절에 언급하고 있는 악의 영들이 있는 하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는 하늘에 있는 악한 영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는 이렇게 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는 것을(1:3, 10, 20, 21, 2:2, 6, 3:10, 14, 4:8, 10, 27, 5:18, 6:9, 11, 12, 18) 볼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육의 것만 해결해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의 것을 해결해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악한 영은 지금 불순종하는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하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불순종의 아들들이란 표현은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라는 것을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순종해야 할 대상과 순종하지 않아야 할 대상을 거꾸로 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악한 영은 순종해서 잘 따르지만 하나님께는 불순종하고 따르지 않는 자들인 것입니다.
악한 영에게 불순종해야 하는데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불순종의 아들들이 된 것입니다.
⚫ 영이라(πνεύματος, 프뉴마토스)는 πνεῦμα(프뉴마: 바람, 호흡, 영, 성령)의 속격 단수입니다.
2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영은 공중의 권세를 잡은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악한 영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허물들과 죄들로 죽은 자들이 어떠한 상태에 놓여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풍조를 거슬리지 않고 따르는 자들이라는 것과 공중의 권세를 잡은 악한 영을 거슬리지 않고 오히려 따르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죽은 상태에 놓여 있었던 자들이 바로 너희들이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1-10절은 구원의 성립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3절에서는 너희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러한 상태였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허물들과 죄들 가운데서 육체의 욕심들 가운데 지냈던 존재들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 전에는(ποτε, 포테)은 “그때에, 전에는, 언제든지” 등의 뜻입니다.
2절에 나오는 그때에와 동일한 용어입니다. “허물들과 죄들로 죽었던 때에”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너희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때 너희는 이방인을 가리키고(2:11, 3:1) 있습니다.
우리가 가리키는 대상은 이방인과 대비하여 언급하고 있는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과(2:11) 가까운 데 있는 자들을(2:17) 가리킵니다.
이러한 2장을 보면 이 둘이 하나가 되었다고(14, 15, 16, 18, 19, 22)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그 가운데서(ἐν οἷς, 엔 호이스)는 “그것들 안에서”라는 뜻입니다.
그것들이 가리키는 것은 2절의 허물들과 죄들입니다. 허물들과 죄들 안에서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우리도 너희들처럼 그러한 가운데 지냈던 존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우리가 어떤 상태인지 밝혀주고 있는데 육체의 욕심들 가운데서 지냈다는 것입니다.
⚫ 지내며(ἀνεστράφημέν, 아네스트라페멘)는 ἀναστρέφω(아나스트레포: 뒤집어엎다, 되돌아오다, 돌다)의 직설법 과거 수동태입니다.
ἀναστρέφω(아나스트레포)는 ἀνά(아나: -위로, 반복이나 재생의 의미로 새로, 다시 한번)와 στρέφω(스트레포: 돌리다, 돌아가다)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은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이 어떤 생활방식의 틀 안에서 돌면서 머물러 있거나 처신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우리도 허물들과 죄들 가운데 지냈는데 육체의 욕심들 가운데 지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육체의 욕심들이 어떻게 생기는지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행하게 되므로 생기는 욕심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마음의(διανοιῶν, 디아노이온)는 διάνοια(디아노이아: 이해력, 사고의 일종으로서의 마음, 생각)의 속격 복수입니다. “생각들의”라는 뜻입니다.
διάνοια(디아노이아)는 διά(디아: -을 통하여, -동안, -와 함께, -때문에)와 νοέω(노에오: 지각하다, 생각하다)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여러 가지 사고하는 방식들이 있는데 육체의 욕망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육체와 생각들이 원하는 것들을 행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육체의 욕심들이란 바로 이러한 것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존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 이었더니(ἤμεθα, 에메다)는 ἦν(엔)의 직설법 미완료 중간태 복수입니다. ἦν(엔)은 εἰμί(에이미: 내가 있다, 나는 –이다)의 미완료입니다.
“나는 -이었다”라는 뜻으로 타고날 때부터 죄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를 받게 되어 있는 진노의 자녀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 있는 자들은 허물들과 죄들로 말미암아 죽은 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멸망하게 되는 마귀에게 속한 불순종의 아들들과 진노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 2: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1-10절은 구원의 성립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1-3절은 죽었던 자들에 대한 언급이라면 4절은 그러한 자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구원의 수여자에 대한 언급입니다.
구원을 받게 된 것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던 그의 큰 사랑을 통해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원어성경을 보면 앞에 나오는 δὲ(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고, 게다가, 더구나, 지금”이라는 뜻입니다.
1-3절과는 다르게 반전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죽었던 자들이므로 아무런 소망이 없었지만 4-6절에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살아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4절에 밝혀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긍휼(ἐλέει, 엘레에이)은 ἔλεος(엘레오스: 불쌍히 여김, 동정, 자비)의 여격 단수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를 받아 영원히 멸망에 처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보시고 동정심을 가져주시고 불쌍히 여겨주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 풍성(πλούσιος, 플루시오스)은 πλοῦτος(플루토스: 풍성함)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러한 풍성함을 에베소서에서 찾아보면 모두 5개(1:7, 18, 2:7, 3:8, 16)이며 2장 4절의 풍성까지 포함하면 모두 6개입니다.
에베소서는 그만큼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실 때 풍성하게 베풀어주신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누가 우리가 처해 있는 모든 것을 알고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면서 불쌍하게 여겨주고 자비를 영원히 베풀어줄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몰라서도 못해주고 알아도 해줄 능력이 못 돼서 발만 구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영원히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신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영원히 풍성하게 베풀어주실 수 있으십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하나님은 긍휼이 그야말로 풍성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약성경 가운데 하나님의 긍휼을 찾아보면 로마서 9장 16절에 볼 수 있는데 원하는 자도 달음박질하는 자도 아니라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디도서 3장 5절에서는 우리를 구원하여주시되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따라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1장 3절에서는 하나님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셨는데 그러한 동기는 우리를 큰 사랑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사랑하신(ἠγάπησεν, 에가페센)은 ἀγαπάω(아가파오: 사랑하다)의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입니다. 사랑하셨다는 의미입니다.
⚫ 원어성경을 보면 ἥν(헨)을 볼 수 있는데 ὅς(호스: 이것, 이 사람, 저것, 저 사람, -하는 바의)의 대격 단수입니다.
4절에서는 관계대명사로 사용되었으므로 “-하는 바”라는 뜻인데 “우리를 사랑하셨던 바”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셨던 바 그의 큰 사랑 때문이라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큰 사랑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큰 사랑으로 사랑하셨고 구원하실 때 그러한 큰 사랑으로 구원해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큰 사랑은 신약성경 가운데 에베소서에서만 유일하게 볼 수 있는 희귀한 용어입니다.
에베소서는 이렇게 큰(2:4)을 비롯해 지극히(1:19, 2:7, 3:8), 풍성(1:7, 18, 2:4, 7, 3:8, 16), 충만(1:23, 3:19, 4:10, 13, 5:18)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크심(1:19), 크도다(5:32), 뛰어나게(1:21), 측량할 수 없는(3:8), 넘치(1:8, 3:18, 20)와 같은 용어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를 보면 이렇게 형언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풍성하고도 놀라운 은혜에 대해 영광스럽고 웅장한 수식어를 동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것을 찬송드리고(1:3-14) 영광의 풍성함에 대한 것을 깊이 깨닫도록 기도드리는(1:15-19, 3:14-19)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분이시고 어떤 동기에서 구원해주셨는지를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큰 사랑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에 구원해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1-10절은 구원의 성립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5-6절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큰 사랑을 베푸신 결과에 대한 것인데 그리스도와 함께 구원받게 된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5절은 허물들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주신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절은 허물과 죄로 죽은 너희를(ὑμᾶς ὄντας νεκροὺς τοῖς παραπτώμασιν καὶ ταῖς ἁμαρτίαις, 휘마스 온타스 네크루스 토이스 파랖토마신 카이 타이스 하마르티아이스)이라고 하였습니다.
5절은 허물로 죽은 우리를(ὄντας ἡμᾶς νεκροὺς τοῖς παραπτώμασιν, 온타스 헤마스 네크루스 토이스 파랖토마신)이라고 하였습니다.
허물들과 죄들로 죽은 너희들을 가리키고 허물들로 죽은 우리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때 너희와 우리는 3절에 우리도 다(καὶ ἡμεῖς πάντες, 카이 헤메이스 판테스)라고 언급한 것처럼 구분하지 않고 통틀어 생각하면 됩니다.
이러하므로 5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허물들로 죽은 자들은 우리 모두가 해당된다고 보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허물들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함께 살리셨고(συνεζωοποίησεν, 쉬네조오포이에센)는 συζωοποιέω(쉬조오포이에오: 함께 살리다)의 직설법 과거 능동태입니다.
συζωοποιέω(쉬조오포이에오)는 σύν(쉰: 함께, -와 함께)과 ζωοποιέω(조오포이에오: 살리다)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같이 살아 있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용어는 신약성경 가운데 두 번 나오는 희귀한 용어인데 골로새서 2장 13절에도 나옵니다.
골로새서 2장 13절을 보면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συνεζωοποίησεν, 쉬네조오포이에센)라고 한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허물들과 죄로 죽은 우리 모두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게 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허물들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게 하신 것은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된 것이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때 너희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 모두를 가리킨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 모두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 은혜로(χάριτίv, 카리티)는 χάρις(카리스: 은혜, 호의)의 여격 단수입니다. χάρις(카리스)는 값없이 기쁘게 호의로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구원을 5절에 수동태를 사용하여 구원을 받은(σεσῳσμένοι, 세소스메노이)이라고 한 것은 우리가 구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셔서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에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허물들과 죄들로 죽은 자들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마귀에게 속해 심판받아 영원히 멸망하게 되는 불순종의 아들들과 진노의 자녀들의 상태로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러한 비참한 상태로 두지 아니하셨습니다.
우리를 그러한 죽은 상태에서 건져내시려고 우리에게 큰 사랑을 베풀어주셔서 구원을 받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큰 사랑으로는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선택하여 주셨습니다(엡 1:4, 살전 1:4).
또한 하나님께서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사랑해주셔서 행위가 아니라 긍휼히 여겨주심으로 구원받게 해주셨습니다(엡 2:4-5, 딛 3:3-5).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자녀로 삼아주시고(요일 3:1)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셔서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해주시고 살려주셨습니다(요 3:16, 요일 4:9, 10).
이러한 사랑을 확증해주신 것을 볼 수 있는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셔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해주셨습니다(롬 5:8).
이러한 사랑은 우리가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요일 4:10, 19).
이러한 일에 우리가 기여한 것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허물들과 죄들 가운데서 육체의 욕심에 따라 지냈던 자들이었습니다.
세상의 시대 풍조를 따랐고 하나님을 따른 것이 아니라 공중의 권세를 잡은 악한 마귀를 따랐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자들이었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려주셨으므로 살아나게 되었고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은혜가 아니고 그 무엇이겠습니까? 이와 같으므로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1-10절은 구원의 성립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5-6절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큰 사랑을 베푸신 결과에 대한 것인데 그리스도와 함께 구원받게 된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6절은 허물들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켜주시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함께 앉혀주신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함께 일으키사(συνήγειρεν, 쉬네게이렌)는 συνεγείρω(쉬네게이로)의 직설법 과거 능동태입니다.
συνεγείρω(쉬네게이로)는 σύν(쉰: 함께, -와 함께)과 ἐγείρω(에게이로: 일어나다, 일어서다, 죽은 자를 일으키다, 깨우다, 잠깨다)에서 유래하였으므로 “함께 일어나다, 함께 일어서다, 함께 죽은 자를 일으키다, 함께 깨우다, 함께 잠깨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뜻과 과거로 사용된 것을 보면 함께 일으키사의 뜻은 함께 다시 살아나게 하셨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용어는 신약성경 가운데 3곳에만 나오는데 골로새서 2장 12절에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고 한 것과 골로새서 3장 1절에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이라고 한 것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20절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지극히 크신 능력을 역사하셔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셨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1장 20절의 다시 살리시고(ἐγείρας, 에게이라스)는 ἐγείρω(에게이로)의 과거 능동태이므로 죽은 자를 일으키셨다는 의미입니다.
어원이 ἐγείρω(에게이로)로 함께 일으키사(συνήγειρεν, 쉬네게이렌)의 어원인 ἐγείρω(에게이로)와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다시 살려주신 것은 그리스도만 살려주신 것으로 끝내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다시 살려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도 그러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이러한 부활이 있으므로 허물들과 죄들로 죽은 불순종의 아들들이고 진노의 자녀들인 우리가 영원히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고린도전서 6장 14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를 다시 살아나게 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러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포함해 지구상의 수많은 성도들까지도 다시 살아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그리스도 한 분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믿는 모든 성도들의 죽음과 부활에도 밀접하게 연합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부활하게 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지극히 크신 능력과 사랑과 은혜를 알게 되고 그리스도와는 영원히 끊어질 수 없는 매우 밀접하게 연합된 관계라는 것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어떻게 감사와 영광과 찬송을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감격을 채 누리기 전에 또다른 감격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만 하게 해주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함께 앉혀주신 것입니다.
다시 살아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난 이후의 삶도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 함께···앉히시니(συνεκάθισεν, 쉬네카디센)는 συγκαθίζω(슁카디조)의 직설법 과거 능동태입니다. 함께 앉혔다는 의미입니다.
συγκαθίζω(슁카디조)는 σύν(쉰: 함께, -와 함께)과 καθίζω(카디조: 앉게 하다, 앉다)에서 유래하였으므로 “함께 앉게 하다, 함께 앉다”라는 의미입니다.
⚫ 하늘(ἐπουρανίοις, 에푸라니오이스)은 ἐπουράνιος(에푸라니오스)의 여격 복수입니다.
ἐπουρανίοις(에푸라니오스)는 ἐπί(에피: 위에)와 οὐρανός(우라노스: 하늘)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늘의, 하늘에 있는, 하늘에 속한”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함께 앉혔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보다 위라고 한 것은 자연의 하늘이 아니라 영의 세계가 있는 하늘을 가리킵니다.
앞서 1장 3절과 20절에서도 언급하였습니다. 이때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신령한 하늘을 의미합니다.
이에 비해 3장 10절과 6장 12절에서 말하는 하늘은 악한 영들이 있는 하늘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신령한 하늘에 함께 앉혀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최신의 성능을 가진 우주선을 타고 간다고 하더라도 그곳에 갈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것도 불가능합니다.
오직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수 있고(요 14:6) 가서 앉혀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우리 편에서 무엇인가를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시고 큰 사랑을 하셔서 하늘에 앉히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하므로 5절과 8절에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게 된 것만 하더라도 감격스러운 일인데 하늘에까지 앉혀주셨으니 더욱 더 감격스러운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신령한 하늘에 있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반적인 사람도 부활은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은 부활한다고 하더라도 악한 영에게 속한 채로 지옥에서 영원히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부활은 영생을 받기 위한 부활이 아니라 영벌을 받기 위한 부활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끔찍한 상태에서 건져주셨으니 그 얼마나 놀랍고 감격스럽고 영광스러우며 감사한 일입니까?
이러하므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3장을 통해 이러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하심에 대해 알기를 원했으며(1:15-19, 3:14-19) 찬송하기를(1:3-14) 원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눈여겨 살펴볼 용어가 있는데 접두어인 σύν(쉰: 함께, -와 함께)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해주실 때 구원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의 1장 20절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시고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히신 것은 혼자만의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들이 함께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σύν(쉰)을 사용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5절과 6절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주셨고, 함께 일으켜주셨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함께 앉혀주셨습니다.
이렇게 접두어 σύν(쉰)은 혼자만 혜택을 입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받게 된다는 것을 인식시켜주고 있습니다.
성도의 신분을 얻게 됨에 있어 이러한 σύν(쉰)의 역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므로 그만큼 매우 중요한 용어인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게 되셨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게 되었으므로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고 함께 부활하고 하늘에 함께 앉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영광스럽고 감격스러운 은혜를 입은 것에 대한 목적에 대해서는 7-10절에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1-10절은 구원의 성립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 가운데 7-10절은 구원의 은혜를 입게 된 목적에 대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해주신 목적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7절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 지극히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을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6절에 언급된 것처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주셨고 함께 일으켜주셔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혀주신 목적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나타내려고 하셨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풍성하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나타내려고 하셨습니다.
⚫ 자비하심(χρηστότητι, 크레스토테티)은 χρηστότης(크레스토테스: 선함, 친절함)의 여격 단수입니다.
⚫ 지극히(ὑπερβάλλον, 휘페르발론)는 ὑπερβάλλω(휘페르발로)의 동분사 현재 능동태입니다.
ὑπερβάλλω(휘페르발로)는 ὑπέρ(휘페르: -의 위에, -을 넘어서)와 βάλλω(발로: 던지다)에서 유래하였으므로 “초월하다, 능가하다, 뛰어나다, 탁월하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 나타내려(ἐνδείξηται, 엔데잌세타이)는 ἐνδείκνυμι(엔데이크뉘미: 보이다, 나타내다, 증명하다)의 가정법 과거 중간태입니다.
나타낸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보이는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논증이나 행동으로 분명하게 증명해 보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논증이나 행동을 전시하듯이 명확하게 잘 볼 수 있도록 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친절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탁월하게 풍성하다는 것을 모든 세대의 모든 성도들에게 나타내 보여주시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지극하다는 것은 초월한다는 것이고 능가한다는 것이고 뛰어나다는 것이고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사람도 해낼 수 없는 그러한 지극한 은혜를 성도들에게 풍성하게 부어주시므로 그러한 풍성한 은혜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탁월하게 풍성한 은혜를 풍성하게 부어주시고 풍성하게 누리게 해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풍성한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과 그러한 구원을 받은 자로서 풍성한 은혜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에베소서는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게 되는 것을 성도들의 신분과 성도들의 생활을 통해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신분은 선택과 구원과 전도의 은혜를 누리게 해준다는 것이고 성도들의 생활에서는 교회생활과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의 은혜를 누리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본 책에서는 2장 7절을 대표적인 구절로 선정하고 성도들의 신분에 나타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1-3장) 성도들의 생활에 나타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4-6장) 나누어서 살펴보고 있는 것입니다.
●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1-10절은 구원의 성립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8절은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과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 구원을 받았(σεσῳσμένοι, 세소스메노이)은 σώζω(소조: 구원하다, 해받지 않게 하다, 보존하다)의 동분사 완료 수동태 2인칭 복수입니다.
수동태이므로 우리가 구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셔서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고 너희들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앞서 7절에서는 은혜의 풍성함이 탁월하게 나타내려고 하셨다고 하였고 5절에서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우리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10절은 구원의 성립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9절은 구원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것은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 행위(ἔργων, 에르곤)는 복수로 “일들, 행위들”이라는 뜻입니다.
⚫ 에서 난 것이(ἐξ, 엨스)는 8절의 에게서 난 것이와 같습니다. 사람에 의한 것도 아니고 행위들에 의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행위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그 누구도 자신의 행위를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직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구원은 행위로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1-10절은 구원의 성립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10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에 예비하셔서 선한 일을 행하게 하려고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 만드신(ποίημα, 포이에마)은 명사로 “만들어진 것, 작품, 피조물”이라는 뜻입니다.
⚫ 지으심을 받은 자니(κτισθέντες, 크티스덴테스)는 κτίζω(크티조: 창조하다)의 동분사 과거 수동태 1인칭 복수입니다.
이러한 것이 뜻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으심을 받게 된 이유는 선한 일들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하나님께서 앞서서 미리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 전에 예비하사(προετοίμασεν, 프로에토이마센)는 προετοιμάζω(프로에토이마조: 미리 준비하다, 앞서 준비하다)의 동사 직설법 과거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앞서 준비하신 것은 선한 일들을 행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해주신 피조물입니다. 그렇게 창조해주신 것은 선한 일들을 행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앞서 준비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지극히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구원을 받게 해주시고(7) 그러한 구원의 은혜를 선물로 받게 해주시고(8) 선한 일을 위하여 창조해주셨으므로(9) 선한 일을 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2:11-19 구원의 목표: 아버지께 나아감
11-19절은 구원의 목표에 관한 것인데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 이후에 나아가야 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화평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가 되어 한 성령님 안에서 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었는데 자신의 육체로 둘을 하나로 만드시는 화평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중간에 막혀 있던 담이 허물어져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서로가 한 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게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둘이 한 성령님 안에서 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 2: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1-19절은 구원의 목표에 관한 것인데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 이후에 나아가야 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11절은 육체로 있던 이전의 상태에 대한 것입니다. 이방인의 상태로 있었는데 무할례자로 있었던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 생각하라(μνημονεύετε, 므네모뉴에테)는 μνημονεύω(므네모뉴오: 기억하다, 언급하다)의 동사 명령법 2인칭 복수입니다.
무엇을 기억하라고 하였는가 하면 이전에 육체로는 이방인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때의 이방인들은 무할례자들을 가리킵니다.
이전에 육체의 상태로 있을 때 할례를 받지 못한 이방인이었던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 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1-19절은 구원의 목표에 관한 것인데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 이후에 나아가야 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12절은 11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방인이었으므로 바깥에 있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안에 있을 때 받게 되는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방인으로 있었던 그 때에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고, 언약에 대해서는 외인이고, 세상에서는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였다는 것입니다.
⚫ 밖의 사람이라(ἀπηλλοτριωμένοι, 아펠로트리오메노이)는 ἀπαλλοτριόω(아팔로트리오오: 사이를 나쁘게 하다, 정을 떼다, 멀리하다)의 동분사 완료 수동태 2인칭 복수입니다.
⚫ 외인이요(ξένοι, 크세노이)는 주격 복수로 형용사로는 “낯설은, 외국의”라는 뜻이고, 명사로는 “낯선 사람들, 외국인들”이라는 뜻입니다.
⚫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ἄθεοι, 아데오이)는 형용사 주격 복수로 “하나님 없는, 불경건한, 하나님을 믿지 않는”의 뜻입니다.
이방인으로 있었을 때에는 그리스도도 없었고 하나님도 없었고 소망도 없었고 이스라엘 나라와는 사이가 멀어졌고 언약들에 대해서도 외국인의 상태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이방인으로 있었을 때에는 아무런 혜택을 누릴 수 없었던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1-19절은 구원의 목표에 관한 것인데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 이후에 나아가야 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13절에서는 11-12절에 언급하였던 이방인의 상태에서 대역전극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졌느니라(ἐγενήθητε, 에게네데테)는 γίνομαι(기노마이: 생겨나다, 일어나다, 되다, 만들어지다)의 동사 직설법 과거입니다.
이방인이었던 그때에는 그리스도 예수와는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멀리 떨어져 있던 것이 가까워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으므로(1:7)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1-19절은 구원의 목표에 관한 것인데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 이후에 나아가야 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이러한 14-19절은 앞서 13절에 언급한 피를 흘려주셔서 가까이해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해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14절은 화평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힘 담을 자신의 육체로 허셔서 둘을 하나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 원수 된 것(ἔχθραν, 에크드란)은 대격 단수로 “증오를, 적의를, 적대를”이라는 뜻입니다.
⚫ 곧 중간에 막힌(μεσότοιχον, 메소토이콘)은 “가르는 담, 막는 담, 장벽”의 뜻입니다.
⚫ 허시고(λύσας, 뤼사스)는 λύω(뤼오: 풀다, 해방하다, 석방하다, 풀어놓다, 취소하다, 폐지하다)의 동분사 과거 능동태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가까워지게 된 것은 둘을 하나로 만드신 우리의 화평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육체로 적대관계와 가로막고 있는 장벽을 풀어버리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 2: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1-19절은 구원의 목표에 관한 것인데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 이후에 나아가야 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15절은 화평하게 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서 법조문으로 된 율법을 폐하시고 둘을 한 새 사람으로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 폐하셨으니(καταργήσας, 카타르게사스)는 καταργέω(카타르게오: 폐하다, 무효로 하다, 못쓰게 만들다, 폐지하다)의 동분사 과거 능동태입니다.
⚫ 자기 안에서(ἐν αὐτῷ, 엔 아우토)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것을 의미합니다.
⚫ 지어(κτίσῃ, 크티세)는 κτίζω(크티조: 창조하다, 만들어 내다)의 동사 가정법 과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법령들로 이루어진 계명들의 율법을 폐하신 것은 자신으로 말미암아 둘을 한 새로운 사람으로 창조하여 화평을 만드시기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1-19절은 구원의 목표에 관한 것인데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 이후에 나아가야 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16절은 화목하게 하시려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둘을 한 몸이 되게 하시고 원수 된 것을 소멸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 화목하게(ἀποκαταλλάξῃ, 아포카탈랔세)는 ἀποκαταλλάσσω(아포카탈랏소: 화해시키다, 화해하다)의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입니다.
⚫ 소멸하시고(ἀποκτείνας, 아포크테이나스)는 ἀποκτείνω(아포크테이노: 죽이다, 살해하다, 처형하다)의 동분사 과거 능동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유대인과 이방인이 원수였던 것을 죽이셨으므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몸이 되게 해주셨고 그런 상태로 하나님께 화해시켜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서로 떨어져 있던 유대인과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지게 되었고(13),
화평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로 유대인과 이방인이 둘이 하나로 만들어지게 되었고(14),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나누던 율법이 폐하여져서 둘이 하나로 되어 새 사람이 만들어져서 화평하게 되었고(15),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원수였던 유대인과 이방인이 둘이 하나로 되어 그런 상태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16).
이러한 것을 요약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도 하나가 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예전처럼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몸이 되었으므로 새 사람이라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 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1-19절은 구원의 목표에 관한 것인데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 이후에 나아가야 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17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먼 데 있는 자들과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다는 것입니다.
⚫ 평안을(εἰρήνην, 에이레넨)과 평안을(εἰρήνην, 에이레넨)은 “평화를, 복지를, 번영을”의 뜻입니다.
앞서 언급한 14절의 화평(εἰρήνη, 에이레네)과 15절의 화평(εἰρήνην, 에이레넨)과 동일한 어원입니다.
⚫ 먼데 있는(μακρὰν, 마크란)은 13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멀리(μακρὰν, 마크란)와 동일한데 “멀리, 멀리서, 멀리 떨어진”의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멀리 떨어져 있던 이방인에게 화평을 전하셨고 가까이에 있던 유대인에게도 화평을 전하셨다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화평과 멀리와 가까이라는 용어를 다시 반복해서 사용하여 화평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로 만들어 화평하게 해주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유대인과 이방인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 2: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1-19절은 구원의 목표에 관한 것인데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 이후에 나아가야 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18절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 나아감을(προσαγωὴν, 프로사고겐)은 대격으로 “접근을, 가까이 감을, 들어감을, 다가감을”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앞서 13-17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둘이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은 한 성령 안에서 한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 다가가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둘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중요하므로 둘로 하나를 만드사(14),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15), 이 둘을 한 몸으로(16), 우리 둘이 한(18)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이처럼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어 한 성령 안에서 한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 다가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라는 것입니다(갈 3:28).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동서고금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다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11-19절은 구원의 목표에 관한 것인데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 이후에 나아가야 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19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해주셔서 이제부터는 외인과 나그네가 아니라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과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하였습니다.
⚫ 이제부터…도 아니…도 아니요(οὐκέτι, 우케티)는 “이제는 -아니다, 더 이상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 동일한 시민(συμπολίται, 쉼폴리타이)은 “동료 시민, 같은 시민”이라는 뜻입니다.
⚫ 권속(οἰκεῖοι, 오이케이오이)은 “집에 속하는, 가족에 속하는, 가족들, 가족들의”라는 뜻입니다.
이방인도 이제는 더 이상 외부의 사람이 아니라 성도와 똑같이 하나님 나라의 한 시민이고 하나님의 한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둘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2:20-22 구원의 성취: 성전으로 지어짐
20-22절은 구원의 성취에 관한 것인데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 이후에 이루어나가게 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다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으로 지어져 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처소로 지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한 몸이 되어 한 성전으로 지어져 가고 한 성령님 안에서 한 아버지의 처소로 지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0-22절은 구원의 성취에 관한 것인데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 이후에 이루어나가게 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20절은 하나가 된 이후에 이루어지게 되는 구원의 성취에 대한 것입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게 되었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어주신 것입니다.
⚫ 터(θεμελίῳ, 데멜리오)는 “기초의, 기초, 주춧돌”이라는 뜻입니다.
⚫ 세우심을 입은 자라(ἐποικοδομηθέντες, 에포이코도메덴테스)는 ἐποικοδομέω(에포이코도메오: -위에 세우다, -위에 짓다)의 동분사 과거 수동태 2인칭 복수입니다.
이방인들도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기초 위에 짓게 되었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어주셨다는 것입니다.
● 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0-22절은 구원의 성취에 관한 것인데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 이후에 이루어나가게 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21절은 하나가 된 이후에 이루어지게 되는 구원의 성취에 대한 것인데 성전이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모퉁잇돌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전이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 서로 연결하여(συναρμολογουμένη, 쉬나르몰로구메네)는 συναρμολογέω(쉬나르몰로게오: 함께 짜 맞추다, 함께 밀접하게 결합하다, 서로 들어맞게 하다)의 동분사 현재 수동태입니다.
⚫ 되어가고(αὔξει, 아웈세이)는 αὐξάνω(아웈사노: 자라게 하다, 성장하다, 증가하다)의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입니다.
4장 16절에서도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συναρμολογούμενον, 쉬나르몰로구메논) 결합되어 그 몸을 자라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모퉁잇돌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들어맞게 되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20-22절은 구원의 성취에 관한 것인데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 이후에 이루어나가게 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22절도 하나가 된 이후에 이루어지게 되는 구원의 성취에 대한 것인데 하나님의 처소로 지어져 가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이(τοῦ θεοῦ, 투 데우)는 속격으로 “하나님의”라는 뜻입니다.
⚫ 거하실 처소가(κατοικητήριον, 카토이케테리온)는 대격으로 “거처를, 거주지를”이라는 뜻입니다.
⚫ 되기 위하여(εἰς, 에이스)는 “-안으로, -로 향하여, -을 위하여, -으로, -까지, -에 대하여”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것을 감안해 보면 “하나님의 거처로”라는 의미가 됩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처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전으로 함께 지어져 가고(21)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져 간다는(22) 것입니다.
한눈에 보는 에베소서 (재개정판)
재개정일 2024년 1월 12일
개 정 일 2021년 11월 3일
발 행 일 2021년 9월 30일
지 은 이 이서영
출 판 사 퍼플
출판등록 제300-2012-167호 (2012년 9월 7일)
주 소 서울시 종로구 종로1가 1번지
대표전화 1544-1900
홈페이지 www.kyobobook.co.kr.
ISBN 978-89-24-12226-8
ⓒ 이서영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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