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는 에베소서 (재개정판) 1장 선택에 나타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제1부] 성도들의 신분에 나타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에베소서 1-3장은 성도들의 신분에 나타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의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풍성한 은혜를 수여하시는 하나님과 풍성하게 수여받는 대상에 관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은혜를 성도들의 신분에 풍성하게 부어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에베소서 1-3장은 1장에 먼저 은혜의 수여자이신 하나님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2장에 은혜의 수혜자인 성도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이러한 은혜의 수혜자가 확장되도록 3장에는 전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장별 | 주제 |
1 | 선택에 나타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
2 | 구원에 나타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
3 | 전도에 나타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
1장 선택에 나타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1장 개요
✙✙✙ 1장 구절
에베소서 1장에서 대표적인 구절을 선정한다면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 4절입니다.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 1장 주제
에베소서 1-3장은 성도들의 신분에 나타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의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은혜를 성도들의 신분에 풍성하게 부어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1장은 풍성한 은혜의 수여자이신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신령한 복을 풍성하게 베풀어주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선택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택의 은혜에 대해 찬송드리는 것과 이러한 은혜를 풍성하게 알게 되도록 기도드리고 예증하고 있습니다.
1장은 이러한 흐름이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주제를 도출해 본다면 선택에 나타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됩니다.
✙✙✙ 1장 구조
에베소서 1장은 은혜의 수여자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도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해주신 풍성한 은혜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1장에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택하신 것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1장은 모두 여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2절 선택의 대상, 3-6절 선택의 작정, 7-12절 선택의 성취, 13-14절 선택의 보증, 15-19절 선택의 인식, 20-23절 선택의 역사입니다.
이러한 것의 문장 형식은 1-2절은 인사문, 3-14절은 찬송문, 15-19절은 기도문, 20-23절은 예증문입니다.
첫 번째 단락인 1-2절은 선택의 대상에 관한 것인데 바울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기원해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 단락인 3-6절은 선택의 작정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선택을 작정해주신 선택의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세 번째 단락인 7-12절은 선택의 성취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풀어주시는 풍성한 은혜에 대한 것입니다.
네 번째 단락인 13-14절은 선택의 보증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님을 통해 베풀어주시는 풍성한 은혜에 대한 것입니다.
다섯 번째 단락인 15-19절은 선택의 인식에 관한 것인데 선택의 은혜를 풍성하게 깊이 인식할 수 있도록 간구해주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 단락인 20-23절은 선택의 역사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극히 크신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1장 개관
단락 | 단락별 개요 |
1-2 | 선택의 대상: 사도 바울의 인사 |
3-6 | 선택의 작정: 하나님의 예정 |
7-12 | 선택의 성취: 그리스도의 속량 |
13-14 | 선택의 보증: 성령님의 인치심 |
15-19 | 선택의 인식: 사도 바울의 기도 |
20-23 | 선택의 역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
1:1-2 선택의 대상: 사도 바울의 인사
1-2절은 인사문으로 1-2절은 선택의 대상에 관한 것인데 바울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기원해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도로서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기원해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1-2절은 선택의 대상에 관한 것인데 바울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기원해주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1절은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이 선택의 대상인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인사하고 있습니다.
⚫ 사도(ἀπόστολος, 아포스톨로스)는 “보내다”를 뜻하는 ἀποστέλλω(아포스텔로)에서 유래되었으므로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사도는 단순히 보낸다는 의미보다는 임무를 주어서 보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사도가 되고 싶다고 사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가 되게 해주셔야 보내심을 받은 사도가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아 사도가 되었습니다(행 9:15, 22:21, 26:16-18).
이러하므로 사도 바울은 자신을 소개하면서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3장 7-8절을 보면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로 일꾼이 되었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이때 하나님(θεός, 데오스)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에베소서에서 보면 하나님 우리 아버지(1:2),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1:17), 아버지 하나님께(5:20), 아버지 하나님과(6:23)라고 언급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아버지의 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살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풍성하게 주십니다(1:3-14).
또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부어주셔서 풍성하게 부어주시는 신령한 복을 알게도 해주십니다(1:17-19).
그리고 이러한 풍성한 은혜를 나타내시고(2:7) 전파하게 해주셔서(3:8) 성도들이 모두 다함께 삶과 사역 가운데 은혜를 풍성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4-6장).
⚫ 그리스도(Χριστός, 크리스토스)는 χρίω(크리오: 기름 붓다)에서 파생되었는데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는 구약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선지자, 제사장, 왕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뜻을 5장 23절에서 보면 그리스도께서 구주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 40-42절에서는 사마리아인들이 우물에서 예수님을 만난 여자에게 말하면서 세상의 구주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2장 8-11절에는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사가 하는 말 가운데서도 볼 수 있는데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하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구주”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구주이신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Ἰησοῦς, 이에수스)에 대한 뜻을 마태복음 1장 21절에서 보면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자가 요셉에게 성령님으로 잉태되신 것을 알려준 다음에 낳게 되는 아들의 이름을 알려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들을 낳게 되는데 이름을 예수라 하라(21)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이름을 지은 뜻은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21)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우리 죄에서 구원해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우리와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리스도로 오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죄인인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구원을 받게 되었고 성도가 된 것입니다.
⚫ 성도들(ἁγίοις, 하기오이스)은 “거룩한 자들, 봉헌한 자들, 신에게 바친 자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하나님께 바쳐진 거룩한 존재들이 성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로(롬 1:6-7) 거룩하게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신실한 자들(πιστοῖς, 피스토이스)은 “신실한 자들, 믿는 자들, 신뢰하는 자들, 믿음을 가진 자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1:1)은 각각 다른 수신자로 볼 수도 있으나 동일한 수신자입니다.
쌍둥이 서신으로 일컬어지는 골로새서를 보면 1장 2절에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골로새서 1장 2절의 곧(καὶ, 카이)과 에베소서 1장 1절의 과(καὶ, 카이)는 원어로는 같습니다.
골로새서 1장 2절은 곧이라고 하였으므로 동격이기에 성도들은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도 골로새서처럼 καὶ(카이)를 동격으로 보면 성도들이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이처럼 에베소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편지는 그 당시를 포함해서 오늘날 우리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모든 믿는 성도들에게도 해당되는 편지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1절에서만 보더라도 사도가 된 것도 성도가 된 것도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2절은 선택의 대상에 관한 것인데 바울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기원해주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2절은 사도 바울이 인사말을 함에 있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시고 예수님은 주님이시고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바꾸어서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아버지의 한 자녀로서 한 가족이라는 것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 주(κυρίου, 퀴리우)는 κύριος(퀴리오스: 주님, 주인)의 속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때와 시기에 대한 권한(행 1:7)을 가지시고 이외의 모든 권세를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주셨으므로(마 28:18, 요 17:2) 주님이 되실 수 있으신 것입니다.
1장 21절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22절을 보면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교회의 머리로 삼아주신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셔서 주님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 로부터(ἀπὸ, 아포)는 “-에서, -에서부터, -으로부터”라는 뜻인데 무엇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늘에 속한 성도들은 하늘에 속한 은혜와 평강을 받아 살아가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하늘에 속한 은혜와 평강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은혜(χάρις, 카리스)는 “은혜, 호의”라는 뜻입니다. 값없이 기쁘게 호의로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은혜는 일반적으로 나누는 인사말에 나오는 말이지만 에베소서에서는 보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다가옵니다.
은혜라는 용어를 신약성경 가운데 가장 많이 언급하고 있으며 은혜는 에베소서의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가 20구절로 가장 많으나 16장 가운데, 고린도후서가 16구절로 13장 가운데, 그다음으로 에베소서가 12구절이나 6장 가운데 12구절이므로 가장 많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를 보면 은혜로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은 것과(1:17)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과(2:5, 8) 은혜로 일꾼이 된 것을(3:7, 8)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은혜가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게 되고 은혜가 없으면 일꾼도 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와 연관된 의미를 에베소서에서 찾아보면 거저 주심과(1:6) 긍휼하심과(2:4) 자비하심과(2:7) 선물(2:8)입니다.
⚫ 평강(εἰρήνη, 에이레네)은 “평화, 복지, 번영”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로 שָׁלוֹם(샬롬: 평화, 복지, 번영)입니다.
이러한 평강은 안전하고 건강한 것만 의미하지 않고 평화와 복지와 번영과 같은 의미를 포괄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내려오는 이러한 평강이 있어야 가정도 사회도 기업도 직장도 학교도 나라도 그리고 교회도 든든하게 설 수 있습니다.
이러한 평강은 하나님과 사람들과 환경과 자연과 부조화를 일으키지 않고 조화롭게 화목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모든 성도들에게 위로부터 내려오는 이러한 은혜와 평강이 필수적으로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민수기 6장 22-2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고 지키시기를 원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하시고 평강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축복하면 그러한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은혜와 평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러한 은혜와 평강을 인사말을 통해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기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1:3-6 선택의 작정: 하나님의 예정
3-14절은 찬송문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베풀어주시는 풍성한 은혜와 그러한 은혜에 대해 찬송을 드리는 찬송문입니다.
이러한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찬송의 마지막 구절(6, 12, 14)을 기준으로 해서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3-6절은 하나님 아버지, 7-12절은 예수 그리스도, 13-14절은 성령님과 관련하여 찬송을 드린 것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3-6절은 선택의 작정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선택을 작정해주신 선택의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우리를 선택해주신 것과 선택의 의미를 지닌 예정해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은혜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3) 그리스도 안에서(4)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5)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6) 풍성하게 베풀어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3-6절은 선택의 작정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선택을 작정해주신 선택의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3절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신 것에 대해 찬송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 단락은 찬송하리로다(3)로 시작하여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6)로 끝나고 있습니다.
찬송의 대상은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3)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킨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쌍둥이 서신인 골로새서 1장 3절에서도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다는(3) 것입니다.
복이라고 하면 눈에 보이는 육체의 복을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3절에서는 그러한 복이 아니라 영적인 복인 하늘에 속해 있는 모든 신령한 복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 하늘에(ἐπουρανίοις, 에푸라니오이스)는 ἐπουράνιος(에푸라니오스)의 여격 복수입니다.
ἐπουρανίοις(에푸라니오스)는 ἐπί(에피: 위에)와 οὐρανός(우라노스: 하늘)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늘의, 하늘에 있는, 하늘에 속한”이라는 뜻입니다.
⚫ 신령한(πνευματικῇ, 프뉴마티케)은 “영적인(spiritual)”이라는 뜻입니다.
하늘보다 위라고 한 것은 자연의 하늘이 아니라 영의 세계가 있는 하늘을 가리킵니다.
3절에서는 신령한 하늘에 속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보면 하늘과 신령이라는 개념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땅에 속해 있는 것으로는 신령할 수 없고 하늘에 속해 있어야 영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육체의 복은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만 작용하는 유통기한이 있는 복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복은 영생하도록 존재하는 복이므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 되는 것입니다.
⚫ 찬송하리로다(Εὐλογητὸς, 율로게토스)와 복을(εὐλογία, 율로기아)과 주시되(εὐλογήσας, 율로게사스)는 모두 동일한 어원을 가지고 있는데 εὐλογέω(율로게오)입니다.
εὐλογέω(율로게오)는 εὖ(유: 좋게, 잘)와 λόγος(로고스: 말)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에 대해 좋게 말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칭찬하다, 찬송하다(praise), 축복하다(bless), 복을 주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셨을 때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3-6절은 선택의 작정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선택을 작정해주신 선택의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3절을 보면 하늘에 속한 모든 복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4-5절에서는 그러한 복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4절은 이미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 택하사(ἐξελέξατο, 엨셀렠사토)는 ἐκλέγω(에클레고: 골라내다, 선택하다)의 동사 직설법 과거로 “골라내셨다, 선택하셨다”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가 선택해주셨다는 것인데 그는 3절의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킵니다.
택함을 받게 된 것은 그 어떤 부귀영화 장수의 복보다 형언하기 어려운 복인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러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 안에서 그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는 것입니다.
●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3-6절은 선택의 작정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선택을 작정해주신 선택의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3절을 보면 하늘에 속한 모든 복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하였는데 5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정도 미리 결정하신 것이므로 선택하신 의미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 예정하사(προορίσας, 프로오리사스)는 προορίζω(프로오리조)의 동분사 과거입니다.
προορίζω(프로오리조)는 πρό(프로: -전에, -앞에)와 ὁρίζω(호리조: 결정하다)에서 유래되었으므로 “예정하다, 미리 결정하다”라는 뜻입니다.
1장 11절에 나오는 예정을 입어(προορισθέντες, 프로오리스덴테스)도 προορίζω(프로오리조)라는 동일한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 기쁘신 뜻(τὴν εὐδοκίαν τοῦ θελήματος, 텐 유도키안 투 델레마토스)은 “그 뜻의 그 기쁨을”이라는 의미입니다.
εὐδοκίαν(유도키안)은 εὐδοκία(유도키아: 선의, 좋은 즐거움, 기쁨)의 대격 단수이고 θελήματος(델레마토스)는 θέλημα(델레마: 뜻, 의지, 의도, 의향)의 속격 단수입니다.
⚫ 아들들이(υἱοθεσίαν, 휘오데시안)는 υἱοθεσία(휘오데시아: 양자삼기)의 대격 단수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양자로 삼아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미리 결정하신 것은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고 엄청난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러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의 기쁘심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이 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게 된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3, 4)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5)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러한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 1: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3-6절은 선택의 작정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선택을 작정해주신 선택의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3절을 보면 하늘에 속한 모든 복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하였는데 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것에 대한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 사랑하시는(ἠγαπημένῳ, 에가페메노)은 ἀγαπάω(아가파오: 사랑하다)의 동분사 완료 수동태입니다. “사랑받으신”이라는 뜻입니다.
사랑하시는 자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하셔서 그러한 사랑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 거저 주시는(ἐχαρίτωσεν, 에카리토센)은 χαριτόω(카리토오: 은혜를 베풀다, 은혜를 주다)의 동사 직설법 과거이므로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받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은혜에 대해 찬송을 드리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7-12 선택의 성취: 그리스도의 속량
7-12절은 찬송문으로 7-12절은 선택의 성취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풀어주시는 풍성한 은혜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베풀어주시는 풍성한 은혜에 대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은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 죄를 속량해주신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을 받아 기업이 된 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정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업이 된 것은 선택이 성취된 의미라는 것입니다.
이번 단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은혜에 대한 단락이므로 그리스도 안에서(7, 9, 10, 12)라는 말씀을 많이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7-12절은 선택의 성취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풀어주시는 풍성한 은혜에 대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7절을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의 풍성함에 따라 그리스도의 피로 속량 곧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 풍성함(πλοῦτος, 플루토스)은 “부유, 풍성, 풍부, 부”의 뜻입니다.
이러한 풍성함에 대한 용어를 에베소서에서 찾아보면 7절을 포함해 모두 5개(1:7, 18, 2:7, 3:8, 16)입니다.
2장 4절의 πλοῦτος(플루토스)에서 유래한 형용사 풍성(πλούσιος, 플루시오스)까지 포함하면 모두 6개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실 때는 풍성하게 베풀어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의 위대함은 이러한 은혜의 풍성함에 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풍성한 은혜는 에베소서의 대표적인 주제가 되는 것입니다.
7절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렇게 값없이 놀랍게 부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량 곧 죄 사함 받은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 속량(ἀπολύτρωσιν, 아폴뤼트로신)은 ἀπολύτρωσις(아폴뤼트로시스: 구속, 구조, 속전, 해방)의 대격으로 “속량을”이라는 뜻입니다.
ἀπολύτρωσις(아폴뤼트로시스)는 노예나 포로를 다시 사거나 속물을 받고 자유를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 죄(παραπτωμάτων, 파랖토마톤)는 παράπτωμα(파랖토마: 죄, 범죄, 실수)의 속격 복수이므로 “죄들의”라는 뜻입니다.
⚫ 사함을(ἄφεσιν, 아페신)은 ἄφεσις(아페시스: 석방, 용서, 사면, 면제)의 대격이므로 “용서를”이라는 뜻입니다.
⚫ 받았느니라(ἔχομεν, 에코멘)는 ἔχω(에코: 가지다, 소유하다)의 현재 능동태입니다.
이러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로부터 해방된 것을 나타냅니다.
이러하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을 곧 죄들의 용서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극히 풍성하게 베풀어주시는 은혜인 것입니다.
● 1: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7-12절은 선택의 성취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풀어주시는 풍성한 은혜에 대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8절을 보면 이러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 총명(φρονήσει, 프로네세이)은 φρόνησις(프로네시스: 생각, 사고, 이해력, 통찰력)의 여격 단수입니다.
⚫ 넘치게 하사(ἐπερίσσευσεν, 에페릿슈센)는 περισσεύω(페릿슈오: 넘치다, 남다, 풍성하다)의 과거 능동태입니다. 넘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지혜와 통찰력으로 그리스도의 피로 풍성하신 속량의 은혜를 넘치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 1: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7-12절은 선택의 성취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풀어주시는 풍성한 은혜에 대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9절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의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주셨는데 기뻐하심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획하신 것을 알려주셨다는 것입니다.
⚫ 알리신 것이요(γνωρίσας, 그노리사스)는 γνωρίζω(그노리조: 알리다, 알게 하다)의 동분사 과거 능동태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의 비밀을 알려주셔서 알게 해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 경륜을(οἰκονομίαν, 오이코노미안)은 οἰκονομία(오이코노미아: 관리, 경영, 행정, administration 등)의 대격입니다.
경륜(經綸)의 사전적인 의미는 큰 포부를 가지고 어떤 일을 조직적으로 계획하는 것을 뜻하고 또는 그러한 포부를 뜻하며 세상을 다스리는 것을 뜻하고 이에 필요한 경험이나 능력을 뜻합니다.
이러한 경륜을 신학적인 의미에서 보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God’s plan of salvation)과 관련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에 대한 계획을 하시고 그러한 계획에 따라 차근차근 이루어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하나님의 때가 가득 채워져서 때가 이르면 하나님께서 구원에 대해 계획하신 것을 실행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예정하신(προέθετο, 프로에데토)은 προτίθεμι(프로티데미)의 동사 직설법 과거입니다.
προτίθεμι(프로티데미)는 πρό(프로: -전에, -앞에)와 τίθημι(티데미: 놓다, 두다, 정하다)에서 유래되었으므로 “계획하다, 내놓다”라는 뜻입니다.
선재성의 측면에서 앞서 내놓는 것을 의미하므로 앞서 계획하는 것을 뜻합니다.
1장 11절의 계획을(πρόθεσιν, 프로데신)과 3장 11절의 예정(πρόθεσιν, 프로데신)도 προτίθεμι(프로티데미)라는 동일한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계획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선행하여 앞서 내놓다는 입장에서 보면 계획하셨다는 뜻인 것입니다.
에베소서에서는 뜻의 비밀(1:9), 비밀을 알게(3:3), 그리스도의 비밀(3:4), 비밀의 경륜(3:9), 복음의 비밀(6:19)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감추어져 있던 신비로운 비밀인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우리에게 알게 해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의 기뻐하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비밀을 알려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 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7-12절은 선택의 성취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풀어주시는 풍성한 은혜에 대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10절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늘과 땅에 있는 것을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ἀνακεφαλαιώσασθαι, 아나케팔라이오사스다이)는 ἀνακεφαλαίομαι(아나케팔라이오마이: 요약하다, 종합적인 합계를 하다, 집합하다)의 동부정사 과거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시키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약하는 것과 합계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하나로 모아진다는 면에서 보면 동일한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을 합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시고 그리스도 한분에게로 모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므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교회의 머리로 삼으신(21-22)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1: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7-12절은 선택의 성취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풀어주시는 풍성한 은혜에 대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11절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에 따라 예정을 입어 그리스도 안에서 기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 기업이 되었으니(ἐκληρώθημεν, 에클레로데멘)는 κληρόω(클레로오: 제비 뽑다, 제비로 결정하다, 제비뽑기로 지정하다)의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입니다.
신약성경에 한 번 나오는 용어인데 문자적인 의미는 과거 수동태이므로 제비뽑기로 지정되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러한 것을 구약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기업을 제비뽑아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나누어 준 것을(수 14:2)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업이 되었다는 것은, 즉 제비뽑기로 지정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특별하게 뽑힌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특별하게 선출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기업이 된 것은 예정을 입어서 된 것이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예정을 입어(προορισθέντες, 프로오리스덴테스)는 προορίζω(프로오리조)의 동분사 과거 수동태입니다.
προορίζω(프로오리조)는 πρό(프로: -전에, -앞에)와 ὁρίζω(호리조: 결정하다)에서 유래되었으므로 “예정하다, 미리 결정하다”라는 뜻입니다.
1장 5절의 예정하사(προορίσας, 프로오리사스)도 προορίζω(프로오리조)라는 동일한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정을 입었다는 것은 예정되었다는 의미인데 미리 결정되었다는 것입니다. 기업이 되었는데 미리 결정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즉흥적으로 생각나서 결정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기업으로 삼아주시기로 결정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그러한 존재가 되게 해주셨기에 우리가 그러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정을 입게 되었다는 것은 뜻을 결정하신대로 일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 일하시는(ἐνεργοῦντος, 에네르군토스)은 ἐνεργέω(에네르게오: 역사하다, 일하고 있다)의 동분사 현재 능동태이므로 “역사하시는, 일하시는”의 뜻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1장 20절의 역사하사와 3장 20절의 역사하시는도 같은 어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일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뜻하신 결정에 따라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의 계획에 따라 예정해주시고 기업이 되게 해주신 것입니다.
⚫ 계획을(πρόθεσιν, 프로데신)은 πρόθεσις(프로데시스: 차려놓음, 진설, 계획)의 대격입니다.
πρόθεσις(프로데시스)는 προτίθεμι(프로티데미: 계획하다, 내놓다)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선재성의 측면에서 앞서 내놓는 것을 의미하므로 앞서 계획하는 것을 뜻합니다.
1장 9절에 나오는 예정하신(προέθετο, 프로에데토)과 3장 11절의 예정(πρόθεσιν, 프로데신)도 προτίθεμι(프로티데미: 계획하다, 내놓다)라는 동일한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정한다는 뜻보다는 계획한다는 뜻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선행하여 앞서 내놓는 입장에서 보면 계획이라는 의미입니다.
참고로 예정에 대한 용어를 어원에 입각해서 정리해보면 1장 5절의 예정하사와 1장 11절의 예정을 입어는 προορίζω(프로오리조: 예정하다, 미리 결정하다)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1장 9절의 예정하신과 3장 11절의 예정은 προτίθεμι(프로티데미: 계획하다, 내놓다)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1장 9절과 3장 11절에 나오는 예정과 관련된 용어는 1장 11절에 나오는 계획을과 동일한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1장 5절의 예정하사와 1장 11절의 예정을 입어는 예정과 관련된 용어이고 1장 9절의 예정하신과 3장 11절의 예정은 계획과 관련된 용어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앞서 계획하고 이미 결정된 것을 의미하고 있으므로 선택과 관련된 의미인 것입니다.
● 1: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7-12절은 선택의 성취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풀어주시는 풍성한 은혜에 대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7-11절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를 풍성하게 베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12절은 이러한 은혜를 입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랐던 우리가 그러한 찬송을 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 신약성경에 한 번 나오는 전부터 바라던(προηλπικότας, 프로엘피코타스)은 προελπίζω(프로엘피조)의 동분사 완료형입니다.
προελπίζω(프로엘피조)는 πρό(프로: -전에, -앞에)와 ἐλπίζω(엘피조: 기대하다, 소망하다)에서 유래되었으므로 “미리 바라보다, 사전에 바라다, 먼저 바라다, 최초로 바라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소망하였던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의 찬송을 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13-14 선택의 보증: 성령님의 인치심
13-14절은 찬송문으로 13-14절은 선택의 보증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님을 통해 베풀어주시는 풍성한 은혜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베풀어주시는 풍성한 은혜에 대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성령님을 통해 주신 은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약속의 성령님의 인치심을 통해 우리 기업의 보증을 해주신 은혜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을 쳐주신 것은 선택을 보증해주신 의미인 것입니다.
●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3-14절은 선택의 보증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님을 통해 베풀어주시는 풍성한 은혜에 대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13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의 성령님의 인치심을 받은 것에 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13절부터는 어떤 변화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너희(ὑμεῖς, 휘메이스)는 2인칭 대명사 σύ(쉬: 너)의 복수 주격입니다.
너희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2장 11절과 3장 1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방인 성도들을 말합니다.
⚫ 너희도에서 도(καὶ, 카이)는 13절에서는 “-도, 또한, also”라는 뜻입니다. 이방인 성도도 해당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방인 성도들도 그러한 은혜를 풍성하게 입게 된 것을 알게 되기를 1장 13절부터 3장까지 설명해주고 기도드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러한 은혜를 풍성하게 입은 자로서 그러한 풍성한 은혜의 삶을 살아가도록 4-6장에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1장 13절은 이방인 성도들도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풍성하게 입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약속의 성령님으로 인치심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ἅγιος πνεῦμα, 하기오스 프뉴마: 거룩한 영)은 삼위일체의 하나님 가운데 한 하나님이시자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고(마 10:20, 롬 8:9, 11)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시기도(롬 8:9, 행 16:7) 합니다.
에베소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한 구절에 모두 언급한 구절을(1:17, 2:18, 22)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각 장에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빠짐없이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1:2, 3, 17, 2:18, 3:15, 4:6, 5:20, 6:23) 예수 그리스도와(1:1 등, 2:5 등, 3:1 등, 4:7 등, 5:2 등, 6:5 등) 성령님에(1:13, 17, 2:18, 22, 3:5, 16, 4:3, 4, 30, 5:18, 6:17, 18)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하신 성령님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령님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요 3:3, 5).
하나님 아버지를 아빠 아버지로 부르게 하시고(롬 8:15, 갈 4:6)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게 하시고 증언하게 해주십니다(요 15:26, 고전 12:3).
또한 진리의 영이신(요 14:17) 성령님께서 말씀을 알게 하시고(요 16:13, 고전 2:12) 가르쳐주시고 생각나게 하시고(요 14:26) 행하게 해주시고(롬 8:4, 갈 5:16) 영적인 일을 분별하게 해주십니다(고전 2:13).
그리고 삶과 생애와 사명 감당에 필요한 성품의 열매를 맺게 해주시고(갈 5:22, 23) 은사를 주셔서(롬 12:6-8, 고전 12:8-11, 28)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받기 전에는 삶도 생애도 사역도 제대로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령님을 힘입으신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잉태되실 때(마 1:18), 세례를 받으신 때(마 3:16),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마 4:1), 심판을 알리실 때(마 12:18), 귀신을 쫓아내실 때(마 12:28)입니다.
또한 성령님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실 때(눅 4:14-15), 성령님이 임하셨을 때(눅 4:18), 부활하실 때(롬 8:11), 명령하실 때(행 1:2), 사역하실 때(행 10:38) 등이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성령님을 힘입어야 하셨다면 연약한 우리는 얼마나 더 힘입어야 하겠습니까?
이러하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으로 입혀지기까지 기다리라고(행 1:4-5)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 언약대로 예루살렘에서 간절히 합심하여 기도드리자 모두가 성령님을 충만하게 받게 되었습니다(행 1:12-14, 2:1-4).
에베소서 1장 13절에서 이러하신 성령님에 대한 것을 보면 약속의 성령님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인치심을 받았으니(ἐσφραγίσθητε, 에스프라기스데테)는 σφραγίζω(스프라기조: 인치다, 봉인하다)의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입니다.
수동태이므로 인친 것이 아니라 인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인치심을 받게 된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인치심을 받았을 때 약속의 성령님으로 인치심을 받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장 30절을 보면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치심은 선지자들에 의해 약속된 성령님으로 인치심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나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다고 확인도장을 찍어준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양자가 되기 이전의 신분은 불순종의 아들들(2:2, 5:6)이었고 진노의 자녀(2:3)이었고 사람의 아들들(3:5)이었습니다.
마귀에 속해 죽은 자였고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던 자였지만 이제는 풍성한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께 속한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 듣고(ἀκούσαντες, 아쿠산테스)와 믿어(πιστεύσαντες, 피스튜산테스)는 모두 동분사 과거 능동태입니다.
⚫ 그 안에서(ἐν ᾧ, 엔 호)가 두 번 나오는데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뜻입니다.
인치심을 받은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었을 때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복음이 멀리 다른 나라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복음이 아니라 바로 너희들에게 속한 너희들의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성령님의 인치심을 받게 된 것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치심을 받게 되었다는 것은 선택을 받았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 1: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13-14절은 선택의 보증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님을 통해 베풀어주시는 풍성한 은혜에 대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14절은 그러한 성령님의 인치심은 성령님께서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얻으신 것을 속량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한 영광을 찬송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자동적으로 현재적으로나 미래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기업을 상속받게 되어 있습니다.
⚫ 기업의(κληρονομίας, 클레로노미아스)는 κληρονομία(클레로노미아: 기업, 유산, 상속 재산, inheritance)의 속격 단수입니다.
⚫ 보증이(ἀρραβὼν, 아르라본)는 “첫 회 불입금, 첫 지불금, 보증금, 보증”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기업을 받게 되는데 확실하게 받게 된다는 것을 성령님께서 기업의 보증이 되신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보증금을 지불하였기에 확실하게 기업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받는 대상이 우리(ἡμῶν, 헤몬: 우리의)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성령님께서 우리 기업의 보증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22절에서도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14절 마지막의 하려 하심이라(εἰς, 에이스)는 “-안으로, -로 향하여, -을 위하여, -으로, -까지, -에 대하여”라는 뜻입니다. 14절에서는 “위하여”라는 의미입니다.
⚫ 원어성경을 보면 이러한 εἰς(에이스)가 ἀπολύτρωσιν τῆς περιποιήσεως(아폴뤼트로신 테스 페리포이에세오스: 그 얻으신 것의 속량을)과 ἔπαινον τῆς δόξης αὐτοῦ(에파이논 테스 돜세스 아우투: 그의 그 영광의 찬송을) 앞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약속의 성령님으로 인치심을 받아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신 것은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기 위한 것이고 그의 영광을 찬송드리기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 속량(ἀπολύτρωσιν, 아폴뤼트로신)은 ἀπολύτρωσις(아폴뤼트로시스: 구속, 구조, 속전, 해방)의 대격으로 “속량을”이라는 뜻입니다.
ἀπολύτρωσις(아폴뤼트로시스)는 노예나 포로를 다시 사거나 속물을 받고 자유를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로부터 해방된 것을 나타냅니다.
⚫ 얻으신 것을(περιποιήσεως, 페리포이에세오스)은 περιποίησις(페리포이에시스: 얻는 것, 획득, 취득, 소유)의 속격입니다.
소유주는 하나님 아버지이시고 소유된 사람은 성령님의 인치심을 받고 기업의 보증을 받은 성도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풍성한 은혜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이고 감사한 일입니까?
이처럼 성령님의 인치심을 받아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신 것은 그 얻게 된 것의 속량을 위한 것이고 그러한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한 것입니다.
1:15-19 선택의 인식: 사도 바울의 기도
15-19절은 기도문으로 15-19절은 선택의 인식에 관한 것인데 선택의 은혜를 풍성하게 깊이 인식할 수 있도록 간구해주고 있습니다.
선택의 의미를 지닌 부르심의 소망과 기업의 영광이 풍성한 것과 능력이 지극히 크신 것에 대해 알게 되기를 기도드리는 내용입니다.
● 1:15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5-19절은 선택의 인식에 관한 것인데 선택의 은혜를 풍성하게 깊이 인식할 수 있도록 간구해주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15-16절은 기도문의 서문에 해당하는데 15절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주 예수 안에서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자기도 들었다는 것입니다.
⚫ 나도(κἀγὼ, 카고)는 καί(카이: 그리고, 역시)와 ἐγώ(에고: 나)에서 유래하였으므로 “그리고 나, 나도 역시”라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로 들었다는 것은 다른 그 누구도 들은 것을 자기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이 널리 소문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좋은 소문이 퍼졌다는 것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그러한 좋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쌍둥이 서신으로 불리는 골로새서에 나오는 골로새교회 성도들도 그러한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골 1:4) 볼 수 있습니다.
● 1: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15-19절은 선택의 인식에 관한 것인데 선택의 은혜를 풍성하게 깊이 인식할 수 있도록 간구해주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16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기도드릴 때 너희를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기억(μνείαν, 므네이안)은 μνεία(므네이아: 기억, 언급)의 대격이므로 “기억을, 언급을”이라는 뜻입니다.
⚫ 하며(ποιούμενος, 포이우메노스)는 ποιέω(포이에오: 만들다, 행하다)의 동분사 현재이므로 “만드는, 행하는”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16절에서는 기억을 한다는 뜻이 됩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 사람에 대한 것을 기억하고 있으므로 그 사람에 대한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드릴 때 기억하고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고 그만큼 관심을 가지고 기도드린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사람이 그만큼 잊지 않고 기억할 정도의 어떤 좋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15절에서 언급한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이 그러한 것입니다.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들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있다는 것이고 그들의 믿음과 사랑을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기도드릴 때 관심의 대상이 되어 기억나는 사람이 되고 기억날 정도로 좋은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기도드릴 때 기억하기도 하였지만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한다고도 하였습니다.
⚫ 감사하기를(εὐχαριστῶν, 유카리스톤)은 εὐχαριστέω(유카리스테오: 감사하다)의 동분사 현재 능동태이므로 “감사하는”이라는 뜻입니다.
⚫ 그치지(παύομαι, 파우오마이)는 παύω(파우오)의 동사 직설법 현재 중간태입니다.
παύω(파우오)는 능동태인 경우에는 “중지하다, 그치게 하다, 제지하다”라는 뜻이고 중간태인 경우에는 “멈추다, 그치다”라는 뜻입니다. 16절에서는 중간태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 성도들로 말미암아 감사 기도를 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감사 기도를 드려주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 몇 번 감사 기도드리고 그쳐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감사 기도드려주었습니다.
이렇게 할 정도였다는 것은 그만큼 에베소교회 성도들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열정과 사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렇게 그치지 않고 감사 기도드린다는 것은 에베소교회 성도들과 그들의 믿음과 사랑이 강력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5-19절은 선택의 인식에 관한 것인데 선택의 은혜를 풍성하게 깊이 인식할 수 있도록 간구해주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17-19절은 기도문의 내용에 해당하는데 17-18a절은 성령님을 부어주셔서 알도록 기도드리는 내용이고 18b-19절은 그리하여 베풀어주신 풍성한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도록 기도드리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17절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지식 안에서 지혜와 계시의 성령님을 부어주시도록 기도드려주고 있습니다.
⚫ 영(πνεῦμα, 프뉴마)은 “바람, 호흡, 영, 성령”을 의미하는데 17절에서는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 주사(δώῃ, 도에)는 δίδωμι(디도미: 주다, 하사하다)의 가정법 과거 능동태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 성령님을 주시도록 기도드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를 받으시는 분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17절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영광을 가지신 아버지시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에베소서에서 찾아보면 아버지의 영광에 대해 찬송하는 것에서(1:6, 12, 14) 볼 수 있습니다.
성도들 안에 있는 아버지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1:18) 알게 하도록 기도드리는 것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영광의 풍성함에 따라 아버지의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속사람을 강건하게 해달라는 기도에서도(3:16)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은혜를 풍성하게 주시는 영광의 아버지께서 성령님을 부어주시도록 기도드렸다는 것입니다.
⚫ 계시의(ἀποκαλύψεως, 아포칼륖세오스)는 ἀποκάλυψις(아포칼륖시스: 덮개를 벗김, 드러냄, 계시)의 속격입니다.
이러한 계시는 감추어져 있던 것을 드러내어 알게 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3장 3절에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이라고 언급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또한 1장 8-9절에 아버지께서 모든 지혜를 우리에게 넘치게 하셔서 아버지의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라고 한 것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3장 9-10절을 보면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시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을 주셔서 하나님의 감추어진 지식을 알게 해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성령님은 알게 해주시는(눅 12:12, 요 14:26, 16:13, 고전 2:10, 13, 12:8)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 11장 2절을 보면 성령님께서 지혜와 총명과 지식의 영이시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이러한 것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의 지식 안에 있는 지혜와 계시를 알 수 있도록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을 부어주시도록 기도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 1: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5-19절은 선택의 인식에 관한 것인데 선택의 은혜를 풍성하게 깊이 인식할 수 있도록 간구해주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18a절은 성령님을 주셔서 알게 해주시는 것을 언급하고 있으며 18b절은 풍성한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도록 기도드려주고 있습니다.
18절에서는 세 가지의 풍성한 선택의 은혜 가운데 두 가지 은혜를 알도록 기도드려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은혜를 제대로 알려면 마음의 눈이 밝혀져야 하므로 마음의 눈을 밝혀 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의 것은 영의 눈으로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할 수 있기(고전 2:13, 14)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육안이 아니라 영안이 열려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밝히사(πεφωτισμένους, 페포티스메누스)는 φωτίζω(포티조: 밝게 하다, 비추다, 조명하다, 밝히다)의 동분사 완료 수동태입니다.
비추어서 드러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3장 9절을 보면 비밀의 경륜을 드러내게 하려 하신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때 드러내게가 동일한 용어입니다.
수동태인 것은 하나님의 지식을 사람이 알려고 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계시해주셔서 알게 해주실 때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지혜와 계시의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영안이 열리도록 기도드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열려서 알아야 할 내용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베풀어주신 세 가지의 풍성한 선택의 은혜인데 18절에서는 두 가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풍성한 선택의 은혜 가운데 먼저 하나님 아버지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기도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부르심의(κλήσεως, 클레세오스)는 κλῆσις(클레시스: 부름)의 속격입니다. κλῆσις(클레시스)는 καλέω(칼레오: 부르다, 이름 짓다, 초대하다)에서 유래하였습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셔서 택하여주시고(1:4) 예정하여 주시고(1:5) 죄에서 속량하여 주시고(1:7) 약속의 성령님으로 인을 쳐주시고(1:13) 보증해(1:14) 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택하여 주신 이러한 신령한 복을 받은 우리를 불러주시는 소망을 가지고 계시다가 때가 되면 미리 택하시고 예정하셨던 성도들을 불러주실(롬 8:30)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불러주실 날을 손꼽아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그러한 소망과 기대 속에서 부르심을 받은 귀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이라는 것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르심의 소망이 얼마나 크고 귀하고 영광스럽고 은혜로운지를 알기를 기도드려준 것입니다.
이러한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으므로(4:4) 부르심에 대해 깊이 찬송과 영광을 드리는 가운데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야(4:1) 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으로는 성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기도드려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기업의(κληρονομίας, 클레로노미아스)는 κληρονομία(클레로노미아: 기업, 유산, 상속 재산, inheritance)의 속격 단수입니다. 1장 14절에 나오는 기업의(κληρονομίας, 클레로노미아스)와 동일합니다.
1장 11절에 나오는 기업이 되었으니(ἐκληρώθημεν, 에클레로데멘)는 제비뽑기로 지정되었다는 의미입니다.
5장 5절에 나오는 기업을(κληρονομίαν, 클레로노미안)은 제비로 할당받은 것을 의미하는데 대격이므로 “상속자를, 후사를”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기업에 관한 용어는(1:11, 14, 18, 5:5)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κλῆρος(클레로스: 제비, 제비 뽑아 얻은 것)라는 동일한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기업의 의미는 제비뽑기로 얻은 것을 의미하는데 선택받은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그러한 것을 유산이나 상속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기업에 관한 것은(1:11, 14, 18)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택을 받아 상속권자가 된 자만 받을 수 있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귀한 것을 주셨다는 것이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은 그러한 귀한 것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영광이 있다는 것입니다.
⚫ 풍성함(πλοῦτος, 플루토스)은 “부유, 풍성, 풍부, 부”의 뜻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기업은 이와 같이 풍성하고 풍부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풍성함에 대한 용어를 에베소서에서 찾아보면 18절을 포함해 모두 5개(1:7, 18, 2:7, 3:8, 16)입니다.
2장 4절의 πλοῦτος(플루토스)에서 유래한 형용사 풍성(πλούσιος, 플루시오스)까지 포함하면 모두 6개입니다.
이러한 풍성함에 대해서는 앞서 3-14절의 찬송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언급되는 내용 가운데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선택을 받아 상속받게 된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셨던 기업을 알게 되면 알수록 어떻게 되겠습니까?
받은 기업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풍성한지를 더 실감하게 되고 그러한 기업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더 큰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기업의 영광이 풍성한 것을 체험적으로 알기를 기도드려준 것입니다.
● 1: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15-19절은 선택의 인식에 관한 것인데 선택의 은혜를 풍성하게 깊이 인식할 수 있도록 간구해주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19절은 세 가지의 풍성한 선택의 은혜 가운데 마지막 한 가지 은혜를 알도록 기도드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역사해주셔서 선택의 은혜를 베푸신 능력이 얼마나 지극히 크신가를 알도록 하기 위한 기도입니다.
19절에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힘과 위력과 능력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힘의(ἰσχύος, 이스퀴오스)는 ἰσχύς(이스퀴스: 힘, strength)의 속격입니다.
ἰσχύς(이스퀴스)는 ἴσχω(이스코: 저지하다)에서 유래하였습니다.
⚫ 위력으로(κράτους, 크라투스)는 κράτος(크라토스: 세력, might)의 속격입니다.
1장 19절에 나오는 힘의 위력으로라는 뜻은 6장 10절에 나오는 힘의 능력으로라는 뜻과 동일합니다.
⚫ 능력의(δυνάμεως, 뒤나메오스)는 δύναμις(뒤나미스: 권능, 능력, power)의 속격입니다.
δύναμις(뒤나미스)는 δύναμαι(뒤나마이: -할 수 있다, 가능하다)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시는 만물을 제어하시고 통제하시는 강력한 힘을 의미합니다.
능력은 할 수 있는 능력이나 가능하게 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에는 모두 5구절에(1:19, 21, 3:7, 16, 20)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떤 일을 하시고자 할 때 불가능한 것 없이 거침없이 성취하시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힘과 위력과 능력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하더라도 사용되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무용지물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가지고만 계시지 아니하시고 그러한 힘과 위력과 능력을 실제로 역사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셔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 하늘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믿는 우리에게 베풀어주셔서 실현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 역사하심을(ἐνέργειαν, 에네르게이안)은 ἐνέργεια(에네르게이아: 활동, 작용)의 대격입니다. 19절에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역사해주시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 지극히(ὑπερβάλλον, 휘페르발론)는 ὑπερβάλλω(휘페르발로: 초월하다, 능가하다, 뛰어나다, 탁월하다)의 동분사 현재 능동태입니다.
⚫ 크심(μέγεθος, 메게도스)은 신약성경에 한 번 나오는데 “거대함, 위대함, 큼”이라는 뜻입니다.
에베소서의 대표적인 구절로 선정한 2장 7절의 지극히(ὑπερβάλλον, 휘페르발론)와 3장 18절의 넘치는(ὑπερβάλλουσαν, 휘페르발루산)도 동일한 어원으로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역사하심에 따라 우리를 위하여 베풀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이 얼마나 지극히 큰 것인가를 알게 되기를 기도드려준 것입니다.
이렇게 지극하다는 것은 더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보다 뛰어나고 모든 것에서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의 지극히 크심은 능력의 크심이 지극하시다는 뜻이 됩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의 크심이 얼마나 지극하신가를 알게 되기를 원하기에 기도드려준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도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지극히 크신 능력을 알게 되기를 기도드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측량할 수 없는 위대한 능력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 알게(εἰδέναι, 에이데나이)는 εἴδω(에이도: 보다, 알다, 경험하다)의 동부정사 완료 능동태입니다.
희미하게 단순히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확실하게 분명하게 알도록 기도드려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깨달을수록 하나님 아버지께서 풍성하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얼마나 크고도 놀라우며 풍성한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깊이 인식하게 되면 받은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가를 알게 되고 그러한 은혜를 부어주신 영광의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의 찬송과 감사를 자발적으로 영원히 드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만큼 하나님을 믿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울러 그러한 풍성한 은혜에 감격해서 살아가게 되고 이웃에게도 그러한 은혜를 다함께 풍성하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안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확실하게 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이 하나님 아버지의 것으로만 존재하고 우리에게 실현되지 않으면 크신 능력이 지극한지 어떤지 실감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영광을 찬송하지 못하게 되고 아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아 열매를 맺게 되는 효과적인 능력 있는 우리의 인격과 사역과 삶이 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우리에게 적용될 수 있겠습니까?
19절에 언급한 것처럼 믿는 우리에게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 믿는(πιστεύοντας, 피스튜온타스)은 πιστεύω(피스튜오: 믿다)의 동분사 현재 능동태입니다.
대회에서 우승해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험을 쳐서 합격해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으로 받게 됩니다.
크신 능력이 지극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그러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베풀어주시는 것을 믿고 그렇게 해주시기를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믿고 구하는 자에게 주십니다(마 7:7-11). 믿고 구하는 자가 받게 됩니다(마 21:22). 기도 외에는 나갈 수가 없습니다(막 9:29).
믿고 기도드릴수록 실제로 역사하는 능력을 점점 받게 되고 그렇게 되면 지극히 크신 능력의 하나님을 점점 더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3-14절의 찬송문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의 찬송을 드린 다음에 15-19절의 기도문을 통해 기도드린 것입니다.
1:20-23 선택의 역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20-23절은 예증문으로 20-23절은 선택의 역사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극히 크신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15-19절에 선택의 의미를 지닌 부르심의 소망과 기업의 영광이 풍성한 것과 능력이 지극히 크신 것에 대해 기도드린 내용을 입증해주는 예증문 성격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극히 크신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으뜸이 되게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살리신 것과 오른편에 앉히신 것과 모든 것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과 만물을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극히 크신 능력을 역사하셔서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도록 하시고 만물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에 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러하신 그리스도를 선택받아 불러냄을 받은 기업인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게(1:23)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불러냄을 받은 교회가 선택의 은혜를 입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1: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0-23절은 선택의 역사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극히 크신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20-23절을 시작하기에 앞서 20절에 먼저 하나님 아버지께서 능력을 역사하신 것부터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후에 역사하신 목록에 대해 하나씩 열거해나가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0절에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해주시고 우편에 앉혀주신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 역사하사(ἐνήργησεν, 에네르게센)는 ἐνεργέω(에네르게오: 활동하다, 역사하다, 일하고 있다)의 직설법 과거 능동태 3인칭 단수이므로 “그가 역사하셨다”라는 뜻입니다.
능력은 19절에 언급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도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지극히 크신 능력을 가리킵니다.
여기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하고 효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능력을 역사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19절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도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지극히 크신 능력을 알게 되기를 기도드렸는데 그러한 능력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언급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려주신 것입니다.
20절에서는 실제로 죽은 자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죽은 사람들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러하신 그리스도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극히 크신 능력을 베풀어주셔서 다시 살아나게 해주셨습니다.
⚫ 다시 살리시고(ἐγείρας, 에게이라스)는 ἐγείρω(에게이로: 일어나다, 일어서다, 죽은 자를 일으키다, 깨우다, 잠깨다)의 동분사 과거 능동태이므로 죽은 자를 일으키셨다는 의미입니다.
죽은 자가 스스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아무도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누군가 일어나게 해주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사람으로서는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렇게 엄청난 일을 역사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극히 크신 능력을 역사하셔서 그리스도께서 살아나게 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4절에서 그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이러한 것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에게 베푸신 능력이 그리스도께만 머물러 있지 않고 성도들에게까지도 역사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를 살려주실 뿐만 아니라 그러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지구상의 동서고금의 수많은 성도들까지도 살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이 얼마나 지극히 크신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만 하더라도 놀라운 능력이신데 그리스도를 하나님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혀주시기도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하늘(ἐπουρανίοις, 에푸라니오이스)은 ἐπουράνιος(에푸라니오스)의 여격 복수입니다.
ἐπουρανίοις(에푸라니오스)는 ἐπί(에피: 위에)와 οὐρανός(우라노스: 하늘)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늘의, 하늘에 있는, 하늘에 속한”이라는 뜻입니다.
하늘보다 위라고 한 것은 자연의 하늘이 아니라 영의 세계가 있는 하늘을 가리킵니다.
앞서 3절에서도 언급하였으며 2장 6절에도 나옵니다. 이때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신령한 하늘을 의미합니다.
이에 비해 3장 10절과 6장 12절에서 말하는 하늘은 악한 영들이 있는 하늘을 가리킵니다.
⚫ 오른편(δεξιᾷ, 뎈시아)은 δεξιός(뎈시오스: 오른쪽)의 여격 단수로 오른편을 뜻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오른손은 신적인 능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 앉히사(καθίσας, 카디사스)는 καθίζω(카디조: 앉다, 앉게 하다)의 동분사 과거 능동태이므로 “앉게 하셨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20절에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께 능력을 부여해주신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실제로 자신의 보좌 우편에 앉히신 것을 가리키기도 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권능을 주시기도 하셨고 오른편 보좌에 앉혀주시기도 하셨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8장 1절을 보면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앉으셨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편에 계시는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행 2:35, 7:55, 56, 롬 8:34, 골 3:1, 히 1:3, 13, 10:12, 12:2).
또한 베드로전서 3장 22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리스도께 복종한다고 하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극히 크신 능력을 역사하셔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아나게 하시고 자신의 오른편에 앉혀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일들이 그리스도께만 역사하지 아니하시고 모든 믿는 성도들에게도 역사하신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혀주시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2장 5절에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라고 한 것과 2장 6절에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늘에 앉히지 못하고 땅 곧 지옥에 영원히 앉혀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리스도와 함께 끌어 올려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은 이렇게 지극히 크신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을 보다 풍성하게 알 수 있다면 얼마나 더 좋겠습니까?
이러하므로 사도 바울이 이러한 것을 더욱 더 풍성하게 알게 되기를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 1: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0-23절은 선택의 역사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극히 크신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 가운데 21절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극히 크신 능력을 역사하신 목록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것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ὑπεράνω, 휘페라노)는 전치사로 ὑπέρ(휘페르: -을 위하여, 대신하여, 때문에, -에 대하여, -위에, 넘어서, -이상의)와 ἄνω(아노: 위에, 위로, 위를 향하여)에서 유래하였습니다.
4장 10절에서도 동일한 용어를 볼 수 있습니다. 땅 아래로 내리셨던 그리스도께서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라고 언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단순하게 위쪽을 가리키는 의미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높은 단계의 위쪽을 가리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모든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나게 하셔서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름보다 뛰어나게 해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권세(ἐξουσίας, 엨수시아스)는 ἐξουσία(엨수시아: 선택의 자유, 권리, 권세)의 속격 단수입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는 권세를 의미합니다.
⚫ 능력(δυνάμεως, 뒤나메오스)은 δύναμις(뒤나미스: 권능, 능력)의 속격 단수입니다.
δύναμις(뒤나미스)는 δύναμαι(뒤나마이: -할 수 있다, 가능하다)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능력은 할 수 있는 능력이나 가능하게 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에는 모두 5구절에(1:19, 21, 3:7, 16, 20)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은 사람들이 가진 것만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영들이 가진 것도 가리킵니다.
모든(πάσης, 파세스)이라는 것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악한 영들이 가진 것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동서고금의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보다 뛰어나게 되는 것만 하더라도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영들보다 더 뛰어나게 된다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이 악한 영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배당하고 복종하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들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을 에베소서에서 찾아보면 2장 2절에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장 10절에는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이라고 하였으며 6장 12절에서는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이 의미하는 것은 어떤 공간이든 어떤 존재든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것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극히 크신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는 힘을 펴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들과 악한 영들이 가진 그러한 것보다 훨씬 능가하는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모든 것을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러하신 지극히 크신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모든 사람들과 악한 영들이 가진 그러한 모든 것보다 더 뛰어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보다 훨씬 위로 뛰어나게 해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보다도 훨씬 뛰어나게 해주신 것도 볼 수 있습니다.
⚫ 세상(αἰῶνι, 아이오니)은 αἰών(아이온: 무한히 긴 시간, 시대, 세대, 영원)의 여격 단수입니다. 2장 2절의 풍조를과 2장 7절의 여러 세대에의 원어원형도 αἰών(아이온)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κόσμος(코스모스: 세계, 세상)나 γῆ(게: 땅, 세상)나 οἰκουμένη(오이쿠메네: 천하, 세상)를 의미하기보다는 시간적인 의미에서의 세상을 뜻합니다.
⚫ 일컫는(ὀνομαζομένου, 오노마조메누)은 ὀνομάζω(오노마조: -에 이름을 붙이다, 일컫다, 이름 짓다)의 동분사 현재 수동태입니다. 이름이 지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한한 공간적인 의미가 아니라 무한한 시간적인 의미에서 모든 시간들 속에서 뛰어나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지극히 크신 능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은 모든 세상의 시간을 의미하므로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를 포함한 영원한 시간을 가리킵니다.
그런 시간 속에 사람이든(창 17:5, 막 3:16) 동식물이든(창 2:19) 천사든(눅 1:26, 유 1:9) 악한 영이든(막 5:9, 계 20:2) 그 무엇이든 모든 만물은 이름을 가지게 됩니다.
모든 시간 속에 있는 그렇게 붙여진 모든 이름보다 뛰어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빌립보서 2장 9절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여주셨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은 모든 이름이 의미하는 것은 모든 시간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모든 것보다 뛰어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보다 더 뛰어난 것은 그 무엇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그리스도께서는 뛰어나신 분이시라는 것이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밖에 없다는 것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 1: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0-23절은 선택의 역사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극히 크신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 가운데 22절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극히 크신 능력을 역사하셔서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도록 하시고 만물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에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불러냄을 받은 교회가 선택의 은혜를 입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만물을(πάντα, 판타)은 πᾶς(파스: 모든, 온갖, 각각의 모든)의 대격 중성 복수입니다. “모든 것들을”이라는 뜻이 됩니다.
⚫ 복종하게 하시고(ὑπέταξεν, 휘페탘센)는 ὑποτάσσω(휘포탓소: 복종하다)의 직설법 과거 능동태이므로 “복종시켰다”라는 의미입니다.
ὑποτάσσω(휘포탓소)는 ὑπό(휘포: -에 의하여, -아래)와 τάσσω(탓소: 순서 있게 정렬하다, 배열하다, 일정한 곳에 두다)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어떤 것의 아래에 순서대로 정렬시키거나 배열하거나 일정한 곳에 둔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하므로 능동태인 경우에는 “-아래 두다, 복종시키다, 종속시키다”라는 뜻이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시간 속에서의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두시고 복종하도록 해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지극히 크신 능력으로 말미암아 모든 존재들이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조차도 복종하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모든 사람과 심지어 모든 악한 영들까지도 복종하게 한다는 것은 더욱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거뜬하게 해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만한 능력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러하신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가장 높은 곳에 올려주셔서 만물이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위치하도록 하게 하셨고 위치만 두게 하시지 아니하시고 복종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만물이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위치하게 되었고 만물이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된 것입니다.
1장 10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결국은 그리스도 한분에게로 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것의 최정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누가 그 어떤 존재가 지구상의 동서고금의 모든 왕들과 권세자들을 복종하게 할 수 있으며 심지어 악한 영들까지도 복종하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오직 지극히 크신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복종하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한 일을 그리스도께 맡겨주셔서 그리스도께서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 되셔서(계 17:4, 19:16)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만물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교회에 주신 것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들 위에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교회에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위에(ὑπὲρ, 휘페르)는 대격이므로 “-위에, -이상, -보다 더, -넘어서”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아래와 위라는 대조적인 개념을 사용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지극히 크신 능력과 그리스도의 뛰어나심을 알게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어떤 것들도 그리스도의 아래에 있게 된다는 것이고 그 어떤 것들도 그리스도의 위에 있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물이 있어야 하는 위치는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있어야 하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받들고 복종하여야 하는 위치인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만물은 당연히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있을 수밖에 없고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복종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의 머리로서 많은 형제 중에 맏아들이 되시고(롬 8:29, 히 1:6) 만물의 으뜸이(골 1:18)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러하신 그리스도를 선택받아 불러냄을 받은 기업인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게(1:23)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교회의(ἐκκλησίᾳ, 엨클레시아)는 ἐκκλησία(엨클레시아: 집회, 회중, 교회)의 여격 단수이므로 “교회에게”라는 뜻이 됩니다.
ἐκκλησία(엨클레시아)는 ἐκ(에크: -에서, -에서부터, -때문에, -에 의하여)와 καλέω(칼레오: 부르다, 이름 짓다, 초대하다)에서 유래되었으므로 불러내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 삼으셨느니라(ἔδωκεν, 에도켄)는 δίδωμι(디도미: 주다, 하사하다)의 직설법 과거 능동태입니다. “주셨다”라는 의미입니다.
지극히 크신 능력을 베푸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만물 위에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교회에 주셨다는 것입니다.
만물이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신다는(골 2:10, 계 1:5) 것입니다.
이렇게 만물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교회에 주셨다는 것은 교회의 머리도(엡 5:23, 골 1:18) 되신다는 것입니다.
만물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어지셨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인 교회의(1:23) 머리로서 만물을 다스리시는 그러한 권능으로 교회를 돌보시고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에서 보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충만함으로 충만하게 하시고(1:23)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시는(3:10)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시고(5:25)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시고(5:27) 교회를 양육하여 보호하시는(5:29)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극히 크신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에 주셔서 교회를 돌보게 하시고 교회는 복종하게 하신 것입니다.
●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20-23절은 선택의 역사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극히 크신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 가운데 23절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만물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에 주신 것에 대한 부연 설명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한 교회에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선택하여 불러내 세운 하나님의 기업인 교회가 그리스도의 충만으로 충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몸(σῶμα, 소마)은 복수가 아니라 단수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신 하나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교회의 교파가 다르고 교회의 지체인 성도들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한 분이신 그리스도께 연합된 한 몸이라는 것을(롬 12:5, 고전 10:17, 골 3:15)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관련하여 언급한 것을 에베소서에서 찾아보면 모두 7구절(1:23, 2:16, 4:4, 12, 16, 23, 5:30)입니다.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으로 말미암아 충만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충만하게 하시는(πληρουμένου, 플레루메누)은 πληρόω(플레로오: 채우다, 가득하게 하다, 충만하게 하다)의 동분사 현재 중간태입니다.
⚫ 충만함이니라(πλήρωμα, 플레로마)는 “채우는 것, 가득하게 하는 것, 충만”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충만에 대한 용어는 신약성경에 모두 34구절(요 6, 행 12, 롬 4, 고전 1, 엡 5, 빌 1, 골 3, 요일 1, 요이 1)입니다.
이 가운데 에베소서가 5구절로(1:23, 3:19, 4:10, 13, 5:18) 세 번째로 많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총 21장과 사도행전 총 28장과 비교하면 총 6장의 에베소서가 가장 많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에베소서가 얼마나 충만한 것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충만하게 하시는 분으로 말미암아 충만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택의 은혜를 입은 교회는 이러한 거룩한 충만을 받아 충만하게 되는 영광스러운 기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한눈에 보는 에베소서 (재개정판)
재개정일 2024년 1월 12일
개 정 일 2021년 11월 3일
발 행 일 2021년 9월 30일
지 은 이 이서영
출 판 사 퍼플
출판등록 제300-2012-167호 (2012년 9월 7일)
주 소 서울시 종로구 종로1가 1번지
대표전화 1544-1900
홈페이지 www.kyobobook.co.kr.
ISBN 978-89-24-12226-8
ⓒ 이서영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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